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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르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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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님의 위대하신 용안<ref>사실 쪽숭이때문에 생겼을지 모를 심한 스트레스때문에 안면마비가 왔던 시절에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ref> 그의 일생 일대의 역작 도쿄핫.
석기 시대의 향이 물씬 풍겨나오고 있다.

Curtis Emerson The Chef LeMay(1906년 11월 15일 ~ 1990년 10월 1일)

개요[편집]

노릇노릇한 그분의 존안과 업적

형님을 넘어선 핵님, 석기시대 마니아

미국의 공군 장군이자 원숭이 통구이 요리사. 부전공은 고고학이다. 폭격기 운용의 본좌이자 실력자 파일럿이며 명장이고 맹장인 동시에 굽기 요리계에서 전세계 선두주자였다 맹장기질이 강해 일제나 쏘오련같은 미친개들한테는 진짜 특효약이었다. 닝겐들 이성이 단체로 산화한 양차대전 시기 인물이라 시대도 잘 타고난 편임.

역센징들과 좆본 우익이 너무 좋아 환장하는 직화구이 전문 쉐프이다. 역센징들이 덴노 헤이까 반자이를 외치면 이분의 존함을 말해주자. 너무 좋아서 막 흥분해 하앜하앜거리며 댓글을 달아줄 것이다. 도쿄핫 BGM을 같이 깔아주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고 한다.

또한 6.25 당시 좆선반도의 빨간 물이 든 영역을 네이팜탄으로 통구이로 만들어 주시면서 진정한 헬조선 지옥불반도를 실현시키신 분이시다.

원숭이 요리[편집]


본래 훌륭한 쉐프가 되기 위해 식도락의 나라 대중화에서 요리를 배우고 계셨다. 그러나 중일전쟁시기 원숭이떼들이 충칭에서 수많은 바퀴벌레들을 잔인하게 살충하는 씹-미개함을 목격하셨다. 이로 인해 르메이 셰프님은 미개한 원숭이들을 구이요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제2차 세계 요리 대회 말엽 미합중국 소속으로 참가해 도쿄를 싸그리 직화구이 시켜버리는 가공할 요리실력을 전세계에 보여주셨고, 이로인해 엄청난 출세가도를 걷게 되었다. 그 후 베트남에서도 구이 요리를 많이 만들었으나, 미국요리협회의 철수 권고로 눈물을 머금고 퇴직했다. 이후에는 협회의 방해로 마땅히 요리를 하지 못하고 1990년 10월 3일 별세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전세계 미식가들이 모두 슬퍼했다고.

도쿄핫으로 대표되는 그의 음식은 매우 뜨거운 것이 특징으로, 직접 재배한 쑥을 사용하여 특별한 맛과 향기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식가들은 이 향과 맛을 석기시대라 부르며, 이 맛과 향을 느끼면서 눈을 감으면 석기시대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고 한다.

가난한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끝내 5성급 주방장까지 달아낸 인간승리자이며 44세로 5성급까지 올라가 당시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공중직화구이기 요리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직접 최선두에서 공중직화구이기를 몰기도 했으며 부하 요리사들의 불평불만도 잘 들어주었다. 그가 영국에 있었을 때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딸과 놀아나다 사고 친 미국 요리사를 조지러 온 영국인 아버지들을 좋게 좋게 달래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자기도 언제 눈 먼 대공포에 맞아 죽을 지 모르는데<ref>유럽 전선에서 중령~준장 시절이었을 때는 항상 폭격기 대열의 선두기에 타서 폭격 대열을 지휘했다.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 조종수로 탔지만 조종에 집중하느라 대열 컨트롤을 못하는 것을 깨닫고 부조종사 자리에 앉았다. 적 전투기에게 가장 먼저 요격당하는 기체가 바로 선두와 최후방 기체인 것을 생각하면 보기 드문 솔선수범이다.</ref> 병사들은 오죽하겠냐며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풀어준 것이다.

당시 미국에 흔치 않던 "인종차별을 하지 않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비백인 종족에 대해 딱히 옹호나 배려를 했다거나 하는 기록은 없다. 군사현장에선 흰 요리사건 검은 요리사건 원숭이만 노룻노룻하게 구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던 듯.

인종차별주의로 악명높은 조지 월러스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지만 부통령 후보 승낙 자리에서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으로 월러스를 한방에 낙선시켰으므로 결과적으로 인종차별주의를 정계에서 몰아내는데도 공헌했다.

