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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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예종,성종시절에있던 왕의족친 본명은 이준.

일단 스펙으로보면 이시애의 난에서 남이, 강순과함께 이시애를 족치고 당당히 영의정에 오른 사기캐이다. 하지만 무한의심 한명회와 그의 영원한나물 신숙주의 뺨강스트라이크를 맞고 유배되고 10년뒤에 남이따라 요단강을 건넜다. 일단 이시애의 난당시 평정을 잃지않고 군사를 헛으로 쓰지 않았던 것을 보아 그나마 정신머리박힌 장군이라볼수있겠다.

ㄴ일단 처사부터가 남다르다. 세조시기엔 세조의 후궁이 구성군에게 사랑의 편지(사실상 구성군에겐 데스노트다)를 날렸지만 그걸보고 경악하여 바로 아버지와함께 세조에게 일러받쳤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편지보낸 내시는 두들겨맞다 뒈짖했고 구성군 이준은 안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종때는 전중생이라는 자가 싸우다가 "너는 신하가 될자인데 어찌 이리 야박하게구느냐" 입을 털어서 구성군까지 불똥튀게만들었지만 예종은 구성군을 내치지않았다.(전중생은 능지처사당했다) 또한번은 능묘공사에서 일꾼들이 "구성군같은 사람이 왕이됐으면 능묘공사도 힘들지않았을텐데" 라고 입털다가 또 구성군이 유배될뻔했다.

하지만 맨첫번째일이 문제가 되어 결국 한명회 통수맞고 유배를 갔고 10년뒤 뒈짖했다.

북한 구성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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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이번에 이곳에서 정으니가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한민국 평안도행정구역

평안북도
자치시 신의주시
자치군 의주군 · 용천군 · 철산군 · 선천군 · 정주군 · 박천군 · 태천군 · 영변군 · 운산군 · 구성군
창성군 · 벽동군 · 삭주군 · 초산군 · 위원군 · 희천군 · 강계군 · 자성군 · 후창군

평안남도
자치시 평양시 · 진남포시
자치군 안주군 · 대동군 · 순천군 · 맹산군 · 양덕군 · 성천군 · 강동군 · 중화군 · 용강군 · 강서군
평원군 · 개천군 · 덕천군 · 영원군
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龜城郡

평안북도 내륙지방의 중심지. 귀주대첩이 일어난 곳이 이곳이다. 고려때에는 귀주라고 불리며 강동6주의 주요 요충지로서 중대한 역할을 한 곳이었으나, 조선시대로 와서는 왜인지 정주군에게 먹혀버렸던 병신동네로 전락했다. 다행히 조선후기때 구성군이 부활한다. 조선후기부터 대도시였으며, 지금도 평안북도에서 얼마 안되는 '시'이다.

김소월이 이곳 출신이다.

건치연혁[편집]

고구려의 땅이었지만 어느군에 속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에선 서희가 먹기 전까지 만년군(萬年郡)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만년군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고 추정중이다.

서희가 강동 6주를 상납받은 뒤 그곳에 빈집털이를 하여 살아가던 여진족을 토벌하고 성을 쌓았고 이를 귀주(龜州)로 칭했다. 1231년 정원대도호부(定遠大都護府)로 격상, 정주목(定州牧)으로 고치고 치소를 나중에 지금의 정주군으로 옮겼다. 하지만 1455년 옛 구주와의 애미없는 거리때문에 폐지한 여연군, 무창군의 주민들을 이곳에 이주시켜 귀성군을 두었다.

북괴수립이후 군면리 대폐합때문에 사기면, 관서면, 천마면이 천마군으로, 이현면의 9개리가 선천군으로 이관되면서 면적이 1,241.6㎢에서 652.5㎢로 반토막이 났다.

철산군에 있는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버프덕분에 북괴치하에서 미사일 발사대가 설치되었고 결국 2019년 5월 북괴의 미사일 발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1]

읍면[편집]

現 북괴령 구성시[편집]

구성면[편집]

龜城面

면소재지는 우부동. 구성군이 웃기는게, 군의 중심지인 구성면이 군의 가장 북쪽 변방에 있다는 것이다. 치우침이 극에 달했다.

우부(右部), 좌부(左部), 하단(下端), 상단(上端), 이구(犂邱), 고양(高陽), 청룡(靑龍), 백운(白雲), 차유(車踰), 원흥(院興)의 10개동을 관할했다.

