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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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키: 180 cm , AB형

자는 연상(蓮上), 호는 백범(白凡) 「백범일지」라는 자서전을 집필했다.

여기서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

1876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고 1919년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해방 이후 임시정부 법통 운동, 반탁 운동 등을 하다가 1949년에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 당했다.

송진우장덕수의 암살범으로 지목됐다. 브루스 커밍스송진우의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고, 리처드 로빈슨도 송진우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다. 1946년 1월 초, 반탁 운동 관련 미군정에 소환됐다가 송진우 암살 사건으로 다시 미군정에 소환된다.

한민당과 한독당의 합당, 우익 단체 총결집을 놓고 반대하던 장덕수가 갑자기 암살됐는데 장택상은 김구를 암살 배후로 지목하여 체포하려고 했고<ref>장택상 자서전, 대한민국 건국과 나</ref>, 허정은 완곡하게 말했지만 김구를 의심해서, 김구 대신 조소앙을 찾아가 항의하였다.<ref>허정, 허정회고록:내일을 위한 증언 (샘터사, 1979)</ref>

참고로 뉴라이트 진영 언론인 뉴데일리에서도 백범 김구 선생으로 높여 부른다고 한다.

업적[편집]

임정이 수립되자 닥터 리가 "머통령 아니면 나 임정에 참가 안 해 ㅇㅇ"라고 말했는데(사실 이미 한성임시정부에서 집정관 총재 역임) 이 양반은 임정 문지기(쉽게 말해 수위)라도 시켜달라고 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에 참여하여 경무국장을 맡았다. 경무국장 재임 시기에 임정의 독립운동을 방해하려는 일본 간첩을 척결했다.

참고로 경무국장은 오늘날 검찰총장+법원장임에 해당한다. 임시정부 특성상 훈방 아님 사형이었다고.

임정은 탄생과 함께 이승만 탄핵을 시작으로 결국 완전히 분열되어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개점 휴업 상태의 임정을 끌어안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홀로 하드캐리했다. 이후 임정의 국무령, 주석을 지낸다. 참고로 임정은 창설부터 해체까지 내각제였기 때문에 김구는 명목상 국가원수에 해당하지만 임정 특성상 총선을 치러서 의회를 구성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내각 수반까지 겸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국공합작 영향(+중국 총통제 영향)으로 시작된 민족 유일당 운동 덕분에 임정 후반기엔 김구가 당, 의회, 내각 전체의 수장을 혼자 다 차지하게 되었다.

ㄴ 솔직히 자금원을 이승만이 혼자 쥐고있었고 백범일지에도 나오지만 임정 사무실 임대료 낼돈도 없을정도로 입금도 안해줬다. 이봉창, 윤봉길 의거시에도 의거자금은 이승만에게서 나온게 아니다. 애초에 외교독립론 주장하던 이승만이 이걸 밀어줄리도 없는데다 애초에 임정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이승만이 구미위원회 자금 독점, 안창호의 국민회까지 테러하여 자금탈취하는 집단이였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승만과 호형호제하던 김구는 의거자금도 안창호에게 받았다. 여담으로 안창호에게 의거자금을 건네준 옥관김은 김구에게 암살당했다. 요약하자면 활동자금까지 다른 독립운동가한테 받아쓰는 임시정부가 이승만의 친위세력이나 마찬가지 세력인 상황이라 나머지 세력이 다 나갔다는 것이다.

한인애국단을 창설해서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의 위인 여러 명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봉창은 별로 신뢰하지 않았는지 이봉창이 체포되어 심문한 진술서에는 이봉창은 그의 이름도 모르고, 나중에 체포된 뒤에야 자신을 보낸 사람이 김구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했다.

참고로 효창공원 삼열사 묘의 구파 백정기는 아나키즘 단체 쪽으로, 김구의 사람이 아니다.

덕분에 중국 장개석이 한국 독립을 지원해주게 되고 이로 인해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이 보장되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으로 문화가 융성한 문화 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견해일 뿐, 그는 김립의 암살을 사주하고서는 누명을 씌웠고 이걸 「백범일지」에 당당하게 적어놨다.

안중근의 아들 안춘생을 암살해 달라는 사주를 하고 이것도 「백범일지」에 적어놓았다. 김립 암살과 안춘생 암살은 빼도박도 못하는 실책이다.

