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북부군(미합중국)의 승리!

이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목화 농장에서 흐긴들 채찍질 이나 하면서 제퍼슨 데이비스 후장이나 빨던 남부연합의 띵복을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야무지게 빕니다ㅋㅋㅋㅋㅋ
<youtube width="" height="">zPRgo63pFtU</youtube>
밥먹을때 생각나는 후라이똥튀김~

남부연합은.... 어, 그거는 노예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반란이야. 그러니까 노예해방군이기 때문에 북부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

 

남부와 북부 둘다 제발 그만 싸워요. 어차피 둘다 ㅄ이잖아요!

 
— 이 모든걸 팝콘뜯으며 지켜보던 대영제국[1]

개요[편집]

1861년에서 1865년 사이 일어난 미국의 내전이다. 독립전쟁이래 지금까지 겪었던 천조국의 최대 위기, 가장 많은 미국인이 죽은 전쟁, 최후의 근대전이자 최초의 현대전등 온갖 타이틀이 붙었다.

경과[편집]

<youtube width="" height="">pDEK4gJBKW0</youtube>
판도 변화

노예제 반대측의 대표인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노예제 계속 할거라고 땡깡쓰는 인종차별주의 남부 레드넥들이 지랄하면서 연방 탈퇴선언을 하면서 모든게 시작되었다. 이새끼들은 지들끼리 대통령 뽑아 독립국가를 세우기로 도모했는데, 대가리 깨뜨리기 전에 돌아와 씨발년들아 라면서 분노한 북부연합에게 남부연합이 조까셈 ㅗ 하면서 포트 섬머에 선빵을 날리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TMI지만 천조국 원주민인 인디언들중 오클라호마로 쫓겨났던 문명화된 5부족들도 노예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형 노예들을 잃지 않기 위해 남부연합에 합류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북부가 우세했지만 어떻게든 주인님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남부 놈들의 저항으로 초반에 남부가 우세하게 돌아가며 전쟁이 길어진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노예주인 버지니아 주에 있었던 미 육군사관학교가 남부로 붙어버린 바람에 로버트 에드워드 리, 스톤월 잭슨 같은 미군의 네임드 인재들의 대부분이 남부로 편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남군은 비록 쪽수와 보급은 열악할지언정 사기는 매우 높았고 전쟁내내 교전비가 1:4 정도로 나올 만큼 잘싸웠다. 북군 역시 연방의 수호라는 부심을 가지고 싸웠으나 초기에 쪽수 채울라고 독일이나 아일랜드에서 온 이민자들을 대거 끌고오는 바람에 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장애 + 일부 사기캐를 빼면 어중이 떠중이 천지였던 간부라는 2가지 디버프 때문에 남군에게 탈탈 털렸다. 역시 어딜가나 군대의 주적은 간부.

중반 들어서 그나마 개념있는 율리시스 S. 그랜트가 북군 사령관으로서 전선 정리에 나섰고 쪽수와 물량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 장기전으로 들어가면서 남부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현대 미군의 쇼미더머니 치트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관하다.

갓명장이었던 리가 계속해서 그랜트의 북군을 쳐발랐으나 그때마다 그랜트는 바로바로 병력과 장비를 충원해가며 리의 군대에게 싸움을 걸었다. 이렇게 전술적 승리가 전략적 승리로 이어지지 못한건 남부 대통령 데이비드 제퍼슨이 워싱턴 D.C로의 진격을 거부하며 소극적으로 나섰던게 컸다. (근데 물량 면에서 북군이 씹넘사벽이라 닥돌해도 뚫는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서로 수도 인근에서 라인배틀을 하며 기회를 살피는 쪽으로 가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결국 앤터텀 전투, 그리고 게티즈버그 전투를 기점으로 남부의 공세적인 역량은 소멸되었다.

애초에 남부와 북부의 정치/경제/사회적 격차가 너무 컸다. 인구만 하더라도 북부가 2200만, 남부가 950만 정도(그 중 350만이 노예)이었다. 더군다나 목화 등의 플렌테이션 농업에 의존한 남부와 달리 북부는 고도의 산업화가 진전된 상태였고 철도화도 잘 되어 있어 경제적, 그리고 보급 측면에서도 엄청나게 유리했었다. 덤으로 해군력이 우월한 북부는 전쟁이 개시되지 남부 해역을 완전히 봉쇄했는데 이 덕에 목화 수출길이 막힌 남부로서는 유럽에서 무기를 사오거나 이민자를 충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 농장주들이 환금작물(주로 목화) 재배를 포기하지 않아서 농업국이던 남부연합은 말년에는 굶주림에 시달렸다!)

