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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th Century / 7世紀 / 601년~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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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결론적으로 이게 연개소문의 가장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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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

고구려의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났다. 남간의 비유에 따르면 고구려판 뽀그리우스, 강철 아줌마, 강철의 콧수염, 사담 후세인과 유사한 새끼라고 한다.

중국 서적에서는 천개소문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당고조 이름인 이연의 연과 연개소문의 연이 같은 연못 연(淵)이기 때문에 피휘법을 적용해서 연을 연못 천(泉)으로 바꿔서 천개소문이라고 적은것이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사대주의자였기 때문에 중국식으로 삼국사기에 천개소문이라고 적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쿠데타 일으켜서 영류왕 죽인 시점부터 사실상 명줄끊어졌다 전쟁의 폐해를 눈앞에서 지켜봐서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택한게 영류왕인데 말이지 그냥 권력에 미쳐서 쿠데타 일으켰고 또 자기 맘에 안든다고 귀족 몇백명 죽여가며 당시 행정력 아예 분쇄시켜버리고 아들새끼들 교육도 똑바로 못시키고 에효.....


ㄴ지랄이죠 고구려랑 당나라 관계가 어떤관계인데 평화같은 소리를 ㅋㅋㅋ 애초에 중국에게는 동맹국따위 존재하지않아 속국과 언젠가는 정복해서 속국으로 복속시켜야하는 오랑캐들만이 존재할 뿐이지. 중국이 동맹을 맺는 경우는 자기들보다 존나 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뿐이다. 실제로 나당동맹도 당나라가 말이 신라랑 동맹이지 계림도독부 설치해서 속국취급했는데 ㅋㅋㅋ

실제로 연개소문이 집권하기 전부터 당나라는 호시탐탐 고구려를 따먹을 궁리만 계속 하고있었다. 고구려만 따먹으면 그 밑에있는 백제와 신라는 알아서 빌빌 길꺼니까

ㄴ 노리고 있었던건 맞는데,침략당하기 전에 방비를 위해서 외교적으로 시간을 벌어야지,이새끼는 집권해놓고 전까진 영류왕의 외교정책 잘 이어오다가 당에서 지 정통성 까니까 바로 돌변해서 당나라 사신 토굴에 쳐 가두고,지가 영양왕인줄 아는건지 영주지역에 선빵떄리면서 침략을 앞당긴 새끼구만 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비가 죽고 애비의 대대로 자리를 이어받으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존나게 반대했다고 함. 하는 짓이 별로였나 보지.


그리고 대막리지라는 국방위원장 버금가는 남바완 자리를 만들어 지가 다 헤쳐먹었다.

ㄴ이미 이놈집안이 존나게 해쳐먹은 상황에서 연개소문이 해먹을라니까 귀족들이 반대한거다. 후기 고구려는 현대인 입장에서 보면 존나게 민주적인(?)게 대대로를 3년임기제로 바꿨고, 훗날의 공산권국가들처럼 귀족들간의 집단정치로 운영됬다. 그러다보니, 한곳에 권력이 몰리기 힘들었다. 근데 연씨집안이 대대로직을 임기기간 넘어서까지 하니까 반발이 심해짐.

ㄴ 그래서 연개소문은 대대로라는 1품 직위가 아닌 막리지라는 2품 지위에서 권력을 잡았다. 지가 영류왕 쳐죽이고 나서는 아예 대대로 직위를 맡은 사람이 따로 있긴 한거같은데 누군지 안 알려져있음. 이름도 안 남아있는 걸 보아하니 어차피 허수아비였겠지만.

당나라랑 대판 싸울때 죽었다. 또라이였지만 능력은 있어서 당과 맞짱뜨고 있었는데 자식새끼들은 그정도는 안됐던 모양이다. 나라 수습 못하고 결국 고구려 망함. 그리고 자식이 셋이엿는데 한놈은 당에 투항하고 아들끼리 권력다툼 하다가 연개소문 죽은지 3년채도 안되 나라 망했다.