자신의 측근인 안공근중일전쟁 때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만 먼저 모시고 나오고 그다음 자기 가족을 데리고 왔는데, 형수인 안중근 부인을 데리러 가기 전에 상하이가 일본군에 함락됐다. 자기 가족보다도 김구의 어머니를 먼저 피신시켰는데도 형수를 못 데려왔다고 심하게 질책하고 내보냈다.

「백범일지」에도 안공근에 대한 질책만 써놓았지, 당시 안공근 본인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내용은 싹 빼버렸다.

안공근은 김구 조직에서 이탈해서 별도로 장개석과 교섭을 시도. 의사 류진동의 집을 출입하다가 갑자기 실종됐는데, 상하이에서는 마적 암살설, 스파이 암살설 외에도 김구의 측근인 모 독립운동가 짓이라는 설도 있다. 이것은 후에 누군가 오영섭이라는 역사학자에게도 진술.

김구의 오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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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살해[편집]

대마도 출신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 살해. 다른 건 어떻게든 변론할 수 있어도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민간인 살해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멀쩡한 상인을 단순히 옆구리에 칼 찼다는 이유로 돌로 머리를 내려치고 칼을 뺏어서 베어 살해했다.

어떤 놈들은 일본인 상인이 수탈하려고 조선에 들어왔으니 때려죽여도 괜찮다고 하는데 실제로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장사하러 온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때려 죽인 건 엿같은 짓이다. 게다가 김구는 장사하러 온 상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죽였다.

쉴드 치는 건 아닌데 애초에 그땐 우리나라에서 반일감정이 조오온나 심했다. 민비 살해 사건으로 일본인이 그냥 돌아다녀도 맞아죽을 판인데 칼도 차고 수상한 짓을 했다? 의혹을 사기 충분했음. 물론 죽인 건 좀 그렇긴 하지만 그 시대 때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보복이 여럿 있었고, 이에 대한 처벌이 약했던 걸 보면 당시엔 그게 애국이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봐야 할 듯. 맹꽁이 서당에서도 미화됐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암살 사주[편집]

사실 김구의 암살대상은 자기와 척을 진건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사회주의고 아나키스트고 우익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승만만 해도 척진뒤로 암살위협에 시달렸다고 하니까

우익과 좌익 간 사이가 벌어진 배경[편집]

일단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우익진영(민족주의)과 좌익진영(공산, 사회, 무정부)간 사이가 존나게 나빴단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고려 공산당은 막 창당되었을 때부터 노령(현재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상해, 두 파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사실상 내전을 벌였다. 뭐, 여기까지도 좋았다. 아래에서 보이듯 독립운동진영끼리도 서로 통수 치고 잡아족치는 것은 사람 사는 데에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까. 문제는 이들이 외세인 소련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이것이 민족주의자들의 비위를 제대로 거스른 거였고,

저 미친놈들이 지들 밥그릇 싸움을 하는데 또 다른 외세인 소련을 끌어들인다고 인식하면서 좆같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구한말 민씨 세도외척 밥그릇을 지키고자 임오군란 때 청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포를 탄압하고 자주권을 들어다가 바친 민비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는 새끼들이란 인식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북부의 모 사이비교주 수령은 한국전을 싸지르고 수습이 불가능해지자 소련의 한 주(크라이)나 자치 공화국으로 들어가다 바치는 것을 고려했다고 하니 아주 잘못된 생각도 아니었다. 물론 사이비 교주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지는 차차하더라도.

애초에 민족의 독립을 해야 하는데 저 새끼들은 너무 코민테른(크렘린)에 순종적이라고 까는 것도, 또한 같은 우파이면서도 독립 청원서로 외교론자들 극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사건의 배경[편집]

하여간 쏘련 성립 후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출하고자 제국주의 국가=자본주의 국가이므로 이들을 타도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연장선으로서 각 약소 민족들의 독립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코민테른에서 천명한다.(5월 테제)

이에 따라 각국의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에 심취하고 각지에서 공산당이 설립되었다. 그러다 터진 게 위의 자유시 참변이다.