남부는 "목화가 왕이다(King Cotton)"라고 외치며(당시 전 세계 목화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 목화 수출을 무기로 프랑스, 특히 대영제국(당시 세계 최대의 면방직 산업국)을 끌어들여 인정을 받으려 했지만 정작 전쟁이 개시되자 북부의 해상봉쇄로 목화를 팔지 못해 영향력을 잃고 만다. 일단 목화를 팔고 나서야 큰소리를 칠 것 아닌가?[2] 그리고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을 결정타로 하여 영국과 프랑스는 남부연합을 포기하고 만다. 오히려 북부가 곡물 수출(King Corn)을 무기로 유럽에서 큰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결국 피해가 축적된 남군은 점점 약해져갔고 셔먼 장군이 남부연합 후방지역을 초토화 시키므로써 남부는 매드맥스화 되었다. 결국 보급도 끊기고 오로지 깡다구 하나 만으로 버티던 남군은 리장군이 그랜트에게 항복 하면서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사족으로 원래 리는 항복 안하고 죽을때 까지 싸우려 했으나 휘하 장교가 그에게 저 병사들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보급도 못 받으면서도 오로지 장군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조국이란 없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조국이었습니다! 라는 포풍간지 팩트폭력을 날리자 그제서야 현실을 깨달고 항복 협상을 허락했다.

결국 남부연합이 항복하고 다시 미국이 통일되며 노예제는 법적으로는 폐지된다. 남부 주들은 이때 개긴 죄로 미연방군이 주둔하면서 군정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이전쟁의 의의였던 흑인노예 해방은 서류상으로만 행해졌고 흑형들의 인권 처우는 향후 백 년 뒤까지도 시궁창이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 했던 흑형들 에게 애도를 표하자.

한편, '겨우' 내전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과 물자가 죽고 파괴되는 걸 본 유럽 사람들은 "어휴 좆밥 새기들 겨우 그렇게밖에 못 싸우냐"라고 낄낄댔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3]

평가[편집]

전쟁이 터진 계기는 노예제 찬반 대립이었고, 결국 나라 통일한 승자가 노예제 반대를 주장한 링컨이었기 때문에 어린이 위인전에서는 인권 수호를 위한 갓전쟁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전쟁중에 영국과 프랑스 등 팝콘먹던 유럽애들도, 북부가 인권 수호를 위해 싸운다는 말 듣고 어? 쟤네 말이 맞네? 하면서 북부를 편들게 된다.

그러나 노예제는 그냥 명분이자 계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인권 향상과 노예제 폐지에 중요한 역할이자 상징이 된 전쟁이란 건 맞는 말이다.

이원복이라는 수꼴 만화가에 의하면 북부애들이 그냥 남부애들 목화 탐내서 일어난 희대의 위선전쟁이라고 한다. 병-신.

결론만 말하면 인권수호를 위한 성전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일어났다는 건 헬무새 같은 모두까기 병신들이나 지껄이는 소리다.

미국인들 내부에서는 이 전쟁의 핵심을 연방주의와 반 연방주의의 대립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든 노예를 계속 부리고 싶었던 남부 애들은 연방이 마음에 안들면 좃까고 탈퇴할수 있다는 헌법을 근거로 걸고 넘어져서 탈퇴를 한거고, 나라 반쪽 되는건 두고 볼수 없었던 링컨이 이에 반대를 하는게 전쟁의 핵심 이슈였다.

여기서 노예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북부가 높은 평가를 받게된 이유는,

남부 애들한테 있어 주의 자주권 같은건 걍 핑계일 뿐이고 그냥 지네 노예제랑 백인 우월주의 지키면서 맘대로 살고 싶다는 게 핵심 이유여서 항복 안하고 계속 지랄댄거 였는데 북부는 사실 노예제보다 연방을 지키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남부랑 타협 안하고 끝까지 노예제는 안된다는 원칙은 고수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링컨이 이기고 남부 병신들은 좃됨

재평가?[편집]

가끔 자유지상주의자들이나 남부 출신들한테 선vs선의 전쟁이라 미화되던가, 그렇다고 전쟁을 할것까지는 없었는데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했다고 북부를 비난하는 세력이 있다.

