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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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ㄴ 조선의 항일독립운동 지원과 항일 전쟁, 반공 기조는 높게 평가되지만 대만에선 대만판 5.18 혹은 4.3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2.28 사건 및 독재 정치까지 겹쳐서 장개석을 싫어하는 대만인들도 많다.
이 인물은 사실 중국 공산당의 비밀 당원입니다. 이 인물은 사실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공산당원들이 이분을 찬양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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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현실적으로 보면 당시 상황에서는 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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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意. 是 文書는 國父에 對해 扱니다. 諸 默念부터 爲시다... 族와 國를 爲해 命을 納리... 最小限 是 文書만은 國丰(彼가 捧지는 國의 國丰)을 쳐 吸시길 望니다. 萬若 國父를 侮辱하는 言을 行爲면 汝는 四肢가 切斷되고 屍體는 廢棄物 燒却場에서 廢棄 處分될 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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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반공주의적 면도 있지만 반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혹시 반공이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지랄 떠는 종북좌파를 보셨다면 지금 당장 국번 없이 111에 신고해서 절대시계를 받으십시오.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反攻!反攻!反攻大陸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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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중화민국 총통 | ||||
---|---|---|---|---|
제8대 | → | 제9대 | → | 제10대 |
담연개 | 장중정 | 임삼 | ||
제10대 | → | (제9대) | → | (대리) |
임삼 | 장중정 | 이종인 | ||
(대리) | → | (제9대) | → | 제11대 |
이종인 | 장중정 | 엄가감 |
장제스 (蔣介石)[1] Chiang Kai-shek(챵 - 카이 - 섹스) | |
생년월일 | 1887년 10월 31일 |
---|---|
국적 | 중화민국 |
출생지 | 저장성 닝보부 펑화현 |
종교 | 불교 → 개신교 (감리교), 유교[2] |
소속 | 제1 ~ 4대 대만 총통 (1948년 5월 20일 ~ 1975년 4월 5일) 다음 총통→ 제2, 4대 중화민국 국민정부위원회 주석 중화민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위원장 제2, 5, 7대 중화민국 국민정부 행정원장 제11대 중화민국 국민정부 외교부장 제1 ~ 6대 중국국민당 총재 |
정당 | 대만 국민당 |
표방이념 | 중도우파 ~ 극우 공화주의,삼민주의(명목상),권위주의, 반공주의 |
읽기 전에[편집]
장제스 정권 당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 스토리 영상이 하나 있으니 일단 이것부터 보고 오자. 그도 독재자이기 때문에 장제스 빠는 사람들은 뭘 좀 알고 빨든지 하자.
그리고 대만 애들 앞에서 함부로 장제스 칭찬은 하지 말자. 차라리 대만이 중공과는 별개의 국가라고 하거나 문화적으로 멋지다고 하는 게 걔들 입장에서도 더 기분 좋다.
<youtube width="480" height="240">T8tvntfGRAk</youtube>
주소
개요[편집]
중화민국의 대통령으로 머머리였다. 본명은 장중정(蔣中正)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장개석(장제스)는 자(字)로 원래 이름은 아니다. 20대 기준 신장은 169cm, 몸무게는 59kg였다. 우리나라의 반인반신과 공통점이 많은 인물로 청년 때 일본군 출신, 반공 보수, 임기 때 자국 경제 급속도 성장, 사망 후 자국의 좌우 세력에게 호불호가 심하게 갈림 등 꽤 공통점이 많다. 심지어 둘은 생전에 꽤 자주 만났으며 사이도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또 한국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원래는 조선이니 한반도니 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의 의거와 임시정부의 지속적인 활동 및 김구 선생에 대한 개인적 우호 심리 때문에 굳이 분류하면 친한파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반인반신과 유사하게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일구어냈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국내의 경우는 새마을 운동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농민 위주의 국가자본주의 성장 방식을 택한 반면, 장제스는 자본가들과 친하게 지내는 등 정통 자본주의에 더 가까웠다.
당시 지식인이자 유학자답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숙적 모택동도 자주 읽었던 유교경전, 자치통감, 중국 정사 외에도 수많은 책을 즐겨 읽은 책덕후였다. 나중에 대만으로 튈 땐 혹시 모르니까 사고전서 문연각본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고서적을 들고 튀었다.
또한 대륙 시절에는 그나마 덜했지만 대만으로 런한 이후에는 좌파 탄압에 온 사력을 다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좌익 계열의 본산인 소련과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고 상호 협력한 적도 많았다.
중국을 거의 통일한 상태에서 일본군 침공으로 두들겨 맞다가 미국의 참전으로 간신히 살아나서 일본군을 몰아낸다. 이후 천하를 두고 마오쩌뚱과 한판 거하게 싸웠는데, 본인의 치명적인 실수와 무능한 장군들 그리고 극심한 부정부패 때문에 줄줄이 털리더니 결국 대만 섬 하나 건져서 살림 차리고 죽을 때까지 계엄령을 유지하고 독재하다가 아들에게 머통 자리를 물려주고 죽었다.
독재자에 학살자였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기에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모택동 보다는 낫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장제스가 중국을 통일했다면 동아시아가 더욱 발전했을 것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일대기[편집]
닝보시라는 듣보 동네에서 소금 장사하던 은수저 집안 출신인데 문제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이게 상당한 콤플렉스였는지 급식 때 사고를 쳐서 감옥도 가고 그랬다. 그러다가 서구 신문물을 접하고 풀발해 군인되었다. 바오딩군사학교를 가고 거기서 공부를 잘해 일본 육사 유학비를 받게 된다. 일본 육사는 못 들어갔지만 부사관학교를 그럭저럭 다니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신해혁명 터지니까 바로 런하고 혁명에 투신한다.(사실 명백한 탈영이다)
이때 쑨원이라는 인물을 만나 그가 죽는 날까지 섬기게 된다. 아무튼 쑨원은 원세개라는 청나라 군부 실세인 틀딱과 극적 타협에는 성공해 청나라를 큰 규모의 내전 없이 나름 평화적으로 공화정으로 이양시키는데, 지가 황제 해먹고 싶던 원세개가 통수 치고 혁명파는 주도권을 뺏기게 되며 장개석은 백수가 된다.
