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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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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檀君朝鮮 / Dangunjoseon
기본 정보
수도 아사달
국가 조선
대륙 동북아시아
추가 정보
언어 고대 한국어
한국사의 시대구분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 주호 · 우산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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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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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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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자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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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선사시대 단군조선 위만조선


2333년 반만년 드립은 어디까지나 신화 상의 연도로, 고조선의 기원은 기원전 20세기 정도로 예상된다.

ㄴ현존하는 역사책들이 고조선건국시기를 모두 기원전2xxx년 이라고 기록하거든?

ㄴ 그거 중국책보고 유추한거지 그나마도 유교뽕때문에 오인

기원전 20세기면 그때 막 청동기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원시신앙 생기고 계급 생기고 이지랄할려면 최고 기원전 10세기

이하는 단군신화의 한 부분으로, 어디까지나 신화이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자.

한자짬뽕되있는거보니 100% 퍼왔는데, 출처 없으면 굉장히 골치아파질수 있어보인다.

고려시대 신화인 단군과 실존했던 국가 고조선을 쓰까묵는 못된 버릇 좀 고쳐야 한다. 호랑이 부족이니 곰 부족이니 하는 소리는 대체 누가 무슨 근거로 떠들어댄 거야?

신화[편집]

동방(東方)에는 최초에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國人)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이었다.

처음에는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으로 도읍을 옮겼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서기 전 1317) 을미(乙未)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다.

[신등은 살펴보건대,] 고기(古紀)에 이르기를, ‘단군이 요(堯)와 더불어 무진년(戊辰年)에 함께 즉위하여,

우(虞)나라와 하(夏)나라를 지나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乙未)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1천 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살펴보건대, 요 임금이 즉위한 것은 상원 갑자(上元甲子)인 갑진년에 있었는데,

단군의 즉위가 그 후 25년 무진년에 있었다면 ‘요와 더불어 함께 즉위하였다’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당(唐)나라와 우나라로부터 하나라와 상나라에 이르러서는 세상 인정이 점점 야박해져서 인군(人君)이 나라를 오래도록 향유한 자가 5,60년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단군만이 홀로 1천 48년의 수명으로 한 나라를 향유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이 꾸며낸 것임을 알겠습니다.

전배(前輩)가 이르기를, ‘그 1천 48년이라고 한 것은 곧 단씨(檀氏)가 대(代)로 전하여 지나온 햇수이고, 단군의 수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근세(近世)에 권근(權近)이 천정(天庭, 명나라)에 들어가 뵈니,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권근에게 단군을 시제(詩題)로 하여 시(詩)를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권근의 시에 이르기를, ‘세대(世代)를 전한 것은 얼마인지 모르나 역년(歷年)은 일찍이 천년(千年)을 지났다.

'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라고 하니, 황제가 보고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논에서도 권근의 말한 것이 옳다고 하였으므로, 우선 보존하여 뒷날의 참고에 대비하도록 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위서(魏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 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 불렀는데 요(堯)와 같은 때였다.

라고 하지만 정작 위서(魏書)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사실 그위서가 정사 삼국지의 일부인 위서가 아닌 다른 역사책인 위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으나마 위략이 남아있었다면 어째어째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위략도 주석만 남아있는 수준이라서...

역사[편집]

개요[편집]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군장국가로서, 동국통감에 따르면, B.C 2333에 건국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단군왕검은 한 사람이 아닌 직책을 의미하는데,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며, 제정일치사회임을 보여준다.

요동성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으며, 비파형 동검, 북방식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 거친무늬 거울 중 2개 이상이 출토된 지역을 고조선의 세력범위로 보고 있다.

단군 신화를 통해 고조선은 제정일치사회이자 농경 사회였으며, 홍익인간 사상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사유 재산을 통한 계급 형성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수립하였으며 환웅 부족과 곰 부족의 연합을 통해 토테미즘을 기반으로 한 선민 사상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반고의 "한서-지리지"에는 고조선의 8조법 중 3개 조항만이 남아 전달되고 있는데

  •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
  • 상해를 입한 자 곡식으로 배상
  • 절도한 자는 노비

라는 조항을 통해, 노동력을 중시하는 농경 사회이자,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다.

단군조선설 VS 기자조선설[편집]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도 기자조선을 인정하고 있으며, 단지 중국과 일본의 주장과는 다르게 기자가 고조선의 영토에 와서 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라, 기자가 왔을 때도 이미 단군조선이 있었다고 본다. 기자조선설은 중국 주나라 무왕 때 사람이였던 기자가 기자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인데 소중화사상을 통해 민족문화의 자주심을 확립하려고 했던 사림세력이 주장하였다.

연표[편집]

BC. 7세기 경

관중제 환공에게 '발조선에게는 무늬있는 가죽을 바치게 하면 됩니다'라고 증언. 사실상 고조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BC. 4세기 경

국가 체제의 완성을 통해 연나라와 대립할 만한 수준까지 오게 됨. 조선후 칭왕

B.C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입으로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성에서 대동강으로 이동

B.C 3세기

고조선의 국력이 신장됨에 따라,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들이 등장하고 일시적인 왕위 세습이 일어난다. 상.경.대부.대신.장군.박사와 같은 관직명이 존재

준왕 집권기는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중국 혼란기였는데, 이때 연나라 장수 위만이 1천여명의 식솔을 대리고 고조선에 망명을 오게 된다. 이들로부터 철기 문화를 수용하고자 준왕이 위만에게 '박사' 관직을 제수하고 서쪽 변경 수비대장을 맡게 하였는데 위만 세력이 성장하여 준왕을 축출하고 위만 조선을 건국(B.C 194) 하였다.

준왕은 남하하여 마한을 건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