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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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유럽이 아시아를 완전히 정치적으로 능가하게 된 사건

근세 프랑스에서 평민들이 의무는 지지 않고 꿀만 빨던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날린 죽창.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대변되는 왕실과 귀족 계급의 사치,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인한 국고 낭비, 혁명 직전 찾아온 자연 재해로 인한 기근 등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앙시앵 레짐'으로 비롯된 구제도의 모순이 있으며 또한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던 계몽사상(사회계약설, 주권재민설, 일반의지론 등) 등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한 마디로, 이런저런 사연 끝에 나라가 거덜나기 직전에 이르자 다이아 수저와 금수저들이 그 이하 놈들을 더 쥐어짜려고 했다가 깨어있던 은수저들이 흙수저, 똥수저들을 선동해 죽창을 찔러버린 사건.

라부아지에 같은 역사적인 과학자도 당시 흙수저들에겐 죽창 꽂을 금수저 수탈자 새끼로밖에 안보였기에 죽창 맞고 끔살을 당한다. 근데 라부아지에 실드를 쳐주기엔 얘가 세금을 쥐어 짰다는 소리가 있어서 좀 그렇다.

얘네들이 혁명 일으켜서 학살도 많이 하고 깽판 많이 치기는 했는데, 자유주의 사상 발전에 매우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고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아주 아주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다.

프랑스 혁명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도 없었다고 보면 된다.

폭력적이다. 프랑스는 평화시위 밖에 모르는 헬조선에 한 수 배워가야 한다.

어... 프랑스는 낫과 갈퀴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야 ㅉㅉ 촛불들고 행진 좀 하면 알아서 귀족들이 물러갈 텐데 불쌍한 하층민 군인들이나 다치게 하고 말이야! 뭐 프랑스 농민들도 죽었다고? 프랑스 농민들 죽은 건 지들이 폭동 일으키니까 그런 거지!

ㄴ 그 당시는 왕조야 피의 일요일꼴 날일 있냐

ㄴ 드립이잖아 머저리야

ㄴ 하여튼 진신류 폭력시위충 새끼들...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그래서 ㄹ혜가 전경 다 쳐죽이고 청와대 불바다 만들어서 쫓겨났냐? 프락치랑 니들이랑 다른 게 뭐임?

이 사건 이후로 자유주의가 퍼진 유럽 대륙에서는 왕들 눈치 챌 필요 없이 마음껏 학문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의 부산물로 나온 게 바로 산업혁명이다. 사실상 갓유럽이 만들어진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시사점[편집]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이런 유혈 사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을 순 있겠지만, 혁명의 근본 원인을 모른 채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직관적으로 보고 하는 소리다. 혁명의 근본 원인은 구체제의 모순, 즉 성직자와 귀족(제1, 2신분)이 각종 부역이나 세금, 봉건적 부과조로부터 면제되고도 온갖 꿀은 다 빨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의무는 적으면서 꿀만 빤 집단에게 제3신분이 죽창을 날린 혁명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제1신분과 제2신분에 준하는 이들이 누군지, 의무는 적게 지면서 꿀만 빠는 집단이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자. 약간의 비약이 섞인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의무는 가득 지고 혜택은 ㅈ도 못 받는 계층들이 오늘날 한국에도 존재하지 않는가? 반도에는 제3신분을 단결해줄 제2의 시에예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존재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뭘 해야 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프랑스 혁명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경과[편집]

당시 금수저들의 제3계급과, 1계급의 성직자, 2계급에 해당하는 법복, 대검 귀족이 투표권을 두고 삼부회라는 걸 열었다.

