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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기황후 · 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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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역대 국왕
33대 창왕 왕창 34대 공양왕 왕요 조선 건국
초대 조선 태조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不敏)하여 사기(事機)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 폐위 교지를 받은 날 공양왕



고려의 34대 마지막 왕이다. 왕균의 아들. 이름은 요.

창왕이 폐위되고 이성계 패거리가 선양쇼를 위해 세운 바지왕이다.

이성계가 생각한 내용 전개는 몇년 안 있어서 스무스하게 자신한테 왕위를 선양하는 그림이었는데 의외로 개기면서 시간을 끄는 등 이성계에게 딥빡을 선물했다.

특히 폐위된 우왕창왕신돈의 자식으로 몰아서 전격적으로 처형한 것도 공양왕의 짓이었는데 이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할 뿐 아니라 2명의 왕 살해 책임을 이성계에게 돌리는 꽤나 머가리가 잘 돌아가는 왕이었다.

한편 개혁은 원했으나 역성혁명은 원하지 않았던 정몽주와 손을 잡고 이성계를 몰아쳤는데 타이밍도 기가막히게 이성계는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머가리를 다치는 바람에 단체로 한강가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계의 처형은 윤허하지 않았다. 이는 명종의 경우와도 비슷한데 어찌됐던 간에 자신을 옹립한 건 이성계 이므로 다른 신하들 보단 이성계가 더 믿을만 하다는 이유였다.

사실 여기에는 정몽주 자체도 완전히 믿을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지금이야 협력하고 있지만, 정몽주는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성계와 함께 전대 왕들을 갈아치운 놈이다. 저놈이 지금 당장은 이성계라는 존재 때문에 나랑 협력은 하고있지만 언제 통수치고 자기가 폐위될지 모른다는 것.

200년전의 무식한 군바리 새끼들한테는 통하는 전술이었으나 당시의 이성계정도전이방원을 비롯한 각종 엘리트들이 모여있었고 좀 외부에서 놀다 온 세력이라 고려국이나 고려왕조에 대해 충성심이 강한 세력도 아니었다. 이성계 부자의 야심 자체도 같은 무신계에서 자신을 중앙정치에 올려주고 키워준 정치적 아버지이자 보호막이던 최영장군이나 이후 조민수 등도 필요할 땐 굽신거리며 이용한 뒤 기회만 되면 가차없이 통수 칠 정도로 매우 컸다는 점이 다르고. 공양왕이 틈을 보이자 바로 반격을 개시하여 정몽주를 살해하고 반 이성계파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전세를 역전시켰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고려왕조라는 껍데기라도 유지시킬 생각으로 이성계에게 동맹을 맺자고 제안하여 무신정권의 부활을 꾀하기도 했으나 이성계는 당연히 이를 무시. 이때가 폐위 당하기 1주일 전의 일이었다.

결국 왕대비의 교서를 통해 재위 4년만에 폐위 당해 이성계가 새 고려국왕에 등극했다. 이듬해 이성계는 나라 이름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꾸어 새 왕조를 개창하였고 이렇게 고려는 망했다. 이때의 상황은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하기로 일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남은이 드디어 문하 평리 정희계와 함께 교지를 가지고 북천동의 시좌궁에 이르러 교지를 선포하니, 공양왕이 부복하고 명령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하면서, 이내 울어 눈물이 두서너 줄기 흘러내리었다.

폐위된 후의 공양왕은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삼척으로 귀양 갔는데 몇년 후 왕씨 대학살극이 벌어지면서 왕세자였던 왕석과 함께 살해당하니 이때 나이 49세였다.

식사동 절에서 밥을 처묵처묵 한적있다고 한다.이것이 유래되어 식사동 이름이 식사동이 된거다.

어쨌든 저 위에 허수아비틀 붙은 거랑은 다르게 절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던 왕이었다. 뒤늦게 허수아비로 세워졌지만 이성계-이방원 부자의 싸이코성을 느끼고 안되는 발악이라도 해봤던....정도로 생각하시라.

아쉽게도 이 발악 때문에 조선은 왕씨 대학살을 했다. 어정쩡하게 이성계가 즉위하니까 불안해진 조선 개창세력이 '아 저 새끼들 반란 일으킬지 모르니까 그냥 다 죽이자.' 식으로 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