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나선정벌

조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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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의 굴욕으로 청이라는 새로운 주인님을 모시게된 조선이 불곰들이랑 두번 붙은일이다.

인조가 싼 병자호란이란 똥을 효종이 치운 사건.

배경[편집]

당시 러시아는 동유럽 후진 국가에서 벗어나 국가발전을 위한 기틀을 계속해서 닦아나가고 있었고, 특히 시베리아로 갖가지 자원과 모피를 찾아 지속적으로 원정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중 드디어 원정대가 국경지대인 아무르강(흑룡강) 지역에 다다르게 되었다. 원정대는 청나라고 뭐고간에 일단 무조건 들이닥쳐 이 동네에 뭐 국물 없나 하고 기웃거리면서 가끔씩 보이는 원주민들을 줘팼는데, 당시 이들 부족이 청에 복속되어 있었으므로 형님인 청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청나라의 최최최최후방이었기 때문에 병사들 수준도 개판인데다가 무기도 병신같아서 러시아 원정대에 청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당시 쓸만한 것들은 전부 명나라 전선에 투입되어 있어 이곳의 전력공백은 더욱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청나라놈들 머릿속에 떠오른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병자년에 자신들에게 조총을 빵빵 쏘아대던 조선인들의 모습이었다. 결국 청은 조선에 사신을 급파해 병력을 청하게 된다.

대략적 과정[편집]

조선 입장에선 이겨도 별 이득 없고 지면 대손해인 전쟁이었던지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뭐다? 속국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금쪽같은 조총병들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총 2번의 원정을 보냈으며, 2번 모두 승리했다.

1차 파병[편집]

1차 원정(1654)때는 놀랍게도 단 한명의 전사자도 없이 귀국했다. 당시 러시아 원정대는 쭉 전열을 늘어놓고 화망을 좁혀오는 방식으로 전투를 했는데 조선군은 그런거 없이 그냥 강가 엄폐물에 의존해 조준사격을 해댔고 청나라 군대가 옆치기를 하는 통에 결국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게 된다.

당시 불곰국의 수석식 머스킷은 조선 군대의 조총보다 훨씬 성능이 좋았지만 전체적인 숙련도에서 크게 부족했고 결정적으로 엄폐물을 활용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1차 원정이 끝나고 조선군이 귀국한 그해 겨울에, 청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요새로 숨어들어간 러시아 원정대가 본국으로부터 물자를 보급받고 전력을 회복할때까지 병신같이 구경만 하고 있었고 2번째 러시아의 침입을 받았을때 결국 조선군을 재소환하기에 이른다.

2차 파병[편집]

2차 원정(1658)때는 7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는데 이건 조선군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청나라 장수 하나가 애미뒤진 명령을 내려 발생한 일이다.

간신히 불싸지른 러시아 군함에 있을 보물이 아까웠던 청나라 장수 하나가, 갑자기 자기 상관의 명까지 어기고 군함의 불을 끄라는 명령을 내렸고 조선군은 이 명령에 따라 불을 끄러 다시 적진에 들어가야 했다. 그 덕에 숨어있던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7명이 죽었다.


정벌 이후[편집]

진짜 안좋은것은 이 과정에서 원정 비용 전부를 조선에서 대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조선은 쌀이 모자랐기에 별 수 없이 청나라로부터 군량을 사들였으나...태반이 썩어문드러진 쓰레기였다. 원래 이 정도쯤 되면 원정이고 뭐고 때려치고 나와야 했으나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뭐다? 속국이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썩은 쌀을 씹으며 싸워야 했다.

전리품 획득조차 마음대로가 아니라 조선군 원정대 총사령관이 직접 청나라 지휘관에게 찾아가 간청해서 겨우 러시아제 수석식 머스킷 하나 빼돌려왔다.

그후 조선군은 나름대로 수석식 머스킷을 복제해 써보려고 했으나, 기술도 없었고 가격만 비쌌으며 복제품도 성능이 좋지 못해 그만두었다.

다만 조선도 아주 병신은 아니라서 무기 발전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18c까지는 그런대로 기존 조총을 개량하고 또 개량해서 잘 써먹었다.<ref> 흔히 조선이 임진왜란 이후 개인화기의 정비가 서구에 뒤쳐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는 사실 편견이고 적어도 18c 까지 조선이 지속적으로 개량해 사용한 조총은 당시 서구의 머스킷과 성능에서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ref>

물론 당연스럽게도 효종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기고 돌아온 조선 원정군에게 포상 하나 내리지 않았다. 역시 인조 새끼의 후계자답다.

전쟁 나가서 개고생해도 포상 그딴 거 없는 건 헬조선 유구한 전통이니 그러려니 하자.

ㄴ 포수들이 나선정벌에 나서는 대가는 베 15필이었는데 당시 기근이 들고 장인들이 일년 동안 일하는 대가로 봄에 베 1필을 받는 것에 비하면 후한 편이어서 포수들이 서로 가겠다고 해서 선발에 어려움이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