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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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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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정치인으로서

마음은 착한 사람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영 아닌사람.

애초에 유언이 사망하자 중앙 정부에서 익주목을 파견했지만 유장은 그 익주목을 가두고 자기가 익주목을 세습했다. 그리고 그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사람을 익주목으로 세우기 위해 유장을 공격했던 인물이 당대의 맹장인 감녕이다.

유장은 감녕 상대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고전끝에 겨우 이겼고 살육파티를 벌인 끝에 쳐발린 감녕은 결국 부하를 모두 잃고 혼자 형주로 런했다.

유장의 통치기의 익주는 유언이 끌어들인 중원에서 전란을 피해 들어온 유민집단인 동주병과 토착 호족, 북쪽의 강족, 저족과 한중의 장로가 이끄는 오두미교 그리고 남쪽의 만족들이 제각기 얽히게 된다.

부친과는 달리 유장은 이들을 한데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익주에서는 자주 반란이 일어났으며 한때는 성도가 포위되어 유장은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이에 유장은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익주를 평정한다는 최악의 수를 두었고, 이를 본 유비가 얼씨구나 하고는 "으따 우덜 황족 어려움은 황족이 도와야지라~" 하며 접근햇다.

뒤에 벌어질 사태를 예견한 왕루 같은 신하들이 목숨까지 버려가며 유비의 접근을 막았으나 유장은 듣지 않았고... 그리고 희대의 쓰리질 통수가 작렬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무능력했지만 착한 사람으로 유비한테 뒤통수 맞았을 때 청야전술을 쓰면 이길 수 있었으나 우리의 유장은 백성들이 겪을 고통을 위해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유장은 성 안에서 3년은 버틸 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옹의 설득으로 백성들을 위해 유비에게 항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청야전술 거부 당시 남긴 명언들이 있는데, 크으 감동...

"나는 적에 맞서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백성을 희생시켜 적을 없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가 오래동안 익주를 다스렸으나 백성들을 위해 한것이 없으니 이곳이 함락되는 이유는 내가 덕이없어서 인가보오"


이렇게 착하고 올곧은 사람이 난세에 휘말려 통수를 맞은 것을 두고 진수는 지도자의 자질이 없었다고 깐다. 반면 배송지와 습착지는 유비의 배신행위를 비판했다.

삼국지에 동탁, 공손찬, 원술, 여포 같은 병신들 빼고 안 그런 군주 없겠냐만은 난세 아니였으면 성군은 아니더라도 평군은 갔을지도.

다만 생각해볼 점은, 유비의 익주 탈취를 비난한 평은 전부 후대에 나온 것이고 당대에는 심지어 조위조차도 이를 비난하지 않았다. 명분보다 힘이 우선하던 시대인 건 둘째치고, 유장의 익주 장악력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뺏겨도 싸지" 하는 게 주된 평이었다는 것. 당장 적대진영한테 "환관 손자"(조조)니 "종놈"(원소)이니 패드립이 난무하던 그 시대에 상대를 비난할 명분거리가 못 됐단 말이다.

삼탈워에서는 오랫동안 논플레이어블이었으나, 갈라진 운명에서 플레이어블이 되면서 고유 음성이 생기면서 괜찮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왜 과거형이냐고? 사후지원 중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