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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 1대 궁예 초대 태조 왕건 2대 혜종 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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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981년~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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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년~1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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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년~10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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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년~10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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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1046년~1083년)
순종
(1083년)
선종
(1083년~10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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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4년~1095년)
숙종
(1095년~11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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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
(1105년~1122년)
인종
(1122년~1146년)
의종
(1146년~1170년)
명종
(1170년~1197년)
신종
(1197년~12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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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종
(1204년~1211년)
강종
(1211년~1213년)
고종
(1213년~1259년)
원종
(1259년~12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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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12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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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왕
(12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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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8년~1308년)
충선왕
(1308년~13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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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년~1330년)
충혜왕
(1330년~13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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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처럼 덧없는 인생은 예로부터 그러한 것이니라.

 
— 죽기 직전 유언으로



왕건(王建, 877~943)은 고려를 건국한 고려의 태조이다.

통일 신라 말기 신라 정부의 힘이 약해져서 각 지역에서 군웅할거 했다가 대충 삼국의 형상으로 갈렸고 왕건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 휘하의 세력으로 활약했으나 궁예가 폭정을 하자 여러 무장과 호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며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다. 이후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특히 피 터지게 싸웠는데 끝내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이후 왕씨의 고려가 47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하게 된다.

최초로 외세의 도움 없이 한반도를 통일한 사람 이라는 수식이 있다. 다만 미묘하게 이성계 보다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 뭐 이성계랑은 좀 다르긴 하다(왕건은 원래 개성 명문집안에서 호족으로 태어나 중부지방 호족들의 도움으로 쉽게 왕이 되었고 이성계는 전주에서 이주한 친원파 귀족출신으로 1361년 아버지인 이자춘과 함께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자 전투에서 이겨 고려 공민왕에게 벼슬을 받아 고려에 귀순하고 1388년 위화도 회군을 해서 정권을 잡았으니 다른것이다

아무래도 고려사 자체가 조선조보다 사료가 적어서 인지도가 낮기 때문일수도 있다.

어느 정도 예지력은 있는 모양인지 궁예를 폐주로 만든 뒤에 뒤통수만큼은 낌새가 느껴지면 가차없이 처단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직계후손이 이씨들에 똑같이 당하는... 역사는 참 아리송하다.

ㄴ이 사람이 예지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함부로 좆질하고 다니지 않았겠지 그리고 누구를 가차없이 날려버렸다는 건지 모르겠네 이 사람 정치 스타일은 웬만하면 안 싸우고 말로 합시다. 로 정의 되는구만.

귓밥을 팔때 존나 큰게 나오면 그걸 보고 '왕건'이라한다.

집안 내력[편집]

가계도가 상당히 애미없는 편인데 일단 이 사람의 증조 할배가 누구인지 모른다. 일단 원덕대왕이라는 좆간지 나게 왕으로 추존하긴 했으나 누군지는 모름. 훗날 당나라 선종 아니면 숙종이라고 구라를 치기도 했지만 당연히 말도 안되는 개씹소리.

할배는 작제건이라는 인물로 이 사람도 존나 애미없이 의문 투성이 새끼다.

