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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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흰색 배경은 직접 선거. 연회색 배경은 국회의원 선출 간접 선거, 회색 배경은 선거인단 선출 간접 선거, 검은색 배경은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이다.
3.15는 부정선거로 선거 결과가 인정되지 않아 취소선 처리하였다.
제1공화국 1대
1948년
2대
1952년
3대
1956년
3.15
1960년
제2공화국 4대
1960년
제3공화국 5대
1963년
6대
1967년
7대
1971년
제4공화국 8대
1972년
9대
1978년
10대
1979년
11대
1980년
제5공화국 12대
1981년
제6공화국 13대
1987년
14대
1992년
15대
1997년
16대
2002년
17대
2007년
18대
2012년
19대
2017년
20대
2022년
21대
2027년
1 / 노태우
민주정의당
8,282,738(36.6%)
2 / 김영삼
통일민주당
6,337,581(28.0%)
3 / 김대중
평화민주당
6,113,375(27.0%)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6월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 수요일에 직선제로 실시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오랜만에 치러진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거였다. 간선제니 선거인단이니 그딴 조잡한 거 다 사라졌다.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인 노태우와 대표적인 민주 인사인 양김(김영삼, 김대중) 및 5.16 군사정변의 주역 김종필의 대결 구도였지만 선거 결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국민 직선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이었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 선거를 통해 신군부 정권이 연장된 이유로는 양김의 단일화 실패 등 야권의 분열과 KAL기 폭파사건 등 선거일 직전 터진 중대사고 등이 지적된다.

실질적으로 야권 진영의 두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 김대중 후보의 표가 분열하면서 표가 갈라졌으며 노태우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사실상 5년간 군사 정부가 연장된 상황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로부터 5년 후에야 비로소 민주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설명[편집]

씨발 왜 시위했냐?

헌정 사상 가장 재미있는 선거였다. 노태우는 지난 정권과 지지난 정권의 물을 빼야 비로소 당선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에 최대한 재미있게 선거 운동을 했고 이에 따라 김영삼 김대중도 노태우에게 지지 않으려고 각자 최대한 재미있게 선거운동을 했다. 그리고 이 선거에는 최초로 여성 후보로 홍숙자 여사가 나왔는데, 바로 전인범 장군의 어머니다. 이때 전인범은 소령 진급 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 이뤄놓고 정권은 12.12 쿠데타 중심 인물이었던 노태우에게 넘겨준 희대의 병신 선거이다.

당권은 김대중, 대권은 김영삼으로 합의 보고 무난하게 노태우를 누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김대중이 뒤통수를 때려서 망했다.

당시 시기를 보면 도리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땡삼이에게 양보하는 게 맞았다. 땡삼이는 머중이가 전두환에 의해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를 당하고 외국으로 런하니 목숨 걸고 머중이 복권을 외쳤던 놈이었고, 머중이 본인이 자신에게 빨갱이 프레임으로 군부에서 비토설이 나오는 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윤보선 최규하에 이은 땅크 시즌3 찍기 싫다면 그냥 양보하는 게 맞았다.

어떤 또라이가 자꾸 김대중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고 우기는데 밑의 4자필승론은 누가 들고 온 건지 아냐? 게다가 연임도 아니고 단임제 대통령에서 김영삼 대통령하고 나면 누가 대통령 되겠어? 설마 상도동계 영삼이 따까리가 김대중에게 네임 밸류로 상대한다고? 그냥 김대중이 지가 먼저 해먹을 욕심으로 뒤통수 친 게 정황도 맞고 당시 뉴스 기사는 물론, 하다못해 진중권도 이건 김대중의 잘못이라고 깠구만 뭔. 게다가 진보로 유명한 윾시민도 이를 회자하며 머중이를 존나 극딜했다. 사실 이는 유시민만 아니라 386세대 대부분이 가지는 심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일로 김대중은 '민주화의 상징'에서 민주화를 걷어찬 인간, 또는 대통령병에 걸린 인간이라고 온갖 욕은 다 먹었다.

한보의 정태수도 노태우 때부터 뇌물질로 제철사업 벌인다고 나랏돈 빼먹다가 망해가니까 김현철에게 뇌물 바치면서 제발 나랏돈으로 구제해달라고 한 게 한보사태의 전말이다.