심지어 남부는 주의 자주권을 사수하려한 것 뿐인데 북부가 나빴다고 링컨과 북부가 욕을 먹을때도 있다.

딱 듣기만 해도 존나 개병신같은 논리인게 솔직히 남부 레드넥 새끼들은 저런 말 하면 안된다.

아무리 노예를 위해서라지만 링컨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했다고 지랄대던데 애초에 저 병신들이 간과하는 부분은, 공식적인 선빵은 남부가 먼저 날렸다는 것.

노예제 안하게 하면 탈퇴할거라고 어린아이 떼쓰듯이 분단 사태 일으키고, 전쟁에선 선빵까지 먼저 날린 새끼들이 북부가 주도해서 전쟁이란 수단으로 지네를 억압했다고 주장하는 건 마치 탈레반과 빈라덴이 미국이 지네를 먼저 테러해서 우린 반격한거 뿐이라고 주장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이 새끼들이 탈퇴하기 전에 링컨이 "니들 노예제 폐지 안하면 다 조져 버릴 거얌ㅎㅎ"라고 말하며 본격적으로 뭔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링컨이 노예제 폐지론자인 건 사실이었지만 남부 이 새끼들은 링컨이 선거에서 당선되자 마자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즉 링컨이 공식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어떤 정책을 입안하거나 말한 것도 아닌데 먼제 설레발을 제대로 친 셈.

자주권 드립치는 자유 지상주의자들이 있는데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념 전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당시 남부에겐 자주권 사수 같은 고결한 명분 따위 없었고 그냥 우린 노예제와 백인 우월주의 계속 하고 살겠다 징징 이게 다였다. 미화도 정도껏 해야지 병~신들...

노예제가 전쟁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당시 남부는 정말 심각하게 노예제 사수를 위해서 전쟁까지 일으킬 정도로 확고한 극단주의자들이었다. 이걸 계속 물타기하고 연방주의 vs 자주주의로만 몰아가고 내셔널리즘의 희생자들인양 스스로 포장하는 것 보면 토가 나온다.

가만히 뒀으면 영국처럼 지네도 노예제 포기했을 거라고 어떤 개병신이 지껄이던데 역사에 IF는 없다.

그리고 영국은 애초에 원래 나라 버리고 새 나라 세워서라도 노예제 사수해야겠다고 지껄이는, 본인들같은 극단적인 병신들은 없었다. 지네 조상들은 반인권 백인 우월주의를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게 팩트인데 우리도 할수 있다고 지랄대는 꼴은 우습기만 하다.

이후에 계속 노예제 폐지 반대하면서 KKK단까지 조직한 병신들이 우리도 언젠가는 영국처럼 자연스레 노예제 폐지했을 거래ㅋㅋㅋㅋㅋㅋ

남부 후손 레드넥 개독들과 자유지상주의 연방제 반대자들 선동에 너무 깊게 귀기울이진 말자.

좌파적 관점으로 본 남북전쟁[편집]

미국의 남북전쟁, 당신이 몰랐던 것

미국 남북 전쟁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아마 미국인이라면 몇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을 것입니다.

북부군의 파란 전투복과 남부군의 회색 전투복. 실로와 게티스버그의 거대한 전투.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과 노예제의 종말. 남군에 대한 북군의 승리.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을 이어주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남북전쟁은 바로 미국의 가장 거대한 좌익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설명해 드리죠.

19세기초,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은 미국 남부 사회와 경제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농장주들은 총 수백만명의 흑인들을 물건처럼 다루었습니다. 교육도 시키지 않았고, 사생활을 조종했으며, 그들의 노동의 결과물을 가져갔습니다.

이 시스템으로 인한 막대한 부는 소수의 엘리트가 남부, 그리고 미국 전체의 정치를 쥐고 흔들 수 있도록 했죠. 게다가 이 제도는, 남북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서구권 전체에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1860년에 미국, 쿠바, 브라질에서 정점을 찍었죠.

오랫동안, 소수의 미국인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노예제를 끔찍한 것이라며 비판해 왔습니다. 이 급진론자들은 당시 사회로부터 따돌림당했고, 당시의 거대 양당으로부터도 무시당해 왔습니다.