존나 신묘한 전략전술로 당나라 좆바른 명장으로 자주 표현되는데, 사실 이 새끼가 직접 군대 이끌고 당나라 박살 낸 적은 사수대첩 한개말고 아예 없다. 그나마 그 사수대첩도 중소규모 전투에 불과했다.

아니 근데 진짜 이 새끼가 대체 왜 명장 취급받는거지?

명장은 신채호 지랄병으로 생긴거고 타고난 정치'질'꾼인거지 대내외 상황을 자신의 집권을 위해 이만큼 이용한 인물도 없는듯

전투에서 싸워 이긴다기보단 주변 정세 파악을 존나 잘했다. 유목민족들이랑 유대해서 반 당나라 연합을 구축했고 당나라가 쳐들어올때마다 서역에 사신을 보내 당나라 군대가 동쪽에 몰빵된 틈을 타서 중원을 치라고 지원요청을 했고 뒷통수 어택을 당한 당나라가 후퇴하는 방식이 수없이 반복됐다.

ㄴ실제로 연개소문은 유목민족들 중에서 돌궐하고 친했다고 한다. 어느정도냐면 정략 결혼할 정도로 ~

실제로 고구려가 멸망한것도 그동안 연합했던 유목국가들이 싸그리 당나라에게 정복당해서 더이상 연합을 맺을 화력이 못된것도 이유 중 하나다.

국제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외교를 좆도 모르는 머저리 새끼다. 국제정치에서는 절대 자존심 싸움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굳이 구태여 당나라의 어그로에 끌려서 발작버튼을 눌렀고, 결국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고구려는 순삭당했다.

이새끼가 없었다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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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한민족의 역사가 고구려라는 나라로 쭉~ 중세시대까지 갔을 가능성이 높다.

ㄴ병신새끼야 상황보면 어차피 망할 운명이었는데 좆문가 개소리 작작 씨부려라 무슨 중세? 지나가던 개새기가 웃는다.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 일점사 몇 번을 막아낼 정도로 동아시아 패자였는데 중화세계관에서 걔네가 조공바친다고 꼬봉새끼ㅋㅋㅋㅋㅋ하면서 가만둘거 같냐? 말도 안되는 대뇌망상 좀 씨부리지 말아라 그리고 영류왕때는 당나라도 내실다져야 할 때라서 서로 쉬쉬한거다. 영류왕때처럼 굽실거려봤자 그때는 이미 당나라가 교통정리 다 끝낸때라 힘을 온전히 고구려에만 쏟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철벽같던 천리장성 연계책도 당나라시대와서 간파당하기도 했다. 이 두가지 포인트만 봐도 중세시대까지 갔을거라는 if놀이는 병신짓이라는게 확실하다.

ㄴ 역알못 새끼들이 개소리를 싸지르고 갔는데 연개소문 없었고 영류왕이 계속 집권했으면 고구려는 멸망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음. 역알못들은 고대에 전쟁을 그저 힘의 논리로 찍어누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고대에도 명분이라는 것도 따져가면서 전쟁했음. 당태종이 완전 미치광이 전쟁광이었다면 몰라도 그러지는 않았거든.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한 것은 명분을 만들어서 침공했던 거였는데 마침 연개소문이 그러한 명분을 만들었음.(제일 큰게 임금을 죽인 거) 실제로 그 이전에는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생각을 안했음. 애초에 신하들조차 고구려 원정을 반대하기도 했음. 중세시대까지 갔을 거다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더 오래 갔을 확률은 높았음.