일본에서 만난 천치메이[3] 라는 깡패 새끼와 상해에서 재회하고 천치메이가 암살 당하자 쇼크를 먹어 상해 건달이 된다. 이때 섹스 파티하다가 성병에 걸려 고자가 됐다. 그러면서 지보다 훨씬 어린, 거의 애나 다름없는 여자랑 결혼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만난 깡패들을 시발점으로 얘네가 나중에는 장제스 휘하 직속 정치깡패 겸 비밀경찰인 청의사가 된다.
그러다가 쑨원이 돌아오고 나서는 쑨원에게 붙게 되는데, 이래저래 비록 중퇴이기는 해도 일본 유학을 다녀온 경험과 기타 여러가지 조건 덕분에 황포군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임명된다. 중일전쟁, 국공내전 당시 활약한 지휘관들 보면 거의 다 여기 출신이다.[4] 또한 당시 일제 치하 식민지였던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이 여기로 와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근데 쑨원이 갑자기 죽어버리니까 공산주의자들과 국민당의 사이가 위태로워졌다. 원세개 몰아내고 중국 통일할 때 국공합작 해서 공산주의자들도 대거 국민당 입당했는데 점점 사이가 안 좋아졌고 쑨원 사망으로 결정타 먹은 셈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증산함 사건과 상해 빨갱이 사냥 등 여러가지 일이 벌어지면서 국민당 내부의 좌파들이 대거 숙청되고, 국민당은 중도~우파 정당이 된다. 장제스는 이것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로서 결과적으로 국민당 톱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군벌들 하나하나씩 머가리 깨면서 중국을 차근차근 통합해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군벌들은 얼추 정리되고 이제 눈엣가시인 공산당을 조져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일본이 똥 싸다가 늦은 병사를 중국이 죽였다고 선동하더니 선전포고를 날렸다.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 가서 보고 아무튼 털리던 장제스는 미국의 핵 두 방 덕분에 일본이 좆되면서 드디어 중국 통일하는 듯했다. 근데 시발 공산당이 만주 먹고 시즈모드 하려고 하던 거 막으려다가 역으로 좆털리고 대만으로 빤쓰런 함. ㄹㅇ 장제스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만주 삽질한 거는 다 깐다.
그렇게 대만섬으로 튄 장제스는 2~30년인가 계엄령을 때리면서 좌파 + 콩사탕에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면 무자비하게 탄압하였고 개발 딸딸이 오지게 한 덕분에 인구 2천만 조금 넘는 한반도 3분의 1 크기의 영토로 아시아의 4용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낸다. 하지만 대륙영토 상실 + 장기계엄령으로 죽는 순간까지도 욕 먹었다.
사망[편집]
결국 1975년 4월 5일에 사망하게 된다.
그가 죽으며 유언을 남기길 "다시 대륙을 수복해서 동포들을 구해라"라고 하였다고 카더라가 있다 왜 카더라냐면 당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장개석이 자신의 모어인 오어(吳語)를 심하게 구사한 까닭에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5] 그나마 당직 부관인 옹완(翁元/웡위안)이란 사람만 알아들어 의사에게 전해주었다는데 진실은 저너머에
시신은 평소 자신은 패배자이기에 절대 대만을 떠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다녔고 언젠가 죽으면 대륙 수복 후 난징에 매장해달라고 했다 이에 따라 장개석의 시신은 토관묘 형식으로 안치되었다
물론 대륙의 위생개념이 아주 차원을 뛰어넘는 어느 탈모짱깨처럼 박제하진 않았다
노력충[편집]
이 문서는 똥수저인 너네가 꿈꾸지도 못할 것을 스스로 해낸 사람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 문서는 금수저든 은수저든 그 누구도 못해보고 모두가 그렇게나 영웅인 것처럼 빨아대는 노력충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 인물을 보고 열등감에 차올라 비난을 하지 마십시오. |
엄청난 노력충으로 구석에 박힌 일개 군벌수준이던 국민당 세력을 결국엔 군벌간의 내전을 거쳐 거대 중화민국을 만들어 대부분의 지역을 복속시켰고, 그 와중에 숨쉴틈도 없이 연타로 중일전쟁이란 재앙이 터졌으나 이것도 처절한 시간벌기 싸움끝에 이겨내고서 통일 중화민국이란 위업을 달성했으나 장개석이 그 고생하는동안 뒤에서 세력이나 키우던 모택동한테 박살나 조그만 대만으로 쫓겨났다.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하....
그분의 업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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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
머한독립 기여[편집]
미국과 더불어 머만이 한국의 최대 은인이 된 이유
트루먼 주인니뮤와 더불어 한국의 진정한 국부다.
카이로 회담서 처음 장제스가 한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이 덕에 사후 대한민국 건국훈장 광복장이 추서되었다.
카이로선언 2년 뒤에한 포츠담회담에서도 좃본 영토는 느그 섬끼리 살아라하고 끝냈으니 조선이 거기 들어갈 이유도 없다.[6] 하지만 장제스는 집착적일정도로 협약서에 한국의 독립을 우겨넣었는데 만약 미국과 소련이 한국의 독립에 반대할시 연합 탈퇴후 단독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겠다는 고집을부렸다.
당시 처칠은 인도나 주변 식민지들이 독립한다고 나대는게 두려워서 한국의 독립을 결사 반대했고 한반도 전체를 먹고싶었던 소련 역시 한국이 독립하면 자신들이 점령하는게 불가능했기에 반대했다. 만약 소련이 한반도 먹었으면 일제보다 더한게 기다렸을 것이다.
