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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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진행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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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히틀러라는 콧수염 나치새끼가 폴란드 뺨따귀 때리면서 일으켰다. 이후 존나 커다란 빨갱이 한테 통수질 하다가 스탈린이라는 빨갱이한테 쳐맞는다.

한편 아시아에서도 쪽바리새끼들양키 뺨싸다구 존나게 맛깔나게 후리면 양키가 어버버 하고 협상 할줄 알고 덤볐다가 양키한테 핵폭탄 맞고 1945년에 항복하고 거대한 전쟁이 끝난다.

그냥 미국이 섬숭이새끼들 딱밤 치니까 머가리가 두쪽이나고 빨갱이가 존나 처맞다가 나찌새끼들한테 카운터 원투펀치로 턱뼈를 가루로 만든 전쟁이다 물론 유럽도 미국이 반은 해먹음

그 당시(1930년도)의 강머국들이 사실상 모여서 투닥거린 전쟁이라고 보면된다.


ㄴ 영상 다 날라갔다.


연합군 측 국가 추축국 측 국가 핀란드
미국(진주만 공습 이후) 나치 독일 핀란드
소련(독소 전쟁 이후) 이탈리아 왕국
영국 일본 제국
자유 프랑스 헝가리 왕국
중화민국 크로아티아 독립국
네덜란드 루마니아 왕국
벨기에 불가리아 왕국
노르웨이 만주국
폴란드 슬로바키아
그리스 이라크 왕국
덴마크 비시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왕국 몽강연합자치정부
브라질
남아프리카 연방
몽골 인민공화국
영국령 말레이시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영국령 호주
영국령 뉴질랜드
미국령 필리핀
벨기에령 콩고

ㄴ누가 핀란드를 추축국 쪽에 넣어뒀는데 핀란드를 추축국이라기엔 애매하다.핀란드는 독일이랑 편 붙은게 아니고 그냥 혼자서 소련이 싸웠기에 추축국이라기엔 애매하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지구 역死상 최악의 병림픽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남태평양에서 60여개국이 참전한 인류 역사상 최대 전쟁. 파시스트 돼지새끼 독일 중심의 유럽전역 전쟁과 옐로몽키 일본 중심의 태평양 전쟁으로 나뉜다.

1차대전에서 미국을 건드리는 국가는 좆된다는 걸 잠시 망각한 추축국에게 다시한번 진정한 의미의 참교육을 시전한 전쟁. 양차대전이라는 참교육을 받고 장도리로 대가리를 난타당한 것마냥 개박살이 난 독일은 그 후 다시는 미국에 도전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짱개국도 경제 성장하더니 예전 쪽본 및 나치 독일을 따라갈려는 기미가 보인다.

사건 연표[편집 | 원본 편집]

각 연도 문서에 잘 정리해 놓았다. 보고싶으면 보던가.

프롤로그

발단

8월 23일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맺고 9월 1일, 폴란드를 양쪽에서 따먹는다. 침공 소식과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지만 이 병신새끼들은 폴란드 따먹히는거 구경만 하면서 다음해 3월까지 대치상태만 지속한다

4월부터 독일은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침공하여 점령하고 5월에는 대육군이라고 자랑질하던 개좆씹랑스가 마지노선을 우회한 만슈타인에게 6주만에 독일에 따먹힌다. 이후 페텡을 국가원쑤로 하는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정부가 세워진다.

이제 혼자 독일에 대항하는 영국은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독일을 격퇴하고, 독일의 윾럽정복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이때 독일이 자랑하던 루프트바페가 스핏파이어를 위시한 영국 공군에게 강간당한다.

전개

영국을 못조지자 빡친 힛총통은 소련을 침공하여 자원을 다쳐먹기 위해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반 강제적으로 동맹에 끌어들인다. 남은 유고슬라비아는 영토가 갈갈히 찢겨 생지옥이 되고 이와중에 이탈리아는 그리스 괘씸하다고 쳐들어갔다가 오히려 머가리 두동강이 나서 힛총통 바짓끄댕이 매달려가지고 응디 독일 응디 뒤에 숨어가지고 형님형님형님 빽만 믿겠다를 시전, 그리스도 독일에게 따먹힌다.

한편 영국 북해에서 영국에 물자를 조달해주는 배들을 조지고 따먹기 위해 당시 최강의 전함이였던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위시한 함대가 출항한다, 작전 수행중 영국 함대와 해전을 벌이고 이 전투에서 독일은 전함 후드호를 격침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에 빡친 대서양에 있던 모든 영국 함대들은 비스마르크를 잡기 위해 주둔지를 이탈하면서까지 비스마르크 한년을 따먹기 위해 안달이 나버렸고 결국 프랑스 앞바다에서 갱뱅을 당하며 격침된다.

6월 22일 드디어 독일은 바르바로사 작전을 실행하여 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독소전쟁이 시작된다, 6월 22일 새벽 4시 300만에 달하는 독일군과 동맹군들은 북부집단군, 중부집단군, 남부집단군으로 나누어 소련을 침공한다. 독일은 민스크, 스몰렌스크, 키예프에서 소련군을 괴멸시키고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여 모든 보급을 끊고 항복할 때까지 포위전을 펼치기로 한다. 10월,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발트3국을 포함한 소련을 이루는 주요 공화국들을 점령하고 드디어 모스크바로 진격한다, 하지만 소련의 엄청난 추위로 진격이 더뎌져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한다. 한편 쪽숭이들은 천조 눈밖에 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천조가 보다못해 적당히 하라고 했지만 쪽국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계속 깝친다. 이에 미국은 결국 석유 수출 전면 중단이라는 강수를 두게 된다.

12월 6일, 일본은 미국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진주만 공습을 펼쳐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괴멸시킨다. 이새끼들이 공습한 이유도 가관인데 우리가 싸대기를 맛깔나게 후리면 쟤네가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겠노? 라며 다음날 개빡친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월클병의 조짐이 보이던 힛총통 역시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국도 참전하게 된다.

소련은 겨울동안 독일군을 격퇴하고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스탈린은 르제프를 전략적 요충지로 생각하고 이 곳을 탈환하기위해 여러차례 대공세를 가한다. 하지만 독일의 개쩌는 장군이 이 공세를 겨우겨우 막아내고,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으며 소모전을 지속한다.

히틀러는 소련 남부에 석유가 풍부한 코카서스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청색 작전을 실행한다, 남부집단군은 작전대로 코카서스를 공격하였고 독일 B집단군은 공장과 자원이 많은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 위해 이곳에 공격한다, 독일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련군들을 상대로 쉽게 점령해나가고 스탈린그라드 시내의 90%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소련은 독일군을 역 포위하는 겨울폭풍 작전을 실행하여 B집단군을 포위하는데 성공, 결국 독일군은 심각한 피해를 입고 붕쯔붕쯔 퇴각한다.

