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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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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잘하고 문화도 잘하고! 차도 잘 만들고! 배도 잘 만들고! 모다는 게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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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 친일문인 12선
성명 일본식씨명 친일문학편수 교과서에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대표 저작
이인직 혈의 누(1906), 은세계(1908)
이광수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103~108편 무정(1917), 2.8 독립선언문(1919)
주요한 마쓰무라 고이치(松村宏一) 43편 불노리(1919)
김동환 시라야마 세이주(白山靑樹) 23편 국경의 밤(1925)
채만식 14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 탁류(1937), 태평천하(1938), 치숙(1938), 민족의 죄인(1948)
노천명 14편 사슴(1938)
유치진 12편 토막(1931), 소(1934)
모윤숙 12편 동방의 여인들(1942), 호산나 소남도(1942), 내 어머니 한 말씀에(1943),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1987)
서정주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 11편 자화상(1941)
김동인 히가시 후미히토(東文仁) 9편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소나타(1930), 붉은산(1933), 운현궁의 봄(1933), 광화사(1935)
유진오 8편
최남선 7편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 기미 독립 선언서 초안(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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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 강림한 원인이기도 하며, 아직까지도 금수저의 대부분을 대대손손 차지하고 이쓰무니다.
다행히 이들도 죽창과 발터에는 한방이무니다. 죽창...죽창을 가져와라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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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 죄다 쓰까묵은 적폐 쓰레기들!

, 곡학아세, 환빠, 성추행, 메갈, , 좌좀, 일베, 트인낭, 꼬추자랑, 페미나치, 친중꼴통, 성범죄자까지
히야! 없는 게 없네!

이게 씨발 조폭 새끼들이지 어딜봐서 글쟁이 면상이냐, 한국문학 살려내라, 씨발놈들아!
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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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북괴한테 한 짓을 보면 총살이라도 당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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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인성 문제 있어?

ㄴ 소심한데다 강약약강이 심해서 만만한 사람 앞에서는 온갖 개지랄 다 떨고 소갈딱지는 밴댕이만해서 친구가 많이 없었다고 한다.

1911년 9월 1일 ~ 1957년 6월 16일

한국의 시인, 작가, 언론인이자 여류 친일파+종북+메갈. 권력 앞에서 모가지가 잘 휘어 기쁜 짐승.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의 지주집안에서 태어났다. 6살때 중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는데, 이때 이름을 노기선에서 노천명으로 바꿨다.

이화여대를 나온 뒤에는 1934년부터 4년동안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일을 했다. 1938년부터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가 되었고 페미니스트로서 1941년까지 조선일보가 발행하던 페미니즘 잡지 <여성>지의 편집장을 맡았다.[1] 1943년에 매일신보(나중에 서울신문으로 개명) 기자가 되어 1946년까지 서울신문 기자로 있었다.

1932년 <밤의 찬미>로 시인이 된 뒤로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라는 말도 이년이 쓴 시인 <사슴>에서 나온 말. 1940년까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시를 썼으나 태평양 전쟁기에는 악명높은 친일시인이 되었다. 이썅년이 좆본 사까시해주면서 쓴 시중에는 <군신송>과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전쟁시기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했을때는 대놓고 종북짓을 했다. 북괴군을 피해 숨었던 우파 예술인들이 어디있는지 북괴군에게 까발리고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했을시기 진행했던 선전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당연히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에 참교육을 당해서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51년 4월 4일 풀려났다.[2] 근데 지도 종북짓한게 쪽팔렸는지 종북얘기나오면 화내고 오랜 친구라도 절교하고 그랬단다. 첨부터 그러지 말든가 ㅉㅉㅉ

풀려난 뒤에 서촌 으리으리한 한옥에서 잘먹고 잘살다 1957년 뇌빈혈과 백혈병으로 뒤졌다.

  1. 근데 저당시엔 여성인권이 리얼 개병신이라 정신병자가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도 많이 모였으니 정신병자로 단정하긴 좀 뭣한 것이 있다만 김활란의 경우를 보면.....시발
  2. 풀려나기전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애국지사 김광섭슨상님께 풀어달라고 협박하는 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