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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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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흰색 배경은 직접 선거. 연회색 배경은 국회의원 선출 간접 선거, 회색 배경은 선거인단 선출 간접 선거, 검은색 배경은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이다.
3.15는 부정선거로 선거 결과가 인정되지 않아 취소선 처리하였다.
제1공화국 1대
1948년
2대
1952년
3대
1956년
3.15
1960년
제2공화국 4대
1960년
제3공화국 5대
1963년
6대
1967년
7대
1971년
제4공화국 8대
1972년
9대
1978년
10대
1979년
11대
1980년
제5공화국 12대
1981년
제6공화국 13대
1987년
14대
1992년
15대
1997년
16대
2002년
17대
2007년
18대
2012년
19대
2017년
20대
2022년
21대
2027년
노무현의 승리!

이 문서는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다 이기야!
지역감정 따위는 盧풍을 이기지 못한다 이기야!
이 문서는 역전 드라마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두고 동화 같다고 말한다.
아마 월트 디즈니는 이 각본을 보고 "너무 과장됐다"면서 집어던질 게 분명하다!
- 앨런 버체널(레스터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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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잘하고 문화도 잘하고! 차도 잘 만들고! 배도 잘 만들고! 모다는 게 없는데!!

야~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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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무 막 나가서 일베충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여러분! 이겼습니다!
2 /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12,014,277(48.9%)
1 / 이회창
한나라당
11,443,297(46.5%)
3 / 권영길
민주노동당
957,148(3.89%)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12월 19일 목요일 치러진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이다.

16대 대선은 지난 15대 대선에서 간발의 차로 낙선하고 재도전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사상 최초의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었다.

대선 재수생인 이회창 후보는 경험이나 세력 면에서 노무현 후보보다 대권 고지에 좀 더 유리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이전 대선부터 불거진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 노사모를 비롯한 네티즌들의 열성적인 노무현 지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 등에 힘입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설명[편집]

제3회 지방선거 이후 6개월만에 시행된 선거로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선거이다.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하고 인터넷 여론을 등에 업으면서 승리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에 치러진 선거라서 이 월드컵이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 덕분에 정몽준 본인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만약 정몽준이 서포트를 해주면 그 후보는 무조건 당선되는 선거였다. 실제로 정몽준은 노무현에게 붙었고 그 결과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이름값은 이회창이 넘사벽이었음에도 노무현은 2002년 월드컵 빨로 당선된, 이른바 월드컵 대통령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좆병신 짓을 한 정치인 하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김민석이었다. 정몽준 인기가 높다고 한창 잘 모시고 있던 노무현에게 엿을 날린 뒤 정몽준에게로 붙었는데 웃기게도 정몽준이 노무현에게 붙는 바람에 김민석은 온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냥 가만히 있얶으면 노무현 자리 물려받아서 다음 대선 나오든가 여튼 문재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김민석이 잇는 거였는데 어휴 병신새끼. 개인적으로 김민석이 내 이종사촌형의 대학교 동창 친구지간이지만 김민석 이 새끼가 좆병신인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랜만에 나온 21대 총선에서 당선하며 다시 부활했다.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에 있다가 배신 때리고 민주당으로 간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로 나올 뻔했지만 결국 노무현에게 밀리고 노무현이 대선에 등장한다.

이회창은 2연속 2등이란 결과물에 충격 먹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근데 정몽준이랑 김대업만 아니었어도 당연히 이회창이었을 것이다. 정몽준은 투표 전날 지지를 철회해서 역풍 불게 만들었고 김대업은 노무현 정부에게 토사구팽 당하고 버려졌다. 물론 이회창 아들 병역비리는 구라로 밝혀졌다. 이거 주장했던 김대업은 관련 재판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다.

사상 최초로 정치인 팬클럽(노사모, 창사모)이 나타난 대선이다. 사실 과거에도 조짐은 있었지만 대놓고 나온 건 이 대선이 처음이다. 정치인이 아이돌이냐?! 세월은 흐를수록 왜 헬조선인들은 퇴화하는 걸까?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반으로 갈라 뒤져야 하거나, 이미 갈라져 뒤진 대상을 다룹니다.

