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메네스 왕조 샤한샤 목록 아르게아스
이집트 제27왕조27 · 제31왕조31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케메네스
(기원전 8세기 후반~기원전 675년)
테이스페스
(기원전 675년~기원전 640년)
키루스 1세
(기원전 640년~기원전 580년)
캄비세스 1세
(기원전 580년~기원전 559년)
제5대 제6대 비정통 제7대
키루스 2세
(기원전 559년~기원전 530년)
캄비세스 2세27
(기원전 530년~기원전 522년)
바르디야27
(기원전 522년)
다리우스 1세27
(기원전 522년~기원전 486년)
제8대 제9대 제10대 제11대
크세르크세스 1세27
(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27
(기원전 465년~기원전 424년)
크세르크세스 2세27
(기원전 424년)
소그디아누스27
(기원전 424년~기원전 423년)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다리우스 2세27
(기원전 423년~기원전 404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기원전 404년~기원전 358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31
(기원전 358년~기원전 338년)
아르세스31
(기원전 338년~기원전 336년)
제16대 비정통
다리우스 3세31
(기원전 336년~기원전 330년)
베소스
(기원전 330년~기원전 329년)
제30왕조 이집트 제31왕조 파라오 목록 아르게아스
아케메네스 왕조
초대 제2대 반란 제3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기원전 343년~기원전 338년)
아르세스
(기원전 338년~기원전 336년)
카바쉬
(기원전 338년~기원전 335년)
다리우스 3세
(기원전 336년~기원전 332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샤한샤
아르세스 다리우스 3세 베소스
이집트 제31왕조의 파라오
아르세스 다리우스 3세 알렉산드로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파라오
재위기간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 샤한샤)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32년 (이집트 제31왕조 파라오)

개요[편집]

기원전 380년 ~ 기원전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16대 샤한샤이자 이집트 제3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찬탈자인 베소스를 제외한다면 아케메네스 왕조 마지막 샤한샤이다.

치세[편집]

즉위 이전[편집]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조카였던 아르사메스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원래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군인이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도 뛰어난 군인으로 등장한다.

바고아스와의 싸움[편집]

기원전 336년, 바고아스라는 환관이 자기가 앉혀놓은 아르세스가 이용 가치가 없어지자 바로 쳐내고, 다리우스 3세를 데려와 샤로 앉혔다. 왕실 일도 모르는 멍청한 놈을 한 놈 앉혔다고 쉽게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다리우스 3세는 빡통이 아니었다. 아르세스도 바고아스를 쳐내려다가 실패해서 독살당한 바가 있었고, 다리우스 3세 본인도 바고아스가 언젠가 본인이 필요없어지면 독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고아스를 위해 스위-트한 함정을 준비한다.

다리우스는 바고아스 꺼져를 시전하며 직접 통치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래서 바고아스는 '이 허수아비 새끼가 감히 깝쳐?'라며 다리우스를 연회에 불러 독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이미 바고아스가 덫을 놓을 것을 다 한 수 내다보며 알고 있었고, 오히려 그 덫 위에 다리우스 본인이 만든 덫을 하나 더 만들었다. 바로 연회장에 군인들을 매복시킨 것이다.

바고아스가 다리우스에게 독이 담긴 술을 권하자마자, 다리우스는 군인들을 호출해 바로 바고아스를 잡았다. 그리고 바고아스의 아가리를 벌려서 독주를 먹여서 죽였다.

vs 알렉산드로스 3세[편집]

기원전 334년, 전쟁 시작[편집]

한편 같은 해인 기원전 336년, 서쪽의 떠오르는 해였던 마케도니아 왕국에서는 그리스를 통일한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하고,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3세가 즉위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2년 동안 그리스의 내분을 정리한 다음, 기원전 334년 그리스 전체의 국력을 모아서 페르시아를 쳐들어갔다. 페르시아군은 멤논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배신 전적 때문에 유능한 멤논의 의견을 묵살했고, 5월에 벌어진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렇게 아나톨리아 반도 일대가 한순간에 마케도니아에게 넘어갔고, 결국 멤논을 사령관으로 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멤논은 얼마 안 가 죽었다.

기원전 333년 이소스 전투에서의 패배[편집]

이듬해인 기원전 333년 11월, 알렉산더가 이끄는 군대는 페르시아를 더더욱 압박했다. 알렉산더와 다리우스는 시리아의 이소스에서 대치했고, 이 자리에서 이소스 전투가 벌어졌다.

수는 페르시아군이 더 많았고 페르시아군은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전술을 구사했으나, 알렉산더의 뛰어난 전략으로 이소스 전투는 알렉산더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 다리우스의 가족들이 알렉산더군에게 붙잡혔다. 이제 페르시아의 멸망은 시간 문제가 되었다.

기원전 332년, 이집트 상실[편집]

기원전 332년에는 이집트를 빼앗겼다. 당시 이집트는 페르시아에 대한 배신의 대가로 이집트 제31왕조 치하에서 11년간의 폭정을 겪고 있었는데,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새로운 주인이 되면서 이집트는 해방되었다. 이후 파라오의 자리도 다리우스 3세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로 넘어갔다.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의 패배와 제국 붕괴[편집]

기원전 331년, 제국의 핵심 거점인 메소포타미아로 들어온 알렉산더는 제국을 정복하기 직전까지 왔다. 다리우스 3세도 알렉산더를 막기 위해 영혼을 끌어모아 수만에서 최대 십몇만에 달하는 군인들을 소집했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와 알렉산더는 맞붙었다. 이때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 부대가 페르시아군을 격파했고 알렉산더가 이끄는 군대가 다리우스를 발견하고 추격해오자 다리우스는 알렉산더를 피해 달아났다. 샤한샤가 도주하자 많은 페르시아 군인들도 빤쓰런을 시전했다.

기원전 330년, 부하의 배신으로 사망[편집]

빤쓰런한 샤라는 불명예를 얻은 그는 제국 동쪽의 박트리아까지 도망갔으나, 그곳 총독이었던 베소스에게 붙잡혀 왕위를 넘길 것을 강요받았다. 다리우스는 베수스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베수스에게 살해당했다.

사실상 이 시기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멸망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며, 다리우스를 죽인 베소스는 스스로 샤를 선포했으나 얼마 안 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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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기원전 4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