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2단원 III. 동아시아의 사회 변동과 문화 교류 4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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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편집]

좆본은 임란동안 조선에 엄청난 물자와 인명을 쏟아부웠는데 뭐 제대로 얻은게 없었다.

도자기 제조기술 등을 줏어왔는데, 전부 사치품들이라 전쟁으로 개피본 일반 백성들의 민심을 다독일 건덕지가 없었다.

거기서 나온게 바로 통신사.

에도 막부는 '일본이 이겼다!'라고 백성들을 속여야 했고, 그 발상으로 조선통신사를 요구해왔다.

막부는 통신사를 '항복사절 및 조공사절단'으로 꾸몄던 것이다.

좆선은 좆본년들의 동향파악을 유지하기 위해 외교 사절을 보내기로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조선 기록을 까 보면 이 사절을 '통신사'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 측에서 조선의 외교 사절을 '조선통신사'라고 기록한 거다.

실상[편집]

당시 일본은 중국과 조선을 중화문화권의 핵심부 국가로 여겼고(오늘날 서유럽과 미국을 보듯), 두 나라 백성들을 똑같이 '당나라 사람'이라 불렀다.

즉 조선의 사절단이란 '우리 일본이 선진 중화를 제압하고 중화국가인 조선의 조공을 받은DEATH!!!'라는 좆본의 유구한 정신승리로 포장된 것이었다.

또한 막부는 전쟁없이 다이묘들의 경제력을 고자로 만들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 결과 조선통신사에게 엄청난 돈을 쳐바르도록 하기 위해 에도로 통신사가 들어오는 과정에 대접을 융숭하게 하도록 유력 다이묘들에 강요했고, 통신사가 지나가는 길의 다이묘들은 늘 재정파탄의 위기에 몰렸다.

막부의 노력의 산물[편집]

즉 통신사는 도쿠가와 막부의 고도의 정치적 술책의 산물이었고, 이 덕분에 호전적인 일본 다이묘들은 조선인들의 주둥이에 산해진미를 쳐넣느라 죄다 거지새끼로 전락해 양국 정부는 무려 250년 이상을 화평하게 꿀빨며 지내게 된 것이다.

또한 막부의 노력에 대한 유명한 사례가 하나 있다.

에도막부가 완숙기에 접어들면 슬슬 좆본판 국뽕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한 좆본의 국뽕학자는 '너희 조선인들이 막부와 대등외교를 하니 니들은 좆본 천황의 신하다. 니들은 우리보다 격이 낮은 것이다. 라는 논리를 펼쳐서 조선인들을 열폭하게 만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쇼군은 국뽕학자를 잡아와 효수해버렸다(!)

죄목과 별도의 실제 이유는 '왜 손님들 기분을 좆같이 만들어 씹년아?' 였다고 한다...

수혜자[편집]

소 요시토시가 가장 이득을 봤다.

원래 소 요시토시의 영지인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의 중간에 있어서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가려면 여기를 무조건 지나가야 했는데 그 때문에 조선 통신사는 소 요시토시한테 "길 안내좀 잘 해 봐라"라는 이유로 금이나 은으로 꽉 찬 상자를 줬다.

소 요시토시는 조선 통신사가 올 대마다 공짜돈이 생기기 때문에 매우 싱글벙글했고 아주 신이 나서 조선 통신사의 똥꾸멍을 아주 잘 빨았다.

일방적인 선진문물 전파의 장[편집]

은 아니었다.

조선이 가장 잘 나갔다는 세종대왕 시절의 기록조차 일본을 배우자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다음 기록을 봐보자.

수차 사용법이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데리고 간 김신에게 그 원리를 알아보게 했는데, 일본 수차는 물이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수차가 저절로 돌아가면서 물을 퍼올려 논밭에 물을 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내나 강은 물살이 약하기는 하지만, 일본 것과 같은 수차를 만들어 발로 밟아 물을 퍼 올리면 두레박을 사용하는 것보다 힘이 크게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수차의 모형을 그려 보내니, 그 모형을 본따 수차를 만들어 사용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면포나 미곡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동전을 사용하기 때문에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도 식량을 갖고 다니지 않고 동전만 허리에 차고 길을 떠난다.또, 길가에는 여행자를 위해 잠자고 먹을 수 있는 집을 설치해놓고 여행자를 손님으로 맞고 있다. 여관 주인은 받는 동전의 가치에 따라 사람과 말에 편의를 제공한다. 강과 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강과 내에 배를 잇대어 다리를 만들어놓고 건너다니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 생활하고 다리를 보수하는 비용으로 사용한다. 일본은 토지세부터 다리 통행세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전을 사용하는데 익숙해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노고를 할 필요가 없다.

