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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비밀당원|민주정의당}} TK는 노태우가, PK는 김영삼이, 충청권은 종필이가, 호남은 머중이가 먹으니까 수도권만 잡으면 머중이가 이길 거라는 논리다. 애초에 될 리가 없지 ㅅㅂ 6월 항쟁으로 인해 군부는 이제 심판 받을 일밖에 안 남은 시한부 인생이었을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은 선거는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까 자리 배정이나 하고 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합의해서 대권은 김영삼이 당권은 김대중이 가지기로 하고 선거에 임하기로 했는데 단일화를 몇 시간 앞두고 김영삼이 71년 대선에 대권 당권을 분리했더니 손발이 안 맞더라면서 자기가 다 가져가겠다는 식으로 말했고 김대중은 통민당을 뛰쳐나와서 평민당을 창당하고 4자필승론을 내세운다. 이게 참 병신 같은 생각인 게, 선거는 인구 싸움이지, 면적 싸움이 아니다. 문제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다 합쳐봐야 인구 수로 따지면 부산 경남에 못 미친다는 거. 광주가 대도시라고는 하나 부산이나 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심지어 지금 기준이라면 영남은 광역시가 3개인데 호남은 광주 뿐이다. 자기 지역구의 덩치를 생각해야지 개수를 생각해서 망한 거다. 졸 3개(2*3=6)가 있어봐야 차(13)는커녕 포(7) 이하다. 결과는? 하필 KAL 폭파사건이란 악재가 겹쳐 1등 노태우 2등 김영삼 3등 김대중 4등 김종필로 끝났다. 만약 김대중(김영삼)이 탈당 안 했다면 노태우는 개관광을 당해서 친구인 전두환과 5년 더 일찍 법정에 섰을 것이다. 민정당 입장에선 이 사건이 정말 고마웠을 것이다. [[진중권]]은 이 사건을 들어 김대중이 민주화 운동에서 담당한 게 뭐가 있느냐고 실컷 깠다. 이 선거의 여파로 김영삼과 김대중은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고 통수 맛에 제대로 빡친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김대중]]에게 빅엿을 먹인다. 솔직히 제일 큰 피해자인 노태우 안 찍은 국민들이 땡삼이가 욕심 부려서 망했다고 욕하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양심적으로 김대중 지지자들은 그딴 말은 하지 마라. 먼저 당 깨고 통수만 안 쳤어도 죽을 새끼를 예토전생 시켜줬을 거다. 어쩌면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국민의힘 계보의 진정한 아버지는 김대중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지역 감정이 결과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 최초의 대통령 선거다. 이 선거 때문에 [[김대중]]은 평생 전라도 당수나 하다가 뒈질 놈이라고 인식이 박혀서 정치 생명이 골로 갈 뻔했지만 [[IMF|외환위기]]란 호재를 만나서 결국 10년 후 15대 대통령이 된다. 27년 만에 대통령 당선되어서 참으로 기분 좋아했다 카더라. [[분류:정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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