남쪽은 아미산(俄嵋山), 서쪽에는 주라봉(珠羅峰)이 있으며 동남쪽으로 점차 평탄해지는 개석분지에 속한다.적유령산맥의 서쪽 끝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청천강 지류인 대령강에 흘러드는 동문천이 이곳을 동남류한다.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풍부한 강수량이 있어 농사는 잘되는데 홍수가 잦다.

여기서 대령강과 동문천의 합류지점에서 서북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귀주성을 찾아볼 수 있다.

백운동의 금광, 각종 임산물, 섶누에로 만들어진 비단으로 윾띵했다고 한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우부리에서 성외리(城外里), 차유리에서 은곡리(銀谷里), 상단리에서 중단리(中端里), 백운리에서 백상리(白上里)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4개리로 늘었다.

하지만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구성읍(좌부리 + 우부리 + 성외리 + 서산면 남평리), 양하리 일부(하단리 + 동산면 양지리 + 서산면 입석리 일부), 상단리(상단리 + 중단리 + 고양리), 이구리(이구리 + 청룡리 + 백운리), 차흥리(백상리 + 차유리 + 은곡리 + 원흥리)로 개편되었다.

구성읍은 1954년 상단리, 양하리의 일부를 흡수했지만 1967년 구성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동문, 성안, 역전, 청년, 새날, 새골, 서성, 남산, 백석, 방직의 10개동으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양하리, 이구리, 상단리는 동으로 승격되었다.

1954년 차흥리가 이구리, 상단리의 땅을 조금 흡수해 노동자구로 승격되었지만 1974년 동으로 격하되었다. 차흥동은 1976년 백운동을 독립시키고 1985년 1동, 2동, 약수동으로 분리되었고 신흥동은 1, 2동으로 분리되었다.

노동면[편집]

蘆洞面

면소재지는 중방동.

중방(中坊), 백석(白石), 내양(內陽), 운계(雲溪), 청룡(靑龍), 상승(上勝), 풍산(豐山), 운흥(雲興)의 8개동이 있다.

대체로 산세가 낮으며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중방리에서 중현리(中峴里), 내양리에서 양교리(陽橋里), 운계리에서 운남리(雲南里), 운흥리에서 운포리(雲浦里), 상승리에서 상석리(上石里)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3개리로 늘었다.

하지만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운양리(내양리 + 양교리 + 운계리), 운풍리(운포리 + 운흥리 + 풍산리), 백상리(상승리 + 상석리 + 백석리 일부), 중방리(중방리 + 중현리 + 백석리 나머지), 청룡리(청룡리 + 운남리 + 이현면 택인리)로 개편되었다.

동산면[편집]

東山面

면소재지는 차복동.

차복(車福), 용풍(龍豐), 용퇴(龍退), 남산(南山), 선흥(仙興), 양지(陽地), 덕화(德化), 백석(白石), 풍덕(豐德), 부풍(富風), 금곡(金谷), 용덕(龍德)의 12개동이 있다.

산간분지가 개석된 지형으로 진산인 벽력산(霹靂山)의 봉황대 남쪽 기슭이 면의 북쪽에 위치한다. 풍치가 아름다운 선무봉(仙舞峰)이 면내에 있으며 용동에는 갈령의 지맥에서 나온 기암괴석이 많이 분포한다.

북괴 수립이후 용퇴동은 종범했고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동산리(덕화리 + 백석리 + 풍덕리 + 차복리 + 남산리 일부), 금풍리(용덕리 + 금곡리 + 부풍리), 남산리(남산리 나머지 + 선흥리), 용풍리로 개편되었다.

방현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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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峴面

면 소재지는 하단동.

하단(下丹), 창(滄), 와룡(臥龍), 청송(靑松), 발산(鉢山), 변산(辨山), 길하(吉下)의 7개동을 관할했다.

남쪽은 높은 산지가 가로놓여 있다. 길상산이라 불리는 천검산이 위치해있고 남쪽에는 마전령의 동쪽 고개로서 정주군 옥천면, 고안면과 경계를 이루는 돌고개가 있다.

청천강의 지류인 원천강(猿川江)이 개석한 침식분지로 낮고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창리는 상창리(上倉里)와 하창리(下倉里)로 분리되었고 하단리에서 시중리(市中里), 월천리(越川里), 청송리에서 소룡리(小龍里), 발산리에서 송정리(松亭里)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2개리로 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남창리(하단리 + 시중리 + 월천리 + 상창리 + 하창리 + 와룡리), 발산리(발산리 + 송정리), 청송리(청송리 + 소룡리 + 변산리), 길상리일부(길하리 + 이현면 길상리 + 북리)로 개편되었다.

