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편집]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년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를 말한다.

대제국, 철학, 종교의 출현[편집]

제국[편집]

철기가 나타나면서 기존의 청동기 문명들을 제압한 신흥 국가들이 나타났다. 중동에서는 아시리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등이 나타났고, 이후 유럽에서도 마케도니아 제국과 로마 공화국 등이 등장했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제국이, 중국에서는 진나라한나라가 나타나면서 선진시대가 끝나고 진한시대가 열렸다.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는 시점 세계를 4분할했던 로마 제국, 파르티아, 쿠샨 제국, 한나라는 유럽 문화권, 중동 문화권, 인도 문화권과 동아시아 문화권의 시초가 되었다.

철학[편집]

4대 문화권이 형성되면서 철학과 종교가 발전했다. 철학부터 보자면 동양에서는 피튀기는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던 춘추전국시대를 겨우겨우 살아가던 사람들이 '인간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고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각의 체계가 정립되었고 이것은 유가, 도가 등의 제자백가 등장으로 이어졌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에서 폴리스가 나타남과 동시에 무언가를 탐구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런 문화가 발전하던 도중 최초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인 탈레스가 서양철학의 출발을 알렸다. 이후 밀레토스 학파가 형성되었고 그 후에는 소피스트소크라테스가 대립했다.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플라톤이 서양 이상주의의 토대를 제공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과 서양 과학의 틀을 잡았다. 마케도니아 제국 등장 이후에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나타났다.

종교[편집]

종교의 경우에는 동양에서는 철학과 함께 나타난 편이다. 인도에서도 베다 철학이 브라만교와 그를 계승한 힌두교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브라만교의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면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만든 불교바르다마나가 만든 자이나교가 나타났다.

인도유럽어족 신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등이 파생되었고, 조로아스터교가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에 영향을 끼치면서 유대교가 등장했다. 유대교는 훗날 기독교이슬람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세계의 문화, 철학, 종교를 결정한 중요한 시기였던 것.

당시의 세계[편집]

동아시아[편집]

철기가 확산되면서 문명 시대를 벗어나고, 중국 외의 한반도, 베트남, 일본 열도 등에서 초기 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편집]

중국은 선진시대진한시대 사이에 끼어 있다.

서주[편집]

주나라가 황허 강 유역에서 봉건제를 실시하며 존속해왔다. 기원전 841년 이전의 역사는 연대를 검증할 수가 없으며, 그 이후의 '공화시대'부터 연대를 검증할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770년대에 주나라 유왕포사라는 여자를 웃게 만들기 위해 거짓으로 봉화를 피워 제후들에게 낚시질을 시전하다가, 진짜로 견융족이 침입하면서 진짜로 봉화를 피웠으나 제후들은 낚시인 줄 알고 가지 않았고, 결국 수도인 호경이 털리면서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동주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유왕과 포사 이야기는 하상교체기와 상주교체기에 나타나는 여자+폭정->역성혁명 이야기에서 역성 혁명이 일어나는 것만 빼놓은 창작일 가능성이 높고, 여하튼 기원전 770년춘추시대가 시작되었다.

춘추 시대[편집]

춘추시대에는 주나라 황실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그 권위를 잃었고, 제후들이 실제 권력을 잡았다. 제후들은 존왕양이 사상으로 주나라 황실을 받들고 오랑캐들을 몰아낸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이렇게 주나라는 여러 제후국으로 분열되었다.

춘추시대는 제후국들이 서로를 감시, 견제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기본적으로 주나라 황실에게 일일히 보고해야 전쟁을 인정받았다.

전국 시대[편집]

기원전 403년부터는 진나라에서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갈라져나오면서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전국시대부터는 주나라 황실을 완전히 개무시하고, 견제와 감시로 유지되는 체제는 무너지고 서로 개판 오분 전 싸움을 벌였다. 기원전 256년에는 아예 주나라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합쳐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해야 했고, 여기서 제자백가가 등장했다. 제자백가의 일파인 법가 사상을 받아들인 진나라진시황제기원전 221년에 전국 7웅의 국가들을 전부 제패하고 전국시대를 끝내면서 진한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진 및 초한전쟁[편집]

통일된 중국의 진나라는 진시황이 처음으로 황제를 선포하면서 중화제국을 성립시켰다. 중화제국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동아시아의 질서를 통제해왔다. 그리고 도량형과 문자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하나의 중국 개념을 형성시켰다.

