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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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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시상분야 중 하나.

수상자는 평화주의와 정의를 실현한 사람만이 받을수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문학상 이상으로 줏대없고 주관적인 상이라고 매년마다 논란이 끊이지가 않는 상이다.

왜냐면 마틴 루터 킹, 슈바이쳐 처럼 정말 받을만한 사람이 받는 경우도 있지만

강대국들 똥꼬 빨아주려고, 혹은 이미지 메이킹 조금 잘하면 주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류를 위해 평화를 이룩했다'는 기준 자체가 너무나 불분명하고 애매하다,

그냥 노벨상위원회의 엿 장수 마음대로 라고 보는게 편할 듯.

평화를 이룩했어도 수단이 잘못됬으면 논란이 있을수 밖에 없고 포츠머스 조약 싸인하고 상받은 루즈벨트 처럼 강대국 지네 기준에 따라 짝짜꿍해서 다 짓밟고 아 이제 조용해졌네 소수의 약소국 피해가 있더라도 쨌든 평화여~ 이런 개논리도 우스운 게 사실이니까.

특이한 사례로 지미 카터이후 모든 미국 민주당 지도자들이 이 상을 받았다.

물론 오바마도 받았는데 문제는 오바마 까가 많든 빠가 많든을 떠나서 아직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한거도 아닌데 취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타이밍에 바로 줬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어안이 벙벙함. 심지어 당사자도 당황한 듯.

왜 그런지는 미국도 모르고 지구대통령 바마씨도 모르고 하여튼 노벨상슈상위원회만 알 듯.

바마형 본인은 실제로 한것도 별거 없고 평화주의자라 하기도 애매한데 그냥 흑인 차별 유리천장 붕괴 상징이라면서 준거다. 이번에 힐러리 당선됬으면 유리천장 격파라고 페미들이 밀어서 한 상 또 받으셨을듯.

더 특이한 사례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미워하는 사람들이 이 상을 받았다.

달라이 라마 14세도 중화인민공화국이 미워하고 류 샤오보도 중화인민공화국이 미워하는데 둘 다 이 상을 받았다. 너도 이 상을 받길 염원하면서 오성홍기를 소각해라.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받은 상이 이거다. 근데 별로 만족감을 못준다. 뭐 문학이나 과학이나 경제나 이런 거 좀 받았으면 좋겠다. 이거야.

김대중이 수상했다. 이유는 한국 민주쥬의에 힘쓰고 남북관계를 개선시켰다고 한다. 이런저런 잡음이 있지만 머중이는 남북관계가 주된 이유로 받은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투쟁으로 받은 것이라고 노벨상 관계자가 직접 밝혔다. 이 때문에 당시 딴나라당 일부 과격파가 불만투성이었다. 그 당시 자기들이 머중이 따라가서 수상 막겠다고 했는데 물론 다 코웃음. 함나라당이 배가 아팠는지 이번엔 김대중 수상 로비설을 제기했으나 노벨상 한국에서 나오는 로비로 흔들리만한 얼치기 상도 아니다.

사실 김대중은 민주화 공로로 수상한것이나 마찬가지다. 걍 이러저러 하다가 늦게받은거 뿐. 슨상뿐만 아니라 노짱이나 이니도 북한이랑 평화으쌰으쌰 했는데 아무것도 안나오거보면 답 나오지 않냐?

뭐, 평화주의자라고 하기 애매한 오바마나 전범새끼인 헨리 키신저도 수상하였기 때문에 머중이가 받았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지말자. 히틀러도 (2차대전 직전에)후보에 오를뻔한 적이 있는걸 보면 걍 전쟁할거 안하거나 만명죽일 전쟁 천명정도 선에서 끝내줘도 평화에 기여한게 되기 때문에 상 주는듯 하다.

그리고 반머중이들은 굳이 열폭울 하지 안해도 되는게 전땅크가 이 상 후보로 올라간 적이 있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자.

심지어 히틀러, 스탈린새끼도 후보에 올랐으며, 간디 니뮤는 받지도 못한게 노벨상이뮤ㅠㅠㅠ

덕분에 노벨상 중에선 취급이 제일 박하다.

