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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SKS]]를 도태시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소련]] 당국의 의사 결정은 대단히 신속했다. [[RPD]]조기 퇴역을 전재로 곧바로 새로운 [[경기관총]]의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총기 제작자들에게 이는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였다. [[RPD]]가 성능이 나쁜것도 아닌데, 이보다 더 좋은 경기관총을 당장 뱉어내놓으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파일:RPK_IRAQ.jpg|900px]] *'''이라크 정부군의 RPK 사격장면''' 사실 [[M1911]] 권총이나 [[M2 중기관총]], [[AK-47]]에서 알 수 있듯이 총이라는 물건은 처음에 잘 만들면 오랫동안 현역에서 활약할 수 있는 무기다. 그것은 성능이 뛰어난 새로운 총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는 의미기도 하며, 한편으로 [[AK-47]]이 얼마나 뛰어난 소총이었는지 알려주는 총기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AK-47]]로 인하여 [[SKS]]와 [[RPD]]라는 좋은 총들이 제대로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사라져 간 것이다. 당국의 명령을 받은 이들 중에는 [[AK-47]]의 아버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도 있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시제 경기관총을 만들었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고심을 거듭한 끝내 생각을 단순화했다. [[AK-47]]을 경기관총으로 개조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최소한 [[AK-47]] 만큼의 성능은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탄생과 동시에 채택되다=== 그는 먼저 총열을 굵고 길게 만들어 파괴력과 사거리를 대폭 늘렸다. 따라서 [[AK-47]]의 사거리 밖에 있는 목표물에 대한 효과적인 제압이 가능하면서 지원화기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성능을 확보했다. 더불어 사격의 정확성과 편이성을 높이기 위해서 양각대를 장착하고 조준기와개머리판도 개량시켰다.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새로운 기관총의 모습은 영락없는 [[AK-47]]의 대형화 버전이고 사용법도 차이가 없없다. 전용 탄띠 수납 컨데이너를 사용하던 [[RPD]]와는 달리 40발 들이 전용 막대 탄창이나 드럼 탄창을 사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AK-47]]용 탄창을 사용 할 수 있어서 야전에서의 효율성과 편이성을 도모했다. 가장 획기적인 점은 무게를 5킬로그램 내외로 대폭 줄인 점이었는데, 이는 [[AK-47]]보다 약간 무거운 수준으로 [[RPD]]의 7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가벼운 무게는 유사이래 모든 화기가 꿈꾸던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새로운 기관총에 대만족한 [[소련]]군 당국은 1961년에 RPK를 즉시 제식화하고 예정대로 [[RPD]]를 즉시 도태시켜 해외에 대량 공여하거나 수출하여 버렸다. [[소련]]군의 이러한 빠른 행보는 서방측을 긴장시켰다. 특히 [[미군]]같은 경우는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소총]]과 [[기관총]]의 제식탄환이 나뉘어 버리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새로운 분대지원 화기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파일:RPK_DRUM.jpg]] *'''드럼 탄창을 장착한 RPK''' ===AK-47의 친구=== 이에 반하여 RPK는 분대나 소대 정도의 소부대 운영 측면에서 본다면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별도 교육이 필요 없을 만큼 사용법마저 소총과 동일한 경기관총은 탄의 보급뿐만 아니라 총기의 유지보수 및 전투에서 상당한 이점을 제공했다. 이에 비하여 서방측은 같은 총탄을 사용하더라도 소부대 내 소총과 지원화기가 상이하기 때문에 유지보수 및 교육과 관련해서 별도의 체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렇게 야심만만하게 도입한 RPK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 급속도로 보급되어 실전에도 대량 사용되었다. 더불어 서방의 5.56mm 탄에 대응하여 [[소련]]이 1970년대에 5.45x39mm 탄을 이용하는 [[AK-74]]를 제작하자 이에 발맞추어 [[RPK-74]]도 함께 만들었을 만큼, AK소총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지원화기가 되었다. 또 하나의 냉전시대 상징물이었다. RPK는 [[소련]]에서 1978년까지 생산되었고 특히 [[RPK-74]]는 현재도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AK-47]]처럼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다. 적어도 [[AK-47]]을 생산했던 나라라면 충분히 이를 복제할 수 있었고 냉전 당시에는 이런 행위가 그다지 문제가 될 만한 것도 아니었다. [[RPD]]의 도태 이유 중 하나가 구조가 복잡하다는 것이었는데, 그에 비한다면 단순한 RPK는 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단점=== 하지만 분명 단점도 있었는데 [[소련]]은 RPK에 만족하다보니 이를 간과했고 결국 후속 지원화기 개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RPK는 장점이 단점까지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경우였다. [[AK-47]]과의 완벽한 호환성은 장점이었지만 처음부터 경기관총으로 설계 되었던 총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소총 이상의 성능을 기대하기 곤란했던 것이다. 특히 이 점은 [[FN 미니미]]를 비롯한 동급의 서방 경기관총과 비교하면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목적기관총 역할까지 담당할 수 있는 서방의 분대지원화기에 비한다면 [[RPK]]는 확실히 역량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분해하지 않고는 총열을 교환할 수 없는 구조 등은 지속사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즉 편리함이 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든 장벽이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모양의 [[AK-47]] 개량형이라 하여도 굳이 틀린 설명은 아니고 비록 이 때문에 지금은 그저 그런 경기관총 정도로 취급받는 정향이 커졌다. 하지만 원래부터 단점이 없는 총이 없듯이 적어도 오랫동안 뛰어난 경기관총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RPK의 위상은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흠을 잡았지만 RPK는 한 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경기관총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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