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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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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갓라도

대종교 초대 교주이자 독립운동가 호는 홍암(弘巖)이다.

1863년 전라도 낙안군 어느 곳(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에서 출생. 나철의 출신지는 전남 보성군이지만, 1891년 식년문과에 급제할 당시 그의 거주지는 낙안(樂安 :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이었고, 1900년 나인영으로 개명할 당시에는 전북 전주에 살았다. 1891년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문신으로 근무한 전적이 있었다.(의외로 머리가 똑똑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 후 1904년에 강진의 오기호, 부안의 이기, 최전(崔顓) 등 호남 출신의 지식인들과 함께 비밀 결사인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였고, 을사조약 직전인 1905년 6월에는 오기호(吳基鎬), 이기(李沂), 홍필주(洪弼周) 등과 일본에 건너가 동양 평화를 위한 단식농성을 하는 등 일찍부터 민족주의적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는 이철, 강원상(康元相) 등을 포섭하여 오적암살단을 결성, 을사오적을 암살하려 했는데 실패했고 1907년 자수하여 지도(智島)에 10년 유형을 선고 받았으나, 1년 후 풀려남.

대종교 창시[편집]

이후 귀국하자마자 여러 신자들과 함께 한성부 재동에서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 뒤 단군교(훗날 대종교)를 공표하였다. 이 날이 바로 중광절(重光節)임. 또한 단군의 개국과 입도(立道)를 구분하여 서기전 2333년에 124년을 더하여 ‘천신강세기원(天神降世紀元)’이라고 했음. 1910년 8월에는 대종교라고 이름을 바꿈. 1년 뒤 대종교로 개칭하는 한편(신도수 2만여 명으로 증가), 북간도에 지사를 설치하였다. 한일 병합 조약 이후로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교단을 만주 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때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대거 뛰어들게 됨. 1914년에는 본사를 그 곳으로 옮겨 포교 영역을 만주 일대까지 넓힘.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여 탄압을 노골화하기 시작.

죽음[편집]

이후 1916년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한배검(단군)에게 제천의식을 올린 뒤 순명삼조(한배님께 제천하고, 대종교를 위하고, 한배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입산수도하다가 1916년 폐기법(閉氣法)으로 자결해버림... 그 후 대종교에서는 그가 운명한 날을 가경절(嘉慶節)이라 하여 4대경절(四大慶節)의 하나로 기념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