전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노벨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를 갖춘....은 지랄이고 그냥 선정 기준이 쓰레기인 병신상이다. 노벨이 저승에서 울고 있을 듯 퓨ㅅ퓨

그래도 헬조선새끼들이 서로 퍼주고, 지들끼리 자화자찬 하는 각종 경제,문학, 정치상 보다는 훨씬 권위적이고, 좋은 혜자상인건 틀림없다.

처칠이 그렇게 받고 싶어했는데 못 받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너네가 노예처럼 일해 납부한 혈세로 북한 호흡기를 현질해 지금까지 무장괴뢰단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여 그 업적을 치하하기 위한 상.

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벨수상위원회에 따르면 "김대중은 민주화운동을 주업적으로 받은거다, 북한 퍼준거랑은 별개로 전부터 후보임ㅇㅇ" 라고 함.

It was not only Kim Dae-jung's policy of reconciliation with the neighboring state to the north that the Nobel Committee set store by. It also valued his long and courageous struggle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his own country, which had entailed long periods of imprisonment, house arrest, kidnapping and exile.

그러니까 전두환한테 잘개겻다고 노벨상 반은 준거임 ㅇㅋ?

북한에 퍼준 짓은 개같은 짓 맞음, 일베새끼들아 전두환 개새끼해봐, 도요타 다이쥬 슨상님 개새끼는 내가 해준다

그렇다고 김대중이 상 받은거로 욕먹을 이유는 없다. 오바마도 중동에 군대 빼서 결과적으론 is가 나왔으니 오바마도 까여야한다. 그냥 준 새끼들을 욕하자

오바마도 받았다. 부시를 내려오게 만들어서 받은 듯

히틀러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스탈린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두차례나

전두환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이 상은 그저 그때그때 세계 정치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내려준 상이다.

최근엔 그분의 추종자인 달빛기사단들이 올해 후보는 이분이라며 물고 빨고 박고 빼고 싸고 물고 빨고를 반복하는 중이다

ㄴ 결국엔 다른 사람이 받았더라

내가 잘 몰라서 그렇긴 한데, 노벨상 전체가 진짜 상 주기 전까지는 몇몇 인물 제외하곤 비밀로 한다 들었는데 후보 어쩌고가 의미가 있긴 한거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사고[편집]

히틀러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사건[편집]

1933년. 노벨평화상에 히틀러가 후보에 올랐었는데, 당연히 난리가 났다.

이것만 보면 노벨 재단이 병신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다 히틀러가 수작을 부려서 그런거다.

1933년 5월 17일에 히틀러가 전세계 모든 무장 국가들을 향해 평화연설이란 걸 했는데, 이게 뭐냐면 " 너희가 무기를 버리면 우리도 버리겠다. " 대략 이런 내용의 연설이었다.

문제는 김정은 돼지새끼가 한미 군사 훈련 포기하면 우리도 핵무기 개발 멈춤 이딴 식으로 말만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향후 계획까지 완전히 세웠다는거다. 그래서 노벨협회에서 와 이새끼 개념인이네?라고 생각해서 후보에 올린 거고.

물론 무기 버린 국가부터 침략하려는 계획으로 한 연설이지만, 향후 계획까지 세우니 신용이 안 갈수가 있나.

주요 수상자[편집]

몇몇정보는 꺼무위키에 없길래 여기다가 쓴다.

좀 자세하게 쓰인 설명은 꺼무위키에 없는 거다.

아직 전부 다 쓰진 않았음.

장 앙리 뒤낭(스위스), 프레데리크 파시(프랑스) (1901)[편집]

적십자 창설,국제평화연맹 창설

장 앙리 뒤낭은 스위스의 사업가로 제네바 자선 단체에서 여러 구호활동을 하기도했다.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인 솔페리노 전투를 목격하고 의료부대와 구호반이 열악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아 이로인해 부상자를 돌보는 초국가적인 구호단체 적십자를 창설했다.

하지만 창설맴버 중 하나인 모에니에와 갈등이 있었고, 사업의 파산 등으로 크게 고생했다.

적십자가 지금도 어느정도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초대수상자로서의 의미가 크다.