ㄴ 시발 이래서 if놀이가 극혐인거임. 난 연개소문과 추종세력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채로 쓴건데 역알못 소리를 듣게되네 ㅅㅂ 니말대로라면 강경파 군벌이 아예 영류왕한테 숙청을 당했어야 했겠지. 근데 또 이렇게 되면 군사력의 약화가 필연적인 흐름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인 즉, 이걸 또 신라나 당나라가 그냥 놔뒀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잔존 강경파가 반란을 일으켜서 태종이 그거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을 가능성도 있고. 하여튼 온건파가 집권했다고 쳐도 연개소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대외•내외흐름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신라-백제 관계도 존나 달라졌겠지? 역사 존나 어려워 ㅅㅂ 아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힘의 논리로 움직이지 시발 윗 놈 개소리 쳐써놨네 역사가 왜 주로 왕조사 전쟁사가지고 다루어지는데? 명분은 그냥 필요한대로 가져다 붙이면 끝이에요 병신새끼야 별별 갖잖은 이유로 전쟁해댔는데 이건 뭐라고 얘기할래? 역사가 시발 어디 무협지에 나오는 띵호와인줄 아나?

ㄴ 명분 좋아하시네 중일전쟁의 발발 원인만 봐도 좆본이 지들이 짱깨한테 선제공격 받았다는 씹날조를 해서 그걸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고대에도 전쟁에 앞서 명분 따졌던건 사실이지만, 그 명분이라는 것은 이득 앞에서 한낱 구호에 불과하며 그냥 이리저리 되도않는 개논리로 아무렇게나 만들어낼수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아니면 넌 설마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당나라가 그냥 고구려를 냅두면서 평화롭게 공존했을거라고 생각하는거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마에 병신을 써붙이고 다녀야 하는 빡대가리가 틀림없다.

ㄴ 어쨌든 저쨌든 망국의 조짐이었는데 끝까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이 지랄이냐

그니까 역만없이라고 뵹신들아~ 시나리오 좀 그만써 ㅅㅂ

여튼 팩트(?)는 천리장성을 가지고 영류왕은 중궈의 만리장성같은 국경선으로 취급했다는 것이고 연개소문은 인병출격을 기조로 삼아 방어와 공격 두가지를 수행할 수 있는, 여러성을 묶은 전략단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차이로 천리장성 기축에 16년이라는 존나 긴 세월이 걸리게 되고 그 사이에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이 커지면서 결국 연개소문-영류왕이라는 강경파-온건파의 파워벨런스가 무너진 것이라는 것. 16년 동안이나 지연되던게 연개소문 독재집권 이후 4년만에 완공된 것이 증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

존나 중요한 요동땅 옆에 알뿌리박고있는 존나 쎈 새끼가 있는데 가만히 두겠냐?

대가리 조아려도 그걸로 끝나지 않았을거다 병신아

하지만 과연 이 만주라는 알토란 땅을 주변국들이 가만히 놔뒀을까? 거란족이 놔둘까? 중국이 놔둘까? 몽골이???

ㄴ 만주가 알토란이였음 유목민들 말타고 댕김서 호우호우거렸겠냐

ㄴ 만주가 언제부터 알토란 땅이었냐? 오늘날 꿀만주 소리 나오는건 씨바 거기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뭉게뭉게 치솟고 여러 광산이 있기 때문인데 적어도 20세기 이전에는 알토란은 커녕 계륵이었다.
당장 청나라 여진 나부랭이들이 만주에서 근근이 먹고 살다 뒤지기 직전까지 몰렸던건 생각못함? 중세까지 알토란 땅의 기준은 농업생산력인데 만주의 농업생산력은 개쓰레기였다.
만주 전체의 농업생산량를 더해도 우리나라 도 하나 만큼도 안나옴 아 물론 남부지방 얘기하는거고 함경도 이런데는 만주하고 별 차이 없었다.
고구려가 중국으로 진출했다면 그대로 멸망각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 당나라가 들어섰는데 사대안해서 망한거

ㄴ 뭐? 씨팔 석유 천연가스가 나온다고? 아이고 배아파 씹꼴라 개새끼들.

ㄴ 진짜 망한 이유는 연개소문이 자식 단속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결국 내분을 일으켜서 당이나 신라에 투항하게 되면서 피폐해진 고구려를 아예 박살나게 만든 것.