존나 웃기는 게, 삼부회를 열자는 게 제3신분이 아니라 왕이 재정 부족으로 귀족에게 보조지세라는 종부세 매긴다고 하니깐 빼애애액! 그런 거 하려면 삼부회 열어야 한당께욧!!! 라는 병신짓 덕분에 죽창 시즌이 열렸다 ^오^ 존나 웃기는 건 175년 만에 열린 회의라 카더라

ㄴ 좀 더 부연 설명하면 혁명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무리한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과 일자리의 부족, 그러니까 가난 때문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도시(파리) 인구가 존나게 늘어나는데 정작 그걸 먹여살릴 일자리나 식량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빈곤층은 굶주렸다. 그리고 프랑스의 재정 적자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지(당시 영국과 비교해보면 시장 형성이 잘 된 영국의 경우 잉글랜드 은행 설립해서 자체적으로 돈 지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지만 프랑스는 이와 정반대였다.) 설마 갑자기 잘 복종하던 애들이 "인권! 뺴애애애애액!"하면서 반기를 들었겠냐? 더군다나 해상권은 영국한테 먹혀서 세계 진출은 힘들지... 그런데 윗대가리들은 자기 이익 챙기는 데에 급급하지...이러니깐 안 빡치겠냐?

물론 제3계급은 두당 투표권을 주장했으나 씹혔다.(원래 얘네들은 1, 2계급은 2표씩 하기로 했음.)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베르사유 궁전의 테니스 코트에서 땡깡을 부리는데 이게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다. 여기에 참가한 인물은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동네 빵집 아저씨, 의사 양반이 아니라 당시 프랑스 왕실에서 직접 국민 대표로 뽑은 영향력 있는 부르주아였고, 못해도 현대로 치자면 중견기업 회장단 정도의 재력을 보유한 인물들이다. 루이 16세는 당연히 이들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빡친 민중들이 주우욱창을 들고 일어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여기서 살육이 과하긴 했다. 바스티유를 지키던 경비대장이 시민들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몇 시간 뒤 그의 머가리는 창에 꽂혀서 파리 시내를 돌아다닌다.

어쨌든 이들은 봉건제 전면폐지(귀족들에 대한 보상 없음),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인권선언)을 선포하는데 그 와중에 루이 16세와 왕비가 몰래 토끼다가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바렌느라는 곳에서 걸려서 다시 흙수저들은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입법의회가 열렸으며 이 와중에 온건파(지롱드 파)와 과격파(자코뱅 파)가 대립한다.

처음엔 온건파가 득세하였으나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무능하였고, 자코뱅 파가 상퀼로트라 불리는 도시 거주 노동자들의 머국적인 지지를 받아 집권한다. 이들은 물가 안정 및 보통선거를 제창하였으나, 반동분자는 무조건 기요틴에 모가지를 뎅강뎅강 해버리는 바람에 불만도 있었다. 이를 공포정치라 하며 대표적인 사람이 로베스 피에르이다. 여기까지는 흙수저를 위한 혁명이었다.

이 새낀 공안위원회를 설치해서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존나 죽인다. 미친듯이. 그런데 공포정치가 심해지고 죽창맞은 금수저 재산을 흙수저에게 주겠습니다. 라는 방토즈 법도 쌩까면서 흙수저들의 죽창 방향을 틀게 만든다. 결국 이 새끼는 단두대에서 뒈진다.

반혁명분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 한다.

돈 많은 부르주-아 새끼들이 지지해줬다 보니 얘네들이 득세하게 된다. 역시 마지막에 이긴 놈이 최강자다.

결국 지롱드파 쪽에서 총재정부란 것을 만들었지만 역시 어중띈 애들은 어중띄게 정치를 못했다.

이에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정ㅋ벅ㅋ한다.

흙수저들에 의해 생겨난 혁명에서 개이득 본 놈들은 돈 많은 부르주아라니... 주욱창... 죽창이 시급하다...

ㄴ 뭘 그러냐. 원래 혁명이란 게 죄다 엘리트 새끼들만 득 보는 거야. 우리 같은 하층민은 시대가 바뀌어도 하층민이다. 그나마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 거 없나 하고 지지하는 거지.