ㄴ영삼이 지지자가 또; 4자필승론이 제기된 게 평화민주당 창당 이후 한화갑이 제시한 거고 영삼이가 통수 친 건 평화민주당 창당 이전 고려대학교 토론회 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김대중의 통수질에 얼얼함 드립 치고 있네. 지 새끼가 대통령 되고 싶어서 독재 세력과 손잡아 놓고는 뭐요? 통수? 60~80년대에 머중이가 바다에 다이브 할 때 영삼이도 똑같이 독재 세력에게 개처럼 밟히듯이 존나 밟혀놓고 지랄을 해요 아주. 몽둥이로 수십 대 후드려 맞은 건 착한 구타고 통수 서로 같이 친 건 나쁜 구타냐 ㄷㄷ 그리고 땡삼이 아래 새끼들로도 머중이 상대 충분히 되는데 ㅉㅉ 당장 이회창이 머중이와 붙을 때 불사조 그 씨발놈만 아니었다면 이길 수 있었던 거 기억 안 나냐?

ㄴ 참고 사항이 하나 있는데, 김영삼의 거점인 부산경남은 김대중의 거점인 전라도를 다 합친 것보다 인구가 많다. 그리고 이회창은 불운의 정치인인 게, 머중이랑 뜰 때는 피닉이 때문에 망, 작은 노짱이랑 뜰 때는 정몽준이 2002 월드컵으로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다가 뜬금포 노짱으로 붙어서 망, MB랑 붙을 때는 공천 떨어지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와서 망했다. 이회창은 대통령이 될 운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랬더라면 회창 - MB - 홍카콜라 라인의 대통령 라인이 구축되었겠지.

참고로 정치적으로 사이 좋았던 김영삼 김대중이 서로 헐뜯고 욕하게 된 원인이 이 대선 때문이다.

김땡삼이 이 대선에서 이겼다면 임기는 그나마 잘 보냈을 건데 그 이후 당선되어 시기와 맞물린 외환 위기로 지지율 최저 6%를 찍고 현재까지도 후손들한테 욕을 처먹는 걸 생각하면 양김 싸움에서는 김머중 1승이다.

결과가 나오고 당시 분위기는 진짜 씹창이었다. 현재 10~20대들에게 설명하기 쉽게 비유하면 ㄹ혜 끌어내리고 19대 대선 치르는데 안 읍읍과 문 읍읍이 서로를 물어뜯다가 홍 읍읍이 당선된 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것도 비유하려고 쉽게 말한 거고 실제 여파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같이 운동하다가 끌려가서 사면 되어서 나왔더니 함께 민주화 운동하던 애들은 저 새끼 빨갱이네 홍어네, 저 새끼 독재정권의 앞잡이네 서로 손질하며 싸우는 걸 보고 인생무상을 느꼈다는 모 국회의원도 있었고, 아무튼 그냥 씹창이었다.

이후 행보가 가관인데 김영삼이는 이후 노태우와 손을 잡고 다시 대선에 나와서 노태우 파벌을 등에 업고 당선되더니 아예 박정희 라인에 가담해버렸다. 김대중이는 자기 라인 끝까지 고수하고 다시 대선에 나와서 낙선했다. 그러나 그 다음 선거에서는 IMF 사태로 인해 당선했다. 김종필이는 이후 김영삼처럼 노태우와 손을 잡았지만 대선은 김영삼에게 양보하고 그 다음 대선에 나왔다가 시원하게 발렸다. 그리고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나왔다가 낙선을 당하는, '국민 듣보잡'이라는 전설을 써내렸다.

4자필승론[편집]

4자필승론 문서 참고

선거운동[편집]

주의. 이 문서는 존나 꿀잼인 것을 다룹니닼ㅋㅋㅋㅋㅋㅋ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내용이나 대상은 존내 웃깁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뒤질 수도 있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각 후보들이 선거 운동을 아주 재미있게 했다. 아마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재미있는 선거가 아닐까 싶다.

노태우[편집]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정말 귀엽습니다. 심장이 멈춰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심쿵!