프레데리크 파시는 국제음성학협회의 유래가 되는 음성학교사협회를 창설한 프랑스 음성학자 폴 파시의 아들로 프랑스의 국회의원으로 평화주의자였고 영국의 사회운동가 W.R.크리머와 함께 국제의원단과 평화회의를 창설하고 국제평화연맹의 서기장이 되었다.

(1902)

(1903)

(1904)

베르타 폰 주트너(오스트리아) (1905)[편집]

반전 활동 전개와 반전 소설 집필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주요작은 '무기를 내려놓으라!'

국제 평화운동의 기수로 유명하다만 가문인 킨스키 집안은 대대로 장군을 배출한 유서깊은 귀족집안이였다.

톨스토이, 노벨같은 여러 사람과 교분을 맺었으며 노벨의 후원에 의해 국제적인 평화운동을 여러차례 전개하였다.

국제평화국 부의장, 평화애호가협회 창립 및 의장,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시민운동,양성 평등 운동, NGO운동의 선구자 등 멀고먼 옛날임에도 오늘날 페미니스트랑은 비교도 안되는 사람이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미국) (1906)[편집]

포츠머스 조약으로 인한 러일전쟁 종식

한국한테는 이해안되는 상이다. 러일전쟁 자체가 강대국들 파워게임때문이기도 하고

제국주의자 새끼가 왜받냐 하겠지만 저땐 저게 정상이였음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오늘날에도 미국인한테 링컨 워싱턴 다음급으로 인기많은 대통령이기에 그냥 그러려니하자

(1907)

(1908)

(1909)

(1910)

(1911)

(1912)

(1913)

(1914~1916)

적십자 (1917)[편집]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각종 분쟁지역 활동

단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회 수상자인 창립자 앙리 뒤낭 이후로 무려 3회나 수상했다

국경없는 의사회 등 여러 국제평화단체의 기본이 되었다.

(1918)

우드로 윌슨(미국) (1919)[편집]

국제연맹 창설

개좆도 의미없었다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1920

1921

1922

1923

1924

1925

1926

1927

1928

1929

1930

(1931)

수상자 없음(1932)[편집]

(1933)

(1934)

카를 폰 오시에츠키(독일) (1935)[편집]

나치의 인권유린을 알림

감옥에 있었기에 1년뒤에서야 수상을 받았다. 한편 이걸로 히틀러가 분노해서 독일인이 노벨상을 받는걸 금지시켰다.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아르헨티나) (1936)[편집]

차코 전쟁 중재,국제 노동 기구 설립 기여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다.

아르헨티나의 외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차코 전쟁을 중재하는데 기여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를 라틴아메리카가 스스로 해결하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평화를 위해 '불가침 및 조정에 의한 반전 조약'을 채결했다.

미국이 '아메리카 일에는 유럽이 개입하지 마라'라는 먼로주의로 라틴아메리카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런 미국의 개입에 외교적인 노력으로 대항한 점이 크게 평가받는다.

한편 '평화를 위한 미주간 회의' 주재때문에 수상식에 불참하고 전 수상자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가 이때 1년전에 받아야할 메달을 받음으로서 당시엔 별로 주목을 못받았다.

(1937)

(1938)

수상자 없음(1939~1943)[편집]

적십자(1944)[편집]

위에 썼으니 설명 생략.

(1945)

(1946)

(1947)

마하트마 간디(인도) (1948)

수상 전에 암살당함으로서 수상자가 없게되었다.

(1949)

(1950)

(1951)

알베르트 슈바이처(프랑스) (1952)[편집]

의료 구호 활동

밀림의 성자,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자 아무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고한다. 기부금을 횡령하고 환자를 막다루고 병원을 일부러 허름하게 지었다고 까는사람도있지만 이건 나중에 위인취급받으니까 주장하는 개소리다.