대충 전설이나 이런저런 기록을 보면 가장 먼저 계보에 잡히는 인물이 강호경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신천 강씨<ref>후일 이성계가 개경에서 세력을 키울 용도로 경처로 들인 신덕왕후 강씨가 이 가문 출신이다, 고려 왕실과 조상이 같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존나 명문가였는데 이성계가 얼마나 야심에 가득찬 인간었는지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f> 의 시조이다. 편년등록에 따르면 강호경의 출신을 고구려계라 하였다. 고구려계 출신인 호경은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자칭하며, 혹은 성골장군이라 불렸다 하며 그가 백두산에서부터 유람을 시작해 송악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편년통록이 여기서부터 구라를 치는데 이후 손보육이라는 사람이 강씨 집안이랑 결혼해서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이 당숙종, 당선종이랑 원나잇해서 작제건을 낳았단다, 근데 씨발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오죽했으면 원나라 한림학사가 충선왕더러 '님 조상이 당숙종이라는데 이거 존나 말이 안되는거 아님?' 이라고 했는데 충선왕이 할말이 없어서 어버버 거렸다고 한다, 그래서 충선왕 옆에 있던 고려 역사가 민지가 대충 둘러 대서 "당숙종이 아니고 사실 당선종임 ㅇㅇㅋㅋ" 라고 했다. 당선종은 원래 당헌종이 절도사 반란 진압하면서 절도사 첩도 빼았아서 그 사이에 낳은 자식이라 황족이긴 하지만 황제랑은 거리가 먼 쩌리 개좁밥이었고 젊은 시절 존나 싸돌아다녀서 기록도 없고 나중에 황제 되고나서도 꼐임을 존나게 좋아하는 쎾쓰킹인지라 당장 그 자리에선 "뭐 씨발 당선종이면 그럴 수도 있겠군"하고 넘어가긴 넘어갔던 모양. 왕도 지네 조상 얘기를 제대로 모르고 옆에있던 꼬붕이 대충 둘러 댄거 보면 즉 왕씨 왕가 내부에서도 이거 구라인거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

오죽했으면 고려왕조의 신하인 이제현도 존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아니 씨발 '왕대종족기(王代宗族記)'에 왕국조라는 인간이 왕건 증조부고 그 당숙종이랑 결혼했다는 딸이 왕국조랑 결혼한거라는데? 거기다 '성원록(聖源錄)'엔 보육성인(寶育聖人)이라는 자는 원덕대왕(왕국조)의 외조부라고 했는데 구라 존나 까네"라고 깠다. 하여간 족보가 하도 꼬여있어서 작제건 이상 계보를 세세히 찾는다는거 자체가 힘들다.

하여간 의문 투성이 가계도를 대충 뒤져보면 고구려계 유민 출신으로 어찌어찌 남쪽으로 흘러들어온 가문이라는걸 대충이나마 알 수 있다. 해서 지역 호족 대부분이 다 고구려 유민 출신이라는걸 생각하면 사실 이게 가장 신빙성 있다. 물론 제대로 된 성이나 족보가 없었으므로 그냥 선대에는 뭣도 없는 흙수저였다가 점점 세력을 키운 고구려계 신흥호족이라는게 가장 이 집안 내력에 부합한다.

여튼 설화에 따르면 작제건은 당나라 황제라는 애비 찾으러 서해바다 건너는 길에 우연히 서해용왕을 만나서 부탁하나 들어주고 그 덕으로 서해용왕의 딸이랑 결혼했는데, 생각해 보니 어짜피 당나라 가봤자 원나잇스탠드로 생긴 자식을 당나라 황제가 기억이나 할 까 해서 그냥 한반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장인인 서해용왕 빨로 서해바다 해적일 시작함. 여튼 작제건 부인이 용왕의 딸=용이라 고려 왕씨는 용의 후손이라는 개드립을 500년동안 치고 다녔다. 그래서 나중에 우왕이 이성계한테 죽을 때 난 용의 후손이라 비늘이 있다. 드립과 일반 칼로 안죽어서 이성계 아버지가 전해준 전어도로 댕강 했다는 드립이 나왔다.

그리고 서해 용왕이 작제건한테 니 이름이 마침 건(建)인데, 자식들 이름을 계속 건으로 지으면 언젠가 왕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까 아들 이름을 마누라 종족인 용(龍)과 자기이름 건을 합쳐서 용건(龍建)이라고 지었다. 근데 나중에 이름을 왕륭으로 바꿈. 이 사람이 왕건 애비인데 역시 아들한테도 건이라는 이름 지어준다. 결국 이 왕씨라는 것도 왕건이 고려를 세운 후 왕이 되고 나서 정한 것으로 쉽게 말해서 왕건이 씨발 내가 왕인데 성씨도 왕으로 해야지 데헷~ - 이랬을것이다. 실제 왕륭도 살아있을 땐 그냥 용건으로 살다가 나중에 추봉했을 가능성이 존나 높다.

