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왕후 김씨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억울합니다.
이 대상은 뭔지 모르겠지만 존나 억울합니다. 억울해! 억울해!

ㄴ이덕일 새끼 때문에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 받고 있다

조선의 역대 왕비
영조 원비
29대 정성왕후 서씨
영조 계비
30대 정순왕후 김씨
정조 비
31대 효의왕후 김씨


영조의 2번째 왕비다. 왕비로 간택되었을 때 15살이었는데 영조는 66살이었다. 참고로 영조가 정순왕후 할애비보다 5살 많았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노인네가 손녀뻘 여자애를 부인으로 들인거다. 사도세자 내외보다 10살 어렸고 손자 뻘인 정조와는 겨우 7살 차이.

정조의 업적을 다 깨부순 희대의 악녀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 이덕일이 주장한 음모론 때문이고 사실 정조와는 별로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음모론도 음모론이지만 붕당 정치나 탕평책에 대해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가르친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이다.

정순왕후는 왕실에서 왕후->대비->대왕대비 테크를 탔고, 정조 역시 세손->왕이 된 왕실의 큰어른들이다.

그리고 이들 시점에 붕당 정치는 지속적인 환국으로 인해 상당히 대립이 격해져서 왕실의 정통성에 타격을 줄 만한 상소나 주장들도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왕실의 큰어른들인 이들 입장에서 정통성에 타격을 줄 만한 주장을 하는 세력들을 자기편이라고 비호하는 건 그냥 같이 죽자는 자살골이나 다름없는 만큼 이 쪽으로는 정조도, 정순왕후도 선을 지키면서 정치를 해야 했다.

이들의 대립 역시 그 선 내에서 이어졌고, 설사 자신 편이라도 선을 넘는다 싶으면 서로 의논하던 기록도 있을 정도이다.

정조가 사망한 뒤에도 정순왕후는 정조의 정책의 대부분을 계승, 진행했으며 정순왕후가 폐지한 정조의 정책들은 이미 정조 생전에도 각종 부작용이 존재했던 부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