하지만 1850년대, 노예제 찬성론자들이 서구권에 노예제를 퍼트리려고 하던 와중에, 그들의 반대자들이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미국의 양당 체제가 변화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공화당은, 노예제를 반대하고 그러한 종류의 예속을 "영원한 종말" 의 길로 몰아넣으면서* 북부의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링컨의 연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이 성과는 그들이 "노예에 의한 권력(Slave Power)" 이야말로 억압적인 지배계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노예 사용자들은 당시 인구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모든 부서에 그 권력을 뻗치고 있었죠. 그들은 노예제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를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노동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노예제 찬성자들과 반대자들의 싸움은 "신성한 왕의 권리" 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 간의 "영원한 투쟁" 의 한 부분이라고. "네가 열심히 일해서 만든 빵을 내가 먹는다." 고 말하는 그런 왕의 권리 말입니다. 노동자들의 — 흑인이든, 백인이든 — 자본가에 대한 저항입니다.

권력자들에 대한 이러한 포퓰리즘의 공격은 1860년에 링컨이 선거에서 이기도록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치적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노예 주인들은 여기에 거대한 위협을 느껴,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아메리카 연합국(남부연맹)이죠.

곧 발발한 내전에서, 무엇이 걸려 있는지는 분명했습니다. 북부군은 사람이 사람을 예속하는 것을 폐지하기 위해, 민주적인 다수를 위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는 노동을 위해 싸웠습니다. 남부군은 노예제의 존속과 지배계층들의 계속된 지배를 위해 싸웠고, 1862년에 링컨이 말했듯이, "정부 내에서 자본" —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 "의 힘을 노동의 가치보다 높게 두기 위해" 싸웠습니다.

노예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노예 해방 선언이 발표되기 전에도, 수십만 명의 노예들이 북부로 도망쳤습니다. 노예 폐지론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죠.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를 펼쳐, 흑인들이 군대에 참가하도록 설득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에는 20만명의 흑인 병사들과 수병들이 남부 반군들을 박살내기 위해 참가했죠.

북부 연합의 목표는 전세계 좌파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보수적인 귀족들과 자본가들은 남부 연맹을 지지했지만, 급진론자들과 노동조합들은 북부 연합을 지지했습니다. 1864년, 독일의 기자 칼 마르크스는 "미국의 반-노예제 전쟁" 이 "노동자 계급" 들에게 "권력을 가지게 해 주는 새로운 시대" 를 열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노예의 해방이란, 중산층을 위한 개혁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습니다. 그건 진정한 사회혁명이었습니다. 미국과 아이티에서만, 노예들이 주도했고, 노예 주인들에게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갑작스러운 해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혁명은 아직 미완의 혁명입니다. 전쟁 후, 전 노예들과 급진 공화당원들은 전 노예 주인들과 보수적인 사업가들에게 패배했습니다. W.E.B. 두 보이스는 이를 "자본의 반혁명운동" 이라고 일컬었죠. 짐 크로우 법의 탄압 아래, 노동 운동과 민주주의가 거둔 많은 승리들이 하나씩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퇴보했던 건 아닙니다. 미국의 노예제의 종말은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부의 흑인들이 학교와 교회를 짓고 짐 크로우 법에 대항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 미국의 민주주의가 거대하게 확장되었으며 현대적인 노동운동과 평등운동의 기반이 되 주기도 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좌익 혁명이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이기도 하죠. 하지만 좌파의 어떠한 투쟁이든 — 민주주의적인 다수결이든,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권리든, 의미 있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든 — 미국 남북전쟁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이상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과 부교수 매트 카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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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19세기 관련 문서 20세기
19th Century / 19世紀 / 1801년~1900년
국가
사건 세계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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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그러나 영국은 그 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독일과 마찬가지로 그보다 더한 ㅄ짓(참호전 케첩파티)을 하게 된다.
  2. 이런 배경때문에 천조국을 통해 목화를 수입할 수 없게된 영국은 부족한 목화생산량을 이집트(세계최고품질 목화생산지), 인도산 목화(목화 원산지)로 어째어째 커버치는데 성공했다.
  3. 사실 유럽새끼들은 상상도 못할 인구수와 자원이 뒷받침된 물량전이기 때문에 사상자가 더욱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남북전쟁의 양상은 미국이 지금의 천조국 소리를 들을 잠재력이 이미 이때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