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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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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함경도 명천군출생이다. 가계,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북간도, 연해주, 흑룡주, 베이징, 상하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독립운동 했고 일본 헌병대에게 '배일흥한(排日興韓)을 기도하는 유력자'란 이야기를 들을 만큼 거물이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무상으로 받은 자금을 관리했다. 60만 금화루블인데 오늘날로 환상하면 600억이다. 그런데 김구에게 억울하게 정부의 공금 횡령범으로 몰려서 상하이에서 북쪽 외곽의 중국인 밀집 지구인 자베이 구역 바오퉁루에서 피살 당했다. 이후 김구는 김립을 정부의 공금 횡령범이라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하필 소련이 좆망한 후 문서가 발견되어서 구라라는 게 들통났다. 그 문서들이 구 코민테른 문서 보관소에서 발굴되었다. 국제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비서 쿠시넨이 1922년 5월 11일자로 작성한 문서다. 이 문서에는 문제의 40만 루블과 20만 루블이 모두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에 지급된 것이라고 한다. 결산 보고 의무도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에 부과되어있다.

또 다른 문서가 있다. 국제공산당은 모스크바 자금의 정산 실무를 극동공화국 외무대신 얀손에게 위임했다. 그가 주도한 자금결산규명위원회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 시점은 1922년 8월 18일인데 이 보고서에도 모스크바 자금의 수령자가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이라고 나왔다.

오히려 보고서의 결론에 따르면 상하이파 공산당의 자금이 사적으로 유용되었다는 여러 가지 악평을 소련 영토 내의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근거가 없다고 한다. 결국 모스크바 자금의 처분권자가 한인사회당과 후계인 상하이파 공산당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임경석 교수에 의하면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의 과정에서 임시정부 공금 횡령자라는 낙인 때문에 김립의 서훈 상신이 기각 당한다고 한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김구에게 잘못 찍혀 죽은 뒤에도 공금 횡렴범 취급을 당하고 있다. 자세한 건 이쪽을 참조.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는 김구의 과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립 속에 한 독립운동가가 희생당한 비극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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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편집]

19세기 때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던 시인 김삿갓 김병연의 별칭.

여기서의 립자는 삿갓 립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