한편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일본에 복수하기 위해 둘리틀 중령이 이끄는 둘리틀 특공대를 만들어 일본 도쿄에 폭격을 가한다. 일본의 피해는 미미했지만 천황이 있는 도쿄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전 일본군과 일본 국민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일본은 이 폭격에 복수하기위해 항모가 포함된 함대를 이끌고 미드웨이로 향한다. 미드웨이 전투에서 초기엔 미국이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대부분의 뇌격기와 전투기가 격추되었다, 하지만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늦게 도착하여 기습을 가하고 5분만에 일본 항모인 히류, 소류, 아카기, 카가가 모두 강간당하는 미친 피해를 입고 빤쓰런친다.

절정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이 존나 갈려나가고 퇴각하자 잘 지키고있던 르제프를 포기하고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히틀러는 모든 전력을 쥐어짜 쿠르스크 돌출부를 포위하여 소련군을 섬멸하는 성채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하려하지만 작전실행일을 1달 뒤로 미뤄버려 소련군이 방어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줘버린다. 하여간 군사교육도 안받은 새끼가 운빨로 좆랑스 처먹으니 월클병이 발병한게 틀림없다. 아무튼 이 사상 최대규모의 전차전 끝에 독일은 방금 사정한 좆마냥 힘을 잃고 쭉쭉 밀린다.

7월 연합군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상륙하고 로마까지 밀고들어오자 이탈리아는 항복을 해버리고 전쟁에서 패배한다. 두체는 빤쓰런을 치다가 게릴라들에게 딲! 걸려서 탕탕이를 당하고 주유소 기둥에 거꾸로 매달리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 왕국은 좆망하고 괴뢰정부가 세워지는데 이 괴뢰정부는 독궈 통수치고 연합국 편에 서서 싸웠다.


태평양 전쟁에선 뭔가 굵직한 사건이 없다. 그리하므로 패쓰함.


연합군은 시칠리아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곳에서부터 밀고들어갈 곳이 필요했다, 연합군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 5구역으로 나누어 상륙작전을 전개한다. 북아프리카에서 좆뺑이치다가 복귀한 롬멜이 냄새를 맡고 아니씨팔 총통님 여기 안막아요?? 라고 했으나 월클병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힛총통은 대비를 오히려 칼레 쪽에 집중했다.(근데 이건 연합국의 연막작전도 꽤 컸다. 노르망디 치는건 ㄹㅇ 통수였음 ㅇㅇ) 결국 큰 대비를 하지 못한 독일은 파리를 버리고 도망쳤고 독일은 이제 서쪽에서 항공기 처보내서 졸렬하게 폭격질하는 자칭 신사새끼들과 동쪽에서 저그새끼마냥 처몰려오는 더러운 공산주의자 새끼들과 양면전선을 펼쳐야하는 상황이 된다.

여담으로 힛총통이 파리를 가질수 없다면 부수겠다라며 파리를 부술것을 명령하지만 파리 총독?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명령을 쌩깠다. 이사람이 아니었으면 ㄹㅇ 루브르 에펠탑 다 못봤을수도 있다. 파리가 불타는 걸 막은 이 총독은 전후 명예 파리시민증까지 받음

44년 겨울, 월클병이 심해진 힛총통은 갑자기 벨기에의 아르덴 숲에서 연합군을 향한 마지막 한타를 열자고 제안한다. 제정신 박혀있는 장군들은 차마 거역할 생각은 못하고 (이때 히틀러 암살미수 터진지 5개월 즈음이어서 까딱하다간 코로 맥주마시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전을 세워나간다. 초반에는 우세를 점했지만 연합군의 발빠른 대처와 날씨의 문제로 결국 동부전선에서 구르고 구른 정예병력까지 차출해 모아 열은 한타를 개처발리면서 독일의 패망이 가시화된다.


한편 태평양 전쟁에선 대한광복군의 첩자 렌야니뮤께서 임팔작전을 벌여 버마전선의 일본군을 궤멸시키는 쾌거를 이룩한다.

미드웨이에서 항모 4척이 터져나갔고 필리핀해 해전에서 항공전력이 개병신이 됐지만 정신을 못차린 쪽본 해군은 레이테만에서 한타를 다시 거하게 연다... 는 정규항모 3척 경항모 1척 전함 3척 순양함 10척 구축함 11척이 격침되고 항공기 손실 300여대에 사상자는 12000여명이 터지면서 확실히 조교당한다.


결말

미국은 일본군이 점령한 섬인 이오지마 섬을 점령한다. 이로 인해 일본 본토가 미군의 작전반경에 들어오게 된다. 미국은 이 섬을 이용하여 일본 전역을 통구이로 만들어버리고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까지 바싹 익혀버린다. 르메이 쉐프가 주도했던 소이탄 요리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한편 소련은 독일을 끝장내기 위해 폴란드까지 진격하여 베를린을 목전에 두게된다, 독일은 필사적으로 방어하였지만 소련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계속해서 밀려 베를린까지 따이려는 상황이 눈앞에 오자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결혼한 뒤 지하벙커에서 자신의 다른 자아인 아돌프와 육체의 주도권을 두고 007빵을 벌이게 된다. 안타깝게 히틀러가 패배하고 아돌프가 승리함에 따라 히틀러는 자살했다. 결국 제국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던 낫과 망치가 걸리면서 나치독일은 세워진지 50년도 안되어 멸망한다. 아무리봐도 천년을 갈것이라며 이빨까던 괴벨스가 존나 웃음벨이다. 아무튼 이로써 유럽전역은 끝이난다.

7월 미국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 미국은 소련이 참전하여 중요한 지역을 가져가지 않게 하기 위해 매우 빠르게 핵무기 투하 준비를 마치고 8월 6일에 히로시마, 8월 9일에 나가사키까지 찜질당한 일본은 15일 항복을 선언하며 신과 같았던 일본의 천황은 인간임을 선언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난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팽창주의, 인종주의, 파시즘, 반공주의, 민족주의가 일어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개판 이였다.

그 개판에서 귀신 같이 나와서 잠깐 근시안적으로만 복구 된 독일을 보여준 히틀러와 개짓거리 중인 무솔리니 만주 치고도 국제연맹 탈퇴하고 쌩까는 일본.

스페인내전 프랑코의 승리 등으로 파시즘이 대세가 되고 유럽과 미국은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볼려고 난리가 아니었음 거기에 침략 식민주의가 팽배하여 침략군끼리는 너도 나도 내편인 지금으로는 상상 할 수 없는 씹창적인 분위기라 독일과 소련조차 서로 불가침을 하는 둥 지금으로 따지자면 존나 나쁜놈들의 시대 였음.

미국[편집 | 원본 편집]

과잉생산과 경제주가 급등으로 인한 경제 대공황이 세계로 확대되었다. 위대하신 갓조국 주인니뮤가 터뜨린 몇 안 되는 병신짓 중 하나이다. 뉴딜정책으로 관뚜껑을 슬그머니 열어보는 중이었다.

경제가 복구중인 상황이라 진짜 유럽문제는 개입하기 더럽게 싫어서 처질이 쪼르고 쫄아서 영국 왕실까지 미국방문해서 제스처를 취해도 응 안해 시발아 하고 중립법 통과시킨 상황이었다.