상금은 역시나 아프리카에 나환자촌을 만들고, 병원 설립의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조지 C. 마셜(미국) (1953)[편집]

전후 서유럽 복구

흔히 말하는 마셜 플랜. 돈을 진짜 많이쓴게 흠이다만 자유주의 진영의 통상, 무역시스템을 보호하고 소련의 대서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 진영인 노벨상 심사위원들 입장에선 노벨상을 받아야 당연한 수순

(1954)

수상자 없음 (1955, 1956)[편집]

다그 함마르셸드(스웨덴) (1961)[편집]

국제연합 사무총장, 중동의 평화를 위해 노력

역대 사무총장중 가장 유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시대가 냉전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유엔의 활동은 조용하고 소극적인 이미지였는데 상당히 적극적이고 리더십있게 활동을 했으며, 여러 외교적인 문제 현장에 직접 방문하고 최초로 유엔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도 하였다.

주요업적인 중동 평화는 수에즈 전쟁을 말하는건데,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겠다고 하니까 이집트 대통령이 별로 마음에 안들었고, 더이상 식민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수에즈운하만은 식민지로 삼고싶어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잘 꼬셔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쳐발라버리게 해버렸고 소련이 분노해 핵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하던 상황이였다.

한편 안보리에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 눈치를 보느라 어쩔줄 몰라하던 상황이였느데 이때 다그 함마르셸드가 빠른 대처로 영,프 연합군과 이스라엘은 결국 수에즈 운하를 철수하게된다.

결과적으로 수에즈운하는 이집트로 국유화되었음 꼬시다 씹새끼들

받기전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간디와 달리 규정이 변경되서 수상을 받았다.

(1962)

적십자(1963)[편집]

생략.

마틴 루터 킹 주니어(미국) (1964)[편집]

흑인 민권 운동

민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흑인과 백인의 공존과 모든 인류의 평등을 주장해온 인류애적 가치를 부르짖은 사람이다.

사생활이 살짝 문란했다만 위대한 운동가라는 업적이 까일 여지는 없다.

국제연합아동기금 (1965)[편집]

아동구호활동

오늘날 좀 까이는 유니세프지만 아무튼 의도는 좋았지않냐

수상을 받을 때 대표는 헨리 라부아스 주니어로 마리 퀴리 둘째 사위이다.

수상자 없음 (1966, 1967)[편집]

(1968)

(1969)

노먼 어니스트 볼로그(미국) (1970)[편집]

녹색혁명 등으로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

미국의 농학자, 식물병리학자

식물병리학과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멕시코에서 수확량은 증가시키고 병해에 강한 고수확 작물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인도,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에 재배법을 가르쳤다.

성과는 꽤나 뛰어나 파키스탄과 인도의 밀 생산량은 2배가 되었고, 멕시코는 밀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되었고 진짜로 먹을 밀이 없어서 굶는 사람들이 상당수 줄어드는데 기여한다.

단순히 고수확작물 GMO 만든거가지고 받았다고 까는사람도 있지만 저땐 나름 최선이였다.

빌리 브란트(서독) (1971)[편집]

동유럽과 화해 분위기 조성

민주주의의 실현과 독일의 통일에 앞장선 총리, 폴란드 홀로코스트 추념비에 무릎을 꿇은 것으로 유명하다.

동독은 물론 공산권국가와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독일 영토로 인정받은 폴란드 점령지를 폴란드에게 양도하는등의 업적이 있다.

헨리 키신저(미국) 레득토(북베트남) (1973)[편집]

베트남 전쟁의 종식에 기여

헨리 키신저는 가장 영향력있었던 미국 국무장관중 하나 베트남 폭격에 죄없는 라오스 캄보디아도 같이 폭격해버리고, 아르헨티나의 쿠데타 묵인, 칠레의 독재정권 지원으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등 온갖 더러운일을 다한 전범이라 해도 할만없는 놈이지만 지가 수십만명 죽인전쟁에 수십만명 덜죽였다고 받았다.

한편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부서기인 레득토는 아직 평화가 안왔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ㄴ 참고로 5.16 때 미국이 개입하려다가 이 새끼 때문에 박통이 반신반인이 되었다.

(1974)

(1975)

(1976)

(1977)

(1978)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인도) (1979)[편집]

사랑의 선교회 설립, 빈민 구호활동

그 유명한 테레사 수녀, 시사와 정치물정에 어두웠고 약간 원칙주의적이긴 했다만 인류애를 위해 헌신한 점을 비판할순없다.