하여간 소련 측은 조선의 독립운동 진영에도 지원금을 주었다. 이 지원금을 상해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김립으로, 그는 이동휘 휘하 고려공산당원이었다. 이때 받은 돈이 60만 루블인데, 거금이라서 한 번에 옮기긴 거시기 해져서 일단 40만, 20만으로 나눠서 상해로 가져가기로 했고 김립은 이후 좌익계 운동가들과 분배해서 사용하기로 합의한다. 즉 이 돈은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이 좌익계 독립운동가들(고려공산당원)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일환으로 독립운동을 하라고 지원금으로 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쓰는 것은 합법이었고 이 점을 들어서 안창호마저 아래의 사건을 깔 정도였다.

국제공산당 자금사건[편집]

김구는 저 새끼들이 '정당한' 상해 임정으로 가야 했을 임정의 공금을 횡령해 사적으로 호의호식 하는데 썼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결국 같은 독립운동가인 김립을 공금 횡령범으로 몰아 암살을 지시하였고 그렇게 김립은 왜경이 아니라 같은 독립운동가 자기 동포손에 상해 한복판에서 죽었다. 물론 임정 내 우익 측은 아몰랑 빼애액!으로 일관된 것일 뿐. 까놓고 말해서 이때 돈 나눠줄 때 받아간 사람들 모아다가 계산만 했어도 될 일이다.

다시 말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을 죽이고, 이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즉 좆같았는데 잘됐다며 처치하고 핑계를 댄 것이다.

근데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 게, 김구는 분명 상하이파 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간의 싸움으로 벌어진 스보보드니 참변(자유시 참변) 같은 것을 목격했을 거고, 이승만과 이동휘의 대립으로 인해서 임시정부가 산산조각 나는 것도 봐왔기에 공산주의자는 죽어 마땅한 매국노 집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 죽인 게 잘할 건 아니지만.

당시 김구는 임정 내 법무장관 겸 치안총감인가, 그런 직위에 있었다고 하는데 저 당시 임정은 영토가 한 뼘도 없어서 감옥도 없었다. 즉 임정에게 죄를 짓게 되면 무죄=석방, 유죄=사형 둘 중 하나였다고 한다. ㄷㄷㄷ 그리고 임정의 범죄자들을 처분하는 임무와 권한은 저 당시 김구가 맡고 있었다는 거...

해방 후 백색테러 의혹 및 극우적 행보[편집]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세 명 전부 김구와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북괴의 먹사 + 관료인 강량욱<ref>혹부리우스 애미인 강반석의 먼 친척이다.</ref>의 집에 폭탄을 던져 주변 사람들까지 깡그리 죽였다. 강량욱은 몰라도 옆의 민간인들을 죽인 건 테러다.

위정척사파 유생 출신이어서 조선시대 양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좌파의 평등 사상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외국이 하는 말이라면 덮어놓고 무시했다.

남로당원의 박갑동은 비서가 김구의 옷을 다 입혀주는 것을 보고 마치 조선의 왕과도 같다고 말했다.

신탁통치 논란 초기엔 반탁파였지만 이후 호형호제 하던 사이인 이승만과의 관계 고려와 협력을 위해 이승만의 신탁 노선에 동의하는 대신, 자기를 중심으로 우익 세력의 결집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협력했다가 1947년 12월 장덕수 암살 사건이 터져서 이승만과 관계가 나빠지자 다시 반탁파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천조국에서도 김구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미 군정은 김구를 무자비하고 파렴지한 기회주의자라고 평가했다.

ㄴ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게, 일단 천조국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구성한 인원 중 하나인 김구를 비난해야 자기 나라를 더 잘 믿기 때문에 한 말일 수도 있다. 애초에 천조국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남한에 군정청을 만든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ㄴㄴ 괜히 이승만, 김구가 극단적이라고 김규식, 여운형 회유해서 좌우합작위원회를 만든게 아니다. 김구도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친일파나 정치깡패들을 자기세력으로 많이 흡수했는데 얘네들이 충성심 보여준다고 좀더 막나간점도 미군정입장에선 거슬렸던것도 있고

근데 이건 의혹은 제기되고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없다. 당장 송진우는 임정 봉대를 가장 크게 옹호했고, 임정에 900만 원 상당의 정치자금까지 대준 사람이다. 김구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죽일 수 있냐?"라고 물은 바 있어서 송진우 김구 암살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편인데 영향력도 약한 송진우를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ㄴ 김구는 이봉창, 윤봉길의거의 자금을 안창호한테 받았고 안창호는 옥관빈에게 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옥관빈은 김구한테 죽었다. 한번한거 두번못할게 뭐냐?, 더군다나 적어도 저중에서 여운형운 백범일지에서도 비판하고 있다.

