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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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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광 우럭따 8ㅅ8

1918~1994

[https://www.youtube.com/wat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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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와 해방이전[편집]

윤동주와 동네친구였다던 목사. 용정출신으로 윤동주와 친구였다. 장준하와도 친한 사이였다.

목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평양신학교에 가려고 했지만, 거기는 원리주의 꼴통천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좆본 신학교에가서 성서 비평학에 대해 배웠다. 성서를 보고 내용에 대해 따져야 했던 학문 특성상 본인의 문자만 보는 습관덕에 꽤나 고생하셨다고 한다. 아들이자 현재 배우인 문성근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말기 조선인들에 대한 징병령이 내려지게 되자 "나는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없다"며 직접 신학교 교장을 찾아가서 담판을 짓고 난 뒤에 만주로 돌아갔다고 하며, 교장이 신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를 신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해방이후[편집]

1947년 한신대를 졸업했다. 당시 한신대는 개신교내에서 좌파인사들이 모여 만든학교였기에 이분의 사상에 이학교가 꽤나 영향을 많이 미쳤다.

6.25전쟁때는 자원입대를 해서 미군의 통역장교일을 했다고 하며 이후로 1976년까지 평범한 장로교목사1로 살았다.

사회활동[편집]

자기 친구이던 장준하가 1975년 의문사를 당하자, 이에 충격을 먹어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참가했다. 이때부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1] 그렇게 사회활동을 하면서 1994년 죽을 때까지 11년을 빵에서 살았다. 이때 늦은 나이에 사회운동을 시작했다고 호를 '늦봄'이라고 했다.

나머지 해기간에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하면서 두차례의 큰 돌풍을 일으켰으니......

열사여[편집]

6월 항쟁당시 이한열의 장례식에서 한 연설이다. 아주 실시간으로 뽑아낸 연설문인데, 이거 파급력이 존나게 쩔어줘서 6월 항쟁이 격화되는 데에 기여를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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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나오는 깨시민발 광우뻥은 거르고 초중반만보자.

ㄴ 찾아보면 저거 좀 수정해서 2016~2017 촛불집회 장면으로 대체한 영상이 있다.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황정하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진성일 열사여! 강성철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광주 2천여 영령이여! 박영두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박혜정 열사여! 표정두 열사여! 황보영국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우종원 열사여! 김용권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방북[편집]

1989년 방북을 했다. 이때는 서울->베이징->평양루트로 평양에 들어갔다. 그는 평양에 가서는 혹부리우스를 만나서는 그와 1:1맞다이를 떠서 그와 이런저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합의를 했다. 이 합의 내용이 훗날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문의 전신이라고 한다. 아래에 나올 이분의 사상을 생각해본다면 혹부리가 팩폭오지게 당했을 것 같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불법방북덕에 빵에 들어갔지만, 출소후에는 범민련을 조직해서 통일운동을 계속했다. 이거덕에 종북논란이 있지만, 천만에. 이분은 6.25전쟁에 자원입대한 사람인지라 안보관은 정상이었다. 애미쳐뒤진 NL이 범민련에 침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예 이 범민련을 싹다 물갈이 하려했었다. 근데 이 NL씹쌔끼들이 어그로를 끈것에 대해 화병이 났는지, 1994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통일관[편집]

애국보수들과 NL이 이놈을 종북으로 몰지만, 글쎄. 이분이 쓴책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라고 아가리털면서 자유민주주의는 똥통에 던져버린 남한 처럼 북한도 사회주의는 똥통에 던져버린 병신이라고 미리 예측했으며, 레흐 바웬사를 빨았을 정도로 독재자체를 극혐했다.

ㄴ 종북이 아니면 친북이겠지 그러니까 존나게 까이는거고

ㄴ 이건 뭐 백범 빵야빵야하던 안두희 빙의도 아니고... 방북했다고 김구를 친북이라고 하는 싱먼 리 빠는 패거리들 같은데.

그래서 이분이 원하는 통일은 바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실권을 쥐던 김정일의 방해와 맞다이에서 이래저래 팩폭을 당했을 김일성의 통수와 NL의 어그로때문에 다망했음.

그외[편집]

1991년, 미국 친우 봉사회라는 퀘이커교 단체에게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문성근의 아버지이다.

  1. 당시 좌파 개신교는 선통일 후민주화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