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에른스트 오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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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는 피도 눈물도 없는 개새끼입니다.
이 문서는 인간의 탈을 쓴 피도 눈물도 없는 철면피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에라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애미애비가 처뒤졌습니다.
이게 아부지도 없는 게 까불어!!! 너희 아부진 돌아가셨어, 그것도 모르냐?
애미 애비 뒤진년아!
그지? 그녀석 양친이 없잖아?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악마와 관련이 있습니다. 😈

악마와의 거래를 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뒤로가기를 누르시면 되지만, 이런 좋은 거래 또 없습니다.
자 일단 영혼부터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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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개요[편집]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친 희대의 또라이

이 사건때문에 가뜩이나 양놈들때문에 빡쳐있던 흥선대원군은 완전히 눈깔이 뒤집혀서 조선은 쇄국정책을 하게 된다.

왜 무덤을 파헤쳤는가?[편집]

원래 홍콩의 무역회사에서 일하면서 동양에 관심이 많았던 동양학자였는데 동양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문호를 개방하지 않은 조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그 문호를 개방해보겠다고 여러번 조선에 왔었으나 때마침 병인박해때문에 죄다 거절당한다.

근데 이 미친놈이 조선의 실권자가 흥선대원군이라는걸 알아채고 "이새끼의 아버지 시체를 파서 인질로 문호 개방하라고 하면 문 열겠지?"라는 미친생각을 하게된다.

도굴<ref>말이 도굴이지 이새끼는 목적이 보물이 아니라 시체였으므로 파묘라는 표현이 맞다.</ref>[편집]

이런 미친생각을 갖고 그는 러시아인으로 위장해서 충청남도에 상륙했고 자기가 러시아 군병이라고 사기치고 덕산군청(현재의 예산군)을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덕산군수 이종신을 겁박하여 가야산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파헤쳤는데 조선의 무덤 특성상 두꺼운 석회층 때문에 실패한다.

사건의 여파[편집]

조선[편집]

당연히 유교탈레반 씹선비국가였던 조선 정서상 아버지의 무덤을 웬 미친놈이 파헤쳤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었고 코쟁이 양놈들은 애미애비도 없는 개씹새끼들이라는 여론이 일었고 사건의 당사자였던 흥선대원군은 눈깔이 뒤집혀서 3년 뒤 신미양요까지 당하자 그때부터 척화비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천주교 박해가 더 심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남연군은 왕이었던 고종의 할아버지가 되는데 왕의 할아버지 묘가 파헤쳐졌다는건 조선 백성들의 자존심에도 어마어마한 상처가 된다. 당장 입헌군주제인 현대 일본에서 어떤 외국인이 히로히토 무덤을 파헤쳐서 시체를 인질로 삼으려고 한다면 온 일본 국민들에게 규탄을 받을 일이다.(근데 히로히토 씹새끼가 한 짓을 보면 그새끼는 부관참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새끼이긴 하다)

물론 오페르트의 병신짓은 직접적 원인이고 흥선군의 쇄국은 양반들의 민심을 회유하려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흥선 집권기 초중반에는 양반들 존나 조지고 다녀서 권력이 위태해졌는데 이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었고 당백전으로 내수시장이 작살나자 시장개방을 보류해두기 위해서 쇄국을 결정한 것도 있었다.

독일 및 서양 반응[편집]

무덤을 파헤친다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납할 수 없는 미개한 짓이기때문에 독일에서도 욕을 존나 쳐먹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은 유대인이었는데 유대인 혐오 감정이 심해지던 근대 유럽이었으니 오죽하랴.

이후 본국인 프로이센에 송환되어 무덤 도굴과 수군 제독 사칭죄의 2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무덤 도굴은 불기소 처분이 났으나 수군 제독 사칭죄가 인정되어 감빵에 갔다. 근데 이놈은 뻔뻔하게도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이라는 책까지 발매했다. 그런데 제목과는 다르게 반성하는 느낌의 책이라고.

게다가 이놈이 유대인이었기때문에 유대인 혐오증이 더 심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과연 유대인이나 할법한 짓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평가[편집]

아무리 당시 조선과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조선 왕실이 개막장 개판오분전이라고 해도 남의나라 통치자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외교적 결례를 넘어서서 그냥 개또라이 미친짓이다.

옛날 고구려가 전연에게 개털려서 수도가 함락당했을때 모용황이 고국원왕의 아버지 미천왕의 무덤을 파묘해서 시체를 인질로 삼은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에 비빌만한 반달리즘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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