이는 당시 개성의 위치가 신라 경주를 기준으로 봤을때 존나 애미없이 미-개한 지역이라서 (통일신라 최대 영토가 대동강까지였다. 그나마도 점점 중앙정권이 약해져서 통일신라 하대로 가면 소백산맥 너머로는 통치권이 못 미쳤다. 그니까 말로만 신라 땅이고 실제로는 권력공백지역) 이곳 호족들도 성씨 따윈 없거나 지 꼴리는대로 썼거나 둘중 하나다. 쉽게 말해 말로만 호족이라는 말이지 실상은 도적떼나 다름없었다는 말. 작제건 때 부터 예성강, 임진강, 한강 부근에서 교역으로 부자가 됐다는데, 해적질로 먹고살았을 가능성도 존나 높다. 뭐 솔까 두개다 했겠지. 애초에 신라 정권의 지배력이 없는 치안 공백지역인데 순수하게 상업으로 세력이 유지 되겠냐? 물건 실으면 무역선, 무장 병력 태우고 다니면 군함, 그러다가 다른 무역선 만나서 털어먹으면 해적선. 나중에 이게 기반이 돼서 이도 좆바르는 동시대 최강 해군참모총장이 된다. 그리고 후백제 뒤치기 ㄱㄱ. 그래도 나름 그 지방에서는 잘 나갔던 모양으로 도읍 정할 곳이 없어서 빌빌대던 궁예가 송악에 도읍을 정했다.

생애[편집]

여하튼 작제건은 진짜로 서해 용왕 빽인지 송악(개성)을 중심으로 경기도-황해도 쪽 서해바다 칠무해급 대해적이 되었기에 왕륭도 무난히 세력을 물려 받아 황해도 칠무해로 활동했고 왕건은 태어날때부터 금수저의 생활을 만끽 하던 와중 사황급이던 견훤이 대국적으로 후백제를 세우고 궁예가 양길에게 독립해 신라정부를 뒤엎을려는 혁명군을 만들어 강릉으로가 신라정부에 반항하던 신라왕족 김순식의 도움을 받고 그대로 서쪽으로 쭉 진출해서 홍천-춘천-철원까지 점령 했다. 그리고 궁예혁명군은 경기도-황해도 일대 까지 왔고 혁명군의 기세가 너무 강해 차례차례 경기 북부, 황해도, 평양 지역 호족들과 그 중 하나인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궁예의 부하로 들어갔다. 그래서 왕건도 자연스럽게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 다른 동네 호족들은 자기 나와바리 인정 받으면서 대충 궁예 산하 세력 정도로 끝낸 데 비해 왕륭은 자기 나와바리 송악을 궁예한테 넘기면서 자기 세력을 궁예 직속으로 넣는다. 궁예도 일단 강릉에서 후원 좀 받긴 했지만 원래 자기 지역기반이 없던 상태라 송악을 중심으로 삼고 자연스럽게 원래 송악 나와바리 관리하던 왕건은 리더인 궁예에 이은 2인자 참모총장이 된다. 그리고 왕륭 본인은 철원 인근의 금성(개성이랑 철원사이)태수로 임명되며, 궁예에게 굽힌지 1년 만인 897년에 병으로 죽는다. 훗날 고려가 건국되자 왕륭은 세조로 추존된다. 나중에 조카를 때려죽이고, 동생을 죽인 조선의 세조와 한자가 똑같다.

여튼 2인자가 된 왕건이는 칠무해급이라 원래 가지고 있던 병력으로도 쌈질도 좀 했던 모양으로 궁예가 강원도 원주 및 충북, 경기남부 일대의 양길 연합군과 한바탕 할 때에 활약을 엄청나게 해서 명실상부한 궁예 혁명군의 2인자가 된다.