여운형 암살도 사실 미군정에선 박헌영 계열의 극좌 세력에서 암살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애초에 백의사 자체도 김구보다 신익희 편에 더 가까웠다. 임정 시절 신익희가 만든 정치 공작대와 백의사가 늘 함께 했다는 말도 있으니까. 김구와 이승만은 1947년 초 이후로 사실상 헤어졌기 때문에 백의사를 김구가 이끌고 백색테러를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초에 백의사 배후에 경찰도 있었고.

송진우 암살[편집]

1945년 12월 27일 카이로에서 한반도 분할 신탁통치 의견이 나왔다.

다들 반탁을 하다가 소련에서 찬탁으로 돌아서자 박헌영 등은 찬탁을 주장했다. 근데 그전에 동아일보가 박헌영이 찬탁이라고 오보를 했다.

신탁통치에 김구는 결사 반대했고 송진우는 미국과 소련이 힘으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 수용하고 3~5년 정도 기다리자고 말했다. 신탁통치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안재홍이나 김규식도 역적으로 지목됐다.

45년 12월 29일의 경교장 회의에서 송진우는 신탁통치가 우리 뜻으로 거부할 수 없는 힘이라고 말했다가 30일 오전 6시반 원서동 집에 들이닥친 한현우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한현우는 끝내 자신을 사주한 사람 입을 열지 않고 투옥됐다.

브루스 커밍스는 문적 몇 개를 조사한 뒤 한현우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ref>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87페이지</ref>

장택상송진우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고<ref>[2]</ref> 조병옥도 김구가 송진우 암살범이라고 지목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는 중도주의자인 송진우를 김구가 암살한 사실과 이유를 안다면서 반탁 문제를 언급했다.<ref>리처드 로빈슨, 미국의 배반:미군정과 남조선 (정미옥 역, 과학과 사상, 1988) 77페이지</ref>

결국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 때문에 46년 1월 1일 소환되어 중단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같은 날 또 불려가서 송진우 암살 문제로 경고를 받았다.

여담으로 한현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줬기 때문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22200209222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2-22&officeId=00020&pageNo=22&printNo=22093&publishType=00020</ref>

장덕수 암살[편집]

송진우는 신탁통치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말했다가 찬탁으로 몰려 갑자기 암살 당한 뒤 한민당을 떠맡게 됐다. 그는 미소공위 적극 참가와 김구 중심의 보수 정당 단일화를 반대, 소극적인 김성수에 대해 합당은 한민당을 통째로 임정에 갖다 바치는 거라고 반대한다. 이 일로 김구와 만난 뒤 고성이 여러 번 오고 갔다.

1947년 12월 8일 집에 있던 중 박광옥, 초등교사 배희범 등 한국독립당원 5명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장덕수가 암살됐다. 김구는 이승만에게 가서 자신이 암살한 게 아니니까 미군정에 소환되는 일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이승만은 거절했다.

송진우 암살 직후, 반탁건으로 미군정사령부에 끌려가서 경고를 먹었는데 송진우 건으로 또 경고를 받고<ref>(김구, 도진순 엮고 보탬, 돌베개, 2007.11) 67페이지</ref> 그 다음에는 여운형 암살의 유력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여운형은 당내 라이벌인 박헌영도 유력용의자로 의심되기도 한다.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이 터지고 현장에서 잡힌 한독당 당원 외에 한독당 간부인 조상항, 김석황 등이 줄줄이 끌려가면서 빼도박도 못하고 김구도 미군정 재판정에 출석. 다만 최대한 예우해서 증인 이라는 명분으로 심문을 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이승만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장덕수 암살의 이유 중에는 장덕수가 일제말 기고문을 날린 것, 그 전에는 공산당 좌파쪽 이론가였다는 게 그 이유다.

조소앙도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다.<ref>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2) 592페이지</ref> 김구가 상하이에 있을 때 한인애국단 이봉창 윤봉길 등에게 줄 폭탄을 구해준 인물이 김홍일과 함께 조소앙이긴 했다.