1954년 남창리가 청송리의 일부를 흡수해 방현노동자구로 개편되었으나 1974년 동으로 격하되었다. 1976년과 1985년 각각 신흥동과 남창동이 방현동에서 분리되었다.

방현면일대에 북괴 미사일기지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들이 살고있다보니 2018년 3월 6일 방현동이 평양으로 편입되었다. [2]

서산면[편집]

西山面

면소재지는 입석동.

입석(立石), 염잠(廉岑), 평지(坪地), 옥인(玉仁), 신덕(新德), 대성(大星), 남평(南坪)의 7개동을 관할했다.

북서쪽에 있는 입봉이 면의 종산이고 중앙부는 개석된 침식분지이다. 북서지역은 구릉성 산지로 둘려있고 남동쪽은 트여있다.

문수산(文秀山)의 동쪽 줄기에 있는 대맥산(大脈山)이 면의 동계가 되고 입봉의 남쪽 줄기인 설매봉(雪梅峰)이 노동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황룡담(黃龍潭)은 유성령(流星嶺)에서 발원, 세갑천(洗甲川)으로 흐르며 곡지를 만들었다.

북동쪽 누다리고개를 통해 정주와 통했다고 한다.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입석리에서 상석리(上石里), 평지리에서 인평리(仁坪里), 신덕리에서 신풍리(新豐里), 대성리에서 용흥리(龍興里)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1개리로 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서산리(염잠리 + 입석리 일부), 옥인리(옥인리 + 평지리), 상석리(대성리 + 용흥리 + 상석리), 신풍리(신풍리 + 신덕리 + 인평리), 양하리 일부(입석리 나머지), 구성읍 일부(남평리)로 개편되었다.

1967년 서산리가 과일동, 서산동으로 분리되었고 상석리는 동으로 승격되었다.

1991년 옥인리가 금산리로 개명되었다.

오봉면[편집]

五峰面

면소재지는 양지동.

양지(陽地), 조양(朝陽), 인봉(仁鳳), 남양(南陽), 선모(仙帽), 내양(內陽), 봉덕(鳳德), 사기(士氣), 용연(龍淵), 엄교(嚴橋)의 10개동을 관할했다.

북부일대는 천방강, 고천강이 개석된 평야지대이고 동쪽과 남쪽은 구릉성 산지이다. 면 중앙부 대암산을 빼면 낮은 산간지대를 이루고 있다.

운천강의 은어, 선모동에 있는 산골광산천이 윾띵했지만 지금은.... 알지? 어쩔 수 없어.

북괴수립직후인 1949년 조양리에서 상단리(上端里), 장우리(長隅里)가 신설되어 관할리가 12개리로 늘었다. 하지만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오봉리(양지리 + 인봉리 + 엄교리), 기룡리(용연리 + 사기리 + 봉덕리), 남흥리(남양리 + 내양리 + 선모리 + 태천군 원면 송백리 일부), 조양리(조양리 + 상단리 + 장우리)로 개편되었다.

이현면[편집]

梨峴面

면소재지는 원창동.

원창(院倉), 택인(擇仁), 대안(大安), 길상(吉祥), 하단(下丹), 용산(龍山), 진조(眞鳥), 마성(磨星)의 8개동을 관할했다.

면대부분이 산지로 중부의 길상산, 서북의 가인봉(佳人峯, 536m)가 주산이다. 원창강이 동쪽에서 여러 지류와 합해지고 지경강(地境江)은 서남쪽 수로로, 석상천(石上川)은 사기면 석중강(石中江)으로, 석하천(石下川)은 사기면 송현강(松峴江)으로 흘러든다.

산간지대답게 임업, 콩, 옥수수, 조, 수수재배가 성했고 이외에 길상동, 진조동, 용산동에서 채굴되던 , 용산동에서 나온 흑연광으로 윾띵했다고 한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원창리에서 대촌리(大村里), 택인리에서 광덕리(廣德里), 대안리에서 오상리(五箱里), 길상리에서 북리(北里(, 하단리에서 약수리(藥水里), 용산리에서 장요리(長腰里)가 분리됨에 따라 관할리가 14개리로 뻥튀기 되었다.

