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나라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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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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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대대로 중국 사천지방을 일컫는 말

촉(蜀)[편집]

황하 문명과는 별개로 춘추시대부터 사천지방에 존속했던 국가로서 삼성퇴 유적 등으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수백년을 인근 진(秦)나라와 밀고 밀리는 싸움을 했으며, 기원전 316년 진나라의 장군 사마착에게 멸망당했다.

귀촉도에 나오는 촉은 이 쪽이다.

촉한(蜀漢)[편집]


2세기 3세기 관련 문서 4세기
3rd Century / 3世紀 / 201년~3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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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삼국지연의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1단원 II.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 3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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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영향으로 촉나라하면 보통 촉한을 말한다, 촉 본토는 오늘날의 사천성과 운남성, 중경시, 귀주성을 차지하고 있었고 한중은 지금의 섬서성 남부, 감숙성 남부 일부를 일컫는다.

근데 사실 촉한의 본이름은 대한(大漢)이 맞는말이다. 촉서 어느곳을 보더라도 촉한사람들은 자신을 한인 이라고 부르니까.

조비가 헌제를 폐하고 한나라를 무너뜨릴때 유비가 헌제 죽었다고 잘못 보고되어 세운 나라. 본인들 스스로 새로 나라를 세운게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가 한나라라고 자부했다. 오늘날 이들이 내세운 논리대로 이 나라를 한나라의 정통이라고 보는 이론을 촉한정통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서양으로 따지면 스스로를 동로마 제국이라고 칭했다고 보면 됨. 이 정통론에 따르면 한나라는 기원전 202년에 건국해서 서기 263년에 망한 나라가 됨.

ㄴ 그러면 동로마 보다는 자칭 로마 제국 후계라고 한 다른 제국들에 가까운거 아님? 동로마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통 로마의 후계 국가가 맞지만, 촉한은 자신들이 그렇게 주장을 한거잖아. 그러니까 정통이었던 동로마 보다는 서로마 멸망 후의 서유럽의 후계라고 자칭한 제국들과 오스만 놈들이 더 어울리는 거 아님?

촉한이 위한테 까불다가 다 졌다고 하는데 사실상 마지막 재상인 비의가 죽기전까지는 위한테 진 적이 없는데 말이다. 정사를 보더라도 제갈량의 북벌도 결코 패배라는 단어를 사용하진않았다. 그저 후퇴라고 했을 뿐이지. 물론 이렇게 기를 써봐야 촉나라군이 장안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고 결과적으로는 망했지만 뭐.

뜻을 못 이룬 것 뿐이지 진 건 아니라는 소리다. 더 간단히 말하면 병력피해가 없었다는 거고. 촉나라가 위나라한테 '패배'한것은 강유 대의 후화전투,단곡전투 정도이다. 오히려 낙곡전투에서 10만, 토촉호군 갈아먹히고 양옹주군 전체가 날라가는 등 위나라가 '패배'한것은 많다. 결론적으론 위나라한테 망했지만 말이다. 사실 후한 13주중 1주만 차지하고 있던 촉이 9주를 차지하고 있는 위를 상대로 공세를 펼친다는거 자체가 국력을 열심히 키워 최대한 발악한 결과물이다. 사실상 이기기가 힘든 싸움에서 공세를 펼쳤다는 사실에 정신승리하도록 하자.

꼭 촉나라 얘기하면 쓰레기로 마속, 양의가 나오는데. 정확히는 마속은 능력은 괜찮은데 너무 자아도취에 빠져 있어 쓰레기고 양의는 인성만 쓰레기다. 마속은 참형당하면서 나의 아들을 촉한을 위해 써달라고 했고 양의는 제갈량전에 정확히 '제갈량은 양의와 위연의 능력을 모두 인정하고 아껴서 둘이 불화를 일으키는것을 애석해했다'라고 적혀있다. 다만 양의는 그 문제의 인성이 지랄맞아도 너무 지랄맞아서... (아무리 출세 밀렸다고 해도, 위로하러 온 사람 앞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위나라에 투항할 걸" 이지랄 떠는 게 제정신이냐...)