더불어 해적질로 단련된 해상 전투력은 존나게 짱이었던지 해상전투로 수차례 견훤을 엿먹이고 심지어는 견훤군 해군참모총장인 전남 칠무해 수달이를 좆바르고 후백제의 뒷 멀티인 나주를 점령하기도 했다. 거기서 나주호족 오다련의 딸인 오씨와 결혼하였다. 오씨는 태조왕건의 둘째부인이 되며, 훗날 신혜왕후 유씨(패서지역 호족 유천궁의 딸)가 병약하여 일찍죽자 뒤를 이어 장화왕후가 되며, 고려 2대 임금인 혜종의 모후가 되시겠다.

양길연합을 이기고 강원도랑 충청도 까지 먹은 혁명군은 나라이름을 고려로 정하고 궁예가 왕 노릇을 해먹는다. 고려라고 지은 이유는 이미 궁예 세력에서 고구려계 호족이 존나 대세가 됐기 때문. 왕권강화를 해야 하는데 2인자인 왕건을 중심으로 고구려계가 말을 안들어 쳐먹자 궁예는 각종 무리수를 두며 기침 소리를 내던가, 웃음 소리를 내면 철퇴로 머가리를 빠개는 짓을 하고, 원래 자기 나와바리도 아닌 송악에서 왕노릇 하려니 기존 박힌돌들인 고구려계 일찐들이 계속 쿠사리를 주자 궁예는 스스로 고구려 계승의식을 내던져버리고 나라이름을 '마진'으로 바꾼다음 태봉으로 바꾸었다. 도읍지 또한 철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씨발 눈 치우다가 개빡친 군바리들이 궁예 통수를 치고 당시 2인자 였던 왕건이 왕이 되었으며 고려를 건국했다. 왕건은 즉위 하자 마자 좆같은 철원 대신 자기 집인 송악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고 이름을 개경으로 바꾸었다. 다만 1인자긴 하지만 즉위 초기라서 존나 중앙집권적인 짱쎈 왕은 아니고 그냥 동시대 일찐 중에 가장 잘나가서 1인자 대우를 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궁예를 후원하던 강원도나 동해쪽은 왕건이 나~~중에 되서야 자기 산하로 넣을 수 있었다.

그 후 견훤과 적당히 탐색전을 벌이다가 결국 조물성 전투를 시작으로 존나게 치고박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물성전투에서는 고려가 패배한다. 또한 몇 년후 공산전투에서도 패배한다. 고려가 후백제를 역전하기 시작한 전투는 고창전투부터다. 또한 신라 경애왕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경순왕을 바지로 앉힌 후 귀환하던 견훤 통수를 치려다가 되려 머구 팔공산 부근에서 벌어진 공산전투에서 1만명 넘게 뒤지는 대패를 당하고 왕건 자신도 하마터면 뒤질뻔 했다.이때 부하장수인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입고 자신이 왕건 행세를 하면서 시간을 벌다가 결국 견훤에게 잡혀 죽었다. 이때 왕건은 후백제 군대의 포위망을 단신으로 피해 달아나면서 1달 넘게 생사 불명 상태였다.

어찌저찌 해서 가까스로 살아남긴 했으나 이번엔 견훤이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해상전을 감행하기도 했는데 수군을 이끌고 개경과 황해도 해안가가 몽땅 줘 털렸다.

존나게 똥쭐이 타는 상황이었으나 결국 안동 고창전투에서 후백제군 8천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며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전투 결과로 개쌍도 지역 신라계 호족들이 전부 왕건에게 돌아섰으며 경순왕 또한 몇가지 옵션을 조건으로 내걸어 나라를 들어 왕건에게 항복했다.

한편 하필이면 이때 견훤은 장남인 신검에게 통수를 처 맞고 금산사에 감금되었는데 간신히 탈출하여 이 사람도 왕건에게 투항했다. 신라의 왕과 백제의 왕이 전부 자신에게 투항했고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이때쯔음 발해가 멸망하는 바람에 발해 유민들이 고려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사람들을 몽땅 군대에 쑤셔박아 전력상으로 신검의 후백제를 완전히 압도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침내 일리천 전투(선산지역인데 현재로 치면 경북 구미시)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친 후 하필이면 또 황산벌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아내며 후삼국을 통일했다.