유럽[편집 | 원본 편집]

연합[편집 | 원본 편집]

영국, 프랑스: 배타적 경제블럭 형성과 보호무역 강화로 경제 대공황의 재앙을 벗어나고 있었다. 프랑스는 그 유명한 마지노선을 독일과의 접경선에 건설한다. 로씨아도 있고, 스페인 내전 이후 파시스트 국가들이 대세가 되는 판도인 형국이라 전쟁은 피하고 싶었음. 그래서 독일 달래주고 선도 긋고 미국도 어떻게든 개입 시켜볼려고 끙끙대고 있었음.

소련: 타 국가와 교류가 없어 대공황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황임에도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 권력을 잡은 이오시프 스탈린 또라이 새끼가 나라를 신나게 말아먹는 중이었다. 병력 자체는 많았으나 스탈린이 군 지휘관들을 죄다 숙청시키는 바람에 군대가 수만 많은 오합지졸이라 세계적인 좃밥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공업화에는 성공하여 경제력만큼은 세계 2위까지 올라선다. 다만 그 공업화라는게 거의 드루의 천공의 교감과 과부하 주수리 수듄의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경공업 장애여서 생필품이 은근히 딸린다. 공업화에 성공하여 어느정도 군사력과 경제적 수준에서 안정을 느꼇던 소련은 폴란드 및 동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었으나, 유럽에 견제를 받고 있던 실정임. 이때부터 냉전의 뉘앙스는 지속 되었고 냉전의 예고라고 불리우는 독소 불가침 조약이 이뤄졌음.

추축[편집 | 원본 편집]

독일: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붕괴에 베르사유 조약의 족쇄까지 더해져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다.(단, 베르사유 조약 자체는 독일에서 계속 징징거리자 두번이나 대규모 빚 탕감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 자체가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라 경제 재건이 매우 쉽다.) 게다가 빨갱이들이 준동을 부리질 않나, 총리라는 놈은 지도 사회주의잔데 "나는 혁명이 싫어요오오오~!" 외치면서 빨갱이들이랑 현피뜰 수 있도록 나치스를 견제 안하고 둠.[1].그리고 최종적으로 국회(정확히는 내각)도 개판.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정국에 국민들은 절레절레를 외친다. [2] 쉽게말하면 오늘까지 더불어가 야당이었는데 내일되니까 새누리가 야당되있고 또 며칠지나니까 갑자기 황교안이 대통령되고..... 이꼬라지가 계속 났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배경삼아 나타난 나치아돌프 히틀러베르사유 조약 파기, 대독일 건설, 유태인 배척, 반공산주의 등의 구호로 독일 민중을 선동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병력 제한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군 병력을 간부화된 정예군으로 육성하였고 나머지 총알받이들은 그냥 전쟁 일으킨 뒤에 동원령으로 메꿨다고 한다. 또한 전쟁 수행을 대비해 비밀리에 소련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는데, 모두 알다시피 나중에 통수친다.


이탈리아: 1차 대전 때의 통수값, 흘린 피값에 비해 얻은게 존만하고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인해 파시즘이 퍼졌다. 결국 독일의 나치즘과 비슷한 파시즘을 가진 베니토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독일과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유럽의 헬조센답게 좀 병맛이어서 독일에게 별다른 도움은 안 됐다고 한다. 추축국 쓰리탑이라는 새끼들이 개 병신 좆만한 그리스한테 선전포고하고 쳐들어갔다가 쳐발려서 히틀러도 불알 탁! 치고 지옥에 있는 로마 머튽들도 통곡했단다. 참고로 얘네, 독일이 프랑스 줏어먹고 있으니까 그걸 보고 지들도 남프랑스 쳐들어갔다가 줫발렸다 ㅋㅋㅋㅋ

아시아[편집 | 원본 편집]

일본: 2차세계대전때 중국에 있는 독일령 땅 좀 먹으려다 강대국들한테 클레임먹은뒤 삐져서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는 데 이게 사실상 태평양 전쟁의 시작이었다. 양키들이 군축조약 맺었으니 이새끼들 병신이겠지... 하고있을동안 답이 없으니 캐리어갔다.


중국: 나라 머가리가 두쪽이나서 섬숭이한테 강간당하다 다시 두쪽을 합쳐서 1945년까지 섬숭이발목을 질질끌음. 이거 무시하면 안되는게 쪽국이 바다에 100만 원숭이, 대륙에는 저놈들이랑 싸운답시고 500만 원숭이를 풀어놓음. 즉 쪽국 병력의 5/6을 꾸역꾸역 쳐먹고 있었던게 듕귁.

전쟁의 경과[편집 | 원본 편집]

전쟁이전의 상황[편집 | 원본 편집]

1차 대전 말에 터진 1918 변종 독감(스페인 독감)이 1차 대전 종전이 되어서도 전세계를 휩쓸어 사망자를 많이 내었다. 이후 10년 뒤 머공황과 함께 유럽 강대국들은 사이좋게 우울증이 걸리게 된다.

1차대전 당시 전쟁의 공포도 우울증을 주는데 한몫 했지만, 유럽의 민주국가들은 더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게된다.

더군다나 대공황 여파로 군비를 대대적으로 줄여가면서 까지 나라 살림 재건에 힘을 쓰게되기때문에 국민이나 정부나 둘다 전쟁을 바라지않는 형태가 된다

그러나 당장 아무것도 없는 신 파시스트 국가들은 구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를 자신들이 지배하기 바랬고, 이는 구 강대국들과의 충돌이 불가피 하다는것이였다.

가장 먼저 유럽의 지옥불반도가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를 처먹으면서 약간의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식민지를 점령해도 서방국이 신경쓰지않는걸 확인한 독일은

라인란트,오스트리아,수데텐,체코를 차례대로 처먹게된다.

이렇게 까지 세력이 확장됨에도 불구하고, 서방국은 협정과 조약으로 평화를 유지할수있을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었고, 결국 이것은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만다. 특히 히틀러한테 수데텐을 존나 거저로 넘겨준 뮌헨협정 이후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우리 시대의 평화란 씹명언을 남겼다. 체임벌린이 한 수데텐을 넘겨주면 히틀러 욕심이 여기서 끝나겠지란 병신같은 생각의 끝은 당신이 아는대로.

동아시아에서는 1차대전당시 미국 다음으로 뽕을 잘 빨아먹은 일본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함께 메이지 유신때의 불평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곧 머공황과 함께 군부의 시대에 들어오게 되었고, 만주를 먹고 만주국을 만들면서 대놓고 중국을 먹을려는 야욕을 드러낸다.

그리고 바다건너 대공황의 직격타를 맞은 미국은 뉴딜정책으로 국가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지만, 루즈벨트의 뉴딜 땜질은 한계점을 드러내며 미국의 경제를 위기로 몰고있었다.

유럽전역 전쟁[편집 | 원본 편집]

9월 1일 독일군이 기습적으로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폴란드는 윽엨 거리면서 버팀과 동시에 영-프에게 전쟁 참전을 요구하고, 영-프는 동의하면서 '공식적'으로 영프가 참전한다.

허나, 실제로 영-프는 마지노 장벽 근처에서 그냥 윽엨 거릴뿐, 공세를 하지않았고 그 사이 폴란드는 소련과 독일에게 잔혹하게 짓밟히게된다.

폴란드가 짓밟힌후 조약에 따라서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한다.