ㄴ 산에 길하나 뚫려있는 지형에서 등산한놈이 뭔 능력이냐

촉망하고도 지가 촉을 잇겠다고 말한 유거(유연)이 위나라망하고 세워진 진나라황제 강간하면서 복수해준다.

동진 망하고 세운게 유씨의 유송이라 최후의 승리자 취급받는다는 시각도 있다.

전 버전에서 누군가가 촉한은 유비대부터 정계가 개판이라고 썼는데 틀린말이다. 왜냐면 촉한이 들어선 익주지역은 군웅할거 시대가 개막하고 유언이 다스리던 180년대 말부터 유비가 들어온 214년까지 전란을 피해 들어온 중원 유민들과 이민족들[1], 토착 호족들이 뒤섞여 유비가 214년 익주를 평정하기 이전까지 무려 30여년 가까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유언이 익주내 토착 호족들을 때려 잡아 제압하던 도중 관중지역에서 마등과 손을 잡고 장안의 이각, 곽사에 대항하다 실패하고 실의속에 죽은 이후 유장이 그 지위를 계승한 이후부터 더 엉망이 된 것이다. 온갖 성격의 인물들이 들어와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전혀 조율이 안되어서는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유장을 보고 유장을 옹립한 놈이 실망해서 반란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 필요함? 이 꼬라지를 보다 못한 법정, 장송 같은 익주 지역 인사들이 유장대신 익주를 통치할 인물로 선택한게 유비였고 유비는 오히려 해당지역에 들어와 익주를 20~30여년만에 안정시킨 인물이다. 이는 자치통감에서도 유비가 들어와서 익주 인심이 안정되었다고 기록에도 나와있는것에서 증명된다.

이후 촉한은 을 따라온 형주파 세력이 익주 내부에서 유비에게 호응했던 따랐던 친 유비파 세력과 힘을 합치고 유언 이전에 힘을 길렀던 토착 한족 부호와 수많은 소수민족들, 중원에서 들어와 혼란상을 부추기던 유이민들을 제어하고 또 회유하기도 하면서 한실부흥을 명분으로 삼아 엄격한 법치주의 하에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당장 그 선두에서 촉한을 20여년간 다스린 인물이 바로 제갈량이고 그가 천명한 법치주의와 한실부흥의 기치로 214년부터 263년까지 반세기동안 촉한이 다스려진것이다.

유비 생전에는 이릉대전에 친 유비 성향의 형주파가 죄다 갈려나가면서 황권이 약해지면서 망국의 원인이 축적되기 시작했다는 서술이 있었는데 물론 형주파가 많이 갈려져 나간건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서술은 아주 들어맞지는 않는다. 일단 제갈량을 비롯한 촉한사영의 출신지를 보자, 제갈량은 서주 낭야군 출신으로 양주 예장군, 형주 남양군을 거쳐 익주까지 들어온 다사다난한 인생을 산 인물이고 장완은 형주에서도 이민족이 판을 치는 남쪽 한지인 영릉군 출신, 비의는 형주 강하군 출신이나 어린시절을 익주에서 유학한 인물, 동윤은 선대가 익주 출신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형주로 이주했다가 아버지인 동화가 다시 익주로 이주한 케이스이며 심지어 비의 이후 상서령으로 유선의 총애만으로 내정의 전권을 잡은 진지는 예주 여남군 출신으로 외가쪽 친적인 허정이 떠돌아 다닐때 거기에 끼어들어 익주로 들어온 케이스이다.

촉한사영의 마지막인 비의 시절에 촉한 군부내에서 군권을 잡고 있던 인사들도 살펴보자. 일단 강유야 양주 천수군 출신 항장이니 더 말할것도 없고, 요화와 등지는 형주 출신이고 왕평과 장익, 장억, 마충은 익주출신이다. 즉 촉한의 중앙 정계에서 유비와 유씨 황실을 보필하던 인사들은 형주, 외부출신들, 익주 출신들이 뒤섞인 상태라는 것이다. 심지어 순수 익주출신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인 법정, 맹달, 이엄 같은 친 유비 인사들도 실은 중원에서 전란을 피해 익주로 들어온 인사들이고 이엄은 제갈량과 함께 유비의 탁고를 받은 인물이다.

