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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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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및 신변잡기[편집]

원조 먹물 주갤럼

인도철학 빠돌이.

플라톤붓다를 존경했고, 니체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끼쳤다. 현대철학의 스타트를 끊은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근데 (한국)학계에선 별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뛰어난 철학자들이 출현하고 비합리주의 조류가 물꼬를 트는 데 영향을 주었는데도 취급이 안좋다.

철학자답게 논리력 ㅅㅌㅊ

하지만 헤겔과 대학에서 캐삭빵을 걸어서 졌다. 초유명한 일타 교수였던 헤겔과 일부러 같은 시간에 강의를 고집해서 망한 것인데, 웃긴 건 교수 자리 준게 헤겔이라는 거.

흔히 염세주의 철학을 전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불교의 세계관이 염세주의가 아니듯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염세주의와는 거리가 좀 있다. 애초에 쇼펜하우어는 자기 자신을 믿으며 맹목적인 의지를 끊음으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19~20세기초에 유행하면서 쇼펜하우어를 읽은 사람들이 너무나 감명깊은 나머지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쇼펜하우어는 자살을 "윤리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지만 임시방편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식으로 깠다. 결국엔 그저 고통을 끝내버리려는 맹목적 의지로 자살을 한 것이기 때문.

주갤럼과의 크나큰 차이점이 있는데 주갤럼은 씹창난 환경, 즉 외부현상(헬조센)에 의해 염세주의가 '주입'된 반면 쇼펜하우어는 상인이자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문학가이자 사교가인 어머니에 의해 금수저+재능충 콤보로 태어났음에도 여러 경험과 성찰을 통해 내면에서 '발현'된 경우이다. 그마저도 자기자신은 염세주의가 아니고 자기자신을 이해못하는 자들에 의해 염세주의자로 오해된다고 주장했다.

인간혐오적인 성향도 역시 강했는지 이런 일화도 전해내려온다. 노년이 된 쇼펜하우어는 상류층적이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금덩어리를 식탁 위에 두다가 식사가 끝나면 다시 가져가곤 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어느 군인이 쇼펜하우어에게 그 이유를 묻자 쇼펜하우어는 레스토랑에 있는 병사들이 여자 이야기 같은 것이 아닌 진지하고 학문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 금덩어리를 주려 했지만 줄 사람이 없어 계속 자신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쯤 쇼펜하우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괴팍한 철학자 노인으로 유명해서 프랑크푸르트의 현자로 불렸다.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비웃음을 당한다. 둘째, 거친 반대에 부딪힌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저 명언은 온갖 미친 놈들과 유사과학자들이 자신의 비웃음받아 마땅한 논리를 옹호하는데 쓰인다. 하지만 진실이 비웃음받을 순 있지만 비웃음을 받는다고 진실인 건 아니다. 저 말을 하기전에 자신이 왜 비웃음을 받는지 24시간동안 생각을 해보자. 제발 쇼펜하우어 성님 좀 놔드려라.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외 여러 논문들을 썼다. 그러나 정작 머중들에게 많이 읽힌 책은 말년의 저작인 여록과 보유인데, 이것이 단상으로 된 작품인 나머지 좆본과 헬조선에서 부위 별로 토막나서 '쇼펜하우어 행복론' '쇼펜하우어 인생론' '사랑은 없다' 이딴 처세술 서적으로 전락했다. 덕분에 헬조선 인터넷에 쇼펜하우어 책을 검색하면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 같은 학술 서적은 나오지도 않고 병신같은 유사철학책들만 잔뜩 보인다.
철학적 성향도 그렇고 중2병 걸린 놈들이 자위하기 좋기 때문에 사후 가장 고통받는 철학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지구 반대편 코딱지만한 똥양 국가에서 자기 책이 뭉텅뭉텅 잘려서 팔리고 중2병 쉐리들 딸감으로 쓰는 걸 본인이 봤으면 거품 물었을 듯

일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한테 받은 재산으로 평생을 쓰고 쇼펜하우어가 죽을 때 유산이 아버지한테 받은 재산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쇼펜하우어를 읽었다는 말도 있다.

보혐증[편집]

아직 미개한 시대에 살았어서 그런지 보혐증이 있었다.