ㄴ ㄹㅇ 공산주의도 결국 공산당, 관료 새끼들이 꿀잼

그래서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레프트코뮤니즘이 필요한 거다.

ㄴ 레프트 코뮤니즘?ㅋㅋㅋㅋㅋ 그건 프혁 때도 그렇고 냉전 시기에도 증명되었듯이 망한 사상이다.

프혁 초기 때만 해도 자본가 새끼들과 민중 편드는 새끼들 양대 지분이 컸고 특히 자코뱅 내 산악파 같은 초기 사회주의 성향도 있었는데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산악파랑 자코뱅 과격파는 숙청당했다.

결과 및 의의[편집]

나폴레옹이 비록 유배를 가서 독재는 끝났지만, 이후에도 프랑스의 죽창은 아직 날카로웠기 때문에 유럽의 국가들은 이를 무서워하였다. 그리하여 혁명 뽕에서 역으로 가는 복고주의, 보수주의가 싹트는데 이걸 오스트리아가 주도했고 이러한 체제를 빈 체제라고 한다.

존나 잘생긴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가 1814~1815년 빈 회의에서 이끌었다. 프랑스를 견제하고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억압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혁명 후 19세기의 이야기이이고 혁명의 의의로는 경제적으로는 봉건제도의 폐지와 함께 시장경제 및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전제왕권이 시민계급(부르주아이다)에 의해 타도되고, 권력이 이동되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귀족들은 살기 위해 자신들에게 죽창을 찔러댔던 부르주아와 결탁하여 다시 사치를 부리게 된다.

그리고 이 귀족들은 1848년 혁명으로 다시 박살나게 된다. 사회 전반으로는 악폐습과 불평등이 해소되기도 했다. 아 물론 여성이랑 유색인종은 해당 없음 ㅇㅇ

하지만 이를 위해 프랑스가 치룬 댓가는 엄청 컸는데 프랑스 혁명과 그 뒤를 이은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하도 많이 죽고 혁명 정신으로 사람들의 계몽 수준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급감하게 된다.

결국 프랑스는 국력에서 경쟁국인 영국, 그리고 무섭게 치고 올라온 독일한테도 밀리는 신세가 되며 이는 현재까지도 프랑스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된다.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1863년에 이미 프랑스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갔다.

또한 1805년 3100만, 유럽 2위, 서유럽에선 압도적으로 1위였던 인구가 1914년에는 4000만도 도달 못했다. 같은 기간 동안 영국은 인구가 4배, 독일은 3배로 늘었다. 똑같은 산업화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폭증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구 구조는 다시 한 번 박살. 이를 메꾸기 위해 한 때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대거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민자들이 프랑스 사회에 융화되지 않고 게토 꾸리고 사고 치고 다녀서 고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부르봉이라는 여우를 도살했더니 보나파르트라는 호랑이가 나타났다.

나폴레옹은 루이 16세가 당한 것을 교훈 삼아 백성들을 쉬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프랑스에 징병제를 도입하고 그걸로 여기저기 막 들쑤시고 다녔다. 특히 러시아 쪽에 많이 쳐들어갔다.

보나파르트 집권기의 프랑스 백성들은 부르봉 집권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헬지옥을 맛봤다. 부르봉 왕조는 혹승지옥밖에 안되었는데 극락 가고 싶어서 그 혹승지옥을 없앴더니 보나파르트 왕조라는 아비무간초열지옥이 떡하니 나타나 버렸다.

물론, 프랑스 혁명의 주동자가 훌륭한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문제는 프랑스 혁명의 주동자라는 새끼가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병신이라는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라는 데에 있다.

왕실은 왜 쳐발렸는가??[편집]

요약: 혁명에 대한 갈망 + 혁명에 딱 좋았던 당시 프랑스 군사 제도

가난에 찌든 시민들이 빡친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이때 프랑스 서민들은 식인 사례까지 수차례 보고될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세금 계속 냈는데 프랑스 귀족들은 온갖 사치를 하면서도 세금을 안 냈다. 안 빡칠 수가 없다.