(1980)

(1981)

(1982)

레흐 바웽사(폴란드) (1983)[편집]

노동운동 전개 등 동유럽 체제의 변화의 가능성에 기여

폴란드의 노무현, 노동자의 대표 겸 수상받았다.

노동자 출신으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자율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해서 13년간 노동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대통령으로 재임해선 좀 못했다만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건 인정받는다.

데즈먼드 투투(남아공) (1984)[편집]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비폭력운동 전개

만델라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큰 기여를 하였다.

흑인들에게 고급 교육을 가르칠수 있었던 유능한 교사였지만 아파르트헤이트때문에 박탈되서 빡쳐서 성직자가 되었다.

이후 세계 교회 협의회 부의장을 맡으며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남아공 대통령에게 흑인들에게 백인 언어인 아프리칸스어 교육을 강요하면 일날거라고 경고했다만 씹었고, 결국 경찰의 발포로 흑인 소년이 사망하여 대대적인 흑인폭동이 일어나 수천명이 사망하였고, 마틴 루터 킹처럼 흑인과 백인의 평화와 공존을 주장하였다.

이런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받고 이 노벨상 수상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하는데 기여했으니 노벨평화상의 순기능의 좋은 예시

(1985)

엘리 비젤(미국) (1986)[편집]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한 노력의 공로

기자이자 작가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주요 작품은 수용소 시절을 바탕으로한 소설 '나이트'로 이걸로 노벨문학상은 못탔다만 노벨평화상은 탔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유대인이라 나찌들한테 잡혀가서 자기빼고 가족들이 죽어버렸지만 본인은 어찌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로 건너가 기자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외에 활동은 구호활동, 핵전쟁 방지운동, 미국 홀로코스트 대통령위원회 위원장 재직 등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코스타리카) (1987)[편집]

중앙아메리카의 전쟁 중재

당시 코스타리카의 대통령으로 20년 뒤에 선거에 나가 당선되서 대통령을 한 번 더했다.

사회주의자였지만 경제정책으로는 신자유주의였기에 신자유주의자로 보기도한다. 그래서 바나나나 팔던 코스타리카가 관광산업으로 눈돌리게하는데 기여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코스타리카는 ㅆㅎㅌㅊ인 중앙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ㅍㅌㅊ인 국가고 군대가 없는 국가인데(공공부대라 부르는 경찰취급의 치안부대는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아리아스 대통령할때도 개막장이였다. 예를들자면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축구하다가 졌다고 전쟁나고, 니카라과는 쏘오련의 지원을 받은 산디니스타 정권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콘트라 반군의 시빌워가 벌어졌고, 온두라스는 이 콘트라 반군의 주요 거점이였고, 엘살바도르는 니카라과의 영향으로 결성된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이라는 게릴라가 정부군과 내전을 하고, 과테말라는 이런 시빌워가 1960년부터 96년까지 36년동안 벌어졌다. 그나마 정상인 파나마도 군사독재체제였다. 애초에 국경분쟁으로 서로간에 충돌이 잦았는데 농민들이고 반군이고 국경구분을 잘 못해서 막 넘어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아리아스가 중앙아메리카의 통합을 위해 중앙 아메리카 의회를 조직하고 에스키플러스 제 2협정을 맺어 중앙아메리카의 평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과테말라를 제외한 나라들의 내전이 끝났으며, 과테말라도 어느정도 완화되어 96년에서야 내전을 끝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 특성상 특혜나 성추문사건같이 인성적으로 하자가 없는건 아니다. 뭐 업적으로는 받을만한듯. 키신저같은놈도 받는데

(1988)

제14대 달라이 라마(티베트) (1989)[편집]

티베트 독립운동

80이 넘은 고령인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눈치를 어느정도 보고있는 상태이다.

FREE TIBET

미하일 고르바초프(소련) (1990)[편집]

냉전 종식

삽질한걸로 칭찬받는사람. 서방에선 평화와 민주주의의 사도로 평가가 높지만 결론적으론 소련의 몰락을 가져왔다.

근데 평화로만 따지면 얘 덕분에 냉전도 끝나고 동유럽 국가들도 자유를 얻었으니 평화상 받을만한 듯.