즉, 중앙 정계 자체가 출신에 관계없이 제갈량이 세운 법치주의와 한실부흥의 기치를 통해 움직였고 적어도 촉한을 40년 이상 다스린 유선은 그 권위안에선 신하들의 1인자라고 감히 간섭할수 없는 존재였다. 우선 제갈량부터가 유선의 즉위에 방해가 되는 강한 성격의 유봉이 실책을 저지르자 숙청하고 첩이었던 유선의 생모 감부인을 정실황후로 추증한 인사로 그 자체가 유선의 즉위와 황권의 강화에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며, 본인 스스로가 그 권위하에서 1인자로 남았고 이후 촉한의 인사들은 촉한이 망하고, 심지어 그 사후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일개 백성들부터 이민족들까지 길가에 사사로이 사당을 세워 추모하는 등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가 된 제갈량[2]이 세운 유선의 권위에 복종하여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촉한의 멸망에 있어서 유선의 잘못은 아버지와 제갈량이 남겨준 인재풀이 소진되자 본인이 지도자로서 국가의 대계를 제대로 정하기 보단 자기의 안락함에만 신경쓰고 인선을 잘못해서 망한것에 가깝지 권력의 유지에서 있어서는 아버지와 제갈량이 남겨준것을 충실하게 누리는데 도가 텄다. 유선이 호구에 멍청하고 순둥순둥한 이미지가 있는데 단순히 멍청하기만 했다면 40여년 넘게 재위하지도 못했다. 유선의 재위기간 동안 위나라에선 조예 사후 황제 두명은 허수아비가 되거나 퇴위당하고 황제 한명이 신하의 칼에 꼬치가 되었고, 오나라에서도 손권의 노망과 호족들간의 갈등으로 이궁의 변이라는 초특급 병크가 터지고 권신이 날뛰고 황제가 폐위되는 막장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유선은 40여년을 넘게 촉이 망하기 전까지 이런 사례가 전혀 없이 통치했다. 이런 오랜기간동안 안정된 황권을 통한 재위는 혼란했던 위진남북조 전체를 뒤져봐도 정말로 몇 안되는 특이 사례에 가깝다. 후대의 유학자, 정치가들이 유선이 이렇게 오랜기간 통치할수 있던것은 다 한소열 유비와 무후 제갈량의 심모원려가 있었다는 평가를 한게 괜히 그런게 아니다.

당장 이전 왕조인 후한을 막장으로 만들고 황권을 약화시킨것이 잦은 황제의 교체로 인한 호족들과 외척들의 간섭 때문이었고, 그를 막기 위해 환관세력을 황제가 기용하면서 탁류니 청류니 더 막장이 된게 바로 후한말 군웅할거 시대를 만든 원인이었는데 촉한의 경우에는 외척들, 권신들, 심지어 황제의 친동생들조차도 유선을 무시하고 정치에 참여하는건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환관세력의 경우엔 황호의 문제가 있는데 이것 역시 유선 본인이 황호를 엄청나게 밀어준 결과고 후한말 조등이나 십상시처럼 황호에게 본인의 권력이 휘둘릴 정도는 아니었다.

예컨데 명색이 군권 1인자였고 위나라의 권신 사마사, 사마소 형제와 같은 직위인 대장군 녹상서사에 위치한 강유가 그 동안 정치에 간섭하지 않다가 황호의 전횡을 참다 못해 황호를 처단하라고 주청했을때 유선은 눈도 깜짝 안하고 '황호 그 녀석은 내가 부리는 소인배일 뿐' 이라고 씹어버리고 오히려 강유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답중으로 북벌을 핑계로 도망간 사례가 있다. 한 마디로 고작 황제가 밀어주어 총애하는 일개 환관에게 파워게임에서 군권 1인자가 밀렸다는 소리이다. 사마씨 형제가 군권과 황권을 장악하고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국정을 전횡한 위나라 같았으면 도저히 성립이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촉한의 정치나 내치, 황권과 신권의 관계에 대해선 굳이 따지면 '실제 실무를 보는 신권이 엄청나게 강했으나 그것이 안정된 황실의 권위를 침해할 수 없었다' 라는 절묘한 밸런스가 유지되었다고 봐야 하고 이런 시스템을 만든 유비와 제갈량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대황제[편집]

  • 1 촉한 열조 소열황제 유비
  • 2 촉한 효회황제 유선

역대재상[편집]

  • 1 제갈량
  • 2 장완
  • 3 비의,동윤
  • 4 진지,강유
  • 5 황호(유선의 통제하에),강유

역대대장군[편집]

  • 1 장완
  • 2 비의
  • 3 강유
  • 4 강유,염우 정도....