통일 후 왕건은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고구려 고토 회복을 모토로 북진정책을 실시하려 했으나 뭐 씨발 집안 단속도 안되는 마당에 하는듯 마는듯 하면서 통일신라시절 대동강보다 좀 더 위로 올라가서 청천강 까진 알박기 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나마 신라처럼 중앙정부랑 존나 멀어서 관리가 안되던 거랑 달리 대충 평양까진 완전히 지배력을 뻗을 수 있었다.

한편 견훤이 장남 왕으로 안 삼았다가 나라가 망하는 꼬라지를 봐서인지 장남인 왕무, 혜종을 후계자로 찍고 이것저것 뒷배경을 마련한다고 했으나 다 노-쓸모.

애초부터 꼐임을 좋아하는 새끼였는지 귀족의 딸이라면 건든게 아니라 그냥 보지만 보면 냅다 꽂은 레알 쎾쓰머신이었다. 기록된 마누라만 29명인데 그 중 보면 레알 애비가 뭐하는 새끼인지도 모르는 년들도 꽤 많다. 쉽게 말해서 그냥 지 꼴리는대로 박아 댔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결혼 동맹이라는게 의미가 없어졌고 장남이고 차남이고 삼남이고 나발이고 그냥 왕자들 외가쪽 세력 강한놈이 왕 되는 상황. 외가 쪽 배경이 흙수저혜종은 당연히 좆밥으로 상대가 되질 못했고 결국 이 사람이 죽자 마자 바로 호족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혜종-정종-광종대 까지의 혼란을 낳았다. 그나마 광종이 도살자마냥 싸그리 죽이면서 어느정도 안정화됐다.

또한 애새끼를 워낙 많이 싸질러 대서인지 왕씨끼리 규합하기 위해서 자식들끼리 되도록이면 근친상간을 하도록 했다. 참 씨발.

일단 이 근친상간이 현대에서 보면 좆같은거 맞다. 현대에 저지랄로 말하면 그 새끼가 ㅂㅅ 이다. 하지만 중세의 왕족이나 귀족은 원래 근친이 좀 많았다. 왕건이 좆같은 사상을 가진 병신이 아니라, 그 당시의 어느정도 보편화된 생각인 것이다. 당장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유럽 귀족사로 가면 조금만 살펴도 족보가 얽히고 섥혀있다. 아무래도 결혼이 권력이랑 밀접한 연관이 있다보니 그런 것이다. 다만 왕건 이후 3-4대까지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근친이 심하다. 남매, 삼촌, 사촌, 오촌이 서로 결혼을 해대니 3-4대쯤 가면 외삼촌 겸 고모부 겸 사촌 형이라는 좆같은 족보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 유명한 천추태후도 왕건 후손인데 천추태후의 아빠와 엄마가 모두 왕건의 (배다른)자식이라 왕건이 친할아버지이자 외할아버지가 된다. 다만 왕건은 존나 페미니스트라 여자는 외가 성을 쓰라고 했기 때문에 할머니 성을 따라서 황보씨이다. 그리고는 사촌인 경종이랑 결혼 했고 동시에 자기 오빠랑 시누이도 결혼함. 그니까 천추태후는 부모가 남매근친, 본인과 남편, 시누이, 오빠 사촌근친겸 겹사돈이다. 근데 여자는 할머니 성씨지만 남자는 왕씨기 때문에 천추태후 친오빠는 왕씨라 천추태후 남편인 경종이 죽자 왕이 되서 성종이 된다.

왕 된지 26년 만에 저세상으로 갔고 가기 전 훈요십조를 남기고 갔는데 이는 주작썰이 있긴 있다. 여하튼 뒤지기 직전 유언은 씨발 인생 존나 덧없네. 사스가 모든 걸 이룬 진정한 상남자의 좆간지 나는 최후라고 할 수 있다.