ㄴ내부의 적 이론이라도 믿냐? 애초에 국력부터 개털리는 적이 있다는 자체가 사망플래그 확정이다.

다만 남만주 일대는 확실히 지켜냈을 것 같다. 요동반도는 당대나 그 이후로 짱꼴라들이 계속 탐내서 살짝 애매하지만.

if놀이 하지마 병신새끼들아

ㄴ 아 이래서 십원빠 놈들은 극혐이라니까. 그렇게 갓구려 욕한다고 해서 십원이 뜰 줄 알고 있냐? 착각하지마라. 십원 따위 견훤의 한끼 식사거리도 안 되는 나라일 뿐이다.

ㄴ 아따 우덜 고구려 까면 다 신라빠랑께 ㅎㅎ, 실상 흉노 패거리랑 다름없는 양아치 종자들을 왜 빨고 자빠졌냐?

ㄴ그.. 님덜.. 중국은요.. 조공국은..침략안해요.. 아무리 국력이 커도.. 그 신성로마제국 유사무리한 개념이에요.. 물론 조공불가능할수준을 고구려한테 요구하겠지만..

ㄴ 완전 알토란까진 아니였지만 요동은 당시 중요한 철 생산지였고 일부 지역에선 농업도 가능해서 고구려의 곡창지대 중 하나였다. 물론 훗날 소빙하기 오면서 완전 씹창났지만 중요한건 철도 곡창지대도 아닌 중국과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란 점에 있다. 남송 이전 중국의 중심지는 하북이라는걸 다들 알꺼다. 쉽게 말하면 땅이 존나 커서 인접국이 많은 당 입장에선 자기보다 약하건 말건 자기네 중심지 바로 옆에 상비군으로 30만 정도 보유 중이고 10~15만 정도로 공격해 올 수 있는 국가가 있다는건 존나 거슬린다는 거다. 연개소문이 쿠데타 일으키지 않고 영류왕이 계속 집권했으면 당의 공격을 늦출 순 있었을꺼고 아마 연개소문보다 더 잘막아냈을거다. 정통성이 있으니깐. 무조건 그런건 아니지만 왕정 국가에 정통성 있는 왕이 있냐 없냐는 국가 입장에선 중요한거다. 힘을 집중 시킬 수 있냐 없냐이니깐.. 물론 그렇다고 당이 공격을 안한다든지 고구려가 중세까지 갔을거라던지 그런건 개소리고 당태종이 고구려 치기전에 주변 평정 확실히 해놔서 침공 확률은 100%다. 그리고 당나라는 수나라처럼 대규모 군대로 영혼의 한타를 걸어 오지 않고 자기네 입장에선 적당히 큰 규모지만 고구려 입장에서 막기 힘든 규모의 군대로 계속 보만튀 시전했다. 결국 결정적인 양국의 국력차로 연개소문이 쿠데타 일으키든 안일으키든 고구려는 당나라한테 멸망할 운명이였어

ㄴ 중국이 무조건 고구려를 정복했다는 거짓부렁 하지마라. 중국은 만병통치약 아니다. 고구려가 중국을 정벌했을 수도 있다. 왜일꺼 같아? 실제로 중국은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시골 사막 깡촌의 그지깽깽이 부족으로 출발한 녀석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몰수당했잖아. 게다가 지금은 중국 따위 바다건너 근육쟁이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다.

ㄴ 미친 국뽕 새끼 제정신이냐? 고구려가 언제 몽골,미국 같은 포스를 보여줬냐? 그리고 고구려 시기면 당나라를 논해야지 뜬금없이 송나라를 끌고오네. 송이 약했던건 북송 시절에 뻘짓을 해서 그런거고 실제로 남송 시절에 본견적으로 강남 포텐터지면서 유목민족의 최전성기 시절에 금,몽골 다 잘막아냈다. 순수 몽골 주력군을 40년 동안 막아낸 나라가 어디있더냐

ㄴ 토번이 당나라 후방 공격하는것도 좀 고려해라.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해도 당나라와의 전쟁은 이어졌겠지만,고구려가 당장 당나라의 공격으로 격파당하고 무너진다는건 성립불가다. 그리고 당나라가 결국 고구려를 먹었다 해도 그 땅을 유지, 관리 못해서 30년 밖에 안되서 발해가 세워지는 것을 못 막았다.