미국역시 일본에 조선을 귀속시켜놓고 자신들이 점령한 일본과 함께 점령해보려는 희망과 연합국간의 결속이 깨지는걸 원치 않았기에 독립에는 연합군 전체가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장제스 혼자 단독적으로 한국 독립안시켜주면 연합 탈퇴한다고 땡깡부려서 기어이 처칠과 소련을 한발 물러서게 만들었고 중국이 연합에서 탈퇴하는게 신경쓰였던 미국역시 한국의 독립에 찬성하게된다.
일뽕들이 장제스가 독립군을 지원해주고 독립군들과의 연합이 있었기에 카이로회담에서 한국독립을 지지한것을 애써 부정하기위해서 장제스도 같이 깎아내리는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독립군이 독립에 기여한게 쥐뿔도없고 독립군은 무의미한 짓거리였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걸 인정하게되면 독립군이 결국 조선이 독립하는데 기여하게된것이 되고 이것은 빵셔틀 노예마인드를 가진 자신들이 열등감을 가지게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제스의 대한민국과 독립군에 대한 호감도는 거의 극한에 달해있었다. 1963년 한국에 대흉년이 터져 국민들 굶어죽고 난리도 아닐때 당시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고있던 박정희 국가 재건 최고 의장이 김구의 아들 김신을 중화민국 대사로 보내서 쌀 5만톤만 사오라고 지시했다. 근데 당시 중화민국도 흉년일 때라서 김신이 중화민국 행정원장에게 퇴짜맞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었다. 근데 이 소식을 들은 장제스가 불같이 화내며 당장 국무회의를 소집해서 장관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쌀 5만톤 지원해주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신 대사가 장제스에게 감사를 표하자 "우리가 대륙을 갖고 있었다면 그깟 쌀 5만톤이 아닌 55만톤도 거저 줬을 것이오. 오히려 우리가 흉년이라 한국같은 각별한 나라에 5만톤을 돈받고 팔아야 하는 현실에 미안하오"라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장제스의 속셈타령 하기전에 장제스가 은혜와 약속을 지키는 남자라는것에 더 무게를 싣는것이 합당하다.
사실 오키나와도 미국이 장제스한테 준다고했는데 장제스가 싫다고 해서
미국이 그냥 가졌다가 한참뒤에 일본한테 개평주듯이 넘겨준거다.
공짜로 땅 준다는데도 거른 머가리 빻은 짓거리뗌에 아직까지 짱깨들한테 욕처먹음
- ㄴ오히려 신의 한수다. 국공내전으로 중공이 가져갈 가능성이 커서 중국이 한반도를 포위시킬 수 있다
- ㄴㄴ류큐는 중공보다 머만에 가깝지않음?걍 머만꺼였을듯
- ㄴㄴㄴ류큐는 대만섬과는 다르게 규모가 작아서 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ㄴ 그리고 류큐는 원래 독립국이 맞았고 장제스가 말한거도 그거였다. 다만 오키나와인이랑 미국이 볼때 자립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봐서 좆본에 붙여논거
그래도 일뽕 전체주의 왕징웨이보단 이새끼가 낫다.
이새끼때보다 왕징웨이는 중일전쟁기간에 대아시아주의 목적으로 일본에 튀어서 중화민국 유신정부를 세웠으며, 집단 따돌림에 대해 장제스는 매우 엄격히 처벌했지만, 일뽕 왕징웨이는 피해자 정신이 썩어빠졌기 때문이라는 막말을 퍼붓는 쓰레기였다.
그런데 이거 가지고 빨갱이 중국이 우리에게 뭔가 원하는듯 말하며 이용하지만 그전에 서해 동해 남해에있는 해적선 수좀 줄이고나서 얘기하던지
중공이 장제스 갖고 우리가 니들 도와줬네 하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 물론 대통령니뮤는 별 생각이 없는거 같다. 저번에 중국 가셔서 김산이 대장정 참가했다고 언급하셨다는데 김산이 못된똥, 캉성이 주도한 정풍운동의 희생자인건 모르는듯
그리고 장제스가 한국 많이 도와준건 맞다. 조선의용대 기껏 지원해줬더니 '일부'(사실 절반)가 먹튀하고 화북지대 만들어서 중공에 붙었을 때도 극대노만 하고 조선의용대 지원은 유지해줬는데 이정도면 존나 사정 많이 봐준거다.[7] 애미뒤진 일뽕새끼 똥글 반달했다.
가끔씩 군대 통수권을 안주려했다는거로 빼애액대는 미친 국뽕들도 있는데 자국 내의 무력집단을 통제 안하려고 하는게 이상한거다. 게다가 장제스는 늘 군벌한테 시달렸으니 독립적 무장집단이라면 노이로제 걸렸을거고
ㄴ 이게 '니 집에서 살면서 니 돈으로 생활할거지만 나한텐 조금이라도 간섭하면 안된당께?' ← 이거랑 뭐가 다르냐? 국뽕들은 제발 양심 좀 챙겨라
반대로 생각해서 머만이 점령당하고 중화민국인들이 한국으로 피신왔다고 쳐보자. 이양반들이 한국 정부한테 지원받으면서 한국에서 무력집단 유지하는 주제에 지들 작전권 통제받는건 싫다고 하면 그걸 냅둬야하냐?
항일전쟁 지도자[편집]
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이 문서는 너를 울게 만듭니다. 이 문서는 너를 울릴 수 있는 감성팔이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서를 읽기 전에 눈물부터 쏟으시길 바랍니다.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ㅠㅠ 이 문서를 보고 광광 우럮따 8ㅅ8 |
파일:불쌍.png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장제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안타까울것이 결국 중국 전국이 군벌로 나뉘어 사실상 조각조각난 꼴이였던걸 똑같이 일개 군벌 수준이었던 남쪽 구석에 쳐박히던 국민당을 억척스레 이끌어가 내전을 거쳐 군벌들도 다잡아가는 판에 일본이 쳐들어와 일본군과 죽도록 싸워 끝끝내 이겼건만 장제스의 국민당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전쟁하는 동안 히히덕거리며 지들 세력 키워온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결국 막타갈겨 낼름 중국을 쳐먹어버렸다.