애초에 독일 수뇌부는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확대될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었고 폴란드 전역 종료 직후의 소모가 의외로 커짐에 따라 독일군은 서부 전선에서 바로 공세를 펼칠 여력이 없었으며 상대방인 영프도 전쟁은 벌였지만 지난 대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먼저 움직이지 않기로 하면서 폴란드 침공 이후로 거진 1년이 다되가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은 이 기간동안 본격적인 전쟁으로의 길을 걷게 되었고 마침내 베저위붕 작전으로 일컬어지는 발트해의 주도권을 둘러싼 또다른 전역이 시작되면서 대전 초반기의 가장 극적인 국면이 시작된다.

독일측 해군의 상당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략적 목표는 모두 달성되었고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독일의 수중에 들어간 것으로 발트해의 전역이 종료되었다.

1919년 1차대전의 종전으로 부터 1939년 까지의 '전간기'라 일컬어지는 기간동안 프랑스는 지난 대전에서 입증된 방어의 우세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한 장비들은 드디어 기동을 통해 공세측이 방어군을 경우에 따라 압도할 수 있다는 전훈을 여러 곳에서 남겼고 독일은 재무장 이후로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을 통해 기동전을 실시할 충분한 기반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1차세계대전에 개발된 전차는 아직 그 운용의 개념조차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에 당장은 전선에서 분산배치 되어 보병의 적 방어선 돌파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대전 말기에 보병, 포병, 전차, 항공기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제병합동의 수준까지 도달하면서 몇몇 장교들은 전차의 기동성에 주목하게 되었고 분산배치가 아닌 전차를 한 곳에 집중한다면 적의 방어선 한 곳을 찢어발기고 그 틈으로 들어가 적의 종심 깊은 곳으로 들어가 지휘부를 휘젓거나 아니면 또다른 방어선 배후로 들어가 정면과 협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고 이렇게 전차를 이용한 현대 기동전 교리가 출발했다.

이러한 기동전 교리는 특정 국가가 아닌 여러 국가의 군부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결론적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실전으로 가다듬은 독일과 소련이 가장 먼저 이러한 전훈을 채택함으로써 본격적인 기동전 테크를 타기 시작했다.

한편, 마지노선으로 대표되는 프랑스군의 일관된 방어전략은 독일의 유력한 침공로로 예상되는 벨기에 지역에서도 예상되었으며 실제로 프랑스 군부는 '딜 계획'이라고 불리우는 유사시 연합군의 벨기에 진출 후 방어를 상정한 작계를 세워두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은 조공을 벨기에 부근에 배치하고 위장공세를 펼치게 하여 연합군이 벨기에로 우루루 몰려오게 판을 짜고 마지노 선 부근에도 2선급 사단들을 배치하여 프랑스의 방어병력을 묶어놓는 한편 벨기에와 마지노선 사이의 아르덴 고원을 주공의 침공로로 삼아 전선을 돌파한 다음 그대로 벨기에 후방 지역으로 보내 벨기에로 진출한 연합군을 포위하고 섬멸할 작전을 입안하였고 이것이 '낫질 작전'이다.

연합군이 벨기에가 주공인 것으로 오판하게 하기 위해서 조공 또한 충분히 강력하여야 했으며 주공은 돌파의 선봉이 될 기갑군이 숲 지대를 넘고 후방으로 상당한 거리를 기동해야 했기에 어느 하나라도 틀어지면 작전 전체가 엎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벨기에의 요새 지대가 공수부대의 침투로 의외로 손쉽게 넘어갔고 폴란드와 발트해 전역에서 경험치를 쌓은 부사관과 장교들이 엄청난 역량을 발휘하면서 모든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낫질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포위망 안에 영국의 몇개 안되는 상비사단과 프랑스 병력의 3분의 1이 갇히게 되자 연합군은 일대 패닉에 빠져버렸고 이들은 장비고 나발이고 다 내팽개치고 됭케르크 항구로 몰려가 군함이건 수송선이건 어선이건 닥치는대로 올라탄 끝에 그나마 적지않은 인원들을 아슬아슬하게 후퇴시키는데 성공한다.

아직 프랑스는 3분의 2의 병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난 대전에서의 끔찍한 희생이 아직도 국민들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그러한 상황에 대규모 병력과 장비가 증발 해버리자 그대로 모든 전의를 상실해버렸고 결국 그 한 방으로 프랑스 3공화국이 나가리가 된다.

프랑스 정부 대다수는 전쟁 중지를 원했기에 히틀러와 조약을 맺고 남부 지방에 괴뢰 정부를 세우게 된다.

독일은 이제 다음 국가인 영국 공격을 준비하지만, 영국의 해군력과 공군력을 뚫고 공세를 펼칠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융단폭격같은 초토전술로 영국인들에게 공포를 심어줄려고 한다.

허나, 영국 공군은 성공적으로 독일의 초토전술을 견디고 역공에 나선다.

그 사이 독일은 소련지방의 유전과 곡창지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찝쩍거리고 있었다.

허나 이탈리아군이 역으로 그리스에게 당하자, 히틀러는 유고슬라비아-그리스를 전격전으로 무너뜨리면서 점령해버린다.

이때 써버린 2달은 독일군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운 두달일 것이다.

그리고 1941년 6월 22일

독일과 여러 파시스트 국가의 자원병들로 구성된 독일군대는 기습적으로 소련을 침공하게 된다.

조직적이고 빠르게 국경선의 군대를 무너뜨리면서 독일군은 전진한다.

소련군은 교리도 후달렸고 흔히 독소전이라 하면 드는 생각과는 달리 이 시기에는 심지어는 병력까지도 후달렸으나 바게트와 다르게 거칠게 저항하고, 조국 전쟁 당시의 전략인 초토화전술을 역시 쓰면서 뒤로 빠지게된다.

독일군은 몇백킬로미터를 달려와도 불타는 마을밖에 볼수없었으며, 포장 도로따위없는 러시아의 영토에서 전진속도는 급속도로 느려터지게 진행된다.

그러나 독일 참모부는 총통이 원하는대로 계속해서 달릴수밖에 없었다.

각 집단군은 3개의 목표가 존재했는데 각각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지방 이였다.

모스크바가 목표이던 중부군은 총통이 원하는대로 모스크바까지 전진했지만, 총통은 '모스크바는 상징일뿐 우크라이나 지방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말과 함께

우크라이나 지방의 정리를 위해 중부군 일부를 때서 남부군으로 보내게된다.

결국 중부군은 전력이 약체화된 채로 전격전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남부군도 오데사를 기점으로 빠르게 밀고나간다.

그러나 자연이 전격전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러시아 특유의 가을비로 인해 형성된 라스푸티차로 인해 전진이 이제는 아에 안되다 시피 진행된다.

이 사이 소련군은 방어를 탄탄하게 준비하고 방위전에 돌입할 시간을 얻는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되자 땅이 얼면서, 다시 전진이 진행된다. 허나 이번에는 월동준비가 안된탓에 전투력이 극도로 약화된 채로 모스크바 공방전에 돌입해버린다.

공방전은 참패하고 독일군은 대대적으로 후퇴하게된다.

