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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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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평가 == ...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사실상 5공의 거대한 쇼에 불과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태우가 폭탄 선언을 하고 전두환은 이것을 수용하여 마치 민주화가 달성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 항쟁 몇 달 전부터 전두환은 이미 광범위한 여론 분석을 통해서 실질적인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대통령 직선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6.29 선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국민 기본권 신장, 언론 자유 창달, 지방자치제 실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민주화 선언'''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기로 가득 차있던 전국은 한순간에 무장 해제 상태가 되어버렸다. 전국은 축제 분위기로 몰려갔으며 양김 또한 민주화에 대한 감격에 가득 차있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이 거대한 쇼를 통해서 제한된 민주화를 이용하여 집권 세력의 지배를 지속할 수 있다는 계산을 깔아 놓았다. 6.29 선언 직후 청와대에 장관 및 고위 공직자들을 불러놓고, 구속된 사람을 풀어줄 때 극렬분자, 급진 좌경화 세력을 풀어주어서는 안 되며 학생들을 풀어주더라도 일률적으로 복교 시켜서 영웅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까지 하는 등, 계획이 철저했다. 또한 직선제 등 민주주의의 절차를 보장함으로써 국민적 저항을 약화하고 저항 세력의 내부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집권당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김대중과 김영삼의 뿌리 깊은 경쟁과 정부, 여당의 막강한 조직과 자금으로 직선제를 통한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한편 6.29 선언으로 김대중을 포함하여 대대적인 사면, 복권을 시행하였으므로 '''5공의 국민에 대한 항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항복을 가장한 권력 연장의 합리적이고 계산된 행동이었다. 즉 6.29 선언은 전국적인 저항이 정부의 제도권 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던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로써 진정한 민주화를 향한 대결은 거리에서의 경쟁이 아닌 선거 경쟁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서 정치권 내에서 여야 간의 정치적 선택과 행동이 민주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상황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이것을 잘 활용한 5공은 13대 대선 당시 야당의 분열 조장, 지역 갈등과 색깔 공세(예를 들어 호남의 반 김영삼 선동, 영남의 반 김대중 선동 등)를 활용해서 국민의 과반이 야당을 뽑았지만 대통령 당선은 노태우가 되는, 그래서 대한민국 민주화를 또다시 늦추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통수}} 전두환이 한 가지 예측하지 못한 게 있다면 노태우가 5공과 전두환 청산?을 이유로 자신을 청와대에서 [[백담사|절]]로 유배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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