그러나 진시황은 법가 이외의 사상을 탄압하면서 분서갱유를 벌였고 농민들을 데려다가 만리장성을 짓게 하면서 많은 농민들을 빡치게 만들었다. 결국 진시황이 뒤진 다음 기원전 209년에 진승 오광의 난이 터지고,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항우초나라에 의해 기원전 206년에 멸망했다.

하지만 항우 또한 진시황 못지않은 폭정을 벌였고, 또 다른 군웅인 유방과 겨루다가 결국 패배했다. 항우의 초나라를 제압한 유방은 기원전 202년 한나라를 건국했다.

[편집]

중국의 통일 왕조를 이룩한 한나라는 신나라를 한나라에 포함할 경우 무려 421년 간 존재한 제국이다. 기원전 195년 유방이 사망한 이후 황후인 여씨가 섭정을 하는 시대가 열렸고, 기원전 141년에는 한 무제가 등장하면서 고조선, 베트남 등을 제압하고 유교를 도입하며 연호를 제정하면서 유교 질서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는 황권이 조금씩 약해지고, 기원후 8년에는 왕망이 왕위를 찬탈하면서 잠시 신나라로 바뀐다.

주나라에 이어 초장기 왕조를 이룩한 한나라는 중국 한족, 한자 등등 중국과 관련된 것의 어원이 되었다.

한국[편집]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고조선이 성립되었다. 고조선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동안 중국의 문물을 남쪽의 '진'에 전달해주는 무역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한나라가 들어선 이후 기원전 194년위만이 왕위를 찬탈하면서 위만조선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입해오면서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멸망했고, 고조선 자리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고조선이 망하기 이전부터 만주 일대에는 부여가 존재했고, 그 이외에 동해 연안에는 부족 연맹체인 옥저와 동예도 있었다. 남쪽의 '진'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삼한이 형성되었다.

고조선 유민들이 경상도 경주로 이주해 기원전 57년에 6개의 촌락으로부터 인정받은 혁거세 거서간이 신라를 세웠다. 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해서 고조선 민족을 흡수한 주몽 세력은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웠고, 거기서 한번 더 남쪽으로 이주한 온조 세력은 한강 강남 지역에 백제를 세웠다.

일본[편집]

신석기 시대인 조몬 시대였다가, 한반도에서 야요이인이 유입되면서 기원전 3세기부터 청동기+철기 시대인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문명이 시작된 시기라고 볼 수 있으며,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융합은 일본 민족을 형성했다.

베트남[편집]

동썬 문화가 하나의 국가로서의 반랑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학계에서는 대략 기원전 7세기쯤으로 본다. 반랑은 기원전 257년 툭판(안양왕)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툭판은 어우락을 건국했는데, 어우락은 한국으로 치면 (실존하지는 않지만)기자조선의 포지션에 있는 나라다. 하지만 한족 출신 찌에우 다기원전 208년에 어우락을 멸망시켰다.

찌에우 다는 남비엣을 건국했다. 이 시기를 찌에우 왕조라고도 부른다. 우리로 치면 위만조선 같은 포지션이다. 기원전 111년 한 무제가 침입하면서 멸망했고, 베트남에는 한구군이 설치되면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인도[편집]

후기 베다 시대를 맞이하면서 브라만교카스트 제도가 고착화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6세기쯤에 인도 북부에 16개 이상의 왕국들이 세워지면서 십육대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브라만교에 대한 비판으로 불교자이나교가 창시되었다.

십육대국 중 가장 강했던 마가다의 난다 왕조가 기원전 4세기에 전성기를 이룩했으나,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 왕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알렉산드로스가 침입하면서 위기를 맞이했고, 기원전 322년에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마우리아 제국을 세운 다음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마우리아 제국은 십육대국을 전부 통일하고 인도의 대부분을 하나로 만들었다. 남부의 타밀계 왕국들도 복속시킬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3대 황제인 아소카 대왕은 상좌부 불교를 발전시키면서 동남아시아에 인도 문화를 전파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마우리아는 급격히 몰락했고 기원전 184년 멸망했다. 이후 슝가 왕조로 이어졌지만 마우리아 시대보다는 약해졌고, 인도-그리스 왕국과 사타바하나 왕조(안드라 왕조)와 공존했다.

중동[편집]

이집트[편집]

신왕국 붕괴 이후 제3중간기를 맞이했다. 이집트는 청동기 문명을 계속 유지하다가 결국 메소포타미아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고, 계속해서 국력이 약화되다가 나중에는 분열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남쪽의 쿠시 왕국의 흑인들이 이집트를 통일해버리면서 제25왕조가 열리고 흑인의 지배를 받았다.

