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최씨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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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과 나라는 지옥 그 자체가 됬는데 지 살겠다고 런하고 착취한 희대의 병신정권

집권 순서대로 최충헌 - 최우 - 최항 -최의.

기간만 60년인데 무신정권의 역사가 딱 100년임을 생각해 본다면 무신정권 = 최씨정권이라고 해도 별문제는 없긴 하지만 굳이 세세히 구분을 한다면 고려 무신정권 중 중기 무신정권에 해당하는 시기로 전기 무신정권이 수 틀리면 발터죽창을 들어댄 시기였다면 이 시기는 그나마 정권이 안정되어 세습에 성공한 시기이기 때문에 구분이 가능하다.

게다가 최우, 최항 시기는 특히 무신정권이라고 구분짓는것이 애매한게 얘들은 군 계급을 받은 적이 없다.

이는 굳이 군 계급을 바탕으로 군부의 지원 없이도 정권이 안정적이고 탄탄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사대부들도 많이 활동하던 시기라서 더더욱.

1대 집권자 최충헌[편집]

최충헌이의민에게 발터를 들이대며 살해한 시기부터 시작되는데 이의민을 살해한 최충헌은 자신은 앞의 무신집정들과는 다르다며 개혁정책인 봉사10조를 명종에게 진언했으나 이는 당연히 명종의 폐위를 위한 훼이크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개혁안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면서 이의민 살해 쿠데타에 동참했던 군부의 축인 두경승도 실각시켜 귀양 보내 버려 진정한 일인독재 체제를 구축한다.

20여년간 집권하면서 그야말로 철권통치를 행했는데 못된 것만 보고 배웠는지 경대승의 도방을 재창설하여 자신의 무장 친위대로 삼았고 막부를 개설하여 명종대에는 그나마 결제 머신이라도 했던 고려국왕의 실권을 완전히 빼앗아 모든 국정운영을 자신이 도맡아 했다.

자신에게 개기는 종자는 그 누구라도 살려두지 않은 레알 철의 통치자 였으며 아들인 최우에게 권력을 세습하고는 죽었다.


2대 집권자 최우[편집]

애비인 최충헌이 세습한 권력을 바탕으로 애비가 했던 방식이 무자비한 철권 통치 체제에서 적당히 포퓰리즘을 행하며 문신들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이규보 같은 어용 문신들에게 지지를 받아 30년이라는 엄청난 기간동안 장기집권했다.

이 기간 동안 여몽전쟁이 진행되었으며 강화천도가 이루어졌고 몽고군에 의해 고려 전체가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여몽전쟁을 종식시킬 어떤 비전도 없었으며 그저 고려가 불타는 걸 시간이 흐르는 것과 함께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자기도 상황이 좆같음을 인지했던 모양으로 도피처로 종교에 빠져들었고 팔만대장경 제조 같은 개뻘짓을 했다.

애비가 만들어 놓은 무장 친위대인 도방에다가 문신들의 기관인 서방을 창설했고 이것도 모자라서 또다른 무장 친위대삼별초까지 만들었다.

만든 이유는 당연히 서로 감시하게 하여 최씨정권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할려는 의도.

강화도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으며 아들인 최항이 권력을 세습했다.


3대 집권자 최항[편집]

애미가 천한 신분으로 본래 이름은 최만전이다.

최우의 결심이 아니었다면 형인 최만종과 더불어 평생 땡중 노릇이나 하다 뒤질 운명이었으나 사위인 김약선에게 정권을 물려주려던 생각을 버리고 아들에게 정권을 세습시키려고 결심한 최우 덕분에 최씨정권 3대 집권자가 되었다.

개경으로 올라와 이름을 최항으로 고치고 후계자 수업을 받던 중 최우가 죽자 집권하였는데 애비가 죽은지 2일만에 상복을 벗고 애비 첩들과 쎾쓰를 즐겼다고 하며 애미가 천한게 컴플렉스였던지 자기가 읽는 문서에 천하다는 뜻이 들어간 한자를 쓴 새끼는 무조건 탈조센시켰다.

