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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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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 우왕시절에 활약한 고려의 정치가.

흔히들 이사람을 가리켜 고려말 권문세족의 최종보스 격으로 말하는데 실제로 고려말 최종보스 권문세가는 오히려 이성계 가문이다.

ㄴ 이성계 가문은 "권문"이라 할 정도로 고려 내 기반이 탄탄하진 않았다. 부친 때 원나라에서 귀부한 신흥무인 가문인데.

여하튼 권문세족 출신으로서 관직도 음서로 시작했으나 꽤나 능력이 있었는지 관직이 차츰 올라갔는데 이는 형인 이인복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전쟁에서 세운 공이 꽤나 많다는 점인데 홍건적에게 개경이 털렸을때 이를 탈환하면서 공을 세웠고 쌍성총관부를 함락시키는데도 공을 세운 한편 원나라의 군대를 빌려 공민왕을 털러 침공한 덕흥군의 군대를 박살내는 등의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게다가 공민왕대에 있었던 요동정벌 당시에도 총사령관 자리에 있으면서 전공을 세우는 등 이러저런 전투에서 꽤나 많은 전공을 세운 엄연한 전쟁영웅이다.

이로 미루어볼때 이성계와의 사이가 사극에서처럼 존나게 나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고 오히려 돈독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위에 나오는 이인임의 전공 목록을 보더라도 이성계와 활동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꽤나 많고 쌍성총관부 공격이나 요동정벌 같은 경우에는 이성계의 상관으로 이인임이 지휘하는 모양새이다.

이는 이인임의 조카와 이성계의 딸이 결혼을 하여 서로 친인척이 되는 것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부분인데 정도전 같은 사극에서는 이를 이인임을 속이기 위한 계략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당대 실세인 경복흥을 비롯하여 이곳저곳에 정치적 연줄을 대려고 한 정치군인 이성계의 정치적 행보라고 보면 된다.

신돈의 집권기에 이춘부와 함께 최일선에서 노비, 토지문제를 담당했다.

하지만 공민왕에 의해 신돈이 박살나자 신돈의 당파라 하여 함께 처형당한 이춘부와는 달리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공민왕의 충복이기 때문에 그러하였다는 설과 형인 이인복이 변호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여하튼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이인임은 그 후 공민왕의 말이라면 뒤지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철저하게 공민왕의 심복을 자처하여 살아남는다.

노국공주가 난산 끝에 사망하자 공민왕은 슬퍼하며 영전 공사에만 매달렸는데 목은 이색을 비롯한 신진사대부 전원과 대신들이 이를 비판했으나 이인임은 이를 찬성하였으며 당대에도 출생에 관한 잡음이 있긴 있었던 우왕의 정치적 후견자를 자처하며 공민왕의 신임을 얻는다.


한편 신돈마저 내친 공민왕은 오랜만에 자신이 정치일선에 복귀하며 정국을 주도하여 당시 신흥 정치세력인 신진사대부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이들은 이미 공민왕에게서 모든 희망을 버린지 오래였고 오히려 공민왕 정권에 대한 협조 보다는 멸시와 조롱으로 화답을 하였다.

이를 본 이인임은 이를 매우 좆같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는 공민왕이 살해 당한 후 우왕이 집권하면서 신진사대부들이 대대적으로 쓸려나가는 주 원인 중 하나가 된다.<ref>신진사대부가 쓸려나간 다른 주 원인은 당시 북원과 명과의 중립외교를 구사하려던 이인임을 정책에 신진사대부들이 태클을 걸어서이다. 이들은 이인임을 탄핵하면서 이인임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까지 하며 배수의 진을 쳤는데 결과는 신진사대부들의 참패였다</ref>


공민왕 말기 부터 세력을 확장해 나간 이인임은 홍륜, 최만생등에 의해 공민왕이 살해당하자 계엄령 선포와 함께 신속한 범인 색출로 인해 정국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고<ref>공민왕 살해 사건에 이인임이 개입하였다는 음모론이 있다.</ref>

우왕을 옹립하여 당시 10살이었던 어린 우왕을 대신하여 10여년 간 섭정의 직위로서 고려를 쥐락펴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대로 신진사대부들이 대대적으로 쓸려나가게 되었으며 친정을 노리며 이인임의 통수를 노리던 우왕의 친위쿠데타 시도조차 무위로 돌려버리는 저력을 과시한다.