초록색이 노무현 우세, 파란색이 이회창 우세

와 딱 반으로 갈렸네...는 노무현이 먹은 곳 중 일부인 서울경기인천만 해도 남한 인구의 절반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2030 vs 5060 세대의 대결이다.

경선[편집]

  • 한나라당에선 당연히 이회창이 됐다.
  • 민주당에선 동교동계가 밀어주는 이인제와 아예 동교동계 출신인 한화갑이 경쟁을 해서 동교동계 내전이 일어날 뻔했으나 동교동계 홈그라운드인 광주에 노풍이 일어나서 거의 가능성 제로였던 노무현이 제3자의 입장으로 후보가 됐다.

다만 유의해야 할 점은 노무현이 지지율이 낮긴 했지만 그래도 이인제 다음가는 위치였지 군소후보 수준은 아니였다.(20대 대선 홍준표 정도의 위치라 생각하면 될듯), 한화갑은 정통성은 있었지만 인기가 없었고, 이인제는 인기는 있었다만 보수정당 출신인 점과 여론조사에서 맨날 이회창에게 밀린 점때문에 이인제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였다. 이로 인해 나름대로 좋은 이미지와 인지도를 가진 노무현이 충분이 역전할수있는 상황이였다.

출구조사[편집]

전국(%) 노 49.1 vs 이 46.8


서울: 노 49.4 vs 이 47.2

인천: 노 51.7 vs 이 43.3

경기: 노 52.1 vs 이 42.4


강원: 노 40.8 vs 이 53.2


대전: 노 55.5 vs 이 39.7

충남: 노 52.5 vs 이 43.2

충북: 노 49.3 vs 이 44.9


광주: 노 95.9 vs 이 2.9

전남: 노 95.3 vs 이 3.4

전북: 노 92.8 vs 이 5.5


부산: 노 30.4 vs 이 65.9

울산: 노 38.7 vs 이 47.7

경남: 노 30.6 vs 이 62.7 '


대구: 노 19.2 vs 이 77.2

경북: 노 23.5 vs 이 70.9


제주: 노 57.5 vs 이 38.9

연령별[편집]

20대: 노 59.0% vs 이 34.9%

30대: 노 59.4% vs 이 34.2%

40대: 노 48.1% vs 이 47.9%

50대: 노 40.1% vs 이 57.9%

60대 이상: 노 34.9% vs 이 63.5%

노풍의 영향으로 부울경의 보수정당 지지도가 TK와 다른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즉 지역주의가 약화되기 시작한 선거였는데 대신에 세대 갈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선거를 기점으로 2030은 민주당(진보정당), 5060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40대는 중간이며 대체로 민주당 약우세였다. 단 17대 대선은 예외인데 워낙 MB가 독주했던 선거라서 전 연령에서 MB가 이겼고 진보적이라 평가 받는 20대에서 민주당 후보인 정동영 지지율이 가장 낮았다. 대신 문국현과 이회창 지지율이 높았다.

이런 경향은 쭉 이어지다가 최순실 게이트 이후 40대까지 2030라인으로 들어오고, 50대가 기존의 40대처럼 민주당 약우세의 중간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17년 이후로는 3040이 범진보 진영의 주요 지지세력이고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범보수 진영의 주요 지지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5년뒤 2022년 이후에는 2030이 범보수 4050이 범진보 6070이 범보수 진영이 되었다.

민생이 힘들어졌지만 503호 병신년을 용서할수 없는 20대와 운동권 꼰머와 반공 꼰머의 혼종 50대는 진보/보수 밸런스가 맞다는 평가다.

선거 결과[편집]

개표 초반. 부산에서 개표가 시작되어,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앞서기도 하였지만 수도권과 호남 지역이 개표하면서 다시 역전 당했다. 노무현은 그 당시 영남은 한나라당 텃밭이었으니 그렇다 해도 충청은 자민련이 지원 거부할 정도로 새천년민주당 세력이 많이 약한 상태였는데도 노무현이 이겼다. 역시나 홍통대전은 극심했다. 그렇게 주 5일제와 한미FTA가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