비슷한때 아프리카에서는 롬멜이 이탈리아군대를 돕기위해 파견와서, 전격적으로 밀고나가서 제 1차 엘 알라마인 전투에서 승리하고 토브룩까지 먹어버리자 히틀러의 과대망상증을 부추기게 된다.

히틀러는 롬멜이 아프리카 지역을 밀면서 소련 남부를 돕고, 소련 남부는 그런 롬멜과 연결되기 위해 코카셔스 지방을 침략한다. 라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게된다.

결국 이 작전은 진행되고, 소련 남부와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군이 쭉쭉 밀기시작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롬멜이 영국군의 숨통을 죄어왔고, 소련 남부지방은 전격적인 독일의 공세에 스탈린그라드까지 밀리게된다.

허나 허황된 꿈을 과격하게 밀어붙인 대가로, 소련군에게 약점을 노출하게 되버렸고 스탈린그라드에 꼬라박힌 독일군대는 양 날개였던 루마니아, 헝가리 군대가 궤멸되면서 포위당하고 만다.

히틀러는 포위가 진행되는 초기에 괴링의 말을 믿고 후퇴를 금지시키나, 결국 상황이 악화되자 파울루스 (당시 스탈린그라드 6군 사령관)을 원수로 진급시킨다.

독일의 원수는 항복하지 않는다 라는 이 말을 행동으로 이행하라는 암묵적인 압박이였지만, 파울루스는 보란듯이 항복한다.

스탈린그라드의 대패이후, 총통의 파시스트 진영은 조금씩 총통에 대한 불신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총통은 다시한번 대규모 공세가 성공해야 진영이 안정화될것이라고 믿었고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이어진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 당시 독일 사령부가 위치하던 자포리자까지 포포프가 지휘하는 기갑군의 약 40만 내지의 소련군을 궤멸시키면서 훌륭하게 방어를 성공한다(하르코프 전투). 이로인해 소련은 다시금 충격을 받게 되었고, 쿠르스크 아래 진격로가 공백상태가 되고 나서 독일군이 야금야금 먹어서 남게 된 툭 튀어나오게 된 쿠르스크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독일 수뇌부는 이 쿠르스크에 밀집된 소련군을 포위섬멸하고자 쿠르스크로 진격하기로 결심한다.

지연전을 꺼려하던 만슈타인의 성격과 다르게 만슈타인은 쿠르스크 북부와 남부에서 진격하여 소모전을 펼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나, 그전에 이미 쿠르스크는 주코프의 지휘 아래 굳건한 방어선과 충분한 방어, 예비 병력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탈리아에서 연합국이 상륙하면서 부담이 커진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쿠르스크는 강제적으로 판이 닫히게 된다. 이때 쿠르스크 전투는 역사상 가장 큰 기갑전이었다.

그때 아프리카 전선은 이미 무너졌었다.

롬멜이 빠르게 밀고나갔었지만, 몽고메리가 막고, 길어진 영토때문에 보급로가 늘어나서 보급이 원할해지지 않았고, 케셀링이 보내주는 보급 물자와 병력들도 타란토 공습 등으로 우세를 점하던 영국 해군이 공격하여 격추시키면서 어쩔수없이 독일군은 후퇴한것이다.

한편, 그때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과대 망상증이 이루어 질수없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그를 몰아낸 참이였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구출하고, 무솔리니는 북부 이탈리아에 다시 파시스트 정부를 세우고 연합국과 싸우기 시작한다.

이제 독일은 더이상 대대적인 공세보다는 강력한 방어에 치중하는 전술로 1944년까지 버티기 시작한다.

허나 아직 물량과 인력이 남아돌던 연합국과 코민테른은 오버로드 작전(노르망디 상륙작전), 마켓가든 작전(연합군의 패배로 끝났다.), 바그라티온 작전,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리비우-산도미에시 공세, 비슈와-오데르 작전(베를린등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파리가 탈환되고 민스크,키에프가 탈환되는등의 큰 성과를 얻게된다.

서부 연합군이 지크프리트 방어선을 돌파하고, 소련군이 드레스덴을 침공하면서 이제 사실상 독일땅에서 전쟁이 진행되었으며, 히틀러는 이들을 막기위해 국민척탄병을 창설한다

모든 젊은이는 군대로 동원되었고 총통을 위해 죽어야했다. 독일이 모델(총통의 소방수라 불렸다.) 원수를 필두로 남은 병력들을 모아 벌지 전투(아르덴 공세)에서 서부전선에서의 도박을 꾀했지만 결과는 씹창이 나면서 독일의 생명줄은 더욱 가늘어져가기 시작했다.

이제 젊은이도 없다. 히틀러는 국민돌격대를 창설한다.

모든 남자는 군대로 동원되었고 이들은 이제 베를린에서 발악하며 싸우게 되었다.

전쟁 말 베를린에서는 모스크바에서 보던 풍경이 재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소련군이 이 악물로 막았던 것처럼, 독일군도 이 악물고 막았다.

독일군이 전차와 압도적인 포격으로 모스크바를 위협했던것처럼

소련군도 전차와 포격으로 베를린을 줘팼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고, 베를린에는 결국 붉은 깃발이 걸리게 되면서 유럽전선의 전쟁은 끝이나게 된다.

유럽전선의 사상자는 약 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여담으로 독일이 원래 처음으로 항복한 날은 1945년 5월 7일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서부진영에게만 항복하고 소련에게 항복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으며 당시 소련 눈치를 보고 있었던 서부진영 장교들은 좆까라며 칼 되니츠에게 유대인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한 신문지 몇장을 쥐어주고서 쫓아냈다. 하지만 그 하루동안 1만명 가까이 되는 독일인들이 서부진영에 투항했다. 서방진영놈들도 미래를 내다보고 계산할 꺼 다하고 빠꾸시킨거다.

요약시켜드림[편집 | 원본 편집]

떡국의 블리츠크릭 -> 불란서 발림 -> 이탈리아 아프리카 어택땅 -> 연합군 발림 -> 역전-> 이탈리아 스멀스멀-> 동부전선에서 마침 개쪽남 -> 야 이탈리아 지켜라 후퇴

-> 소련군이 앞에서 치고 연합군이 뒤에 폭탄드랍 떨굼 -> 소련군은 열심히 남자는 노예로 여자는 창녀로 부려먹으며 전진 -> 폭탄드랍했는데 씨발좆같은 포도밭(이해안되면 50m*50m 격자로 철조망과 바리게이트가 빽빽하게 있다고 보면 쉬움)

-> 버벅거리다 독일군이 반격 -> 했지만 개처발리고 연합군 압승-> 베를린 소련군이 점령

태평양 전쟁[편집 | 원본 편집]

우리가 알다시피 쪽본은 육군 해군 대본영 연합함대 이렇게 4개의 머가리를 두고있었는데, 해군은 육군의 순조로운 중국 줘팸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자신들도 뭔가 전과를 세우고싶어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비시 프랑스의 베트남을 일본이 가져간것을 빌미로 abcd 포위망을 가동시키며 고철과 원유 수출을 막자 일본은 당장 90%의 원유를 잃게된다.

