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이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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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우수영의 수사로 이순신과 함께 왜구를 때려잡은 명장이다.

이순신과는 전장을 함께해온 전우이다.

왕족 출신으로 전형적인 엘리트 무장이다.

이순신, 원균, 이억기 등의 삼도연합함대 중 가장 많은 함선을 보유하여 조선 수군의 실질적인 주력이 이 사람 소속이었다.

생애[편집]

1561년 9월 3일 심주군 이연손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무예에 능해 17세에 사복시라는 관직에 든 대단한 인물이다. 이미 21세에 종3품의 경흥도호부(지금의 함경북도 경흥군)사에 임명되었으며 두만강을 넘어 쳐들어온 여진족을 역관광시키면서 26세에 온성도호부(지금의 함경북도 온성군)사에 임명된다.

31세가 되던 1591년 순천도호부사 겸 순천진병마첨절제사전영장토포사(順天鎭兵馬僉節制使前營將討捕使)를 거쳐 전라우수사까지 폭풍승진을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벌어져 전라 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세하 한산도, 옥포, 부산포 등에서 큰 공적을 세운다.

1596년에는 휘하 부대를 이끌고 전라좌·우도 사이를 내왕하면서, 진도와 제주도의 한잔 준비를 하였다. 또한 한산도의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의 본영을 응원하였다. 또한 연합함대의 기동 타격군의 역할을.수행했다.

또한 선조가 이순신을 명령불복종죄로 구속 및 파직시키자 이항복 등 조정 대신들에게 친필로 변호문을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

1597년 원균과 함께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을 이끌었으나 패하여 원균·충청 수사 최호(崔湖)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때 원균새끼가 지만 살고 싶어서 이억기와 최호를 버리고 런하는 바람에 최후까지 항전하다 맨 먼저 전사하는 씁쓸한 최후를 맞는다.

평가[편집]

사실 이억기는 당대로도 굉장한 명장이었으나 명장 취급을 받는 이순신과 희대의 한심한 인간 원균에 가려져 공기 취급을 받는다.

당시에도 공기나 혹은 그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수군의 작전 통제권을 의논할 때 선조가 이억기는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있는데, 쓸만한 사람이다라고 하니까 체찰사였던 이정형이 그는 원균만 못 하다 대답해 당시 그의 취급이 얼마나 좋지 못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후에는 원균보다 아래인 선무 2등 공신이 되는 굴욕을 당했다. 왜란 초반에 앞장서 참여하지 않아 그랬다는데 그래도 원균보다 낮은건 좀 이해가 안 간다. 선조 개객기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