25왕조 시기에 잠시 국력을 회복하고 문화를 융성하게 만들었으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아시리아 제국이 침략해오면서 이집트는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다. 이때 아시리아의 봉신으로서 사이스 왕조(26왕조)가 세워졌다.

신아시리아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한 후에도 26왕조는 유지되었으나,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게 박살나고 27왕조로서 아케메네스 왕조가 들어섰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진보적 문화와 이집트의 보수적 문화는 공존하기 힘들었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때 이집트는 잠시 28왕조로 독립했으나, 29왕조와 30왕조로 교체되었고, 30왕조 때 페르시아에게 다시 정복당하면서 31왕조가 생겼다.

하지만 31왕조가 생긴지 11년 만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31왕조는 없어졌고, 알렉산드로스 요절 이후 마케도니아 제국이 분열되던 와중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면서 기원전 323년프톨레마이오스 왕조(32왕조)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 시기로, 이집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섞여 있었다. 지중해의 헬레니즘 문화를 주도한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된 전쟁으로 몰락했고 클레오파트라 7세로마 공화국안토니우스와 동맹을 잘못 맺었다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에게 박살나면서 기원전 30년이집트 문명은 완전히 멸망했다. 이후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메소포타미아[편집]

신아시리아 제국[편집]

기원전 911년 아다드 니라리 2세가 아시리아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신아시리아 시대가 개막했다.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8세기에는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유대를 복속시켰으며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장악했다. 기원전 7세기아슈르바니팔이 즉위하면서 이집트를 정복하고 봉신 왕조인 26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지식을 수도 니네베(니느웨)에 모으기 위해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세웠다.

그러나 아슈르바니팔이 죽고 나서 내란이 발생했고, 바빌로니아가 독립해나가면서 기원전 626년에 나보폴라사르에 의해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세워졌다. 이후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 유대, 신바빌로니아, 엘람 등이 동맹을 맺고 스키타이 민족까지 합세하면서 아시리아는 멸망했다. 하지만 아시리아 민족은 페르시아 시대에 정체성의 유지를 보장받았고, 이슬람 시대에도 정체성을 유지해오면서 2024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편집]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605년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즉위한 이후 속국인 유대를 완전히 멸망시켰고 바빌론 유수로 인해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기원전 562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망한 이후 바빌로니아도 혼란을 겪었다. 멸망 직전 섭정으로 추정되는 벨사자르가 통치했으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신바빌로니아는 멸망했고, 문명의 주도권은 페르시아로 넘어가게 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대 또한 종식되었다.

그 후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페르시아,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 로마 등에게 순차적으로 지배를 당했다.

팔레스타인[편집]

다윗솔로몬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솔로몬의 실책으로 그의 사후 기원전 931년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왕국(북이스라엘)과 유다 왕국(남유다)로 나뉘었다.

이후 200년 간 이어지다가 북이스라엘이 먼저 기원전 722년신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망했고, 남유다도 기원전 609년에 요시야 왕이 이집트에게 살해당하면서 이집트에 복속되었다가,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를 통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신바빌로니아의 통치를 받다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후 유대인들은 키루스 칙령을 통해 다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거쳐갔고, 마케도니아 분열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셀레우코스 왕조에게 지배받았다.

이후 마타디아하스몬 왕조를 세워 셀레우코스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며, 후계자인 유다 마카베오가 독립전쟁을 이끌면서 이스라엘은 재차 독립했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에 의해 기원전 63년에 복속당했고, 이스라엘 지역에는 헤로데 왕국이 들어섰다.

페르시아[편집]

지금의 페르시아 지역에는 엘람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인도유럽어족의 유입 이후 메디아 제국이 들어섰으며, 아케메네스가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기원전 6세기키루스 2세 때 메디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장악한 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를 전부 무너뜨렸다. 이후 캄비세스 2세 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제27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522년에 즉위한 다리우스 1세는 영토를 인도, 마케도니아 일대까지 확장시켰다. 기원전 491년부터 기원전 449년까지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1세테르모필레 전투살라미스 해전 등에서 패배하면서 그리스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리아 시대의 강압 통치와 정 반대로 관용적인 정책을 베풀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4세기까지 존재했지만 마케도니아의 정복군주인 알렉산드로스의 침공으로 기원전 330년에 멸망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붕괴 이후에는 기원전 312년셀레우코스 왕조가 페르시아를 분봉받았다. 셀레우코스 왕조 또한 잦은 전쟁으로 붕괴되어갔고 나중에는 시리아 일대만 남았다가 로마 공화국에 의해 기원전 64년에 멸망했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몰락하는 동안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247년파르티아가 세워졌다. 예수 탄생을 전후해서 세계는 로마 제국, 파르티아 제국, 쿠샨 제국, 한나라의 4개 제국으로 판도가 나뉘었는데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 제국과 수백 년 간 경쟁하는 관계에 놓였다.