당장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 현실에 더 이상은 못 참아서 단체로 들고 일어나면 어찌 되겠냐? 하물며 이건 파리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 아주 제대로.

물론 이런 일에 대비하라고 둔 게 경찰과 군인인데 문제는 당시엔 시위에 대한 전술, 대처 방법 이딴 게 없었음, 당연히 시위 진압대도 그냥 쌩군인이 했고 숙련된 베테랑들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게 진압 당시 큰 장애물이 됐는데 군인들은 "혹시 저중에 친구나 가족이 있지 않을까?"같은 생각에 휘둘렸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 군 계급이 대충 크게 장교 하사관 병사 이렇게 이루어져 있었는데 문제는 병사와 하사관은 신분이 주로 평민 출신이 많았는데 장교는 주로 귀족 출신이 했다. 이게 왜 문제냐고? 평민이랑 귀족이랑 친해봤자 얼마나 친했겠냐? 장교 새끼들은 그냥 뒤에서 지휘만 하지 병사들을 직접 훈련시키거나 그런 건 전부 하사관 똘마니들한테 넘겼다. 이로 인해 장교와 하사관, 병사 간의 유대는 약했다. 군대의 생명인 단일심이 부실했다는 거다. 당장 국군만 하더라도 부사관이 병사랑 친하냐, 장교 급이랑 더 친하냐? 부사관이지. 근데 프랑스는 이런 좆목질이 더 심했다. 더군다나 하사관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평민 신분으로 장교로 출세가 힘들었고 이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군 내에 성행했던 매관매직도 문제였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국가에서 장교직을 고액에 사고 팔았다. 이 짓이 너무 흔하다 보니 돈 없는 평민들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장교가 되기 힘들었으며 반면 돈 많은 귀족들이나 부르주아들은 머리가 텅 비었어도 고위 장교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관매직을 통해 머리가 텅 비었음에도 장교가 된 무능한 인간들 덕에 전투 중에 일반 병사들이 개죽음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여기에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기 몇 년 전인 1781년, 귀족들만 매관매직으로 장교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법안까지 통과되자 군 내에 있던 부르주아들의 불만까지 쌓인 상태였다.

상황이 이러니 평민 병사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는데 무능한 귀족 출신 장교들은 이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고 부르주아 출신 장교들도 불만이 쌓인 상태였다. 이런 현상이 심각한 문제라는건 당시 지도층들도 알았겠지만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부르봉 왕조는 국가가 매관매직을 통해 버는 수입을 포기할 수가 없는 상황이였다. 사실 징세청부업자들에게 돈 받고 수조권 넘기는 대신 국가에서 직접 세금 걷었으면 재정난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었겠지만 관리들도 상당수가 매관매직을 통해 관리가 된 무능한 인간들이다 보니 세금을 이들이 제대로 걷을 수 있을지 의문이였다. 물론 매관매직은 동시대 레드코트에서도 흔한 일이긴 했다.

심지어 혁명 끝나고 장교중 절반이 도망치자 그 빈자리를 하사관이 매뀠다. 물론 당시 유럽군대는 이런 신분사회식이었다.(ex프로이센)

여튼 더 추가 하자면 당시 파리 군인들은 지금처럼 뭐 어디 주둔지 안에서만 먹고 자고 생활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파리시내에서 노는게 가능했으며 평민 출신의 병사들은 당연히 평민 있는데서 놀았다. 이는 곳 혁명사상이 병사들에게 쉽게 주입되는꼴을 낳았다. 당시엔 지금처럼 봉급도 제대로 못받아서 부업으로 생계꾸리는 병사들도 많았거든

그리고 이게 병사들이랑 친한 하사관들한테까지 퍼진다. 이런 사상에 덜 노출된 왕실을 경비하는 병사들도 사정이 더 병신 같았는데

프랑스는 전에 천조국 독립전쟁 지원한다고 왕실 무기고에있던 머스킷 10만정을 천조국에 증여했다. 뭔소리냐면 혁명 당시 왕실무기고는 텅텅 비어있었다는거지 당시 10만정이면 조온나게 많은 양이었다.

