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페티트

이 문서의 인물은 뉴욕 양키스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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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양키 스타디움에서는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양키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주의! 이 글은 약쟁이들의 자랑거리에 대해 다룹니다.
서도 !!!!
이러한 약이 공존하는 스포츠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부 지구인과 심지어 우주인들까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키야~ 주모오오!! 약 한 사발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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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좆 좆좆좆*

약쟁이

Andrew Eugene "Andy" Pettitte*

뉴욕 약키스 No.46(약구 결번)

기본 정보
생년 월일 1972년 6월 15일
출생지 루이애지나주 배턴루지
국적 미국
신장 198 cm
체중 106 kg
선수 정보
입단 1990년 뉴욕 약키스 22라운드
투타 약투약타
포지션 약발투수
경력 뉴욕 약키스 (1995~2003,2007~2010,2012~2013)
휴스턴 약스트로스 (2004~2006)

소개[편집]

친구 잘못 만나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부상자 명단 올라간 2년간 약빨고 들어온 전설의 투수

1990년대~2010년대까지 뛴 약쟁이

페티트는 90년 중후반과 00년~10년대에 양키스에서 활약한 몇몇 안되는 양키스 팜출신 선발이다.

문제는 휴스턴 3년간 외도를 하며 양키스팬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고 그 3년간 성장호르몬을 맞아서 미첼 리포트까지 이름을 올리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대단한 이유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양키스팜 순수선발이기 때문이다.

그와 합을 맞춘 양키스 팜출신 선발은 대부분을 넘어 아예 남의 레전드들 퍼 온 수준이었다.

그가 신인일때는 지역 라이벌 어메이징전드 드와이튼 구든과 텍전드 케니 로저스가 뛰고 있었고 잡전드 옥수수가 있었고 중심이 되었을때는 알콜갑과 약전드 클레멘스와 시애틀&방울뱀전드 빅 유닛이 뛰고 있었다.

양키스 시절[편집]

그는 1990년 양키스 22라운드로 낮은 순위로 뽑혔지만 거부해도 갈 대학이 있어서 선택권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를 뽑아가려던 대학 코치는 페티트는 클레멘스급이라고 단언하였다.

나중에 이 단언은 실제로 이루어진다. 좋은 면(2년만에 21승)으로도 나쁜 면(약물)으로도.......

페티트는 양키스로 입단을 희망했고, 꼴랑 8만달러만 받고 입단한다.

그가 입단할시 양키스는 구단주의 선수불법사찰로 제명이 되면서 리빌딩을 준비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코어4라는 토대를 중심으로 리빌딩을 시작했고 그 4명이 다 자라자 바로 우승 컨텐더급으로 자란다.

마이너를 3년간 부숴버리고 1995년 드디어 데뷔하게 된다.처음은 선발경쟁을 하며 계투로 나왔지만 바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선발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리고 175이닝을 던지며 12승 9패 4.17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하며 신인왕 3위에 오른다.

그리고 1996시즌이전 그의 경쟁자 히치콕을 트레이드 시키는등 페티트를 믿는다.

그에 보답하듯이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21승을 넘겼고 221이닝을 던지며 이닝이터의 모습을 일찍이 보여줬다.

그리고 첫 사이영을 노렸으나 팻 헨트겐에게 6표라는 간발의 차로 밀려 2위를 기록한다.

그가 첫 사이영을 못 탄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같이 데뷔한 동료 괴물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1위표를 1장을 포함해서 18표나 가져가서다.

6표라는 표차는 1972년 5표 차이로 게일로드 페리가 사이영을 탄 이후 가장 최소표 차이다.

안타깝게 사이영을 뺏겼으나 18년만에 팀이 우승한 기쁨을 느낀 시즌이었다.

이후로도 15승이상 해주는 에이스가 되었으며 2000년까지 시즌과 가을야구 거르지 않고 1선발 역할을 충실히 하며 데뷔 후 6년중 4번의 우승을 한다.

그러나 팀이나 타 언론들은 페티트를 저평가하기 시작한다. 이유는 페티트가 1998~2000 3연패 하는 동안 승과 이닝은 꼬박꼬박 쳐먹었지만(3년간 49승 613이닝/평균 16승 204.1이닝)방어율 관리(3년간 ERA 4.45)를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1년, 그런 저평가를 보라고 하듯이 3점대로 바로 들어온다. 비록 방어율이 3.99였지만

그리고 방어율 관리 성공한 페티트는 2002년 팔꿈치 부상으로 첫 DL로 가게 되었고, 바로 복귀를 해서 13승 5패 134.2이닝 3.27를 뛰어난 기록을 보여줬다.

야구선수에게 치명적인 팔꿈치부상에서 빨리 복귀하게 된 이유를 그가 말하길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성장호르몬을 주사하는 부정을 한다.

그 당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추후 6년뒤에 미첼 리포트 공개로 걸리면서 그의 명예는 실추된다.