유럽[편집]

그리스[편집]

미케네 문명 붕괴 이후 그리스는 암흑시대를 맞이했다. 미케네 문명 붕괴부터 폴리스 출현까지의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록이 갑자기 매우 적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페니키아 문자를 변형시켜 그리스 문자를 만드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그리스 문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로마자를 파생시킨 문자이기도 하다.

기원전 8세기쯤부터 기존 미케네 문명의 대도시였던 스파르타와, 상대적으로 듣보잡이었던 아테네 등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암흑시대는 막을 내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되었다.

아테네에서는 왕정이 귀족정으로 바뀌고, 기원전 621년에 성문법이 형성되고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페리클레스 등이 나타나면서 민주정으로 바뀌었다. 스파르타의 경우 국가를 3개의 계급으로 나누었으며 남녀 할 것 없이 전부 강력한 훈련을 시켜 군사 강국이 되었다.

기원전 491년에는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기타 도시 국가들은 동맹을 맺어 페르시아에 맞섰다. 기원전 449년을 끝으로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종식되었고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리스의 승리 이후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의 힘이 강해지자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경쟁하게 되었고, 결국 이 둘은 충돌하여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했으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모두 몰락했다. 기원전 4세기에는 도시국가 테베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테베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59년에 북쪽의 마케도니아에서 필리포스 2세가 나타나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를 모두 제압하고 그리스를 통일했다.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6년에 제국을 물려받아 페르시아까지 침략해 세계 최강 제국을 이룩했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한 이후 그리스부터 이집트, 중동, 인도 북부까지 걸친 마케도니아 제국은 여러 개로 분열되었다. 이후 분열된 그리스계 왕국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신흥 강자 로마 공화국에 의해 제압된다. 이후 그리스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나 그리스의 문화는 오히려 로마에 계승되어 기독교의 등장 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로마[편집]

인도유럽어족의 유입 이전부터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선진적인 그리스인의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받던 라틴족의 로물루스레무스기원전 753년 로마 왕국을 세웠다. 기원전 509년에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왕정을 무너뜨리고 로마 공화국을 세웠다.

기원전 5세기 동안 로마는 계속해서 확장을 이어나갔고, 기원전 4세기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삼니움족과 전쟁을 벌였으며, 기원전 280년부터 기원전 275년까지는 그리스계 국가들과 피로스 전쟁을 벌였다. 피로스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로마가 강해지면서 이들은 기존 강대국인 페니키아계 국가 카르타고와 맞장을 뜨게 되었다. 기원전 264년 제1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와 카르타고는 맞붙었고 초기에는 강대국인 카르타고가 이기는 듯 했으나 결국 기원전 241년 로마의 승리로 끝났고 카르타고는 지중해의 강자 자리에서 밀려났다.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1년까지 있었던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 측의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를 큰 위기에 빠뜨렸다. 그러나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본토를 쳐들어가 카르타고를 제압한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전쟁 이후 카르타고는 로마에 복속되었으며 엄청난 탄압을 벌였다.

카르타고는 최후의 발악으로 기원전 149년에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으나 기원전 146년에 패배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흔적을 지구에서 완전히 쓸어버렸고 북아프리카 지역을 획득하면서 지중해의 강대국이 되었다.

로마의 세력이 커지면서 자영농들이 몰락하고 귀족이 강해지는 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키피오의 외손자들인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시도했으나 원로원의 방해로 실패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삼두 정치 체제가 들어섰고 제1차 삼두 정치를 이끈 카이사르가 훗날 로마 제국이 될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제2차 삼두 정치를 이끌었는데, 라이벌인 안토니우스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문명을 완전히 정복하고 로마를 통합하면서 옥타비아누스의 시대가 열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프린켑스의 지위에 올랐고, 이로서 기원전 27년 로마 제국이 탄생했다.

아메리카[편집]

올멕 문명이 존재했다. 이들은 기원전 4세기즈음에 몰락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에 멕시코 지역에는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