무엇보다 도쿄핫 감독이자 위대한 셰프이기 그의 촬영이 끝나고 도쿄는 세계에서 손꼽히게 말끔한 전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으며 그가 진행한 기아 작전으로 약 100만명분의 노릇노릇한 5성급 구이요리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통구이 솜씨를 과시하였다.

하지만 그의 요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고 3월 11일에는 나고야, 13일에는 오사카,16일에는 고베, 19일에는 또한번 나고야의 일본인들을 직화구이로 만들어냄으로써 일본의 모든 공업도시들을 본인의 요리재료로 만들었다. 또한 명승고적이라는 훌륭한 장작들이 곳곳에 즐비한 교토도 본인의 요리재료로 삼을려고 했지만 와패니즈였던 육군장관이 안된다고 빼애애앵액거려서 GG쳤다고 한다. 이때문에 셰프님은 죽을때까지 그 육군장관을 싫어했다고 한다.

어찌나 요리가 잘됬는지 3월 19일 나고야 통구이요리이후로 한동안 연료가 없어서 요리를 못만드는 병맛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셰프님께선 구이를 못하면 지짐을 만들면 되지 하면서 네이팜탄과 기름폭탄을 동시에 때려부어 원숭이 지짐요리를 만드는 성과를 보여주셨다.

본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도 불맛 짬뽕으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상부에서 불맛 짬뽕 대신 핵폭탄으로 끓인 라면을 만들기로 해서 못 만들었다. 라면은 핵폭탄으로 끓여야 제맛이 나거든요 본인도 원폭의 위력을 보고는 원폭을 찬양했다고 한다.

[요리를 역갤에 게시]

북괴 요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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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만 있다면야...

르메이는 자신의 경험에 기초하여 미래 전쟁 과정에서 전략항공력의 중요성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는 이 같은 확신 속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자신의 업무를 추진해 나갔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전략공군 비행사들의 훈련과정을 체계화했고, 극동지역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불러 모아 전략공군의 중요성에 대한 홍보와 함께 조직의 체계화를 꾀했다. 르메이가 불러들인 인물 중에는 2차대전기 그의 휘하에서 일본폭격을 주도한 오도넬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도넬은 한국전쟁기 최초의 극동공군 폭격기사령관으로서 북한지역 폭격을 주도했던 인물이다.(김태우, 한국전쟁기 미 공군의 공중폭격에 관한 연구, 학위논문(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08, 42-43)

민간인 보호와 대량파괴라는 상반된 가치의 공존과 갈등은 한국전쟁에서도 단적으로 표출되었다.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유엔군의 집행대리인인 미국은 북한지역 폭격 시 군사 산업 목표만을 선별적으로 '정밀폭격'해야 한다는 정책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워싱턴의 정 군 최고지도자들은 이 같은 정책의 엄격한 준수를 유엔군사령관에게 명령했다.그러나 극동지역의 공군 사령관들과 조종사들은 워싱턴의 여러 제한조치들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극동공군 폭격기사령과으로 부임한 오도넬은 맥아더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북한의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소이탄 투하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오도넬의 주장은 2차대전 후 전략폭격의 강화를 주도했던 전략공군사령관 르메이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위의 책, 43)


전략공군사령관 르메이는 소이탄 사용을 통해 북한 내 목표지역은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폭격기사령부는 소이탄 공습으로 주요 산업목표를 파괴함과 동시에 해당 지역을 완전히 전소시킬 수 있었다. 전략공군사령부는 자신의 계획을 보다 구체화했다. 전략공군은 폭격기사령부의 B-29rl 2대가 1조의 편대를 이루어, 1대는 목표지역에 소이탄을 투하하고 다른 1대는 산업시설에 정밀공격을 가하기 위해 과열폭탄을 투하하도록 했다. 전략공군은 이 계획을 폭격기사령관 오도넬에게 송부하여 극동군 사령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위의 책, 43~44)


워싱턴은 미 공군의 북한지역 폭격 시 국경지역 및 민간지역 폭격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전쟁 초기부터 북한지역을 무차별적으로 대량폭격하고자 하는 세력이 완전히 숨죽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략공군사령관 르메이와 폭격기사령관 오도넬은 전쟁초기부터 소이탄을 사용한 북한 도시지역 무차별폭격을 주장했다. 오도넬은 맥아더와의 첫만남에서 "북한 내 5개 산업중심지를 불살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전쟁초기 르메이나 오도넬의 주장은 여러 정치적 고려 속에서 묻히고 말았을 뿐이다.(위의 책, 73)