허정은 김구에게는 차마 못가고 조소앙한테 가서 장덕수 암살 사건을 따지고 책임 추궁을 했다.<ref>허정 회고록</ref>

친일 인사 등용[편집]

이승만과 마찬가지 케이스다. 본인은 독립운동가였고 친일 행위를 한 바가 없지만, 해방 후 친일세력과 가깝게 지내며 이들의 도움을 여러모로 받았다.

대표적으로 백범일지를 윤문한 소설가 이광수가 있다. 그리고 김구의 거처 경교장을 제공한 최창학, 한국독립당과 김구의 자금원이였던 방응모 등이 있다. 이광수는 다들 잘 알다시피 친일파로 변절한 소설가고,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와 결탁하여 광산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친일 자본가였고, 방응모는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일보의 당시 사장이다.

또한 한민당 내 친일파 출신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지원 받았다.

근데 애초에 김구는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다. 잘잘못은 잘잘못 그대로 보면 되는 거지 굳이 이미지 자체를 깔아뭉갤 필요는 없다.

무차별적으로 빨리던 이유[편집]

주의. 이 문서는 헬조선 깨시민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룹니다.
오직 자신들만 깨어있다고 좆망상하면서 보수 정권은 무조건 까내리고 핵뒈중, 뇌물현, 문크 예거, 찢칠라를 신격화하면서 남을 토착왜구로 모함하지만 아랫도리는 친일파인 자칭 중도 40대 진보대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무니다 해.
우리 잼파파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렇게 논란이 많은 인물임에도 최근까지도 김구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빨갱이 프레임에 버금가는 친일파 프레임에 싸잡혀서 온갖 비난을 들었다. 요즘도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 이유는 김구를 실증적으로 재평가해서 이익을 볼 정치 진영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김원봉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반공 프레임 때문에 묻혀있다가 진보 세력에 의해 공산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재조명되었고, 광해군 역시 미국에 극히 의존했던 과거 한국 외교를 비판하는 좌파들이 중립외교를 많이 띄워준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어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신사임당은 여성주의 학자에 의해 전형적 현모양처였다는 오해에서 벗어났으며, 현대사의 수많은 인물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로 수많은 재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데 김구는 그럴 기회가 여태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역사적으로 전체주의와 민족사회주의 파시즘을 기반 중 하나로 삼아서 발전해왔다. 이들이 보기에 아는 게 민족주의밖에 없었던 김구는 괜찮은 사람이었고, 해방 후 좌파(소련을 따라 민족의 철폐를 주장한 경우가 많은)를 암살하고 다닌 것은 무시하고 '진정한 우파'라고 빨아주면서 역사적 판단으로 견제하고 재평가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4~50년대 혼돈의 시대에서 공산진영에 의해 망하지 않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 성립에 성공한것도 이승만의 역할이 컸던것도 사실이었는데 진보 세력 입장에서는 이승만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대한민국 건국 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진걸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럼 누가 나라를 세우는데 주도했어야 했는데?"라는 질문에 대답할 용도로 김구를 내세우는 것이다. 물론 최종 학력이 서당인 김구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한국에 완벽하게 정착시킬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보수 세력 입장에서도 5.16 군사정변 당시 김구의 아들인 김신이 가담했고 박정희 역시 정치적 입지를 위해 기존 이승만 휘하의 자유당 세력들을 눌러야 했기에 본격적으로 김구를 존나 띄워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둘째 치고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김구를 존경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좌우 둘다 ㅈㄴ 빨리다보니 성역화 된 것이다.

그리고 문맹률이 극복되고 책들이 보급되면서 백범일지가 필독도서로써 엄청나게 보급되어졌는데 어릴때부터 이 책을 읽은 아동들은 이 책의 내용이 100%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김구가 엄청나게 신성시되었다. 물론 백범일지는 역사적 사료로써의 가치는 있을수 있으나 일단은 자서전이므로 전지적 김구 시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게다가 사건 당시에 김구가 쓴 것도 아니고 자기 기억에 의존해서 쓴 것이므로 사실과 다른 내용도 상당히 많다. 치하포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한 역사왜곡 케이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김구는 독립운동가로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나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떨어져서 정치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참고로 하나만 말하자면 백범일지는 1공시절에 금서였다.