어디선가 초등학교 1학년짜리 여자 어린이 하나를 구해와서 그 아이를 안고 선거운동을 했다. 그 아이가 꽤 귀여웠는데 그 아이로 인해 인기를 얻었는지 노태우는 당선되었다.

김대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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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오소
평화민주당 김대중이 날 좀 보오소.

밀양 아리랑을 개사해서 불렀는데 이것도 한 재미 했다. 김대중은 나중에 자기가 당선되는 199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노래를 개사해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때는 디제이덕의 노래를 이렇게 개사했다.

김대중과 함께하면 든든해요, 잇힝~

김종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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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똥책을 존나 까 주세요 나무야 미안해 ㅠㅠ

이 인간은 만화를 그려서 배포했는데 엄청 깬다.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만화를 그렸다. 틀을 넣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까 ㄹ혜와 김종필은 친인척... 읍읍... 정확히는 ㄹ혜의 사촌 형부가 김종필이다.

홍숙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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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내용이나 대상은 존내 웃깁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뒤질 수도 있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정치 슬로건 한 방으로 온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웃긴 게 아니었는데 하필 그 슬로건을 웃기게 만든 사건이 29년 후 터져버렸다.

정치 기적여성 대통령으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문서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언이 적중되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어서 제대로 된 정치 기적을 이루었다. 참고로 이 할망은 전인범 장군의 어머니이다.

투표율 및 결과[편집]

유권자 2512만 명 중 2306만 명이 투표함으로써 90%에 육박하는 투표율을 보였다(정확히는 89.2%).

노태우가 그 중 828만 표를 득표, 36.6%의 득표율로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대 당선인들 중에서는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김영삼 633만 표(28%), 김대중 611만(27%)는 서로 싸우다가 공멸하였고, 둘 다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투쟁 선언을 했다. 참고로 김종필은 182만(8.1%)을 얻었다. 그런데 노태우의 득표율 봐도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은 됐지만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 질 수밖에 없었다.

기타[편집]

직선제 대선 중 비상식적 몰표가 나온(절대 득표수 말고 백분율로 계산했을 때) 최초의 선거로서,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47만 표 중 45만 표(94%), 전남에서 145만 표 중 131만 표(90.3%), 전북에서 113만 표 중 94만 표라는 몰표를 받았다. 이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대구에서 113만 표 중 80만 표(70.7%),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가 부산에서 199만 표 중 111만 표(55.9%)를 득표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이다.

그래도 전북은 83.1%라는, 광주전남보다는 그나마 인간적인 수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전향의 여지가 있었다. 물론 우리 엑윽보수는 남도나 북도나 결국 삭힌 홍어와 생홍어의 차이 정도로 봤기 때문에 이후로는 그런 거 없다.

이 당시 군대는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박희도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전군에 무조건 노태우를 찍으라는 개좆같은 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정연관 상병이 "저는 김대중을 찍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말 그대로 패서 죽여버렸다. 박희도는 지 하나회 바로 윗선배인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이런 악랄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양김[편집]

DJ와 YS는 1920년대에 태어났으며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체제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한 거물이다. 당시 1987년 YS는 한 당의 총재를 맡고 있었고 DJ는 당시 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전두환이 노태우를 당선시키고 싶어서 야권 분열이라는 계획을 세우는데 멍청하게도 그게 통한다.

후보 제출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김대중, 김영삼은 대통령 후보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근데 전두환이 김대중을 석방하니까 사방에서 대통령 후보 나가라, 안 그러면 우리가족 자살한다는 등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다가 김대중은 후보 출마를 고려하고 때마침 김영삼도 후보 출마를 고려하게 된다.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를 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김대중은 4자필승론을 내세웠고 김영삼은 국민적 지지와 군부 비토의 부당성을 내세워 맞선다. 결국 서로 양보하겠다고 했던 양김은 분열로 다다르게 된다. 당연히 전두환은 기뻐했다.

DJ와 YS 둘 다 수십 년 후 후보 단일화를 안 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나비효과[편집]

저 멀리 칠레의 야당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몰아내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존나 연구했는데 그때 이 사람들이 이 선거를 발견했다. 이 선거가 야권 단일화 실패로 좆망했다는 것을 이용해서 피노체트를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여러모로 존나 재미있는 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