ㄴ 첨언을 하자면 요동은 오히려 고구려의 입장에서 굉장히 요충지였고 방어하기에 꽤 좋은 땅이었다. 방어와 유지 문제를 따지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 당시에 요하가 천연 방패 역할을 했고 거기를 따라서 천리장성을 쌓아서 견고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세민이 머리를 잘 써서 요동쪽 성들을 함락시키다가 안시성에서 깨졌지만.

ㄴ 오히려 전근대에 중국 입장에서 요동을 먹어서 유지하고 지키기 어려웠다. (지금도 별차이없다만)요서는 습지, 황무지였기때문이다.[1] 중간에 그런 황무지를 두고 멀리 요동을 멀티마냥 운영하는 게 아무리 중국이라도 전근대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명나라도 요동을 명목상으로 점령했어도 실제론 관리를 거의 안하다시피했다. 그나마 관리해도 산동성에게 맡겼고. 괜히 마오쩌둥북한에게 요동은 본래 조선 사람들이 사는 땅이었다고 말했던 게 아니다. 실제로 고려, 조선 시대에도 요동에 한국계 주민들이 다수였다는 기록이 있고 아예 유익은 고려에 귀부하려고 하기도 했다.

ㄴ 어쨌든 고구려가 중세까지 가진 않았을 확률이 높다. 고구려 역사가 700년인데 그중 씹초창기 부족국가 수준이던 시절 한나라 제외하면 고구려는 수나라 이전까지 통일제국 경험해본 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중국 통일제국 목표는 주변국 정리인데 짱깨들 표현 빌리자면 '동이'전선에서 거슬리는 잠재적 적국은 고구려밖에 없다. 백제 신라 왜 따위는 거리도 멀고 국력도 약해 아오안 수준이고... 중국 입장에선 북한과 요동에 떡하니 자리잡아서 언제든 중원 공격할 포텐이 조금이라도 있던 고구려 조질 필요성이 충분한 것이다. 토번 라이징 타령 하는 애들 있는데 토번전선이 중세까지 가는 것도 아니고... 고구려는 7세기는 아니라도 8세기, 늦어도 9세기 전에는 사라질 운명이었음.
그리고 발해 타령하는 애들 있겠지만 잘 알려진 발해 판도는 내내 그랬던게 아니라 선왕 시대부터 거란라이징까지 전 딱 80년 정도 한정이고 그마저도 서북한이랑 요동 지배는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이 많음. 특히 외국 학자들. 실제로 막 라이징한 거란한테 15일컷당한게 발해 수준인거임. 통일신라보다도 약체국가임. 반면 고구려는 수나라 요단강 보낸 수준이라 중원만은 못해도 강력한 국력이고... 아무튼 결론은 돌궐따먹은 당나라 입장에선 토번 전선 끝나는 대로 고구려 조지는데 집중했을 가능성이 높고 백제없는 신라도 그쪽에 올인하는 이상 동참했을 테고