중국공산군의 압록강 도하라는 새로운 전쟁국면에 직면하여, 1950년 11월 5일 맥아더는 기존에 없던 매우 공세적인 폭격정책을 하달했다. 맥아더는 미 공군의 주요 사량관들에게 북한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와 농촌지역 자체를 주요 군사적 목표물로 간주하라고 지시했다. 도시와 농촌에 대한 폭격의 목적은 중공군과 북한군의 은신처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민간지역의 '사전파괴'였다. 맥아더와 미 극동공군 수뇌부는 추운 겨울 한반도 북부의 민가들은 모조리 불태워버림으로써 공산군의 휴식처와 보급기지를 사전에 파괴하고자 했다. 맥아더는 새로운 파괴작전의 성공을 위해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 본토 공격에서 활용되었던 소이탄 폭격을 지시했다.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소이탄 폭격은 2차대전 시기 영국공군의 독일 도시폭격이나 미 공군의 일본 본토폭격에 비할 수 있는 사실상의 무차별폭격이었다. 맥아더는 새로운 민간인 거주지역 파괴작전을 '초토화정책'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맥아더의 북한지역 초토화작전 명령이 그를 향한 미 극동공군 장교들의 지속적인 건의에 의해 승인되었다는 점이다. 초토화 작전을 강력히 건의한 이들은 극동공군사령과 스트레이트메이어, 전략공군사령관 르메이, 폭격기사령관 오도넬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2차 대전 시기 미군의 극동지역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인물들로서, 전후 전략공군의 확충에 큰 기여를 했던 사람들이었따. 한국전쟁 초기에는 전시민간인보호를 주장했던 미국 내 세력들이 폭격정책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전쟁이 위기에 처하자 항공력을 공세적으로 활용하길 원했던 미국 내 세력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초토화작전이 시작된 후 북한지역은 그 작전명처럼 완전히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다. 1950년 11월 4일 B-29기 수십대의 소이탄 투하는 연일 지속되었다. 1950년 11월 폭격으로만 만포진의 95%, 회령과 남시의 90%, 초산의 85% 강계 희천 삭주의 75%등이 완전파괴되었다. 이 시기 북한지역 폭격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해당지역주민들의 진화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소이탄 투하 후 전폭기의 기총소사를 실시하거나 다양한 시간간격의 시한폭탄을 소이탄과 동시에 투하했다는 것이다. 극동공군은 표현 그대로 북한 도시와 농촌의 '초토화'를 기도했다.(위의 책,296-297)

희천 시가지를 보고 놀랐다. 도로와 2층 건물로 이뤄진 도시가 사라졌다. 건물은 공터 아니면 돌무더기만 남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가 텅 빈 껍데기로 변했다

 
—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윌리엄 딘장군의 회고


지상군의 후퇴에 따라 극동공군의 초토화작전의 범위도 자연스럽게 남한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 조사 사례 중에는 1951년 초 미공군의 소이탄 공격에 의한 대규모 집단희생 사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주로 1951년 1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 강원 · 경기 · 경북 · 충북 지역 폭격 피해 사례들은 사실상 1950년 11월 맥아더의 지시에 의한 초토화작전의 남한지역으로의 확대를 의미했다. 그중에서도 도진순에 의해 학계에 소개되어 진실화해위원회의 심도 깊은 현지조사가 실시된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동 폭격에 대한 연구논문과 조사보고서, 경북 예천 · 충북 단양 · 경기 · 강원 지역 폭격사건 조사보고서 등은 초토화작전의 남한지역 확산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을만하다.(김태우, 폭격, 2013, 326-327)


남한지역 초토화작전의 진행과정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술 중 하나는 이 시기 폭격기 조종사들이 남한 내 작전구역 내에서 발견되는 모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을 사실상 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적잖은 전폭기 임무보고서의 적정 항목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people in white)이 기록되어 있었고, 이 같은 지역에는 어김없이 대규모 네이팜탄 폭격이 진행되었다. 산성동 폭격의 정찰관 중 하나였던 조지 울프는 "많은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적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산성동 폭격에 관여한 또다른 정찰관 네빌은 "우리는 지상의 움직이는 모든 사람이나 물건은 아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51년초, 미공군은 적 점령하의 남한지역 민간인들을 사실상 적 병력과 동일시하고 있었다.(329-330)