하지만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길상리(길상리 + 북리 + 방현면 길하리), 대안리(광덕리 + 오상리 + 대안리), 원창리(원창리 + 대촌리), 약수리(정주군 옥천면 약수리 + 이현면 하단리 + 약수리), 장요리(장요리 + 마성리), 진조리(진조리 + 용산리)로 개편되었는데 이중 길상리와 대안리는 구성군에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선천군으로 이관되었다.

길상리는 1956년 원진리로 개명되었고 1961년 정주군 봉명리의 일부를 흡수했다.

現 북괴령 천마군[편집]

대령강수계에 해당하는 북괴령 구성군과 달리 이곳은 압록강의 지류인 삼교천수계에 해당한다. 게다가 산으로 다른 지역과 막혀있다. 이지역과 의주군과의 경계에 있는 천마산(天麻山)의 이름을 따 후술할 면과 의주군 고령삭면이 합해지면서 천마군이 만들어졌다.

관서면[편집]

館西面

면소재지는 소관동.

소관(昭關), 신풍(新豐), 북남송(北南松), 서고성(西古城), 대우(大牛), 송림(松林), 어궁(御宮), 조악(造岳)의 8개동을 관할했다.

구릉성 산지로 문곡산(門谷山, 648m), 승암산(僧巖山, 593m), 가래산(柯來山, 386m)이 주산으로 솟아있고 서북쪽은 남북방향으로 산세가 험하여 좁고 긴 곡저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윾띵했던 조악동 삼성금광과 어궁동의 어궁금광덕분에 군에서 엄청 잘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좆망했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조악리에서 신흥리(新興里), 어궁리에서 차유리(車踰里), 마산리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1개리로 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천마읍(조악리 + 마산리 + 신흥리 일부), 남서리(서고성리 + 북남송리 + 신풍리), 소관리(소관리 + 신흥리 나머지), 어궁리(어궁리 + 차유리), 송림리, 대우리로 개편되었다.

사기면[편집]

沙器面

면소재지는 향산동.

향산(香山), 신시(新市), 왕당(旺堂), 구암(九巖), 독송(獨松), 석현(石峴), 송백(松栢), 지경(地境), 인곡(寅谷), 은봉(殷峰), 화암(花巖)의 11개동을 관할했다.

면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로 남쪽은 동서로 길게 산줄기가 계속되고 북쪽은 동서로 길게 계곡평야가 발달되어있다. 진산인 갈덕산(葛德山)이 퇴만산(退蠻山)의 서쪽 기슭에 있으며, 동쪽에 높은 고개와 낮은 구릉성 산지가 산재한다. 구봉산, 화암산(花巖山, 620m), 밀죽봉(密竹峰, 432m)등이 주봉을 이루며 이 밖에 전모봉(全帽峰), 박주산(泊舟山), 우두산(牛頭山)등의 산이 있었다. 경자령에서 발원한 입암강이 향산포에서 합류되었다.

여름이 짧아 밭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화암동의 지경토금광과 구암동에 동방금광이 있었다고 한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신시리에서 비화리, 송백리에서 백자리(栢子里), 석현리에서 군잠리(軍潛里)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4개리로 늘어났다. 하지만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송현리(송백리 + 석현리), 비화리(비화리 + 천마면 동암리), 지경리(지경리 + 인곡리), 구암리(구암리 + 군잠리 + 독송리), 백자리(백자리 + 왕당리), 신시리(신시리 + 향산리), 은봉리(은봉리 + 화암리)로 개편되었다.

천마면[편집]

天麻面

면소재지는 탑동.

탑(塔), 대성(大城), 안창(安倉), 송수(松水), 노곡(蘆谷), 동암(東巖), 신음(新音), 연창(延昌), 신두(新頭), 관(館)의 10개동을 관할했다.

천마산을 근처에 끼고있어 사넷가 험준하고 외부와 고립된 지역이다. 탑동, 안창동의 금광과 밭농사, 임업으로 먹고살았다고 한다.

북괴 수립직후인 1949년 대성리에서 희역리(喜驛里), 신두리에서 곤지리가 신설됨에 따라 관할리가 12개리로 늘었다. 하지만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해 신창리(신음리 + 연창리), 삼송리(송수리 + 안창리 + 노곡리), 대성리(대성리 + 희역리), 탑동리, 관동리(곤지리 + 신두리 + 관동리), 비화리 일부(동암리)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