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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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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권율.PNG


권율(權慄, 1537년 ~ 1599년)은 조선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명문 사대부집안에 태어나 40살 넘도록 벼슬자리 안오르고 띵가띵가 놀았던 특이한 전력이 있다. 금수저 ㅇㅈ. 옆집 말썽꾸러기 꼬마였던 이항복을 사위로 맞이함.

평생 지속될것 같은 갓수생활은 아버지가 죽기전에 자기 얼굴을 쳐다보면서 남긴 내가 널 쳐낳았구나라는 말에 끝나버린다

40줄 넘어서 겨우 벼슬에 올라 좀 지내다 보니 임진왜란이 터졌다. 정확히는 46살에 관직에 올랐는데 이거 요즘으로 따지면 64살이나 다름없다. 문신인데도 불구 인정을 받았는지 전라도 순찰사로 발령을 받고 행주로 가서 쪽바리들을 괴멸시키는 공을 세운다.

천하의 개구쟁이[편집]

권율은 이항복을 사위로 맞이한 이후 둘이 쌍으로 말썽꾸러기였다. 매양 둘이 장난치며 놀기만 무한반복했다. 하지만 사위 이항복이 1580년에 먼저 관직에 오르자 권율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이후 1582년 뒤따라 관직에 올랐다. 참고로 무신이 아니라 문신으로 책봉됐다.

아버지 권철이 죽으면서 '내가 널 낳았구나.' 라고 말을 했다는데, 개인적으로 '저 백수 새끼를 내가 낳아구나.' 가 아닐 듯싶다. 권율도 이거 듣고서 뭔가 깨달은게 있는지 그제서야 관직에 올랐다.

관직에 오른 후[편집]

마찬가지로 장인 권율이랑 사위 이항복이 장난꾸러기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는 임금인 선조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용자짓도 서슴치 않았다.

하루는 이항복이 권율에게 속옷을 입지 말고 입궐하자고 했다. 권율이 그렇게 하자 이번에는 이항복이 선조 임금에게 너무 더우니 관복을 벗고 정사를 논하자고 건의했다. 선조가 이걸 응하자 제대로 된 코메디가 나왔다.

권율은 졸지에 벌거숭이가 되었고 조정 대소신려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이에 이항복의 하는 말이 가관이었는데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대신이 되어서 좋은 옷을 입기는 뭐해서 항상 검소하게 사느라 이렇게 입었습니다."라 했다.

임진왜란[편집]

현대로 치면 합동참모의장포지션. 이순신에 가렸지만 명장이다.

용인 전투[편집]

근왕군 5만명이 2천명의 야습으로 털린 걸로 유명한 전투.

관군의 피해도 별로 안 컸고 갓율도 별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따로 행동에 나선다.

이치 전투[편집]

역사가 성님들이 행주대첩 못지 않게 높이 평가하는 전투.

전략적인 의미로 본다면 일본군의 육로를 통한 충청도 전라도 진출을 막았다.

사실 이거 졌으면 이순신이 수군으로 날뛰건 말건 수군 본영이 습격당했을 것이다.

독성산성 전투[편집]

한양에 주둔한 왜군의 후방을 위협한 전투.

한양 주둔 사령관이었던 우키타 히데이에에게 불꽃같은 참교육을 시켜준 사건이었다.

행주 대첩[편집]

역사에 길이 빛나는 대승. 2300명의 병력과 500명의 승병으로 병력을 맹글어서 행주산성에서 방어전을 했다.

왜군은 우키타 히데이에와 희대의 똥별인 이시다 미츠나리 등이 지휘관이었는데 학살에 학살을 반복하여 결국 대승을 거두었다. 우키타 히데이에, 이시다 미츠나리, 킷카와 히로이에 등 왜군 지휘관 전원에게 총알빵 하나씩 선물을 돌린 것은 덤.

도원수[편집]

김명원이 도원수였지만 병신같이 앞뒤 사정을 다 짤라먹고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원수 신각이 왜군을 무찌르고 70여 명의 왜군의 목을 베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신각이 군무이탈했다는 내용의 장계를 써서 신각을 죽게 만들었다.

이게 원인이 되어 김명원은 도원수에서 짤렸다. 그리고 그 후임 도원수로 부임한 게 권율이다.

도원수가 되었지만 원균이 말썽을 부려서 스팽킹을 시전했다.

후방에서 행보관 일을 하거나 울산성 포위까지 이것저것 조명연합군을 지원했다. 끗.

기타[편집]

원균에게 곤장형을 내렸다. 다시 어명 씹으면 넥슬라이스해주겠다는 포스에 지린 원균은 냅다 출전해서 칠천량에 전 수군을 꼬라박고 자기도 뒤졌다. 이로 인해 조선 해역은 위기에 처하지만 대신 이순신의 재기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갓율 인정합니다….

권율은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해줄 거 다 해줬다.

원균을 위해서 곡식을 엄청 징발해다 원균에게 군량미로 쓰라고 갖다 바쳤고

원균이 육상작전을 해보겠다고 하자 권율은 진주성 병력 중에서 5천명이나 빼다가 원균에게 붙여줬다.

게다가 권율은 원균에게 은괴를 꽤 많이 줘서 그걸로 각종 총통의 탄약을 사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지원을 제대로 받음에도 불구하고 원균은 사리사욕을 채울 목적으로 왜군 수송선을 상대로 함포는 일절 발사하지 않고 계속 접근만 하다가 결국 노꾼들이 넉다운되어 배를 12척이나 잃고 만다.

자초지종을 들은 권율은 조선 수군이 왜군 수송선을 상대로 배를 잃는 역사적인 병크에 치를 떤 나머지 원균을 패버렸다.

그래도 권율은 원균을 뚜까팼어도 물자는 계속 지원해줬는데

원균은 칠천량에 나가서는 부하들을 고기방패 삼아 지 혼자 도망쳤다.

폭뢰격을 쓸줄안다.

관노비 출신 정충신이 권율의 공문서 셔틀이었을 때 행주대첩을 비롯한 전투에 참여하고 우체부 역할까지 맡는다.

갓율은 전속 우체부조차 존니 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위키보면 패배를 자주 했지만 방어전은 괜춘한 장군이라고 까내리고 있다. 일본이 아득바득 까는걸 보니 최강 갓장군님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

ㄴ 일본 위키에서는 김명원을 권율이라고 착각해서 김명원의 행적을 권율에게 덧씌웠다. 사실 일본인들은 안면인식장애가 좀 있어서 진주대첩 당시 진주목사가 김시민이었는데 김시민이 전사한 걸 모르고 있었고 그 후 2차 진주성 전투 당시의 진주목사가 서예원으로 변경되었음에도 일본놈들은 서예원을 김시민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일본 위키에서는 권율 = 도원수, 김시민 = 진주목사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로 권율은 패한 전투가 하나도 없다.

원래는 90살 넘게 오래 살 사람이었다. 당장 46살에 과거 급제해서 55살 나이에 어지간한 청년들처럼 날뛰며 무예를 보여준 양반이다. 그러나임진왜란 당시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는지 임진왜란이 끝나자마자 폭삭 늙어버렸고 결국 임진왜란 종전 이듬해인 1599년에 사망해 버렸다.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고 강골에 장사 체령이기까지 한 양반인데 이런 강인한 권율조차 폭삭 늙고 후유증으로 죽게 할 정도로 임진왜란은 그에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