죽으면서 후대 왕들에게 지키라고 훈요10조를 남겼다. 그런데 훈요10조의 8번째 조항에 호남지역 인물을 등용하지 말라고 했다. 이걸로 요즈음 지역드립과 엮어서 논란 정도 있는것 같은데 생각해봐라. 자신에게 유일하게 끝까지 저항한 망국 출신의 인물을 등용이나할 수 있겠냐? 가뜩이나 고려는 성종 이전까지 전국호족연합국 이었는데 후백제 본거지인 전라도쪽 인물이 고위직 잡고 다른 호족 애들 선동해서 반란 일으키면 당장 제 2차 후삼국 시대로 돌아가는 건데. (참고로 이 삼국계승의식은 졸라 오래 고려시대에 남는다. 후삼국 통일해서 300년 지난 이후에도 고구려 계승,백제 계승,신라 계승을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킨게 숱하다. 이게 사라진건 이성계가 사실 알고보면 우린 다 단군의 후손임!! 따라서 우리의 조국은 조선밖에 없음!!! 이라고 지랄해서 서서히 없어졌다.)

ㄴ근데 요건 좀 논란이 있다. 아들인 혜종 외가가 나주인데 그러면 안그래도 왕자들 가운데 장남이란 이점 빼면 지지기반 약한 자식 새끼를 아주 조져 놓는거라서

ㄴ이건 호남지역이 아니라 궁예의 세력권이었던 청주 주변 인물들을 등용하지 말라고 한거다. 실제로 왕건에 대해 가장 적대적이었던 게 이 주변 지역들이다. 좆무위키 가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기타[편집]

  • 왕건은 한민족 최초 질외사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ㄴ 지만 알아먹는 드립 자제요

ㄴ 너만 모르는거 아니냐

ㄴ 혜종의 애미되는 장화왕후 오씨와의 일화를 말하는거다 오씨라는 여인이 시냇가에서 빨래하는데 왕건이 그 뒷태에 반해서 돗자리깔고 원나잇함. 근데 꼐임 좀 할줄아는 왕건은 "너같은 암퇘지한테는 정자가 아까워!!" 라면서 질외사정했다.시발 상남자;;;; 역시 왕은다르다.

여기서 끝났다면 왕건의 테크닉자랑으로 끝났겠지만 상대가 보통 독한년이 아닌게 오씨는 왕건이 돗자리에 싸지른걸 줏어담았다 그러고 혜종을 임신했다고 한다 별미친...

ㄴ 다만 저 질외사정 드립은 혜종 까려고 만든거다. 첫째아들인데 외가가 애미없는 흙수저(씨발 원래는 존나 잘나가던 나주지방 호족이었는데, 후백제랑 싸우면서 기반 싸그리 날려먹어서 망함)라 왕비랑 아들이랑 둘 다 깔라고 왕건이 "너 한테는 정자도 아까워!!" 라고 질외사정 했지만 독한 오씨가 "임신공격으로 가...가버렸!" 할라고 질외사정한거 줏어담아 임신함 ㅇㅇ 그래서 혜종이 얼굴개빻았넼ㅋㅋㅋㅋ" 라는 식으로.... ㅇㅇ?

솔까 왕건이 오씨랑 떡치는걸 누가 본것도 아니고 왕건이 얘기하고 다녔을리도 없고, 씨발 왕비가 질외사정한 걸 억지로 넣어서 임신했다고 떠들고 다녀도 어쩌지 못 할 호구였다는 소리

그리고 혜종이는 그래서 망함 ㅋㅋㅋㅋ

  • 궁예가 윽띵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태조 왕건에선 이새끼도 철퇴를 날렸다. 것도 뒤통수친 청주 호족들과 그 가족들에게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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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건은 살아생전 내내 신라오랑캐로 여겼다. 이는 왕건이 자신의 진짜 조국을 고구려로 인식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자기가 나라를 세워 왕이 될 때 고구려의 계승자라는 의미의 고려라 정한 것이다. 훗날 요나라 놈들이 "이 신라 새끼가 어디 북쪽으로 오고 지랄이야?"라고 하자 서희 장군은 "떼끼, 이놈! 신라 같은 오랑캐를 우리랑 견주다니 이거 미친 거 아냐? 우리는 고구려의 후손이라서 나라 이름도 고려이거늘!"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