뉴욕타임즈의 종군기자 배럿(G. Barrett)은 1951년 초 경기도 안양부근의 어느 농촌 마을을 방문한 후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작성했다.
중국군이 마을을 점령하기 3~4일전에 마을에 대한 네이팜탄 공격이 진행되었다. 마을 어느 곳에서도 시체가 매장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이를 행할 사람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연히 1명의 늙은 여인과 마주쳤다. 그녀는 그곳에 생존한 유일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 4명의 시신으로 가득 찬 검게 그을린 마당 안에서 몇벌의 옷을 부여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 전체와 들판에서 발견되고 사살되었다. 그들은 네이팜탄 공격을 당했을 때 취했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 남성은 막 자전거를 타려는 참이었고, 50명의 소년과 소녀는 고아원에서 뛰놀고 있었으며, 한 가정주부는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없었다.(...) 약 200구의 시체들이 그 작은 마을에 놓여있었다.(330)

요약하자면 6.25 때 인민군 점령 지역을 네이팜으로 통구이로 만들어 진정한 헬조선 지옥불반도를 보여주셨다. 뿐만 아니라 인민군 멀티인 빨치산이 있는 인근지역도 세트로 통구이로 만들어주셨다. 사실 6.25땐 남북한 나눠 서술하는게 무의미하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는 공산당 점령지와 미점령지만 있을 뿐이다. 여튼 한때 토착빨갱이들에게 반미감정의 장작으로 자주 사용되던 떡밥이다

베트'콩' 요리[편집]

반공(反共)!

이 틀이 달린 문서의 대상이나 이 문서의 작성자는 반공정신이 가득 차 있습니다.
혹시 반공이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지랄 떠는 종북좌파를 보셨다면 지금 당장
국번 없이 111에 신고해서 절대시계를 받으십시오.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反攻!反攻!反攻大陸去!

베트남 요리 대회 때는 다른 때와 같이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다른 작품들에 밀려 조명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쪽숭이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조리하였기에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편집]

쿠바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석기시대로 만드려고 했다가 케네디에 쿠사리먹고 닥쳐야했다. 그래도 전쟁나면 르메이만한 놈도 없어서 잘리지는 않았다.

그 후[편집]

한국전쟁 당시에 한반도에 핵무기 쓰자고 끝까지 주장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핵무기 떡밥의 시작은 쟌넨데시다! 인성쓰레기 맥아더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항공자위대에게 훈장도 받은 일본에게도 인정 받은 인물이다. 그 갇-본이 훈장도 준 위인을 빠는데는 문제가 없다. 괜히 영웅 틀이 붙은게 아니다. 그리고 훌륭한 쑥 재배 전문가시며 일본에서만 직화구이를 한 게 아니라 나-치를 상대로도 직화구이를 한 인물이니 영웅 틀을 받기에 부조캄이 없다.

또한 한국 전쟁베트남 전쟁에서도 활약했는데 그때 남긴 말로는 "우리는 한국의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모든 도시를 불태웠다. 우리는 100만 이상의 민간인을 죽이고 수백만 이상을 집에서 내쫓았다."와 "베트남을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돌려놔야 합니다."가 있다. 사실 석기시대 드립은 베트남 전쟁 때 가장 많이 했는데 부통령 후보 출마 때도 베트남전을 어떻게 끝낼 거냐는 질문을 받자 베트남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

바다 건너엔 아서 해리스윤봉길이라는 동급의 셰프가 있었다.

오늘은~ 내가~ 재팬석기~ 요리사~

문화재 장작[편집]

뭐든지 네이팜탄만 때려부어 석기시대로 만들면 그만이라는 셰프님의 상남자같은 마인드로 인해 수많은 명승고적들이 땅주인을 잘못만나서 셰프님의 통구이 요리를 위한 장작으로 변하고 말았다. 셰프님은 교토에 있던 수많은 명승고적들도 원숭이 통구이에 써먹을려고 했지만 위에 나온이유때문에 GG쳤다. 원숭이들은 통구이가 된 다음 계몽이 되서 그런가 셰프님이 장작으로 써먹은 문화재를 복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셰프님의 계몽이 실패로 끝나고 돼지왕국으로 병신하면서 더 막장이 된 북괴는 제대로된 복구는 커녕 흔적찾기도 어렵게만들정도로 방치하거나 파괴하고있다. 아니 금강산 같은 자연물도 씹창내는 북한이야 뭐..