위기가 오자, 군부는 미국의 해군을 함대결전으로 박살낸후, 동남아의 원유 생산지대, 고무 생산지대를 점령해 자원을 충당하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외교적 회담이 몇번 오고갔으나, 미국은 일본은 더이상 신뢰하지않았고, 일본도 더이상의 회담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결국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게 되었고, 미국은 이 날을 치욕의 날로 규정하고 세계대전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전날, 일본의 대규모 육군과 수상함대는 홍콩,필리핀,동남아시아등을 공격하기 위해 보낸다.

그리고 단 4개월만에 동남아시아 전역과 버마지역, 필리핀을 손에 얻게되면서 원유와 고무를 공급받기 시작한다.

이는 예측하던 것보다 지나치게 빠른 승리였고, 심지어 히로히토는 "승리의 과실이 우리 입안으로 너무 빨리 들어오고 있소" 라는 말까지 남겼다.

어쨋든 진주만에서 기습받은 직후 전함이 한척도 없던 미군은 항공모함으로 승부를 짓기로 결심하고, 항모 생산에 박차를 가함과 동시에 항모 전술을 연구한다.

이후 얼마뒤 미국의 둘리틀 특공대에 의해서 도쿄가 공격받고, 해군은 미국 기동부대를 파괴하기 위해 미드웨이에서 승부수를 띄운다.

하지만 이미 알고있던 미군은 역으로 일본의 항모부대를 파괴시켜버렸고, 일본은 4대의 항모를 잃고 후퇴한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전함보다 항모가 효율적임을 알게된 해군은 전함 시나노를 항모로 바꾸었고, 신형 항모 취역을 서두르게 된다.

이후 과달카날등지에서 미해병대와 일본군간의 치열한 교전이 펼쳐졌고, 일본군은 결국 패배한다.

그사이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전사하고, 일본은 전선의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판단, 절대국방권을 만들어 전선을 축소시키로 한다.

이후 미군은 안전한 필리핀 탈환을 위해서 필요한 재해권 확보를 위해 일본 기동부대와 교전, 여기서 일본 기동부대는 상당수의 함재기와 파일럿을 잃고 후퇴한다.

이후 사실상 깡통으로 변한 기동부대는 레이테로 진입하는 연합함대의 미끼로 전략한다.

레이테는 어처구니없게 실패하고, 시부야 해에서 무사시까지 잃게된다.

이후, 미군은 차근 차근 태평양의 섬을 제압하며, 오키나와 문턱까지 다가오고, 일본군은 야마토를 고정포대로 쓰기위해 오키나와로 보내게된다.

야마토는 오키나와로 가던 도중 미국의 함재기들에 의해 격침된다.

그뒤, 미국은 사용 가능한 함선이 있을것을 우려해, 구레 대공습을 진행하고, 도쿄 대공습도 진행시킨다.

하지만, 일본은 계속해서 옥! 쇄! 를 부르짖으며 죽창을 들고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었는데, 더 많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결국 핵무기 두발을 투하를 결정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는 파괴되었으며, 일본은 항복한다.

태평양 전쟁의 사상자는 약 3000만명라고 한다. 짱깨가 드럽게 많이 죽음.

중일전쟁[편집 | 원본 편집]

태평양 전선을 열게 만든 계기이자 2차세계대전을 전세계로 뻗게 만든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당초 1937년에 시작했으니...

만주국을 처먹고 중국까지 욕심을 냈지만 당연히 서양놈들의 외교적 압박을 받고 있으니 전쟁을 먼저 시작할 계기를 만드려고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킨다. 루거우차오 사건은 한 병사가 한밤에 없어져 그냥 실종처리해버리고 중국이 어찌했다고 주장했다.

탈영한 병사는 갑자기 나타나 똥사느라 늦었다고 했고 그냥 넘기는 헤프닝인가 싶더니 무다구치 렌야가 공격명령을 하였고 중국 전역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상하이 전투, 난징대학살, 국민당 분열 등 엄청난 사건등이 있으나 알아서 정리바람.

참고로 2차세계대전에서 대부분 유럽전선 태평양 전선에 할애되어 연구되고 있었고 그냥 중국이 일방적을 처맞았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으나

최근 서구측이나 중국 정부나 중일전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계속 주구장창 처맞고 있었다는 편입견은 없어졌지만

군벌이나 졸렬한 지도력을 해결못한 국민당의 병신짓은 어찌해도 커버하지 못한다.

공산당이랑 국민당이 국공합작을해 같이 일본을 물리치자고 하였지만 국민당만 열심히 싸웠지 공산당은 국민당이 일본에 정신에 팔려있는 사이 뒤에서 야금야금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결론은 모택동이만 이득본 전쟁

민간인 피해[편집 | 원본 편집]

독일의 유대인, 집시, 장애인, 똥꼬충, 민간인 학살, 일본의 짱깨 대학살과 점령지역 여성들의 성노예 동원, 미국의 도쿄 대공습과 핵폭탄 사용 등 군인들이 하는 전쟁답지 않게 민간인 피해가 엄청난 전쟁이었다. 2차대전 기간동안 총 2500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다른 피해[편집 | 원본 편집]

이 계기로 인간의 정신나간 행동의 도를넘은 포악함과 미개함의 극치를 보여준 전쟁이다. 멀쩡한 자연 반토막 박살나고 관계없는 동식물 까지도 다 씨말리고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전쟁. 사실상 인간은 지구의 세균 덩어리

전후 세계질서[편집 | 원본 편집]

신비한 티비 서프라이즈에 크게 기여한 전쟁이다.


핵보유에 의한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시대가 시작되었다. 전세계의 모든 식민지가 순차적으로 독립되었다. 근대 사회가 종말을 고하고 현대 사회가 시작되었다.

UN이 만들어지고 주요 승전국들이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질 조금했다고 승전국;;)

ㄴ 프랑스는 레지스탕스라도 했지 . 난 중국 뙤놈들이 상임이사국인 동시에 승전국인게 더 이해 안가더라

ㄴ 중뽕 거르고 중일전쟁 했잖아

ㄴㄴ 그러면 뭐하냐? 국민당 군대 중일전쟁 하는 동시에 공산당 때려잡겠다고 개겨서 결과적으로 삽질도 똑같이 했는데

ㄴ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 새끼들은 1년도 못가서 항복했잖아 레지스탕스? 응 그거 규모도 좆도 안되고 전황에 별로 영향끼치지도 않음 ㅅㄱ

ㄴㄴ 좆랑스 솔직히 과대평가되는거 ㅇㅈ 좆랑스 하루빨리 상임이사국 내려놔야...

ㄴ중공 이 미친놈들은 국민당군이 헬본군한테 처절하게 처맞고 있는 와중에도 전쟁은 됐고 혁명이 먼저다라는 논리로 국민당의 통수를 시도 때도 없이 쳤다. 이런 중공이 대륙을 처먹게 되다니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ㄴ 중화민국은 소련이랑 비슷하게 2천만 인명손실 내면서 일본군 수십에서 수백만 중국 본토에 묶어놔서 미국이 수월하게 태평양 섬 밟아가며 조질수 있었으니 나름 밥값은 했음.
생색 오지게 냈지만 임시정부 도와주고 한국 독립문제 연합군한테 의제로 상정 시킨것것도 임정도와준 인연으로 짱깨석이 한거임.