그래봤자 그와중에 좌파탄압은 오지게 해대는 미친 파시스트라서 민심 다잃었다. 장제스빠들의 감성팔이에 넘어가지 말자 ㅉㅉ
ㄴ 아따 우덜 공산당은 국공합의 위반하고 설쳐도 오케이지만 느그덜 국민당은 우덜 탄압하면 안된당께? 그리고 좌파 지식인 새끼들 장제스 시절에는 아가리라도 놀렸지 중공 집권 후에는 아가리도 못놀렸다. 그나마 중일전쟁때는 국가비상사태니까 계엄이 정당화되기라도 하지 ㅅㅂ
특히 두웨성(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주선하신 분이다.)이 이끄는 청방들과 손을 잡고 상하이 쿠데타로 성인 미성년 가릴거 없이 쬐금이라도 빨간물 들었다 싶으면 즉석에서 포승줄로 묶고 공개처형시켰다. 희생자들 중에서는 그 유명하신 루쉰 센세의 제자들도 섞여있었다고 한다.
ㄴ 상하이 쿠데타는 27년이라 중일전쟁이랑은 큰 상관 없다
참고로 장제스와 손잡고 상하이에서 학살을 자행한 이 청방이라는 조직은 오늘날의 삼합회 조직들의 모태이다. 이 새끼들이 왜 장제스랑 손을 잡았냐면, 빨갱이들이 자기 아편 사업 독점권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마약 카르텔이랑 손을 잡고 도시를 휩쓸고 다녔다는 뜻이다.
└왜 위태롭게 만들었냐면 빨갱이새끼들이 자금원으로 아편팔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요샌 공산당이 아편때려잡았다며 역사세탁중이다. 정권잡은 다음엔 때려잡았지. 자금원이 해결됐으니
ㄴ 이건 상하이 노동자를 둘러싼 공산당과 청방의 경쟁 관계와 관련이 있다. 청방 조직원들은 상하이 노동자들과 고용주 사이에서 현장감독(foremen)을 먹고 노동자를 착취했는데(뇌물 요구는 기본이고, 청방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이들이 개입한 공장에 취직할 수 없었다), 노조 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을 자신들 세력으로 포섭하고자 하는 공산당의 특성상 이들은 당연히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산당은 노동자 감독하는 청방 조직원들을 "자본주의 앞잡이"로 간주하고 공격했다. 이런 적대관계로 인해 청방은 당연히 장제스가 속한 국민당 우익 쪽에 들러붙었고, 상하이 쿠데타 당시 얼씨구나 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상하이 소시민들이나 부르주아지, 조계 당국은 평소 잦은 시위를 일으키던 공산당 때문에 치안의 위협을 느끼고 있어서 청방의 백색테러를 사실상 방조했다.
군벌들간의 전국내전-중일전쟁이란 초유의 위기 속에서 버텼건만 마지막 국공내전을 못 버텨서....
졸지에 조각난 중국을 통일하고 외세의 침략을 몰아낸 중국의 명실상부한 국부가 눈앞이었는데 애미뒤진 마오쩌둥이 그걸 쳐먹었으니 죽쒀서 개준격.
씨발 국공합작을 해서 함께 싸웠니 어쩌니 하며 공산당은 자위하지만 현실은 국민당이 일본 바짓가랑이 붙들고 죽도록 쳐맞으며 처절하게 버티는동안 뒤에서 돌멩이나 가끔 던져주며 놀던 수준이였는데.
최근 들어선 국민당도 한몫했다는 점은 인정해준다. 00년대 후반이래로 나온 진링의13소녀, 첩혈고성 등의 작품을 보면 이해할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국민당측 병사들의 항전을 그려낸 것이다. 다만 그래놓고 결론은 결국 국민당이어서가 아니라 중화민족의 항일정신이라고 끝낸다는게 문제지. 뭐 틀린말은 아니긴한데 어디까지나 후에 공산당으로 전향한 국민당 인사들이 참전한 전투만 인정해준다. 따라서 리쭝런이 처음으로 야전에서 일본군을 줘패버린 타이얼좡 전투는 평가가 후하지만 진짜로 국민당이 박터지게 싸웠던 우한, 창사, 창더 등의 애미없는 공방전은 그런 싸움이 있었대드라 수준이다. 그리고나서 지들도 선전할게 없으니 여성으로 구성된 유격대원들이 마지막 한 발까지 쏘고 사로잡혀 떼씹을 당할 것 같으니 손에 손잡고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혹은 우리네 육탄n용사 마냥 수류탄으로 자폭한 유격대원 이런 역사적으로 별 영향을 못끼친 개인적 사건들이나 자랑해대고 있다. 진실은 유격대가 배달의기수 신파물 찍는 동안 국민당은 우한 전역에서만 일본군과 양군 도합 140만이 참가해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며 힘에 부친 쪽국이 독가스를 뿌려야 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우한이 함락당하자 패배 1년만에 39년 동계대공세라는 대륙의 남다른 스케일을 보여준 반격작전까지 펼쳤다. 우한 남쪽의 창사에서는 양측이 전쟁 내내 4번의 공방전을 펼치며 지옥도를 그려냈다. 결국 창사는 함락됐지만 다음 길목인 창더는 동양의스탈린그라드로 불릴 정도로 시가전에서 사람 목숨이 물쓰듯이 날라가고 있었다. 이에 대비해 공산당이 자랑하는 주요 전투는 기껏해야 연대급 선발대 털어먹은 평형관 전투나 동원규모만 많지 산발적인 전투만 일어난 백단대전 정도?
환난사변 같은 지들이 통수치다가 걸려서 떼죽음 당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 안하거나 아니면 갑자기 국민당이 통수를 쳤다라는 소리만 한다. 분명한건 이 사건은 국공합작 내용에 의하면 공산군이 들어가면 안되는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한 마디로 정해준 나와바리 무시하고 남의 영역에서 멋대로 설치다가 걸려서 꺼지라고 한 소리 듣고나서는 계속 간보다가 벼르고벼르던 애들한테 쳐맞은 사건이다.