  • 에도시대까지 내려온 도쿄의 옛 도심은 관동대지진으로 상당부분 파괴되고 껍데기만 남았는데 르메이 셰프님이 도쿄핫 찍으면서 흔적까지 사라짐. 현재의 도쿄는 폭격이후 완벽하게 리셋된 도쿄를 재건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도시임. 뭐 덕분에 도시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지긴 했다.
  • 고쿄가 있던 에도성은 에도막부시기 쇼군이 상주하면서 국정을 총괄했던 곳이라 수많은 무가 궁정건축물, 쇼군이 즐긴 예술과 관련된 자료들이 가득했지만 도쿄핫을 찍으면서 모두 전소됨. 하지만 천황일가는 도서관 지하벙커에 짱박혀있었기 때문에 겨우 죽음을 면했다고 함.
  • 도쿄가 파괴되면서 중심가에 있던 대부분의 신사들이 전소됨. 현재 도쿄 시가지에 있는 신사들은 아사쿠사신사를 빼면 대부분이 전후에 복구된 건물들임. 사실 이전에 남아있던 사진들 보면 복구가 아니라 새로 디자인해서 만든수준이다. 게다가 목조건물을 복원할때 콘크리트를 써서...
  • 628년 어부가 만든 사당에서 시작하여 에도시대까지 수백년동안 개보수, 중건을 반복해오면서 매우 화려한 대찰로 변했던 천초사가 완전히 소실됨. 지금 건물은 전후 60년대에 복원하면서 새로 세워졌음.
  • 셰프님이 그렇게 부수고 싶어했던 교토도 조금씩 공습을 당했는데, 메이지 유신의 시작과도 같은 대정봉환이 이뤄진 교토 어소도 이때 미군의 공습을 받고 훼손됨.
  • 일본 최초의 바였던 카미야 바와 마쓰야 아사쿠사 백화점은 셰프님이 원숭이 통구이를 위한 오븐으로 사용했는지 외벽만 남고 내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짐.
  • 나고야 석기시대 요리를 만들면서 나고야성을 가루로 만듬.
  • 좆본군 오사카 조병창 + 4사단 주둔지로 쓰이다가 1931년에 공구리떡칠로 복구된 오사카성이 셰프님의 오사카 재팬석기 요리를 만들면서 또 파괴됨.
  • 평양빨갱이 통구이를 만들면서 평양성, 숭령전, 평안감영, 평양향교, 영명사등 수많은 명승고적들이 파괴됨. 그리고 평양에 캠퍼스가 남아있던 평양신학교, 숭실대학교옛건물은 완파됨. 근데 북괴새끼들이 숭경전, 평양성, 영명사의 부속건물인 부벽루등 일부만 복구하고 나머지는 콘크리트로 밀어버리거나 아예 새건물을 세워버림.
  • 안변석왕사는 53채나 되는 부속건물을 가진 대찰이었지만 불이문·조계문·호지문(護持門)·설성동루(雪城東樓), 용비루, 인지루를 제외한 모든 건물들이 불타버림.
  • 은평구 진관동에 있던 진관사고려 현종대부터 수륙재의 모범으로 꼽히는등 한국불교의 총본산급역할을 해서 일제강점기땐 80여칸이나 되는 부속건물을 가진 대찰이었지만 셰프님이 빨갱이 통구이를 만들면서 나한전등 3개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구워버림.
  • 1637년 복구된 봉선사도 모든 건물이 전소됨. 이외 경기도 93개사찰중 6.25때 박살난게 36개였는데 이중 20개가 셰프님의 빨갱이 통구이로 인해 파괴됨.(나머지는 국군이 9개사찰 북괴군이 4개사찰, 중공군이 2개사찰을 때려부쉈음)
  • 사실 이분이 마음먹고 폭격했으면 지금 일본에 세계문화유산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수도 있었다.