장교와 병,하사관간 유대부족 + 혁명에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병사, 하사관 + 왕실 무기부족 + 이런상황에대한 대처미비 + 평민출신인 군인 등 기타 등등의 사유로 결국 파리 내 군인들도 혁명파에 가담한다. 애들이 조까 하고 장교한테 반기를 들거나, 친히 대포를 끌고나와 혁명에 합류하는 일까지 벌어젔다. ㅈ된거지

결국 이런 군대의 등돌림은 혁명이 성공하는데 크나큰 일조를 한다.

루머[편집]

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앙투아네트 개썅년이 말했음.

 
— 장 자크 루소의 글을 악용한 어느 선동가

사실 이 말은 앙투와네트가 아니라 적국 공주가 말했다나 뭐라나. 명품 중독 김치녀라 불리는 앙투와네트는 오히려 역대 프랑스 여왕 중에 검소한 여왕이었고 국민을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닌자한테 칼빵맞아 뒤진 동방의 병신녀나 여왕 자리를 내어주신 애비 돌아가신 모 여왕과는 클라스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한 말은

민중들이 빵이 없어 굶주린다니 케이크 껍질이라도 그들에게 나누어줘라.

 
— 마리 앙투아네트

이다.

ㄴ 그럼 왜 죽인거임?

ㄴㄴ 민중들의 분노가 향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ㄴㄴㄴ 일단 오스트리아 태생이 문제. 혁명 때문에 간과되는데, 프랑스랑 오스트리아 사이가 안 좋았음. 계승 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와 부르봉 왕가는 척을 졌던 상태고 테레지아가 딸내미인 앙투아네트를 시집 보내서야 외형적으로 갈등이 봉합된 형세. 그런데 어디까지나 외형적 봉합이라 혁명 이전부터 바게뜨 놈들은 앙투아네트를 향해 오스트리아 촌년, 오스트리아의 간첩이니 하면서 비아냥대기 일수였으니 혁명 이후엔 인식이 더 거지 같아짐. 거기에 혁명 후 바렌느 배신 + 타국의 개입에 대한 불안의 꼴라보 이펙트가 터짐. 일단 왕실이 해외로 튈려고 했던 거 자체가 당대 민중들에게 충격이었고 해외로 망명해서 외국 군을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도 문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 머가리 누나인 건 알지?

ㄴ 솔직히 쿵쾅언냐들 거르고 여성혐오 때문이기도 했음.

ㄴ 걔 태어난 국가부터 대프랑스 동맹 이끌고 프랑스 공격했던 오스트리아임

처음엔 루이 16세를 필두로 입헌 군주정을 구성하려고 했다. 근데 위에 기술했듯이 외국으로 도망치다 바렌느에서 한 백성의 밀고로 잡힌다. 이것 때문에 "아 이놈은 입헌군주 시켜줘도 뒤통수 때리겠구나" 하고 혁명 세력이 판단한 거지. 물론 마녀사냥감이 필요하긴 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당시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강대국이었고 변변한 장교 하나 없는 프랑스 혁명 세력은 무슨 깡이었는지 그 강대국 오스트리아 황제의 누님을 날려버린다.

이것 때문에 당연히 합스부르크 왕가와 한판 제대로 붙지. 그리고 제법 검소한 편인 것도 맞고 역사가 기술한 수준의 악녀는 아니었지만 결국 얘는 합스부르크 왕가 일원에다가 부르봉 왕조에 시집간 골수 왕당파, 기득권 세력이었다.

국경 넘어 도망치려고 했던 것 자체가 혁명 세력에 위협이지.

기타[편집]

이 사건을 프랑스 반란이라고 우기는 놈이 실제로 아주 가끔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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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