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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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姜健)
이명 1945년까지 강신태(姜信泰)란 이름 사용.
출생 1918년 경상북도 상주
사망 1950년 9월 8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지뢰밟고 폭사
국적 일본 제국, 북괴
경력 동북항일연군, 소련 극동군 제88국제여단, 북괴군초대 총참모장(1948 ~ 사망)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가족 아들 강창주 現 북괴군 모군단장


좌익 활동이 활발했던 경상북도 출신의 좌익계 항일운동가이자 조민인공의 군인.

상주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0살이 되었던 1928년에 길림성 영안현 일대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자랐다. 1933년에 항일유격대에 입대하면서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동북항일연군주보중 밑에서 활동하면서 김일성과 친해졌고 이후 그의 핵심 측근으로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연변 일대에서 놀다가 1946년에 북괴군 창군 작업을 지휘했고 1948년 북괴군이 창군됨과 동시에 초대 총참모장에 임명, 그리고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했다.

6.25 전쟁 당시 총참모장 자격으로 참전했다가 고향 근교인 안동에서 지뢰를 밟고 폭사해서 뒈짖했다. 이때 그의 고기가 산산조각이 나서 시신 회수는커녕 이제 흔적도 없다 카더라. 그래서 혁명열사릉에 가묘가 조성되었다.

뒈짖한 뒤 박헌영과 혹부리우스가 직접 관을 운구하는 등 북괴가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었고 평양 제1군관학교가 강건종합군관학교로 이름이 바뀌는 등 엄청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새끼의 아들인 강창주는 현재 북괴군 군단장으로 잘 지내고 계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