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광화문

조무위키

파일:2011년 11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명소 (Seoul best attractions) 광화문.JPG


개요[편집]

경복궁의 정문.

지방충들이 서울에 오면 꼭 찾는 곳.

아무것도 없는 너른땅도 있고 바로근처에 청와대가 있어서 항상 시위대가 가장 먼저 시위를 일으키는 허벌지역이다.

이곳을 보고 서울에 대한 판타지를 느끼며 오르가즘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거 시위하나 잘못보면 환상이 깨질수도 있다.

야민정음으로 팡화문.

좆동권과 태극기부대는 광화문 광장 문서로

역사[편집]

파일:불쌍.png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경고. 이 문서는 뭘 해도 극딜 당하는 동네북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뭐라도 하거나, 하는 척이라도 하거나, 심지어는 가만히 있어도 공개처형 당하는 만만한 새끼들에 대해 다룹니다.

서울 한복판에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다보니 근현대사의 폭풍을 온몸으로 다 받아서 몇번이나 헐리고 폭파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했다.

원래 조선초기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따로 이름은 없고 그냥 바를 정(正)을 써서 정문이라고 불렀었는데 세종때 광화문(光化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는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으로 《서경(書經)》의 구절인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따왔다.

그러다가 임진왜란때 깡그리 불태워져서 그대로 200년넘게 방치되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때 왕실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원래 규모보다 훨씬 더 크게 중건되었다.

근데 그 모습도 100년을 채 못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세우기 위해 헐어버리려고 했는데 일본 내에서도 예술품을 밀어버리는건 반달리즘이라고 반발이 일어나서 헐어버리지는 못하고 대신 건춘문 옆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원래 광화문 위치에는 조선총독부 정문을 지었고 연결된 담벼락은 기존보다 약 5도 가량 돌려서 관악산 방향이 아니라 남산 조선신궁쪽을 향하도록 돌렸고 그 방향으로 조선총독부 본관을 지었다.

그러다가 그 상태로 해방이 되고 조선총독부는 중앙청이라는 정부청사로 이용되다가 6.25가 터지고 폭격에 의해 석축을 제외한 목조 부분이 또 완전히 박살이 났다.

이후 1968년 박정희의 지시로 광화문이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면서 복원되었는데 이때 위치는 사실 기존의 광화문 위치가 아니라 중앙청 정문을 헐고 그 위치로 옮긴거라서 진짜 위치는 아니었다. 이걸 완벽하게 원상복구시키려면 연결된 담장들까지 싹 다 해체시키고 복원시켜야하는 대규모 공사였기에 나라에 돈이 없어서 그냥 담장에 이어붙이는걸로 만족해야했다. 그리고 복원도 목조부분까지 전부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서 겉으로 보기에만 완벽한 불완전 복원이었다. 그래도 구한말 일제가 옮기기 전 광화문을 본 적이 있던 틀딱들은 광화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ㅈㄴ 만족했었다.

지금이야 문화재를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한다고 하면 문화재청에서 모가지가 몇개는 날아갈 대참사지만 사실 이당시만 해도 세계적으로 문화재 복원에 철근콘크리트 쓰는건 ㅈㄴ 흔했었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됐고 일본의 시텐노지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되었었다. 그냥 이 당시 무지와 기술의 부족으로 일어난 복원 한계였던거다.

그리고 광화문 현판은 어떻게 생겼었는지 이 당시 기술로는 복원할 방법이 없어서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손수 "광화문"이라고 한글로 썼었다. 광화문 공개 행사때 서예가 출신 국회의원이던 윤제술 의원은 한글 현판을 보고 "아니 어떤놈이 이따위로 글씨를 써놨어!"라고 호통을 쳤었다가 그 글씨를 쓴 사람이 대통령이라는걸 알게되자 "그래도 뼈대는 살아있는 글이구만"이라고 하여 코렁탕은 피해갔다고 한다.

근데 이 말을 듣고 박정희 본인도 충격받았는지 이후 슬그머니 한글 현판이 교체되였다.

이 콘크리트 광화문은 2006년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철근 콘크리트 망루 부분이 싹 다 밀리고 새로 소나무로 진짜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시작되었고 위치도 남산 방향이 아닌 기존의 관악산 방향으로 원상복구 시키기로 결정되어 2010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근데 이번에는 한자 현판이 문제가 되었는데 흰색 바탕에 검은색 붓글씨로 쓴게 문제가 되었다. 엄연히 실록에 검은바탕에 금색 동붙이로 글씨를 박았다는 기록이 있고 근정전을 비롯한 경복궁 내부 건물들의 현판도 같은 양식인데 대충 붓글씨로 끄적인게 문제였다. 결국 다시 떼어내고 새로 금동 글씨 현판으로 교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오세훈이 2009년에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을 설치하셨다. 세종 폄하하는 일뽕 중뽕들 부들부들 거리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