부유한 상인 아버지와 자유분방한 여류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대를 이은 상인이 되길 바란 나머지 이름까지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아르투어'로 지어주었지만 쇼펜하우어는 어렸을 때부터 우울하고 학자 기질이 짙어 천성이 상업과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상업으로 마음을 돌리도록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외국 여행을 수차례 보내주었고 상업을 한다는 조건 아래 김나지움에까지 진학시켜주었지만 결국 쇼펜하우어는 대학으로 가 의학을 공부하다가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일생동안 자신에게 지원을 보내주었던 아버지를 존경했고, 다른 남자들과 놀러다니며 사교계에만 몰두하던 어머니를 경멸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진지하고 우울한 자신의 아들을 싫어했다. 아버지가 죽고 유산을 받게 되자 쇼펜하우어는 어머니와 별거하여 다시는 만나지 않았고, 자신의 여동생과 간간이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요하나가 운영하던 살롱에 드나들던 괴테가 아르투어의 재능을 알아보고 칭찬하자, 그의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한 집안에 두 명의 천재는 나오지 않는 법이에요."

보혐증에 관련한 유명한 일화들이 많다. 식당에서 조용히 사색하고 있다가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는 여인네들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자 그 중 한 명을 번쩍들어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가 하면, 그런 식으로 다쳐 반신불수가 된 여성에게 소송이 걸려 패소하여 그 여성이 죽을 때까지 보상금을 기간마다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자 쇼펜하우어는 이 여성이 죽을 때 "잘 죽었다!" 하고 기뻐했다 한다. 여동생마저 여성을 섹스 장난감 정도로 대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여성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충고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성욕은 매우 강하여 하녀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고, 청년시절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다가 차인 일도 있다. 근데 정작 당대 양녀들은 그의 숱한 여성비하 언행을 오히려 재밌어 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설거지론을 200년 전부터 미리 알았다고 재평가받는 중이긴 한데 저땐 보지들이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이라 당시 시대랑 지금 시대랑 좀 다르게 보긴 해야 함

명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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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보트릭스 아래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사항입니다. 헛되게 하지 말며 너그러이 이해합시다.

결혼은 남자의 권리는 반으로 하고 의무는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여성은 명성과 지위, 권력과 성공에 이끌리지만, 남성은 아름다운 육체에 이끌린다.

여성의 마음속에는 남자가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여자의 할 일은 그것을 쓰는 것이라는 믿음이 뿌리내려 있다.

여자는 속이는 여자와 속는 여자로 나뉠 뿐이다.

여자는 오로지 종의 번식을 위해서만 창조되었다. 따라서 여자의 자질은 이런 역할에 모아져 있다.

오징어가 적을 물리치거나 적에게서 달아나기 위해서 검은 먹물을 뿌려, 물을 흐리게 만든다. 여자는 이 동물과 너무도 비슷하다.

오징어처럼 여자도 거짓으로 온 몸을 감싸며, 거짓말 속에서 편안히 헤엄친다.

영아나 유아의 보육자이자 양육자로서 여자들이 적합한 이유는 유치하고 어리석고 근시안적이며 한마디로 큰 아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보다 개가 좋다.

저서[편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쇼펜하우어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주저이다. 출간 당시에는 잊힐 뻔하다가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 전역에 염세적인 분위기가 돌면서 명성을 얻었다.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전에 썼던 학위논문이다. 충족이유율의 논리적 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주관과 객관의 구분 등의 네 가지 근본이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여록과 보유>

  • 그의 사상을 보충하고 정리한 말년의 작품으로, 대중적으로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여록과 보유란 덧붙이고 빠진 것을 보간한다는 의미이다. 상술했듯이 불반도에선 '인생론' 정도로 번역되며, 완역은 커녕 영화 한 편에서 자극적인 부분만 뽑아놓은 듯한 형상을 보여준다.

철학[편집]

대표적인 저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쇼펜하우어의 중심 개념은 의지(Wille)이다. 이거 말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거 말고는 다른 게 없는데 당연한 거지.