자기한테 개긴 새끼는 누구던지 잡아 죽이는 최씨집안 종특 덕분에 최씨정권의 붕괴가 시작된 시기였으며 격화된 여몽전쟁을 도저히 견디다 못한 고려인들이 자발적으로 몽고에 투항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심지어 강화도에 있는 관리과 고려국왕 마저도 전쟁 종식을 원하던 상황.

상황이 좆같음을 깨달았는지 개경 근처에 적당한 크기의 왕궁을 짓고는 환도할 것 처럼 훼이크를 쓰기도 했으나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히는 개씹뻘짓.

집권 8년만에 죽었으며 아들인 최의가 뒤를 이었으나 이미 이 사람이 뒤질즈음 해서 최씨정권의 붕괴는 기정사실이었다.


4대 집권자 최의[편집]

이미 최씨정권의 붕괴가 시작된 상황에서 급하게 집권했는데 애비인 최항이나, 할애비인 최우와는 달리 차장군이라는 군 계급을 달고 최씨정권 무장 친위대삼별초의 지지를 받아 간신히 집권했다.

최충헌을 제외하고는 40여년 간 군 계급 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탄탄한 정권이었던 최씨정권 수장이 상장군이나 대장군도 아닌 임시 장성 계급인 차장군 타이틀을 달고 군부의 지원을 호소하며 집권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최씨정권은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이놈도 자기 애비처럼 쎾쓰에 환장한 새끼였는지 애비보다 한술 더 떠서 애비가 뒤진 당일날 애비 첩들과 쎾쓰를 즐겼다고 한다.

결국 집권 1년만에 김준을 위시한 삼별초 장군들에게 참교육을 당해 탈조센하여 마침내 60여년에 걸친 최씨정권도 종식되었다.

그러나...

기타[편집]

최충헌진주에 진강부라는 부를 개설한것은 확실한데 이것이 좆본 막부체제 처럼 고려국왕은 개경에 처박아 두고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 본인과 나머지 관료들은 진주로 내려가서 거기서 통치를 한건지 아니면 형식적으로만 부를 만들어 놓고 최충헌 본인은 계속 개경에 있었는지 확실치가 않다.

사실 최충헌진주에 부를 개설한 것 자체가 의외의 행동인데 이 사람의 가문은 우봉 최씨로서 우봉은 지금의 황해도 있는 곳으로 최충헌진주와는 어떠한 정치적 연관도 없는데 거기다가 부를 개설했다;;;;;그 이유는 무신정권의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의는 씹돼지 였다고 기록에 나와있다.

최우, 최항의 주된 탈조센 방법은 물에 빠뜨려 용궁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었는데 최우시절엔 그냥 무식하게 용궁행 티켓을 끊어준 반면 최항대에는 당사자에게 섬으로 귀양 보낸다고 구라를 치고는 서프라이즈 용궁행 티켓을 끊어줘 당첨자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사해 주는 세련된 방법으로 진화했다.

자기한테 개기면 상대가 누구던지 간에 무조건 탈조센 시켜버렸다. 그게 친구던 친척이던 가족이던 최씨정권 관료이던 전쟁영웅이던간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만큼이나 최후가 존나 비참한데 김준이 최씨정권을 붕괴시킬때 연계한 세력을 나열해보면

1. 김준의 도방군대

2. 삼별초

3. 상장군 박성재가 지휘하는 국왕 호위군인 응양군

4. 류경을 중심으로 한 문신관료들

고려의 모든 정부 기관이 힘을 합쳐서 다굴을 쳤던 것이다. 게다가 삼별초최우가 최씨정권 보위를 위해 창설한 무장 친위대인데 쟤들도 최씨정권 붕괴에 참가했다.

사대부들이 정치일선에 등장한 시기이도 하다. 무신정변으로 문벌귀족들이 줘 털리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유교를 정치철학으로 삼고 있던 유학자들을 대거 정치판에 등용시켰는데 무신정권의 집정자들, 특히 최씨정권하에 이들은 크게 성장한다. 대표적인게 이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