ㄴ하지만 국민당새끼들도 그 병력갖고 거의 고기방패밖에 못한볍신들임 그리고 장제스빠들은 정말로 공산당이 한게0.0000001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미 국공내전 전에 팔로군은 실전으로 단련된 뛰어난 게릴라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그냥 놀았다고 할수는없다 코랑탕방지 모택동개새끼!
ㄴ그 병력으로 고기방패 밖에 못했다고 하는데 당시 중국에겐 그게 최선이다. 아직 내셔널리즘도 제대로 안 박힌데다 전근대 농업국가 수준에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리 없는 군벌 군대와 여러 잡군을 구성된 중국군이 모랄빵 안나고 버틴게 대단한거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보급과 사기가 종범이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이미 무수히 많은 전쟁사에서 증명되었다. 멀리 갈거 없이 독일의 낫질 한번에 가버린 프랑스군과 이탈리아군 20만이 영국군 3만에게 발린 콤파스 작전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전쟁은 농업 국가 중국과 아시아 제일의공업 국가 일본의 전쟁이다. 싱가포르 전투에서 봤듯이 좆병신 치하도 꼴에 전차라고 영국군 알보병을 상대로 승리했다. 또한 일본의 전투기와 항공기는 중국 하늘을 호령하며 충칭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중국군도 전투기와 전차의 중요성을 알고 전쟁 나기 전부터 열심히 긁어 모아봤지만 일본군에 비해서 성능과 기량 면에서 전부 딸렸고 초반에 독일에서 수입한 1,2호 전차가 상하이에서 노획당하는 등 피해가 커서 중후기에는 투입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제스와 국민당은 이 전쟁을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장제스가 직접 키운 60사단 계획에 따라 만든 일본군에 뒤지지 않는 독일식 신식 사단과 소련군 교리를 가르친 황푸군관학교 출신의 장교들을 항전의 중심을 활용했다. 이중 장성급 인원 200여명이 일본과 싸우다 전사했다. 또한 8년 동안 옌안 동굴에서 처박힌 못된똥과 달리 장제스는 직접 전선을 시찰하고 험프 루트를 목숨걸고 건너 항일 의지를 고취시켰다. 군벌들도 장제스 없으면 누가 항일전쟁 이끄냐고 했을 정도다. 오히려 중국은 연합군이 되고 프랑스와 영국이 주요 물자 루트인 하노이와 버마에서 빤스런하고 스틸웰 똥꼬집으로 인해 더욱 힘들어졌다. 국민당은 전근대수준 국가를 이끌고 300만 좆본군을 대륙에 묶고 말기에는 반격도 가하는 등 정말 국가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가서도 계속 싸우며 할일을 다했다.
ㄴ 그 실전 경험이란게 일본이랑 싸운게 아니고 좆제스네 유격대 족친게 대다수라는게 문제다
ㄴ 못된똥, '7할은 세력확장, 2할은 반장, 1할은 반일'
ㄴ 중일전쟁에서 팔로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펼친 최대의 활약은 백단대전인데 정작 못된똥이는 백단대전 왜 했냐고 펑더화이랑 주더한테 한소리 함. 국민당하고 일본이 싸우는 틈에 기생충처럼 지들 세력 키우는 게 못된똥이의 목표인 만큼 진짜 일본하고 싸우는 건 못된똥이 그린 빅픽쳐에서 존나 쓸모없는 짓이었으니까.
우리 모택똥이 일본한테 고급정보 주고 중국인 팔아먹었으니까 빠따 스탬프 8888조대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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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내전 이후[편집]
사실 국민당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야 정상이었다 일단 본토와 떨어진 타이완섬으로 이주 했으나 사실상 대륙을 장악한 중국공산당이 맘만 먹으면 금방 뚫을 수 있었으나 중간에 한국전쟁, 티베트 독립운동, 베트남 전쟁, 중월전쟁, 중인전쟁, 중소 국경분쟁 등등 중국 내외에서도 워낙 복잡한 일이 터져서 미루다 미루다 여기까지 왔다 물론 지금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여론,외교가 매우 안좋아 질테니 어떻게 보면 노오오오력을 했으나 타이밍이랑 운이 안따라준 것에 대한 신의 선의일수도 있다.
대만으로 튀어간 뒤에는 실드의 여지가 없는 인간도살자 새끼이다. 대만 본성인들을 대량 학살하고 무차별로 탄압했다. 2.28 사건을 알아보도록 하자! 마오쩌둥보다는 스케일이 작을 뿐 짱깨는 다 똑같나보다. 대만독립론자들은 장제스와 국민당을 중국발 어그로꾼 취급해서 니네나라로 꺼지라고 한다.
전형적인 후기 주화입마형 인물이다. 이 점은 모택동과 존나게 닮았다. 물론 흑화한 시절은 모택동이 더 빠르다. 나름 유능했고 촌구석 국민당을 중국의 지배자로 올라서게 했지만 주변에 패권을 노리는 새끼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군벌 새끼들이야 지들 영지를 발전시킨 나름 실력있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딴 지방을 넘어서 넘사벽 스케일인 중국 전체는 다른 레벨의 이야기였는데 비전도 없는 새끼들이 내가 하면 너보다 더 잘한다라며 끊임없이 시비를 털어댔다. 그때마다 에라이 정치안할랜다하며 던지고 어디 니가 한번 해봐라 모드로 나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알못새끼들이 일 저질러 놓고 내빼면서 헬프를 때렸고 결국 돌아와서 소방수 역할을 한게 점점 쌓이다가 결국 흑화하고는 독재자가 되어부렀다. 국공내전 당시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완전 흑화의 길에 들어섰고 장제스가 죽을때까지 대만의 계엄령은 안 풀렸다. 그리고나선 뒤끝이 작렬하여 대륙시절 자기한테 엿먹인 놈들을 데려다가 진짜 미운 새끼는 자기 죽을때까지 가택연금시켜버리든가 아니면 대만 바깥으로 못나가게 하든가 아니면 일거수일투족 감시받으면서 살게하든가 대만으로 미처 못 데려온 관계로 끝까지 뒷땅을 까고 밖에서 주둥이만 터는 새끼들은 증거는 없지만 사고사로 위장해서 암살했다라든가 등등을 했다. 마지막 평타만 치면 뒈질 몸이었던 공산당의 메르시 역할을 한 장쉐량이가 바로 가택연금의 주인공으로, 시안 사건 직후부터 시작해서 국부천대 당시 잊지않고 수송선에 태워 뫼셔간 후에 무려 1937년부터 1993년까지 근 60년을 대만에서 쪽도 못쓰고 이렇게 당했는데 그러고도 8년을 더 살아 2001년 103세에 사망했다. 노친네들 나이먹고 남은게 시간 밖에 없어서 그런가 싸움 한번 지독하게들 허네...