영토[편집]

후한은 본디 총합 13개의 주가 있었다.

근데 촉나라는 그 중에서 오직 익주 단 한곳과 양주 일부(무도군, 음평군)만 해당되었다.

결국 익주자사=촉나라 신하 넘버 원(승상, 대장군 등), 북벌대장=양주자사다. 이걸 조금이라도 타개해 보려고 제갈량 시절부터 서북쪽의 옹주와 양주를 노리고 관중 진출로의 교두보를 뚫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

교주는 사실상 독립 세력이고, 촉하고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있다면 사섭이 촉의 남만 세력을 자극한 정도? 익주땅이 후한 13주 가운데서도 상당히 넓은 행정구역에 속해서 오늘날 행정구역으로 따지만 익주땅은 충칭, 쓰촨 성 전체, 윈난 성 대부분, 구이저우 성 전체, 산시 성과 간쑤 성 지역 일부를 포함하는 생각보다 광대한 영역이다. 당장 핵심지역인 사천 분지만 해도 한국 면적을 훨씬 넘는다.

사천과 운남의 상징[편집]

삼국지에 나오는 세나라인 위촉오 가운데 위와 오는 다스린 그 지역에서 인상이 희미한 편이다. 당장 이들의 수도였던 장안, 낙양, 남경에서 위와 오는 까놓고 그냥 그 지역의 역사 A일 뿐이다. 다른 유명한 국가들도 많으니까

반면 촉이 위치한 사천, 충칭 운남, 성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국가는 바로 유비의 촉한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삼국지라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역대 사천지방 왕조들 가운데선 그 존재감이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사천을 의미하는 '촉나라'라는 용어는 오늘날까지 열에 열은 다 유비의 촉나라를 가르키는 것으로 알아 듣는다, 이러니 이 지방 사람들 입장에서도 이 나라에 대해서 생각하는게 다를수밖에 없다.

그냥 이 지방이 중심과는 먼 지방이라는 뜻 아니야? 따지고보면 중국 역사의 중심지는 황하와 양쯔강이었다. 저기를 기반으로 한 두세력이 중국 통일을 기반으로 맞짱 떠왔고.

같이 보기[편집]

전촉(前蜀)[편집]

907~925

당나라 망한 뒤 촉왕 왕건(王建)이 성도를 중심으로 사천 지방에 할거하여 세운 나라. 이 왕건의 한자가 고려 태조 왕건과 똑같아서 환빠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심지어 이 왕건이 죽은 918년이 고려 태조가 역성혁명으로 나라를 세운 해와 일치한다.

2대 18년만에 후당에 의해 멸망했다.

후촉(後蜀)[편집]

934~965

후당의 장종 이존욱이 죽은 뒤의 혼란기를 틈타 절도사 맹지상이 사천 지방에 할거하여 세운 나라.

전촉과 마찬가지로 2대만에 북송에 의해 멸망했다. 이 두 촉은 위의 촉나라와 비교하면 역사도 짧고 존재감이 없는 수준에 가깝다.

각주

  1. 현재도 귀주성과 운남성일대는 한족이 반도 못채우고 대부분이 묘족, 백족같은 소수민족인데, 1800년전인 후한말 시절에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나? 당장 촉한 본진이던 성도 바로 위에 저족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는데?
  2. 심지어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 진수 본인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쓰던 서진 시대까지도 제갈량의 북벌이 이루어진 양주 주민들마저 그를 노래로 부르며 그리워했다고 한다. 애당초 지금도 유명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쫒았다'라는 말을 지어서 퍼뜨린게 제갈량 최후의 북벌 주둔지였던 오장원 인근 주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