이에 염흥방, 임견미 같은 인물들은 전향을 하여 이인임에게 붙어버렸고 최영을 중심으로 한 군부 또한 이인임에게 협조하는 등 형식적으로나마 연합정국의 형태를 취하게 되어 공민왕 암살로 인해 촉발된 정국의 혼란을 잠재우고 안정을 되찾은 것 처럼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만 보여지는 안정이었을 뿐 내부적으로의 제도 개혁이 전무한 상태에서의 정치적 안정은 이미 썩을대로 썩은 고려의 부패를 치유하기엔 오히려 역효과였다.

당장 신진사대부에서 전향한 임견미, 염흥방 일파가 불법적으로 모은 재물이 엄청났으며 이인임 또한 개인적으로 축재에 몰두하여 당시 이인임 정권의 인사 대부분이 막대한 토지를 불법적으로 소유하여 그 경계를 산과 강을 기준으로 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한편 당시는 왜구에 의해 고려 전체가 씹창이 나버린 레알 지옥불고려 상황으로서 연단위로 왜구가 침공해 오는 통에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관리들 녹봉마저 주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이들은 개인적 축재를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이를 막아야 할 고려군 또한 이 시기에는 이미 해산된 상태나 마찬가지여서 왜구를 막으려면 오직 유력 가문의 사병들을 동원하여 막는 방법밖엔 없었는데 이는 자칫 잘못하며 후삼국시대의 재판을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이를 제어하기 위한 편법만을 썼을 뿐<ref>사병 지휘관에게 관직을 하사하거나 재물을 주거나. 다르게 생각하면 후삼국시대 신라정부는 이정도의 조치도 안했다는 말이다;;;;;;;</ref>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은 전혀 하지 않았다.

10여년 동안 우왕의 섭정으로서 정국을 주도해온 이인임 정권의 붕괴는 의외로 사소한 발단이 원인이었는데 조반이라는 듣보잡 관리의 땅을 염흥방이 강제로 탈취하려다가 조반이 염흥방의 노비를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무리하게 엮어 반대파들을 숙청하려는 공작을 펴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 것이다.

앞서 이인임의 통수를 노리고 친위쿠데타를 기획했다가 엿먹은 우왕은 이번에야 말로 이인임을 몰아내려고 작심을 하였고 이인임 정권에 참여는 하고 있었으나 군부라는 특성상 항상 나가리 취급받던 최영과 이성계를 위시한 군부와 함께 손을 잡고 전격적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이인임을 비롯한 임견미, 염흥방등의 이인임 당파들을 싸그리 날려버리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인임 본인의 신변만은 무사하여 귀양가는데 그쳤는데 이는 정국을 주도하게 된 최영의 결단이었다.

훗날 위화도 회군이 터져 최영이 실각하고 이성계가 집권하게 되자 파워게임에서 밀리던 조민수는 이인임을 복권시킬 계획을 하였으나 이미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고 얼마 후 귀양지에서 사망했다.

개인적 부정부패와는 달리 정치적 수완이 대단한 사람이었으며 이는 신돈 집권시부터 이미 인정을 받은 사항이었다.

신돈과 공민왕의 실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정치세력 (특히 이색)을 몰래 지원하는 가 한편 우왕 초기 친위쿠데타를 군사적 충돌 없이 완전히 무위로 돌려버리는 거나 (지윤의 집안은 박살났지만) 저세상 가기 얼마 안 남은 상황 - 실각 후 귀양지에서 골골대던 - 에서도 정계에 복귀 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정치적 센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최영에게 이성계를 믿지 말라며 조언 한 부분은 이미 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