柴田勝家(しばたかついえ)(1522~1583)

개요[편집]

오다 사천왕 필두,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때 부터 오다가에서 일한 중신.

장독깨기 시바타라는 별명이나 돌격 시바타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생애초반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러나 벼락출세한 히데요시의 케이스처럼 성도 없는 천한 출신이 아닌, 오와리 지방에서 나름 기를 펴고 다니던 토호계층 출신이 아닌가 유추해볼 따름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 처럼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때부터 오다가에 속해 여러가지 공적을 세움으로서 노부나가의 가독상속 쯤에는 이미 오다가 중진이 되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가독 상속에 반발하여 노부나가의 동생 노부유키(노부카츠)를 옹립하여 노부나가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결국 패배하여 노부나가에게 항복하고, 이후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죽을때까지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일했다.

노부나가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호쿠리쿠지방의 공략을 맡아 우에스기와 빈번히 부딪혔으며, 상당히 고전했다. 특히 테도리가와에서 히데요시 새끼와 연합공격을 시도햇다가 히데요시가 단독으로 튄데다 자기 군대는 우에스기 쪽의 수공으로 퇴로가 막혀 본인을 비롯한 극소수만 살아남아 도망갔을 정도로 쳐맞았다.

혼노지의 변 직후, 츄고쿠 정벌을 중단하고 키나이로 귀환하여 아케치 미츠히데를 침으로서, 오다가에 막강한 발언력을 가지게 된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가의 거성인 키요스성에서 열린 상속자 결정 회담 및 영지분할회의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삼남인 오다 노부타카를 지지하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대립하여 오다 노부타다(노부나가의 장남)의 아들인 삼보시(노부히데)를 지지하였다. 결국 히데요시가 주장한대로 삼보시가 오다가의 상속자가 되었다.

시바타 카츠이에는 이에 반발하여 오다가의 중신인 타키가와 이츠마스와 노부나가의 삼남이자 카츠이에가 지지했던 후보자였던 노부타카와 연계하여 히데요시를 치려 하였다. 그러나 결국 시즈카타케 합전에서 패배하여 후쿠이성에서 재혼한 아내인 오이치와 함께 자결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충신인가?[편집]

이전 글에는 뭔 시바타 카츠이에빠가 어디 구석기적 드립 들고와서 충신이니 뭐니 지랄염병을 해놨는데, 이미 한번 반역을 꾀한 바 있는 사람이 충신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판이다. 게다가 히데요시가 시바타 카츠이에의 인육을 즐겼다는 말을 자랑스레 팩트틀 달고 지랄... 시바타 카츠이에는 확실하게 권력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오이치와 결혼도 했던 것이고. 히데요시가 카츠이에와 대립하여 아직 어렸던 삼보시를 가독상속자로 내세운 것은 오다가의 괴뢰화를 꾀한다는 면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당한 가독상속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유능했는가?[편집]

저 살아온 세월이 말해준다. 그것도 뭔 구석에 짱박혀서 영지수호만 한 다이묘가 아닌, 천하포무라는 거창한 캐치프라이즈를 내걸어 주변 다이묘 전원에게 어그로를 끌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중역가신으로서 활약함에도 저정도 살았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시바타 카츠이에를 개인적으로 싫어했는가?[편집]

알게뭐야 ㅅㅂ 한가지 분명한건 히데요시의 두번째 성인 하시바의 시바는 시바타의 시바자를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