이 당시 독일 철학에서 칸트가 얘기한 현상과 물자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는 핵심적인 것이었다. 당시 피히테, 셸링, 헤겔 등의 독일관념론 철학자들은 이 물자체 개념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면서 물자체를 어떻게든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헤겔에 이르러서는 물자체가 절대정신에 의해 원칙적으로 인식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칸트 해석이 상당히 괴랄한데, 먼저 순수이성비판 A판을 선호하면서 B판은 칸트가 A판 내고 노망이 들어서 멀쩡한 A판을 개악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A판 선호하는 건 하이데거를 비롯해서 학자마다 견해가 갈리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칸트와 플라톤이 매우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둘의 철학 모두 자기 논지 하에서 상당히 변형시킨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물자체를 인식 가능한 걸로 바꿔버리려던 철학자들, 특히 헤겔을 칸트도 제대로 안 읽고 헛소리나 씨부리는 야바위꾼이라며 있는 욕 없는 욕 다 해 가며 조오오온나게 깠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철학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세워 놓은 인식론적 토대와, 현상과 물자체의 구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미결로 남은 물자체의 문제를 이론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 이성의 영역에서 해결한 반면, 쇼펜하우어는 이 실천 이성을 거부하고 직관적이고 미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저서 <충족이유율의 관한 네 겹의 뿌리>에서 칸트를 비판할 때 주로 칸트의 도덕적 현상론, 인간 인식의 12가지 범주나 양립가능론을 비판한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칸트가 물자체적인 부분을 경험적인 부분과 분리하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질적으로 내놓은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내용이 칸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 둘을 접목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정초한 12가지 범주를 모두 경험적 인식의 기초가 되는 직관을 무시한 결과라고 하며 모두 거부하고, 인과법칙과 직관 자체만을 남겨둔다. 그에게는 직관으로서 표상 자체가 성립하며,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인과법칙을 통해 직관이 작동하는 것이다. 도덕적 현상론과 양립가능론도 여기서 비판받는다. 경험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과 물자체적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연결시켜 도덕적 토대를 만드려한 칸트는 사실상 눈속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물자체에 해당하는 의지는 칸트식의 도덕적인 의지가 아니라 맹목적인 의지이며, 물자체와 현상 모두 의지의 결과로써 동전의 양면과 같이 본질적으로 같되 세부적으로 다른 부분일 뿐이다. 물자체와 현상 모두 의지로서 우리 앞에 현존하며, 우리는 이 의지로서 촉발되는 현상으로 고통받는다. 이 세계의 원리인 맹목적 의지에 의해 우리는 불쌍하게 고통을 무릅쓰고 쾌락만 좇다 뒤지는 것이다. 우리처럼 스케일 작게 헬조선이 아니라 무려 헬세계를 주장한 통큰 철학자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우리가 어떻게 탈세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미학적 주제들을 건드리다가, 나중에는 우파니샤드나 불교 철학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나 불교를 비롯한 동양 철학 (인도에 국한된) 을 학문적으로 정제된 형태로 서구에 소개한 초기 학자들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쇼펜하우어는 동시에 불교 철학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도 해석되곤 하는데,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으로 만들어낸 개념, 즉 '물자체적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윤리학의 정초를 세우는 등 다소 허무주의적 경향을 띄었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현대에 불교학자들에게 끊임없이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유념해야할 것은 쇼펜하우어가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학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불교나 우파니샤드 등의 인도 철학 사상을 이용한 것의 의의는 쇼펜하우어 자신의 사상에 일관성과 풍부함을 더한 것이지, 단순히 이러한 사상들 자체를 해석하는 데 그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사상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사상의 외적 부분이 아닌 사상 자체로 비판받아야 한다.

웃긴 게 얘 철학대로면 인간 새끼들 사이에서 유명해져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냥 '어휴 ㅄ들 ㅉㅉ' 하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걸어나갔으면 됐으나, 사실은 자기 철학이 주목을 받지 못하자 강단 철학자들이 키배에 발리니까 쫄려서 무시하고 튀는 거라고 욕을 하다가, 나중에 가서 유명해지자 강단 철학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새끼도 언행불일치 ㅅㅌㅊ이다.

영향[편집]

니체와 프로이트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고 니체나 프로이트가 쇼펜하우어 철학의 개념 같은 것들을 본격적으로 수용해서 발전시키고 한 것은 아니고, '의지'나 반(反)합리주의적 주장, 이성적 존재라는 전통적 인간 개념에 대한 반대 등의 계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결국 니체와 프로이트는 서양 현대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쇼펜하우어는 향후 현대철학의 거대한 조류에 있어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그너도 그 당시 유행하던 쇼펜하우어에 환장해서 그의 영향을 받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내놓았는데, 정작 쇼펜은 바그너한테 작곡보다 문학에 더 소질이 있다는 둥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참고로 이 때 니체도 바그너가 개독이 됐다며 절교를 선언했다

강한 결정론자였던 아인슈타인도 그의 명언을 인용하며 자유의지를 부정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할지는 할 수 없다.

반출생주의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은 싫은 일이 많기에, 가장 합리적인 입장은 아이를 이 세계에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