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윤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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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극초반에 전사한 조선의 장수이다.

생애[편집]

조선시대 중종 임금 치세 당시 김안로와 나란히 악질권신으로 악명높은 윤임 시발놈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윤씨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몰락하자 나이가 너무 어린 그는 사형당하지는 않고 그냥 노비로 격하되었다.

그런데 선조임금은 무슨 일인지 윤임을 사면복권시켜줬다. 그래서 윤흥신은 청년이 되어서야 다시 양반이 되었다.

노비로 살다보니 글공부를 하나도 못한 윤흥신은 대신 몸을 단련하기로 한다. 그래서 무과에 급제해서 다대포로 발령났다.

근데 하필 그 때 임진왜란이 터진 것이다. 윤흥신은 800명의 급조된 병력만으로 18,700명의 왜군에 맞서 다대포진성에서 수성전에 들어가게된다. 첫날 4월 13일의 전투는 간신히 승리하였으나 탈영병과 전사자가 늘어나자 무기를 들수있는자는 절반까지 줄어들게되었다.

주위에서는 후퇴하고 후일을 도모하라고 권유했으나 윤흥신은 "난 이미 역적이다. 그런 나에게 은혜를 입혀서 역적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주상전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라며 끝까지 버티다가 이복동생 윤흥제와 병사들이전멸하고 자신은 활이 다 떨어지자 숙소의 지붕위에서 기와를 집어던지면서까지 저항하다 왜군에 칼을 맞고 전사하게된다.

기타[편집]

파평 윤씨 최고의 자랑이다.

너가 윤씨라면 이 사람을 너네 가문 최고의 위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