인간생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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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들에겐 '참지휘관', 가족들에겐 '최고의 가장'이었던 셰프니뮤ㅠㅠㅠㅠ

전쟁에선 PTSD등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던 부하들을 정신적으로 치료해주는데는 패튼과 함께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나 어떤부하가 '고고도 폭격기로 저고도비행으로 폭격시켜서 윙맨을 죽게만든 새끼는 누구냐'라고 따지니까 '자네가 윙맨을 잃은 것에 대해 나도 슬프고 가슴아프다. 무슨일을 겪었을지는 나도 잘안다. 근데 우리가 윙맨한명잃을동안 우리는 도쿄를 통구이로 만들었지 않았나."라는 기적의 논리로 부하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1] 이 사례에서보듯 셰프님은 부하들의 쌍욕도 경청하고 기적의 논리로 설득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전후에 사회생활에 적응못하고 엠창인생될까봐 2차대전후에는 부하들의 직업훈련, 재교육에도 힘쓰셨다고 한다. 셰프니뮤ㅠ

부하들이 심상찮다면서 내놓은 보고 개무시하고 헛짓했다가 말아먹고 정치질 존나하고 상륙작전뽕에 빠져 인천에 있던 10군단을 다시 서해찍고 남해찍고 원산으로 보내버린 좆병신 맥아더와는 비교하는게 모욕일정도의 인성이다.

1934년 혼인한 헬렌 메이트랜드니뮤와 백년해로는 기본이고 사모님이 수차례의 유산으로 고생할 때 곁에 계시면서 정성으로 간호해주셨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메이트랜드니뮤는 3년뒤 패트리샤 르메이 랏지라는 건강한 딸을 낳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득녀한 뒤에는 끔찍한 딸바보가 되어 3년간의 고생끝에 얻은 외동딸을 심심하면 비행장에 놀러오게 해주고 몸개그도 해주고 댄스파티에서 파트너까지 되주는 훌륭한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셰프님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 패트리샤 르메이 랏지는 한 작가가 셰프님의 전기문<ref>제목은 <LeMay: The Life and Wars of General Curtis LeMay>이다. </ref>을 쓰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2016년 4월 9일 향년 79세의 나이로 운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2]

역센징이 커티스 르메이 쉐프님을 보았을 때 반응[편집]

우끼끼! 우끽끽끽!
이 글에서 다루는 대상은 십이지신 중 신(申)에 해당하는 동물 원숭이에 대해 다룹니다! 아니면 사람의 거나...
주의. 이 문서는 존나 꿀잼인 것을 다룹니닼ㅋㅋㅋㅋㅋㅋ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내용이나 대상은 존내 웃깁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뒤질 수도 있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인간쓰레기 학살자새끼는 쉐프니 뭐니 물고빨으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안장된 군인들은 한도끝도없이 지랄하는 조선인들...100보 양보해서 미국 코쟁이들이 빠는건 지네나라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조선인들은 대체 왜 빨아줌?

- 커티스 르메이 쉐프님의 존안을 목도한 역센징 한 마리가 너무 좋아서 풀발기 아헤가오 더블피스를 하며 남긴 말-

조선인이 미국 코쟁이 빠는건 안되지만 헬본 전범 빠는건 된다는 개좆똥논리 잘 보고 갑니다.

난징 대학살은 미화하면서 이건 지랄하는 새끼들 수준 ㄷㄷ

애초에 르메이는 인간성이 좋기라도 하지 좇스쿠니 신사에 매장되있는 전범새끼들이 인간성이 좋냐 뭐가 좋냐?

덕분에 대한민국이 독립했으니까 빨아주지. 독립 안되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역센징들은 싫겠지만

친구[편집]

라이벌[편집]

그의 요리도구들[편집]

작품[편집]

여담[편집]

열도에서는 자기네들을 통구이 요리로 만든 쉐프임에도 불구하고 모에화를 그렸다. 뭐지?

박아서 없애자는 의미다

ㄴ자세히 보면 앞머리가 악마 뿔 모양으로 까치집이 서 있다. 한 마디로 쪽숭이들 이미지로는 그냥 악마 이미지란 얘기.

그리고 똑같은 자세로 해서 사람만 괴링으로 바꿔 놓으면 딱 런던대공습 이미지 그 자체인데?

그냥 나치 이미지로 묘사한 듯

라스트 오리진에서도 멸망의 메이라고 모에화까진 아니지만 이분한테서 모티브를 딴 바이오로이드가 등장한다.

전략폭격기를 통한 폭격과 핵미사일로 훌륭한 철충 요리를 보여주신다. 버그땜에 요리를 잘 못한적도 있으나 지금은 괜찮다

좆같은 점이 있다면 6.25 때 대륙새끼들을 안 조졌다.

각주

<references group=""></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