아웅산수찌(미얀마) (1991)[편집]

반독재 인권 운동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장군의 딸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외무부 장관 겸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실질적인 대통령이다.

로힝야족의 탄압과 학살을 방관하고 다소 독단적인 행보로 어느정도 지지는 떨어진 상태다. 하지만 아웅산수치의 로힝야 탄압이 본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 미얀마 군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미지가 다시 올라갔다.

(1992)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남아공) (1993)[편집]

인종 차별 종식 및 민주주의에 기여

만델라는 모두 잘 아니 넘어가고

데 클레르크는 만델라, 투투같은 흑인과의 협력과 협상을 지속하여 아프리카민족회의를 합법화, 만델라의 석방등 조치와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선언하였고 이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어 부통령으로 강등되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가졌다.

데즈먼드 투투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에 남아공이 인종차별오지는 병신국가로 유명해져서 경제적 고립상태로 만들어서 조지려 하고 있었는데 데 클레르크가 이런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4)

(1995)

(1996)

(1997)

(1998)

국경 없는 의사회 (1999)[편집]

인종,종교,이념을 뛰어넘은 인도주의의 실천

적십자만으론 구호활동에 한계가 있었기에 결성됬으며 군대도 잘 안가는 내전현장에 달려가 구호활동을 했다.

미군들도 포기하고 나간 소말리아에 천명이 넘는 현장 스탭이 상주한 적도 있다. 지금은 너무 많이 죽어서 어쩔 수 없이 다 뺐다만.

김대중(대한민국) (2000)[편집]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 화해에 대한 공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투옥 및 망명을 거친 행적으로 살펴보면 아시아의 만델라 이미지가 상당히 강했던것이 수상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독립할때 인도네시아 잔류파와 인도네시아인들이 동티모르를 학살한 사건이 있는데 APEC에 건의하여 적극적으로 막고 평화유지군인 상록수부대를 파견하는 등 아시아 전체로 봐도 여러 기여가 있었다.

북한에 쌀퍼준 걸로 받는다며 욕하는데 사실 그런 건 아님.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여러번 후보에 올랐던 사람임.

(2001)

(2002)

(2003)

(2004)

(2005)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 (2006)[편집]

마이크로크레디트 은행 창시

예나 지금이나 방글라데시는 상당수가 빈곤층인 못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유누스는 미국 유학까지 갔다온 얼마안되는 방글라데시의 부유층 출신이였다. 이후 귀국하여 경제학 교수가 되었으나 대다수가 빈민인 방글라데시에서 경제학 강의같은건 별로 의미가 없었다. 처음엔 빈민들에게 자기 사비를 빌려주다가 나중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빈곤층을 위한 대출을 시작했고 성공하여 그라민 은행을 설립한다.

그라민 은행은 빈곤층에게 돈을 빌려주고 일자리 알선, 사업 주선 등의 도움을 주는 은행으로 덕분에 한국의 '사회연대은행'등 여러 은행이 세계적으로 늘어났다.

빈곤퇴치를 위한 업적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고금리 대출과 횡령으로 총재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라민 은행 자체도 방글라데시의 환경을 잘 고려안했던 거품이었다.

앨 고어(미국),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2007)[편집]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 조치 마련

부통령에 재직했고,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뒤, 2006년에 출판하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불편한 진실'로 유명하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받은 김에 같이 끼워받은 느낌이 좀 있다만.

(2008)

버락 오바마(미국) (2009)[편집]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 강화를 위한 노력

대통령되지 얼마 안되서 별 업적도 없었는데 수상을 받았다. 업적은 이라크전쟁 철수와 전략무기감축협정 갱신

사실상 최초의 미국 흑인대통령이라는 점과 부시에 대한 반감때문에 받은 상징적인 상일듯

류샤오보(중국) (2010)[편집]

인권 신장을 위한 투쟁

안락한 삶을 버리고 뻔히 고난을 겯을걸 알면서도 중국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했으며 중국이 류샤오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전부 참여를 금지시켜서 빈 의자에다가 메달을 수여했다.

이 분이 노벨평화상을 받을때 다들 기립박수를 3분동안 쳐댔는데 짱깨들만 몰라서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만 노벨상 수상자라 내걸고 류샤오보는 모르는 척 했다. 류샤오보가 죽었을 때 RIP이라고 메시지 올리는 것마저 금지했다.