장제스 : 씨123발 쉐량아 형이 대륙 잃고 가진게 시간밖에 없다. 누가 먼저 뒈지나 해보자
장쉐량 : 내가 더 오래 살았다
2.28에 대해 조금이나마 쉴드를치자면, 당시만해도 장제스의 관심사는 대륙이었다. 덤으로 장제스는 섬짱깨 본성인들을 좆본에 붙었던 기회주의자 정도로 인식했다.[8] 국민당 지휘부라는 인간들의 생각이 엇비슷했기 때문에 대만 관리하라고 보낸 천이[9] 라는 새끼는 본성인들 탄압했고 본성인들은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천이는 이걸 친일파 기회주의 매국노들이 중공에 붙은거라고 보고했고 이에 장제스는 강경진압을 지시한다. 물론 총책임자, 인사권자가 장제스란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여담으로 천이는 이후에 중공에 붙으려다가[10] 장제스한테 발각되어서 총살당한다.
2.28 사건이 한국에서는 그닥 유명하지 않은 이유가 명백한 친일시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제스가 친일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이후 본성인들의 친일 여론은 더 극단화되었고 현재 민주진보당이 친일정권인 이유이다. 즉, 대한민국의 운동권의 경우 반일친중성향을 띠지만 대만의 운동권은 정 반대로 친일반중성향을 띤다는게 결정적으로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을 비롯한 한국 좌파들과 민주진보당이 그닥 좆목질을 하지 않는것도 이러한 이유때문. 차라리 자민당하고 더 친했으면 친했지
아무튼 이러한 대학살극때문에 아직도 2월 28일만 되면 중정기념관은 휴업한다. 2월 28일만 되면 동상이 테러당하기 때문. 빨간페인트 뒤집어쓰는건 이젠 기본이다.
근데 유물들 대만으로 반출해서 국립고궁박물원 세운건 잘한 짓이다. 문화대혁명만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대만 섬에 있을 동안 독재정치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탄압했을지는 몰라도 경제성장 하나는 잘 이루었다. 대륙 짱깨가 대약진이랑 문화대혁명으로 경제를 씹창내는 동안 대만은 1960~70년대에 높은 성장을 이루게 된다. 60년대 당시에 대만 섬의 1인당 GDP는 중국 본토랑 우리나라보다 떨어졌지만 7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중국 본토랑 우리나라를 압도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전체GDP나 1인당GDP 모두 2천년대쯤에 다시 재추월하지만 공산짱깨들은 1인당GDP 한정으로 아직 멀었다. 1인당 PPP 기준으로는 2020년 기준 무려 10위권대라고 한다.
비록 장제스가 대만 섬에서 독재자+학살자였긴 했지만 이 새끼 와 달리 좋은짓도 그럭저럭 많이 하였다는게 차이점이다. 당장 사람들 사는 모습만 비교해봐도 당시 대만인들은 싱먼리+닭애비+29만원 독재시기의 한국과 얼추 비슷하긴 했어도 최소한 굶어죽을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대륙은? 대약진운동 때문에 적게는 1천만, 많게는 8천만이 아사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걍 한국+북한의 인구가 죄다 아사한 수준이었고 추가로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문화 탄압을 함으로써 수많은 중국 문화가 유실되었고 중국은 진짜 광기로 가득찬 저주받은 땅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때 좆제스가 독재 정당화를 위해 했던 소리가 '내가 독재를 안하니 국민당 씹것들이 노무 부패했다. 그래서 빨갱이들한테 깨졌다.' 요거엿다. 물론 이 말은 좆제스네 국민당이 매우 부패했다는 근거로 빨갱이들이 잘 써먹었다.
유물 보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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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석이는 택동이와 피터지게 싸울때 근처 공산주의국가에서 문화재가 다 뽀개지는걸 목격하고 안전한 대만으로 문화재를 많이 빼놓았다. 그리고 국부천대때도 자금성에 있던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 29만점과 전국에 있는 유물 61만점을 싹 다 빼가서 대만으로 가져간다. 못된똥이 대만으로 튀는 장개석 일당을 격침시키려 했었으나 배 안에 유물들이 한가득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걍 냅둠.
ㄴ밑에도 나와있듯이 중공 해,공군이 너무 약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게 크다.
타이완도 충분히 융단폭격으로 몰살시킬수 있었는데 유물때문에 차마 그 지랄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근데 중공 공군은 그 때는 걍 뮤탈 수준이었고 해군으로 육군 상륙시키려해도 천조국이 대만해협에 7함대 배치하면 끝이었기에 대만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쳐발리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유물들을 빼돌린 이유는 장제스가 원래 지독한 국뽕충이기도 했고 민족주의자였다. 게다가 국가의 보물이 곧 정당성과 정통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에 온갖 값진 보물이란 보물은 다 빼돌렸다. 짱깨들 중에서는 이걸 장제스의 개인 욕심때문이라고 선동하는놈들도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장제스는 이걸 팔아서 개인 사리사욕을 늘리려한것도 아니고 오히려 개인 사비까지 털어서 유물을 철저히 보존했다.