일본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목욕을 해 항상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욕실이 있고 마을마다 목욕탕이 있어 주민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물 끓이는 사람이 호각을 불면 사람들이 동전을 내고 목욕을 한다. 우리도 제생원, 혜민국 등과 같이 의료기관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통교와 지방의 의원 등에 욕실을 설치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고 또 돈을 사용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일본의 상가는 상인들이 각기 자기 상가 처마 아래로 널빤지로 진열대를 만들어놓고 그 위에 물건을 진열해놓아서 먼지가 묻지 않고 손님이 물건을 보고 쉽게 고를 수 있다. 진열된 물건은 신분의 귀천 없이 누구나 살 수 있다. 조선의 시장은 마른 물건이나 젖은 물건을 구별해 진열하지 않고, 생선이나 육류 또는 채소를 모두 흙바닥 위에 두고 팔고 있어, 행인들이 물건 위에 앉기도 하고 물건을 밟기도 한다. 이제부터 종로에서부터 광통교까찌 상점 처마에 보첩을 달고 보첩에 단을 만들어 어느 칸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표시를 해 손님이 쉽게 물건을 보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종 실록 11년 12월 3일-


상공업과 화폐경제 발전에 있어선 일본이 오히려 한 수 위였음이 보인다. 임진왜란 한참 이전의 세종시절조차 말이다.

물론 상공업과 화폐만으로 두 나라의 문명을 모두 판단하는건 애미뒤진 좆일뽕이나 할법한 짓이다.

주자학이나 지방 행정력은 조선이 넘사였다.

그까짓 쓰레기 유학따위 앞서서 뭐하냐고 반문할 테지만 에도시대 일본도 조선만큼은 아니어도 유학을 국시로 삼고 매진하던 나라라는걸 잊지말자. 굉장히 중요했다. 거기다 지방 행정이나 법도 중앙집권화가 잘된 조선과 비교해서 체계적이지 못했고 사실상 하늘이 심판해준다 수준이었다.

뭐 아무튼 조선통신사는 넘사벽 대조선이 병신 좆본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내려준 그런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근데 한국의 사학계는 마치 고대 삼국시대 도래인이 일방적으로 죠몽인들 계몽한 것처럼 조선통신사를 그렇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좀 고쳐야 한다.


문명에서도 교역하면 서로 과학력 높은 놈이 상대한테 과학력 퍼주고 문화 높은 놈이 상대한테 문화 퍼주는데 조선은 과학력을 혜택받고 일본은 문화력 혜택받는 거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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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내 눈! 으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ㅏㅏ아ㅏ아햏햏햏 아햏햏


조선이 딱히 과학력 혜택 받은건 없었다. 그냥 가서 우와아~ 했을 뿐이지 쥐뿔도 배워온건 없고 그리고 멸망했다. 반면 좆본은 이시기 배워간 주자학 등이 후일 좆본 존왕양이론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했고 이는 훗날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다.(절대적인 영향력 이딴건 아니고)

좋은건 배우는 나라와 우왕아 한번 하고 끝내는 나라의 차이점이 어떻게 역사에서 서로 다른 결말을 이끌어 냈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테고

조선의 문화력이 높다는 것은 황당한 소리다

일본은 이미 난학이라 하여 네덜란드 학문을 받아들이고

중국의 학풍의 넘어서 자신들만의 학문체계를 구축하면서

국학이니 화풍(和風)이니 하며 일본우월주의학문을 꽃피웠다

그에반해 조선은 학문의 통로가

청나라책 수입하는게 고작이였고

실학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것이며

현대한국에서 식민사관 극복하고자 만들어낸

허상이다

ㄴ크으 그래서 그 주자학을 완성시킨 나라 어디? 그리고 대놓고 난학 좆까고 난학자들 조지던 에도 막부의 태도는 또 어디다 팔아먹었냐? 조선 통신사가 돌아다니던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에도 막부도 유교탈레반이었던 건 빼먹는 일뽕 퀄리티 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