(2011)

유럽 연합 (2012)[편집]

유럽의 화합에 기여

저땐 브렉시트 날줄 몰랐겠지

(2013)

말랄라 유사프자이(파키스탄),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인도) (2014)[편집]

여성,아동 권리에 대한 투쟁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탈레반의 살해협박을 받았고 실제로 총에 맞아 거의 죽을뻔했지만 억압받는 파키스탄의 여성인권에 대한 글을 집필하였다. 그 때문에 민주주의랑 거리가먼 파키스탄,중국에서는 까인다.

카일라시 사티아르티는 말랄라에 밀려 언론의 주목도는 약간 나가리지만 15살부터 불가촉천민의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후 현실을 바꾸기위해선 교육이 중요함을 깨닫고 안락한 생활과 교수직도 저버리고 구호단체 '바치판 바차오 안돌란'을 설립해 어린이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여 약 8만3천명의 아이들을 구하였다.

한편 서로 사이가 안좋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이 나란히 수상한 점도 재밌는 점

(2015)

(2016)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2017)[편집]

핵무기 금지를 위한 획기적인 노력에 대한 공로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2018)[편집]

전쟁과 무력 분쟁의 무기인 성폭력 사용을 끝내려는 노력에 대한 공로

2018년 10월에 노벨 평화상 수상이 임박하자 문재앙과 북쪽 돼지 황제가 공동 수상할거라고 달빛기사단들은 땡문뉴스를 활용하여 행복회로를 풀가동 했으나, 막상 까보니 자국의 내전으로 인해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치료하면서 헌신한 드니 무퀘게와 다에시 씹새끼들의 피정복지역 여성들을 성노예로 전락시키는 등 다에시 씹새끼들의 성적착취현장을 국제 사회에 고발한 야지디족 여성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가 수상을 하자 달빛기사단들은 데꿀멍하였다.

아비 아머드 알리(2019)[편집]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전쟁을 끝냄

2018년 12월 25일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의 전쟁을 끝냄으로써 받았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에티오피아 내전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세계식량계획(2020)[편집]

기아 퇴치에 크게 기여함

1961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기아 퇴치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는데, 아가리로만 하고 성과는 없는 다른 캠페인들과 다르게 실제 기아 비율을 크게 낮춘 성과가 인정되어 받았다.

드미트리 무라토프(2021)[편집]

러시아에서 억압받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함

1993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언론사 노바야 가제타의 창립멤버. 러시아의 인권 탄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낸 업적을 인정받았다.

알레스 발랴츠키 메모리알 시민자유센터(2022)[편집]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반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보호한 것으로 수상했다.

이분들이 노벨상을 수상받을 것이라고 공지된 10월 7일푸짜르새끼의 생일이다.

근황[편집]

현재 이상 1순위로 재앙&핵돼지에다 2순위는 핵돼지&트럼프고 3순위가 트럼프다 애미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북괴한테 돈 퍼줬는데 이게 평화냐 시발새끼들아

ㄴ 노벨평화상 문재앙, 핵돼지, 도람푸 수상설은 기레기들의 설레발이고 애초에 올해 평화상은 1-2월에 후보자 등록 마감이라

전혀 관계없음, 근데 재밌게도 일베랑 문베들은 이러한 기레기들이 던진 떡밥에 지들끼리 쉐도우 복싱 대회를 열고 있음 ㅋㅋㅋㅋㅋ

근데 내년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후보에 저 3명중 하나라도 오르면 그때는 큰 논란이 일어날듯

그래도 올해는 콩고 내전 당시 성폭행 당한 여성들을 치료한 산부인과 원장인 드니 무퀘게와 다에시 씹새끼들의 성폭행을 무기로 쓰는 것을 전세계에 폭로한 나디아 무라드가 공동 수상함으로서 문베들의 행복회로와 일베들의 절망회로는 가동을 멈췄지만, ㄹㅇ 위에 상술했듯이 문재앙과 핵돼지 황제가 후보군에 오르면 ㄹㅇ 논란 일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