얼핏보면 걍 단순히 중국 문화재만을 지킨거니까 그리 큰 업적은 아니라 생각될수도 있지만,모택동의 문혁탓에 중국사는 그냥 짜집기로만 알아낼수 있는 분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건,중국사가 미스테리한 분야가 되었다면 중공의 동북공정이 더 쉬워진다. 따라서 중화사상도 몇배로 강해졌을것이다.만약 개석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포함 주변국가들은 중공의 역사공정에 몇배로 시달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때 빼돌린 유물들덕분에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은 중국사 박물관으로 최고로 평가받고있으며 서양의 루브르, 대영박물관 수준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시된 유물들은 3개월마다 교체되는데 한 바퀴를 다 돌리려면 60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박물관 개장하고 단 한번도 똑같은 유물이 두번 전시된적이 없다고한다. 걍 1949년 이전의 모든 중국 역사는 여기에 다 있다고 보면 됨
여담으로 유물들 소유주는 대만정부가 아니라 중국 국민당이라고 한다. 장제스가 유물들을 빼돌릴때 중화민국 총통 자격이 아니라 국민당 총재 자격으로 빼돌렸기때문.
이 유물들은 중화민국의 정통성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대만의 목숨과도 같은 유물이라 대만 밖으로 절대로 반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중국 고궁박물원에서 대만 고궁박물원으로 유물들을 대여해주면서 "니들도 우리한테 유물 대여해라"라는 식으로 압박을 준 적 있었는데 대만에서는 워낙 통수를 잘치는 짱깨들이라 대여해줬다가 못돌려받을까봐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게 이 유물들은 "도둑맞은 유물"이라는 입장으로 언젠가는 다시 되찾아야하는 유물이라는 입장이다. 유물 소유주인 중국국민당은 걍 철저히 병먹금 중이고 민주진보당은 오히려 문화대혁명때 한줌의 흙으로 될뻔한것들을 우리가 보호해줬는데 고마워해야하는거 아니냐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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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 최후 목적의 하나가 조선을 도와 완전독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일은 아주 힘든 일이므로 한국 혁명동지들은 일심단결하여 복국(復國)운동을 완성하기를 희망한다 확실히 영국과 미국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장래 필경 쟁의(爭議)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한국(독립운동 세력) 내부에서 성심성의로 통일된 모습을 보이기 위한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중국도 이 문제(한국의 완전독립)를 쟁취할 수 있고 이 일에 착수하기도 쉽지 않겠는가. |
” |
— 카이로 회담 전 김구와의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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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혁명당 영수 김구 등을 만났다. 그들한테 내부 단결에 힘써 달라고 권하고 격려하였고 우리 정부가 주장하려 하고 있는 전후 조선독립 주장을 실현하는 데 협력해 달라고 했다. |
” |
— 장제스 일기, 카이로 회담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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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독립 문제에 대해 나는 특별히 루스벨트의 중시를 끄는 데 힘을 넣었다. 나는 루 씨한테 (조선 문제에 관한) 나의 주장에 찬동하고 도와줄 것(贊助)을 요구했다. |
” |
— 장제스 일기(194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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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혁명당 김구에게 불화(佛貨) 1억5000만 프랑, 미화(美貨) 20만 달러를 지원함 ~(중략)~ 우리 정부가 비록 가난하기는 하나 한국에 대해 어찌 후하게 대하지 아니하랴. |
” |
— 장제스 일기(1월 4일 ‘전번 주의 반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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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혁명당원들이 오늘과 같이 조국에 돌아갈 날이 왔으니 이것은 내가 (그들을) 받들고 세워서(扶掖) 이루어진 일이어늘 그 영광이 어찌 하느님을 빛내지 아니하랴. 그냥 기도할 뿐이오니,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기를! |
” |
— 장제스 일기(194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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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대륙을 아직까지 갖고 있었다면 그까짓 5만 톤이 아니라 55만 톤 정도는 거저로 주었을 것...한국 같은 각별한 나라에게 쌀을 돈 받고 팔아야 하는 것이 애석하다. |
” |
— 1963년 대한민국의 대흉년으로 쌀을 사러 온 김신과의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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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나이가 이제 80이 다 되어가니 아시아의 반공 지도자는 박 대통령이 이으시오 |
” |
— 1965 한중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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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편집]
둘러보기[편집]
역대 중화민국 국가원수 |
채영문 현 중화민국 대통령 (제26대) |
역대 중화민국 국가원수 | |||
대수 | 재임기간 | 이름 | 정당 |
---|---|---|---|
임시정부(1912년 ~ 1913년) | |||
임시대통령 | |||