또한 김구식 독립운동은 과격파 방식이었으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운동권들에게 너무나도 자기들 방식을 미화시키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또한 반일 운동에도 마르고 닳도록 이용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반일운동에 얼굴마담으로 종종 등장한다. 물론 김구가 독립운동가였고 민족운동 지도자였던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김구처럼 백색테러 방식을 극혐해하면서 다른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독립운동가들도 수없이 많았다는걸 기억하자.

쿠데타 기도[편집]

장덕수 암살 사건으로 재판정에 섰을 때 쉴드 쳐주지 않았다고 해서 이승만의 단정 수립에 반대했다. 처음엔 죽기 살기로 이승만 박사께 충성합시다, 형님과 나는 노선이 같다 등의 말을 했다.

미군정의 기록에는 김구가 경무대를 대상으로 쿠데타를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리처드 로빈슨은 김구의 쿠데타 기도를 인용했는데, 김구 암살 직후 한국 정부의 모 고위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놓았다. 미군정 당시부터 한국에 취재 기자로 온 리처드 로빈슨이 이 내용을 입수했다.

그밖에도 실제 쿠데타를 기도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여순반란 때에도 이승만 정부를 뒤엎으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여순반란을 계기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고 이범석윤치영에게 공격당하기도 했다. 이범석과 윤치영은 수시로 나와서 이번 군인 반란에 극우 인사가 개입됐다고 계속 언급했고 빡친 김구가 직접 이범석 윤치영의 주장을 반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쿠데타는 김구가 아닌 아들 김신이 실현하게 된다. 김구의 차남 김신은 5.16 쿠데타에 참여해서 박정희 원조 가카를 권좌에 앉히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이 된다! 그 대가로 70년대에는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편집]

김구는 민족주의와 유교주의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우익으로 분류되었다. 실제로 분단이 기정사실화 되어서 북으로 회담 하러 간 일도 있었지만 광복 직후에는 통일을 원하지만 빨갱이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우익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독립운동 할 때도 공산주의자를 존나 싫어했다. 공산주의자 김립 암살도 했고...)

오히려 이승만 계열이 온건 우익이었고 김구가 강경 우익이었다.

다만 이승만 같은 우익들과의 차이점은, 이승만은 친미 성향이 강했다면 김구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좌익들에게 극우라고 까이기도 하였고 미군정에서도 파시스트라고 불렸다. (여운형 암살에 기여했다는 루머도 있었을 정도로)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오히려 민족주의로 똘똘 무장한 한국식 좌익들에게 쪽쪽 빨리고, 친일파 후예들이 점령한 한국식 우익들에게는 까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다.

이승만과의 관계에 대해 몇가지 말해주자면 나이는 1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도 김구가 이승만을 이상하리만큼 어려워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정부수립 이전만 하더라도 거의 이승만빠 수준이었고 1대 대선 당시에 본인 지지하는 의원들에게 나 찍지 말고 이승만 찍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평생을 강경한 반공우익 스탠스로 살아오며 극렬한 무장 투쟁을 최선으로 삼아서 오히려 해방정국 때는 좌파 세력에게 각종 극우 백색테러의 배후로 강하게 의심받았던 김구가, 말년에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일성이 만나러 평양 한번 갔다가 후대에 와서는 물러터진 중도 세력 이미지가 쓰인 것은 존나게 웃기는 일이다. 당장 이 문서 내에서도 일부 엑윽보수 새끼들은 김구를 좌파로 착각하고 있다. 근데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임하던 시기에는 좌우 합작도 많이 했다. 오죽하면 연안 일대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에서 반파쇼 대회를 열었을 때 손문, 장개석, 모택동과 함께 김구의 초상화를 내걸었을까. 여튼 그 정도로 그때 독립운동 진영에선 명망이 있는 통합 지도자였다. 해방 정국에서 정적 암살이나 대립은 민족주의 성향과 지독할 정도의 애국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부 탈민족주의 성향의 좌익은, 김구를 박정희가 띄어준 파시스트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근데 김구 장례식 당시에 200만 명이 넘게 추모를 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건 그냥 개소리다. 하여튼 좌우 구분도 참 헬조선스럽다. 민족주의는 원래 미국을 제외한 서방국가에선 우파 이념이다.