팩트는 삼국사기 구당서 기록 보면 연개소문의 외교노선은 대체적으로 영류왕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연개소문은 초기에 보장왕한테 도교 수용을 건의하기도 했고, 보장왕이 즉위하자 당나라에 책봉 요청을 하기도 했다. 당나라한테 강경하게 대응한거라고 해봤자 신라 침공하지 말라고 하니까 거절한 것 뿐인데 그 외에는 딱히? 차라리 대당강경파라기보다는 대신라강경파라고 보는 게 맞다. 실제로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한 시기도 연개소문이 당나라가 한 신라 침공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뒤다. 참고로 영류왕 재위기인 626년에도 신라 침공하지 말라고 당에서 사신이 온 적이 있었는데, 영류왕은 이 요구를 표면적으로 수용하고 뒤에서는 당나라 몰래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한다. 그러니까 연개소문은 영류왕과는 달리 당나라 사신 앞에서 둘러대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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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자식을 낳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더라면 삼국통일은 고구려가 했을 것이다. 신라 국력 뻔한데 그게 무슨 힘이 있어서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한단 말인가? 완전히 당나라의 힘을 빌어서 고구려와 백제를 무찌른 것이며 그나마 고구려 역시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서로 매국노 대회를 하느라 나라가 망가졌을 뿐이다. 실제로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김유신이 이끄는 나당연합군 5만과 싸웠는데 김유신이 워낙 똥별이라 계백에게 계속 쳐발리다가 1만 명의 전사자를 낸 끝에 인해전술로 겨우 이긴거다. 당장 연남건과 연남산이 연합해서 연남생과 싸우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이미 고구려는 2개로 나뉜 나라였다. 지들끼리 씨우느라 바쁜데 신라가 보일 리 없다. 결국 이 때 고구려는 수도가 2개였는데 연남생 파벌의 수도는 국내성, 연남건 파벌의 수도는 평양성이었다. 이러다 연남생이 지가 쫄리니까 성 3개를 들고 당나라에 투항했다. 그 날짜도 존나 웃긴 게 666년 6월 6일이다. 흐미...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한 걸 생각해보면 연씨 형제만 아니었으면 고구려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연남생이 항복하자마자 바로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막말로 북한군이 쳐들어오는데 어떤 미친 정치인이 북한에다가 인천, 파주, 동두천을 통째로 바친다고 생각해봐라. 이러면 나라는 무조건 멸망한다. 고구려가 이래서 멸망했을 뿐이지 신라가 고구려를 이겼다는 건 명백한 개소리다. 왕재산 사건은 우리 모두가 심장이 쫄려야 할 사건이다. 인천광역시를 북한에 헌납할 시도를 했다가 적발된 사건이 왕재산 사건이다.

왕건이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신라는 애초에 오랑캐에 불과한 좆병신들이었기에 그래서 자기네 나라 이름을 고구려.Jr이라는 뜻의 '고려'라고 지은 것이다. 실제로도 요나라에서는 "니들 신라의 후손이 왜 북쪽까지 쳐 기어오냐?"라고 했을 때 고려의 답변이 우리는 고구려의 후손이라서 고려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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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도 서로 반박하는게 존나 많듯이 연개소문(淵蓋蘇文, ?~665?)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재주는 뛰어났으나 임금을 죽인 역적이며, 고구려의 멸망을초래한 장본인으로 기록한 반면,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위대한 혁명가로,

박은식은 [천개소문전]에서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평가했다.

유교사상의 지배를 받던 조선시대까지는 왕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민족의 자주정신이 요구되던 20세기 자주적인 혁명가로 재인식된 것이다.

ㄴ 그런데 그 전에도 반란을 일으켜서 왕을 죽이고 나라를 망쳤으나 능력은 있었다고 평가했음. ㄴ요약하면 시대마다 평가가 달랐다. 이정도임.

여담으로, 중국 경극에 칼 다섯개 차고나와 칼 던지는 비도술을 쓰며 당 태종이랑 싸우는게 있다. 여기서 연개소문은 고구려가 아니라 요나라 장수로 나오는데 고당전쟁을 미화하기위해 국적을 바꾼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연개소문은 우락부락하고 무시무시한 장수로 나오는데 당시 중국인들에게 연개소문이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졌는지 추정할 수 있다.