제1대 | 1912년 1월 1일 ~ 1912년 2월 13일 | 손문 | 중국동맹회 |
제2대 | 1912년 3월 10일 ~ 1913년 10월 10일 | 원세개 | 무소속 |
북양정부(1913년 ~ 1928년) | |||
대통령 | |||
제1대 | 1913년 10월 10일 ~ 1916년 1월 1일 | 원세개 | 무소속 |
재임 | 1913년 3월 22일 ~ 1916년 6월 6일 | 원세개 | 무소속 |
승계 | 1916년 6월 7일 ~ 1917년 7월 1일 | 여원홍 | 진보당 |
대리 | 1917년 7월 6일 ~ 1918년 10월 10일 | 풍국장 | 무소속 |
제2대 | 1918년 10월 10일 ~ 1922년 6월 2일 | 서세창 | 무소속 |
국무총리 대행 | 1922년 6월 2일 ~ 1922년 6월 11일 | 주자제 | 무소속 |
직무복귀 | 1922년 6월 11일 ~ 1923년 6월 13일 | 여원홍 | 진보당 |
총리 대리 대행 | 1923년 6월 14일 ~ 1923년 10월 10일 | 고릉위 | 무소속 |
제3대 | 1923년 10월 10일 ~ 1924년 11월 2일 | 조곤 | 무소속 |
총리 대리 대행 | 1924년 11월 2일 ~ 1924년 11월 24일 | 황부 | 무소속 |
임시집정 | |||
제1대 | 1924년 11월 24일 ~ 1926년 4월 20일 | 단기서 | 무소속 |
총리 대리 대행 | 1926년 4월 20일 ~ 1926년 5월 13일 | 호유덕 | 무소속 |
대통령 권한대행 | |||
국무총리 대행 | 1926년 5월 13일 ~ 1926년 6월 22일 | 안혜경 | 무소속 |
총리 대리 대행 | 1926년 5월 13일 ~ 1926년 6월 22일 | 두석규 | 무소속 |
국무총리 대행 | 1926년 10월 1일 ~ 1927년 6월 16일 | 구유균 | 무소속 |
총리 대리 대행 | 1927년 6월 16일 ~ 1927년 6월 18일 | 호유덕 | 무소속 |
육해군대원수 | |||
제1대 | 1927년 6월 18일 ~ 1928년 6월 3일 | 장작림 | 무소속 |
국민정부(1925년 ~ 1948년) | |||
국민정부위원회 주석 | |||
제1대 | 1928년 2월 7일 ~ 1928년 10월 10일 | 담연개 | 중국국민당 |
제2대 | 1928년 10월 10일 ~ 1931년 12월 15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대리 | 1931년 12월 15일 ~ 1932년 1월 1일 | 임삼 | 중국국민당 |
제3대 | 1932년 1월 1일 ~ 1934년 1월 26일 | 임삼 | 중국국민당 |
제4대 | 1934년 1월 26일 ~ 1943년 8월 1일 | 임삼 | 중국국민당 |
대리 | 1943년 8월 1일 ~ 1943년 10월 10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제5대 | 1943년 10월 10일 ~ 1948년 5월 20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행헌 후(1948년 ~ ) | |||
대통령 | |||
제1대 | 1948년 5월 20일 ~ 1949년 1월 21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대리 | 1949년 1월 21일 ~ 1950년 3월 1일 | 이종인 | 중국국민당 |
직무재개 | 1950년 3월 1일 ~ 1954년 5월 20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제2대 | 1954년 5월 20일 ~ 1960년 5월 20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제3대 | 1960년 5월 20일 ~ 1966년 5월 20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제4대 | 1966년 5월 20일 ~ 1972년 5월 20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제5대 | 1972년 5월 20일 ~ 1975년 4월 5일 | 장중정 | 중국국민당 |
제5대(승계) | 1975년 4월 6일 ~ 1978년 5월 20일 | 엄가감 | 중국국민당 |
제6대 | 1978년 5월 20일 ~ 1984년 5월 20일 | 장경국 | 중국국민당 |
제7대 | 1984년 5월 20일 ~ 1988년 1월 13일 | 장경국 | 중국국민당 |
제7대(승계) | 1988년 1월 13일 ~ 1990년 5월 20일 | 이등휘 | 중국국민당 |
제8대 | 1990년 5월 20일 ~ 1996년 5월 20일 | 이등휘 | 중국국민당 |
제9대 | 1996년 5월 20일 ~ 2000년 5월 20일 | 이등휘 | 중국국민당 |
제10대 | 2000년 5월 20일 ~ 2004년 5월 20일 | 진수편 | 민주진보당 |
제11대 | 2004년 5월 20일 ~ 2008년 5일 20일 | 진수편 | 민주진보당 |
제12대 | 2008년 5월 20일 ~ 2012년 5월 20일 | 마영구 | 중국국민당 |
제13대 | 2012년 5월 20일 ~ 2016년 5월 20일 | 마영구 | 중국국민당 |
제14대 | 2016년 5월 20일 ~ 2020년 5월 20일 | 채영문 | 민주진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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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명은 장중정(蔣中正), 장개석은 자(字)다.
- ↑ 장제스는 유교를 종교라고 믿지않았다. 일종의 생활양식이라고 믿었다. 또한 이새끼는 나름 ㅅㅌㅊ로 양명학을 이해하고 있었다. 독재 정당화에도 잘 써먹음.참고로 양명학이라는 게 뭐냐하면 유교의 분파인데 유교를 유교탈레반으로 변질시킨 성리학의 안티체제로 나온 유교분파임.
- ↑ 이 새끼가 장제스를 쑨원에게 소개해준 놈이다.
- ↑ 국공내전에서 활약한 지휘관을 배출한 건 좋았지만 문제는 그때 활약한 중공 장성들도 여기를 나왔다는 거다.
- ↑ 중국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짱깨어의 방언격차는 반도의 방언격차를 아득히 뛰어넘어 한반도 방언 대 제주도 방언 격 그 이상으로 너무 달라 서로 못 알아먹는다
- ↑ 근데 사실 당시 상황을 보면 장제스가 진짜 호구 새끼가 아닌 이상에야 그냥 퍼줄려고 했을 리 만무하고, 이렇게 한국 독립에 기여를 했다는 점을 어필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근데 국공내전으로 국부천대 해버린 뒤엔 그냥 아낌없이 주는 호구행. 머한은 장제스를 기리는 의미에서 건국훈장을 주었다. 작아보일수도 있는데 뭐 우리가 대만보다 못살던 시절에 이거 이상으로 해줄 수 있는것도 딱히 없긴 하다.
- ↑ 하지만 김원봉센세 잘못은 아닌게 센세가 투병중이었나 저격당했나해서 자리비움 상태일때 조선의용대 내부의 몇몇 빨갱이들이 선동한거다. 화북지대 통제해보라고 윤세주 보내봤는데 이새끼가 중간에 뒤져서 도루묵됐다
- ↑ 100% 틀린말은 아닌게 본성인 새끼들이 2.28때 시위하면서 부른게 기미가요였다.ㅋㅋ
- ↑ 중공 장성 천이랑은 동명이인(사실 한자는 다른데 한국식 발음만 같음)
- ↑ 이새끼는 원래 탕성즈계 군벌이었는데 탕성즈가 국민당 통수치고 중공에 붙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