참고로 경교장에 가면 안두희에게 총 맞은 직후 옷이랑 라이프지에서 김구 사망 당시 내용이 전시 되어있는데 올드 어쌔신이라는 표현을 했다.

그런데 운동권 출신의 민족주의 좌파들이 이승만 깎아내리기를 하는 도중에 이승만과 갈등이 있었던 김구를 빠는 웃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좌파들이 김구 정신 운운한다느니 토착왜구 이지랄하며 '김구 선생님이 현대에 온다면 너네 엑윽보수들을 규탄했을 텐데...' 식의 감성팔이에 어느 순간부터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작 김구가 현대에 왔다면 이런 감성팔이 좌파들부터 규탄했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규탄을 넘어서 아마 빨갱이라고 때려죽였을꺼다. 참고로 김구는 자유시 참변때 거하게 통수당한 이후 빨갱이놈들을 왜놈들보다 더 극혐했다.

멀리갈것 없이 백의사, 대한민주청년동맹, 서북청년회 같이 아주 유명한 극우 테러집단을 창설한 장본인이 김구다.

만약 김구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편집]

몇몇 사람들이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땠을까라며 말을 쓰는데 크게 두가지 경우로 예상을 하는데 이랬으면 남북통일정부가 세워졌을 것이라는 주장과 적화통일 됐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나뉘는 편이다.

당연히 전자는 생각 할 필요도 없는 개소리인데 김구가 남한 단독정부 창설을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했다한들 통일정부가 세워질일은 없는데 그 이유는 어떤 돼지새끼가 사라지지 않는한 북한은 100% 확률로 남침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통일이 되면 이런 방식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구의 경우도 최대한 김 돼지새끼를 설득하려고 했지만은 아마 변하지 않는 김일성의 주장과 뒤에있는 소련때문에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자의 경우 보통 김구를 빨갱이라고 까는 사람들이 많이 주장하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김구는 빨갱이가 아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 전자의 경우보단 실행 가능성이 높은 주장인데 김구는 이승만과 다르게 딱히 친미성향이 강한건 아니었고 이승만과 비교했을때 외교적 능력도 한참 부족하기때문에 한미동맹이 체결이 안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물론 스탈린이 뒤지고 후임자 흐루쇼프는 김일성을 극혐했기때문에 소련이 또 지원했을지는 의문이지만) 북한이 군사력을 재정비해 한번 더 남침을 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미국의 원조를 거의 못 받아서 전후 복구가 상당히 늦어졌을 듯 하다.

그 외에도 김구가 평화선 등의 이승만의 여러 외교적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또 김구가 독재나 학살을 안했을거라는 주장또한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김구도 권력을 잡았으면 어떻게 나왔을지 모르는 일이다. 김구는 본인이 독재에 대한 비판을 한적은 있으나 이승만 또한 독재에 대한 비판을 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안 할것이라고 단정 지을수는 없다.

후자의 경우또한 더더욱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김구또한 이승만처럼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던 사람이고 좌익계열 독립운동가 암살혐의가 있으며 극우 테러집단을 여럿 창설한 걸 감안하면 학살과 관련이 없었을리는 없을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구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한국전쟁이 안터질리는 없고 이때 100% 학살이 발생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고 책임자인 김구가 학살 관련해서 자유로워지는건 불가능하다.

물론 당연하지만 정부수립 이전에 이승만이 죽지 않는한 이럴일은 없다.

여담[편집]

백범일지에 실린 내용으로는 이완용을 죽이려던 이재명 의사에게 권총과 칼을 빼앗아서 이완용을 살리는데 기여를 했다.

본인은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 다녔으면서 남이 죽인다는건 맘에 안들었나보다.

ㄴ 이건 몰라서 뺏은거고 나중에 알고나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한다.

총살 당했을때 입은 옷의 피로 혈액형이 알려졌다.

AB형으로 김일성과 같은 혈액형이다.

소원 실현[편집]

김구와 여운형 선생님마저 해내지 못한 대통합을 최순실이 해냈다!

그의 후손들[편집]

김구의 아들 김신이 공군참모총장이었고 그 이후 김구의 후손들은 자손 대대로 오직 공군 장교로만 군복무를 한다.

김구 추가 1승[편집]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7&no=9034059

마지막에 짱깨BJ 짤이 김구다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보기[편집]

각주

<references group=""></references>

둘러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