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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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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 례프 니칼라예비치 탈스토이/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는 제정 러시아 시기에 활동한 러시아의 대문호이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지명도가 높은 세계적 문호이며 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일인이다. 대표작으로는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이 있다.

다만 문학적 업적과 별개로 뭇 대문호가 그러하듯 일생의 생활 자체가 청렴했던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귀족 가문이었던 그의 집안은 부유했고 그 역시 부유한 생활을 하였는데 젊었을 적에는 거의 매일 도박에 빠져 지냈고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등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농노들을 고문해 죽이고 그 미망인들에게 성관계를 강요하는 등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상당한 악행을 저질러서 이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도 있다.

중년, 노년에 이르러서야 농노들을 해방하고 농민들을 구제할 방법을 찾고 인습을 타파하려는 휴머니스트 꼴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그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았다. 노년에는 사후의 저서 저작권을 사회에 모두 공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대로 실행했다. 그의 이런 태도를 이해 못하는 아내와 반목하다가 가출하였고 기차 안에서 폐렴에 걸려 신음하다가 결국 아스따뽀보 역에서 하차한 후 1910년 11월 20일 82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죽을 때는 이러한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소작인들은 어떻게 죽는가?"

번역본은 박형규가 제일이다.

작품[편집]

기타[편집]

  • 셰익스피어를 거의 쓰레기 취급으로 많이 깠다. 셰익스피어는 천재가 아닐뿐더러 평균적인 작가도 못됨이라고 하거나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아무리 읽어도 매번 같은 느낌, 즉 반감, 지루함, 당혹감을 느꼈으며 셰익스피어는 평생 자신에게 당혹감과 따분함만 일으키는 작가다라고 평가했다.
  • 러일전쟁에 관하여 "나는 러시아군의 편을 들 수 없다. 그렇다고 더더욱 일본 편을 드는 게 아니다. 정부에 속아서 자신의 양심과 종교가 가로막는데도 전쟁터로 달려간 두 나라의 모든 군인들 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소련 시절에는 더욱 고평가를 받았는데, 그의 작품과 공산주의의 '프롤레타리아 정신'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 레닌은 그의 작품을 매우 좋아했으며 '톨스토이 이전에는 진정한 농민의 모습이란 없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