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후미코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IV. 동아시아의 근대화 운동과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 5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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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926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의 아나키스트이자 조선독립에 헌신한 운동가로 후세 다쓰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유이한 인물이다.

본디 가네코는 사생아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조모와 고모가 살던 조선의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으로 와 부강심상소학교(오늘날의 부강초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러나 거기서도 할머니와 고모의 학대가 이어졌고 어린 가네코는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하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한 이웃집 조선 아주머니가 해준 말이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밥은 먹었니? 보리밥이라도 먹고 가거라" 그녀의 시궁창 같았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일본인이었지만 근본적으로 학대받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 주변의 조선 사람들과 다를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자신의 조국 일본보다 주변의 조선사람들에게 연대감을 느끼고 3.1운동을 보며 조선의 독립에 공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녀의 옥중 수기에 당시 그녀의 심경을 느낄수 있는 글귀가 있다.

부강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순간, 나는 아직 세상에 사랑할 것과 아름다운 것이 무수히 많음을 깨닫고, 나와 같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억누르는 자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그해 그녀는 16세가 되었고 7년만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머니가 자신을 술집에 팔아넘기려 하자 혼자 도쿄의 친척집으로 올라와 신문배달, 어묵집 점원으로 일하면서 영어 교습소에서 공부했다. 이때 사회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게 되어 아나키스트가 되었고, 1921년에는 도쿄에 유학한 한국인 사회주의자들과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가 박열과 사랑에 빠졌고 불령사라는 항일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던중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일본인을 살해한다는 루머와 함께 수많은 조선인이 죽을때 그녀를 비롯한 불령사 회원들 역시 경찰에 잡혔고 얼마 후 그녀와 박열은 조선인 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본의 계략으로 일왕과 일왕의 왕세자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때 그녀와 박열을 변호했던 이가 바로 후세 다쓰지.

조선을 대표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니 조선의 예복을 입겠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니 통역을 준비하라.

박열과 가네코의 말은 당시 이제 갓 스물 하나, 스물이 된 청년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지사다운 당당함이 묻어있는 말이었다.

법정에 선 가네코는 자신을 회유하려는 일본 법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음을 바꿀 일을 단연코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내 생명이 지상에 붙어 있는 한 '지금'이란 때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좇아서 행동할 것이다.

1925년 5월 29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도 그녀의 태도는 당당하였다. "피고는 왜 일본인으로서 일왕과 왕세자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는가."라는 심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일찍부터 인간의 평등을 깊이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 지상은 권력이라는 악마에게 독점당하고 있으며, 이 평등한 인간생활을 유린하는 대표자는 일왕이고 그 왕세자이다, 내가 그들을 노린 연유는 바로 이러한 연유이다.

1926년 3월 25일 두 사람에겐 사형이 선고된다. 이때 박열은 판사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가네코는 소리높여 만세를 불렀다. 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은 이때 다른 형무소로 갈라져 이승에서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4개월이 지난 7월 23일 가네코는 자살, 혹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조선인을 사랑했으니, 조선에 뼈를 묻고 싶다"는 말이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서류상 결혼을 했고, 일본 내에 시신을 거둬줄 사람이 없어 박열의 형이 유골을 인수하여 박열의 고향인 문경에 안장했다.

꽃은 진다 꽃은 지더라도 기요틴에서 지더라도 꽃 피어라 혁명의 친구여 기요틴에서 사라진 친구의 넋인가 들에 핀 진달래의 붉은 시선 -가네코 후미코

평한다. 일찍이 태사공 사마천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비수를 품은 이들을 자객열전으로 두어 그들을 기렸다. 그 단어는 자객이되 실은 '지사(志士)'의 다른 이름이니 그 고귀한 뜻이 실로 역사에 남아 천하 사람들의 가슴을 아직도 뒤흔들고 있다. 비록 가네코는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삶을 뒤덮은 박해와 음모속에 생을 마감했으나, 그 당당하고 치열한 지사의 정신만은 넋이 흩어지지 않고 온연히 남아 있어, 그 마음과 행동이 지금도 이어져, 후세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마음을 격동케 하는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의(義)라는 것이니 가히 천하를 위해 의(義)를 행하려 한 그녀는 시대의 군자라 아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