ㄴ 그리고 그 자리를 낼름 뺏어먹은게 지금의 공산당 짱깨지


프랑스는 1차대전때 잘 한거랑 , 그동안의 영향력을 고려해서 먹은거지

그리고 중일전쟁 주로 한거는 국민당 대만이었는데 섬으로 도망가고나서는 너무 약해서 공산당 중국이 먹게되었다

프랑스는 됭케르크에서 영국으로 철수한 병력 + 드골이 식민지에서 이리저리 끌어모은 병력으로 나름 만 단위 병력은 굴렸다. 그리고 당시의 프랑스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열강이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되지.

인류사 최대 전쟁[편집 | 원본 편집]

1945년 종전 이후 74년동안 아직까지도 세계 최대의 전쟁이다. 물론 냉전때 미국과 소련이 전면전했으면 핵전쟁이니까 지역전 , 대리전만 한거다

미국이 베트남한테 , 소련이 아프간한테 졌다고하는데 그런건 까놓고 말해서 인권이랑 괴뢰국 설립이 목적이니까 따지면서 국제사회 눈치보며 전쟁해서 그렇지

눈돌아간 미국 소련이 민간인 학살 좆까고 수도 대도시에 그냥 다 폭격해버리면 베트남이랑 아프간은 제공권 제해권 병신이라서 지금쯤 베트남은 미국의 좆집으로 아프간은 러시아 좆집으로 살고 있었을거다

개병신 트롤 집단 이탈리아[편집 | 원본 편집]

이탈리아는 유럽의 말랑말랑한 아랫배다.

윈스턴 처칠. 이탈리아를 조롱하며.

이탈리아의 병신같은 짓은 독일의 기운을 쪽쪽 빨아먹어줬다. 아프리카에서 13만명이 털리지는 않나,그리스 침공했다가 역으로 쳐발리고 그 덕에 독소전이 더 늦게 개전되질 않나,시칠리아 상륙 당하고 이탈리아 상륙까지 당하지는 않나,역잘알이 아니라서 더는 모르겠다만 최소 잘한 짓은 하나도 못본거 같다.

독일을 쪽쪽 기운 빨아주고 지는데 한목 했으니 어쩌면 고마워해야하지 않을까싶기도 한다.

이 트롤짓만 한 이탈리아는 독일에서도 병신으로 보는것 같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책을 보던중 (짭 말고 찐 나의 투쟁)존나 낄낄 거리면서 본 내용이 있다. 나치놈들이 이태리의 병신 짓을 깐 내용이다.얼마나 병신 같았는지 5페이지나 까주고 있다.

다음은 나의 투쟁 중 내용으로,한글자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옮기겠다.

이제껏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감정적인 문제를 뒤로하고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두체(무솔리니)와 나의 굳은 우정과 동맹국 이탈리아에 대한 성의는 오산이었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보아도 명백히 이탈리아와의 동맹은 우리 독일보다 적군을 도운 일이 많았다. 그 뒤로 일어난 무수한 어려움에 비하면 이탈리아 동맹이 준 이익은 매우 적다. 만일 우리가 끝내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이탈리아에게도 책임이 크다. 이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역할은 전투에 참가하지 말아주는 것이었다. 이 불개입만 지켜주었더라면 우리도 이탈리아가 매우 고마웠을 것이며, 값진 선물도 잊지 않고 챙겨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멋대로 날뛰지 말고 방관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해 주었더라면 우리는 많은 구체적인 보상으로 고마움을 전했으리라. 그리하여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이 승리의 영광과 성과를 추축국 동지인 이탈리아와 아낌없이 나누었을 것이다. 고대 로마의 후예들이 조상들의 역사적 신화였던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여 온 세계에 선언하도록 기꺼이 협력했을 것이다. 이 모두를 다 주어도 이탈리아를 동맹국으로 대접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었으리라.
솔직히 말해 동맹국 이탈리아는 우리 발목을 잡을 뿐이었다. 이탈리아 때문에 우리는 북아프리카에 새로운 정책을 펼 수 없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이 지역을 바라는 사실은 분명했고, 두체(무솔리니)도 이 요구만큼은 언제나 빼놓지 않았다.
이탈리아가 세누시 교단에게 자행한 잔혹한 행동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게다가 오만한 두체(무솔리니)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스스로를 '이슬람의 검' 으로 축복케 하여 비웃음과 분노를 일으켰다. 이 칭호는 예언자 무함마드나 정복자 오마르에게 걸맞은 것이다. 그럼에도 무솔리니는 매수와 억압이라는 수를 써서 몇몇 고관들이 자신에게 칭호를 수여하도록 강요했다. 우리에게 관대한 친이슬람 정책은 너무나도 마땅하고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산되었다. 대체 우리가 이탈리아와의 동맹으로 잃은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이 전쟁의 무대에서 우리가 가진 최고의 패를 내지 못하게 방해한 존재는 다름 아닌 이탈리아였다. 우리는 프랑스 보호령에 있었던 모든 나라의 독립 을 선언하고, 영국에 억압받는 지역 주민 모두가 반란을 일으키게 하려 했다. 이 정책만 시행되었다면 이슬람 국가들 모두가 감동했을 것이다.
군사적인 부문에서도 수지가 맞지 않았다! 이탈리아가 싸우면 거의 반드시 적국에게 첫 승리를 안겨주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 승리에 힘입어 처칠은 자국민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으며, 친영국적인 지역 전체가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아비시니아(에테오피아) 와 키레나이카에서에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힘도 없는 주제에 무모하게 그리스 원정을 시도했다. 그들은 우리 말을 듣지도 않았고, 한마디 의논도 없었다. 이는 완전히 무의미한 전투였다. 이탈리아군의 꼴사나운 실패는 발칸 반도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결과를 불러왔다. 베오그라드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끝내 1941년 봄에는 전환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모두가 이탈리아의 무모한 행동이 원인 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발칸 반도에 무력 개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서 안타깝게도 러시아 침공은 뒤로 늦추어졌다. 그 밖에도 우리의 우수 사단의 전투력이 불필요하게 소모되었다. 끝내 우 리는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광대한 땅을 점령해야만 했다. 이런 예상 밖 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굳이 그곳에 우리 부대를 배치하지 않아도 좋았으리라. 발칸 반도의 나라들도 우리 제3제국(나치 독일)에 대해 어느 정도 호의적인 중립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고, 나도 우리의 급강하 폭격기나 낙하산 부대를 코린트나 크레타가 아닌 몰타 제도와 지브롤터[3]에서 쓰고 싶었다.
만일 이 전쟁이 추축국 (독일과 이탈리아) 의 것이 아니라 독일 혼자만의 전쟁이었다면, 우리는 1941년 5월 15일에 러시아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으리라. 전면적이고 압도적인 승리와 진격으로 의식이 고양되었던 우리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동부전선의 전투를 마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때 두체(무솔리니)가 보여주었던 태도를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한 감사로,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 비판적으로 판단하기를 삼갔다. 오히려 언제나 이탈리아를 대등한 상대로 여기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생존의 법칙은 진정 대등하지 않은 존재를 대등하게 다루는 것이 크나큰 실수임을 입증해 주었다. 두체는 나와 동등했다. 국민들에 대한 야심은 나보다 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야심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정의 구현한 전쟁[편집 | 원본 편집]

추축국이라는 거대한 악을 때려잡은거 외에도 이 전쟁 이후로 제국주의가 몰락하게 되었다. 식민지 똥수저인들에게 있어서는 진정으로 정의 구현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들을 악랄하게 착취하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같은 식민제국들이 이거 한방으로 본토가 전쟁터가 되고 나라가 쑥대밭이 된 끝에

더 이상 식민지들을 유지할 여력을 잃어버리고.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된다.