당연히 약을 했으니 다음시즌 기록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2003년 21승 8패 208.1이닝 4.02를 기록하며 8년만에 20승을 다시 달성한다.

그거와 함께 최고의 좌완에게 주는 워렌 스판상을 더러운 방법으로 탄다.

휴스턴으로 외도[편집]

2003년 후 FA가 되나 선수관리와 계약 연장에 미온적이었던 양키스에 실망을 느끼고 휴스턴과 3년 315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다.

보상픽으로 양키스가 뽑은 투수는 만년 좆망주 필 휴즈였다.

그러나 약으로 팔꿈치를 일시적으로 치료한 페티트의 좌쪽 팔꿈치가 멀쩡할리가 없었다.

바로 FA 첫번째 해는 남들과 같이 드러누웠다.

그러나 2년간 탑3(로이 오스왈트, 로저 클레멘스)의 1자리를 맡으며 킬러비와 함께 휴스턴을 준우승까지 올려놓는등 업적을 세운다.

17승 9패 222.1이닝 2.39라는 부상복귀라고 볼 수없는 시즌을 보냈다.

문제는 나중에 여기서 또 약을 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시 양키스[편집]

그렇게 3년간의 외도를 끝내고 양키스로 2년+1년 3200만 달러로 약전드새끼 데리고 같이 양키스로 복귀를 한다.

2006년 선발자체가 왕첸밍이외 답이 없었던 상태라 07년 앞두고 여러명을 질러버린 상황이었다.

일단 검증도 안된 이가와 게이(천하의 개쌖끼)를 5년 2000만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주고 영입했고, 클레멘스까지 영입을 했다.

그러나 페티트빼고 다 망해버렸다.

그렇게 양키스의 상징으로 다시 떠오르나 했더니.............

미첼 리포트가 터지면서 좆된다.

친구새끼와 다르게 그는 바로 성장호르몬 2002년,2004년에 두번 맞은 걸 인정했고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 사죄의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2009년부터 약을 안 빨아도 잘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2010년을 평균적으로 보내고 급은퇴선언을 해버린다.

양키스는 그 당시 클리프 리를 잡을 생각이었으나 영입에 실패를 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여러 퇴물들을 줍기 시작한다.(바톨로 콜론, 하비에르 가르시아)

그리고 2011년 최악의 선발진이라는 평가를 뒤집으며 잘 버텨낸다.

하지만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터라 2012년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복귀를 한다.

역시 1년밖에 안 쉬어서 그런지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고 5승 4패 75.1이닝 2.87을 기록했다.

양키스는 페티트가 복귀하겠다고 하자 1년 1100만 달러 계약을 제의했으나 페티트는 그의 야구에 대한 열망에 대해 고심을 해보겠다는 띵언을 하고 뻐팅긴다. 그래서 계약도 늦어졌고 결국 250만 달러만 받게 된다.

그리고 2013년 4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1승 11패 185이닝 3.74를 기록하며 명예롭게 은퇴를 한다.

은퇴를 하니 갑작스럽게 머리가 벗겨지고 있다.

그리고 2017년 첫 명전 후보가 된다. 문제는 5% 컷아웃을 모면할지가 문제지만.......




빌리 마틴
2루수, 감독
1986년 8월 10일
결번 처리.
파일:영구결번2.PNG
데릭 지터
유격수
2017년 5월 14일
결번 처리.

베이브 루스
우익수
1948년 6월 13일
결번 처리.

루 게릭
1루수
1939년 7월 4일
결번 처리.

조 디마지오
중견수
1952년 4월 18일
결번 처리.

조 토리
감독
2014년 8월 23일
결번 처리.

미키 맨틀
중견수, 1루수
1969년 6월 8일
결번 처리.

빌 디키
포수, 감독, 코치
1972년 7월 22일
결번 처리.

요기 베라
포수, 좌익수, 감독, 코치
1972년 7월 22일
결번 처리.

로저 메리스
우익수
1984년 7월 21일
결번 처리.

필 리주토
유격수
1985년 8월 4일
결번 처리.

서먼 먼슨
포수
1979년 8월 3일
결번 처리.

화이티 포드
선발투수, 코치
1974년 8월 3일
결번 처리.

호르헤 포사다
포수
2015년 8월 22일
결번 처리.

폴 오닐
우익수
미정
비공식 영구결번.

돈 매팅리
1루수, 코치
1997년 8월 31일
결번 처리.

엘스턴 하워드
포수, 좌익수, 코치
1984년 7월 21일
결번 처리.

케이시 스텡걸
감독
1970년 8월 8일
결번 처리.

마리아노 리베라
구원 투수
2013년 9월 22일
결번 처리.

레지 잭슨
우익수
1993년 8월 14일
결번 처리.

앤디 페티트
선발투수
2015년 8월 23일
결번 처리.

론 기드리
선발투수, 코치
2003년 8월 23일
결번 처리.

버니 윌리엄스
중견수
2015년 5월 24일
결번 처리.

재키 로빈슨
2루수
1997년 4월 15일
전 구단 공통 결번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