참고로 예전에 SBS에서 만든 연개소문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유동근, 서인석의 연기는 미쳤으나 환빠가 만든것이니 그냥 보지 않도록 하자(내용은 재미있다는게 함정) 드라마는 연개소문의 연개소문보다 대조영의 연개소문(김진태)이랑 대왕의 꿈의 연개소문(최동준)이 훨씬 더 평가가 좋다.

ㄴ오히려 그 드라마는 김갑수가 연기한 수나라 황제 양광을 보기 위함이지 연개소문은 아니다. 사실상 제목을 수나라와 관련된 걸로 바꿔야 할듯.

파일:몽롱탑 전경.gif

중국 강소성 염성 건호현에 몽롱탑(朦朧塔)이라는 이름을 가진 탑이 있는데 이 탑에는 연개소문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당태종이 동방 정벌을 나서면서 염성에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어느날 밤에 당태종이 적 진영을 둘러보려고 단기필마로 바람쐬러 혼자 나왔는데 연개소문에게 발각되고 쫒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진흙탕에 빠져서 말이 쓰러지자 당태종이 말에서 내려 부리나케 도망치다가 이 탑의 지하에 있는 우물 속에 숨었다. 당 태종이 우물속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우물 위로 거미 한마리가 줄을 쳐서 입구를 막았다.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쫒아 이 탑으로 들어왔는데 우물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있고 안이 깊고 어두컴컴해서 잘 안보이니까 사람이 없을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난 당태종은 황궁으로 돌아가서 자기가 거미 덕분에 살았다며 이 탑 이름을 몽롱탑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물론 진위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거미 관련 이야기는 탈무드에서도 나오듯이 서양에서 이미 유명한 일화인데 실크로드를 타고 당나라에 유입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기록으로도 연개소문이 이곳까지 왔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만큼 중국인들이 연개소문을 존나 두려워했고 어마어마한 장수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왕을 죽인 역적에 중국에 대항한 반역자로 낙인찍힌다. 완벽하게 조선의 사상에 반대되는 인물이기 때문. 성리학 사대주의 찌질이들 ㅉㅉ

사실 무신정권의 롤모델이다. 그래도 연개소문은 생전에 당나라를 막아내기라도 했지 최씨정권은 거란과 몽골을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함 ㅄ

결론[편집]

능력이나 재주는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지. 그리고 사수전투를 승리로 이끈 거 보면 장수로서의 능력이 있었던 거 같다.

ㄴ 사수전투 하나 말고 연개소문이 직접 군대 이끌고 당나라란 싸웠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근데 그 사수전투조차도 규모조차 불분명한데, 주필산 전투나 안시성 전투급은 아니었던거 같다.

ㄴ 물론 당나라하고 싸운건 아니지만,고당전쟁 이전에 신라 북변 2개 성 먹은적은 있음. 사수전도 낮게보면 방효태 5천,높게보면 대략 2만정도는 됨. 나름 장수로써는 괜찮긴한데,지 셋째아들새끼한테 2000리의 영지를 쳐 물려주던 꼬라지 생각하면 욕만나옴

그런데 반란을 일으켜서 궁궐에서 왕과 당시 엘리트 지식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하들을 모조리 학살한 점, 자식들 단속을 못하고 후계자를 정확하게 정하지 않아서 결국 나중에 아들들이 내분을 일으키다 멸망하게 된 점을 보면 고구려 멸망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통수권자라는 새끼가 대내외요소를 자기 권력 유지에 이용하고 불만요소를 잠재우기 위해 적을 이용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개소문새끼가 잘보여주고 있다.

근데 정작 연개소문이 살아있을때는 잘 버텼는데 연개소문이 죽고 자식들이 권력다툼 하면서 나라가 내부에서 터져버렸다.

즉 자식농사를 잘못 지으면 나라를 멸망시키는 폐단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식들 하는 꼬라지대로 이름을 짓자면 병개소문(兵蓋蘇文)이 가장 적절할 거 같다.

  1. 그나마 요나라, 금나라가 간수잘해서 잘되나 싶었지만 몽골이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다시 황무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