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백제와 일본의 관계

조무위키

국뽕들은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 일뽕들은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었다 라도 하지만 둘 다 그 고대시대에 바다 하나를 끼고 있는 땅을 실효지배하는건 개 무리수라는걸 인정하질 않는다.

泰○四年○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鋼綱七支刀○○百兵宣供供候王○○○○作 / 先世以來夫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태□(泰□) 4년 □월 16일 병오일 정양(정오)에 무쇠를 백 번이나 두들겨서 칠지도를 만든다. 이 칼은 백병을 ○○. 마땅히 공손한 후왕에게 어울린다. ○○○○가 만들었다. / 선세(先世) 이래 이런 칼이 있던 적이 없는데, 백제 왕세자가 성음(佛法)을 얻으므로 왜왕 지(旨)를 위하여 만든다. 후세에 길이 전하라.


공손한 """후왕wwwwww"""

엣헴 일뽕들논리라면 중국기록에는 하나도없고 모든걸 백제중심으로 기록했지만 동진이선물한거고

선물에 제후국왕이라는 표현을 썻으니 일본은 동진속국이구나!!!!!!!!!!!!!!!!!!!! 키야 모든걸 백제중심기록에 반도에서만발견되는 양식으로된칼을 ""기록도 없는 중국에서""보냈구낭wwwwww

ㄴ근데 실제로 명백하게 候王이라고 새겨져 있잖아. 실제 양국의 관계가 어찌되었건 백제가 일본을 아래로 봤다는건 候王에서 이미 결판났다고 보는데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었다. 도 반박 가능한게... 일단 아신왕때 둘이 힘 합쳐서 백제 주도적인 동맹을 만들어서 고구려랑 신라 공격했잖아... 만약 속국이었으면 아신왕은 일본군이 한반도 진입한 시점에서 일본 명령체계에 있었어야지... 그리고 또 칠지도 본문에 백제왕이 왜왕을 후왕이라 칭하고 있으며 후왕은 일반적으로 제후를 뜻한다 즉 딱갈이 신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본서기에서 한반도 기반 국가를 속국으로 언급하는 경향이 있긴한데... 그건 애초에 작성의도가 국뽕 고취용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지...

ㄴ근데 이건 후왕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임 그냥 백제 내부국뽕용일지 실제로 속국이라서 후왕이라 한 건지 알 수가 없거든

아키히토 덴노의 '한국에는 뭔가 깊은 연을 느낀다' 이거는 백제 멸망 이후 일본으로 넘어와 일본의 공경귀족이 된 타타라(多々良)씨와의 혼인 관계를 말하는거다. 애초에 삼국시대 사료자체가 존나 적은데 누가 속국이고 뭐가 판단할 뭐라도 있나? 양국 국뽕들이 이리저리 설정 놀음 하는거지.

백제와 왜는 공동적국인 신라와 고구려 견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동맹이었던 것은 분명하며, 어쩌면 혼인 동맹이나 교역에 의한 이민도 있었을 수도 있다.

확실한건 문화의 전통방식은 중국->백제->일본 순이었다는 것이다. 불교도 백제의 승려 노리사치계가 일본에서 일본 불교의 아버지로 숭상받고있고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도 백제가 일본에게 중국의 것을 전파해준 것이다. 일본 전통 의상도 중국을 거쳐 백제의 의복과 상당히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