그와중에 프랑스나 네덜란드 같은 악랄한 놈들은 악착같이 식민지 유지하려고 식민지 똥수저인들을 벌집핏자로 만들고 그랬으나

오히려 역효과만 나고 존나 두들겨 맞은 끝에 죽창으로 정의구현 당했다.

영프는 그나마 낫지 벨기에 네덜란드는 잘살긴 하지만 기존 식민제국 시절에 비하면 초라하게 몰락했다. 국력만 놓고 보면 옛날에 서양 열강에 네덜란드가 무조건 끼던거에 비해 지금은 G20조차도 못드는 쩌리국가가 되었다.

다만 이거 가지고 똑같은 제국주의였던 쪽본 새기들은, 지들이 제국주의를 해체한 성전이었다고 개드립치고 있다.

정신승리 ㅇㅈ합니다

ㄴ좆본이 왜 그렇냐면 시발 지들도 좆같았던건 알았더든 쿠데타로 군부 들어왔긴 했는데 무능함은 극에 달하고 무능하다고 찔러보면 애미뒤진 공포정치펼치고 완전 막장이었다. 수뇌부나 군관련인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면 좆같은 군부 강제개햏당해 뒤졌으니 지 자식새끼 전쟁통 안보내도 되고 군수물자 만든다고 뺑뺑거리지 않아도 되니까 좋았겠지 뭐.

ㄴ 이래서 맞은 놈만 억울하고, 때린 놈은 발 뻗고 잘 잔다는 소리 나오는 거지

제 2차대전 일본의 패망의 이유와 일본이 참전하게된이유[편집 | 원본 편집]

먼저 일본은 메이지유신 으로 서부의 문화를받아 신식건물,공장등으로 대량생산하기 시작하게됐고 경제이념을 독점자본주의로 넘어가게 됐다.

독점자본주의는 생산규모가 어마어마 하게 많아서 수요보다 공급이많아지니 식민지가 필요해졋다.

이 식민지는 영국이 에스파냐 같은 나라를 친것처럼 약탈의 목적이아닌 고객을 목적으로 하는 식민지인것이다. (물론 그 당시 좆본 새끼들은 약탈욕이 꿈틀대는 게 종특이어서 나중 가면 사실상 약탈형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일본이 대한제국에 오자마자 하는게 딱 두가지다

회사령,토지조사서

토지조사서로 쌀을 가져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의 생산 물품을 팔기위해서다 한반도는 쉽게 점령하엿지만 중국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 도시는 다 점령이 됐지만 촌을 먹지못해서이다.

그리고 장제스,마오쩌둥 국민당,공산당이 국공합작을 하여 일본을 견제햇다.

그러니 전쟁은 장기전으로가고, 장기전으로 가다보니 한반도에는 남면북양(남쪽에는 면을, 북쪽에는 양을 키움)으로 군인들 옷,식량을 배급하게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중국과의 장기전으로 목재,석유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목재,석유를 조달하기위해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려고한다.

그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는 유럽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많았는데 2차대전 유럽에서의 전쟁때문에 공백지대였다. 근데 여기서 필리핀이 미군식민지 엿던것이다 그곳에 있던 장군이 맥아더장군이다. 그당시 기술로 미본토에서 한번에 필리핀으로 가지못햇다. 그래서 한번 거쳐가야 하는곳이 하와이 즉 진주만이다 그래서 진주만 공습을 하고 조달에 성공한다.

미국이 석유인가 제재도 하지않던가

이때까지 일본은 미국이 전면전을 선포할꺼라곤 생각도못햇다 왜냐하면 유럽전쟁에 참여하지안고 무기를 팔며 평화주의 노선을 취하고있엇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이 워낙 병신같이 저질러져서 미국이 바로 선전포고를 하고 전면전으로 들어갔다. 미국이 산업시설 40프로를 군수물자로 돌려버리기 시작하니 탱크가 시간당 60대가 생산되고 전투기와폭격기는 2차대전 기간동안 백만대 이상이 생산될뿐더러 항공모함이 141대나 생산되는 연금술을 보여주었다.

근데 일본도 나름자신감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큰 전함 야마토함도 갖고있엇고 기동력이좋은 제로센도 갖고있엇기 때문이다.

근데 역시 미국을 이기기엔 무리엿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주력 항모가 다수 침몰하고 중국에선 고전하고 그러다가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로 만든 원자폭탄을 실험해볼 기회가 생긴것이다. 그래서 나가사끼 엔 팻맨을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를 터트려 일본은 패망하고 항복하고만다.



연합군의 수호신[편집 | 원본 편집]

무다구치 렌야

테오도어 모렐

도미나가 교지

스기야마 하지메

이탈리아군

ㄴ 이탈리아군은 유대인 박해도 거의 하지않았고 독일군이나 일본군과 같은 점령지에서의 대량학살 또한 거의 하지 않았다.[4] 최종적으로 추축국이 기운 빠지게하는 졸전도 능수능란 했으니 가히 연합군의 수호신이라 칭할만 하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제 1차 세계대전

전간기

폴란드 침공

태평양 전쟁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투
사이판 전투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
임팔 전투
람리섬 전투
솔로몬 해전
사마르 해전
진주만 공습
도쿄 대공습
리틀 보이
팻 맨
몰락 작전

독소전쟁(동유럽,동부전선)

바르바로사 작전
바그라티온 작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레닌그라드 전투
모스크바 공방전
부다페스트 공방전
베를린 공방전
쿠르스크 전투
세바스토폴 전투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서부전선(서유럽)

영국 본토 항공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베를린 대폭격
아르덴 공세

아프리카 전선

엘 알라메인 전투
타란토 공습

중일전쟁

가짜전쟁

겨울전쟁

만주 작전(8월 폭풍 작전)

할힌골 전투

스페인 내전

냉전

UN
상임이사국


각주

  1. 빨갱이들이랑 나치들이랑 국회에서도 싸운게 아니라 거리에서도 싸움. 사병같은게 있었음
  2. 그래서 요즘은 이걸 막기 위해서 건설적 내각 제도라고, 다음 내각과 총리,국회가 구성되기 전까지 의회 해산이나 총리 옷ㅇ벗어!(내각 불신임)를 못함
  3. 그 당시 스페인의 맨아랫쪽 왼쪽에 있는 좆나 작은 영국령 땅.
  4. 사실 전쟁범죄도 이겨야 하지 맨날 쳐발리니까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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