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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youtube width="380" height="210">hvQCCGaLRV4</youtube>

수상, 한반도에서 물러난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게 누구요? 수상 아니에요?

 
— 1972년 5월 김일성과 회담 도중 이후락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 曰

한민족 최대의 동족상잔

혹부리우스의 한반도 공산화를 노린 야욕으로 시작된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경에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서 발생한 전쟁이다.

위 볼드체로 작성된 문장들은, 미국과 남한의 북침에 저항했던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만행을 부정하는 북한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하는 매우 강력한 증거다. 아무튼 무조건 남침이다. 북한이 선제공격 날린 거에 초점을 두어서 북침이라고 하면 큰일 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전쟁이 종식된 것은 아니며 현재도 북한이 일방적인 도발을 하고 있으며 1968년, 1996년, 1999년, 2002년, 2009년, 2010년에도 전투가 있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쟁 발발한 지 70년이 된다. 아시아판 100년 전쟁이라도 노리는 듯하다.

부카니스탄의 혹부리우스(김일성) 병신 덕분에 생긴 병신 같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또 죽어났다. 아. 물론 돼지 새끼가 스탈린에게 부탁해서 겨우 승인되고 단독으로 만들어진 전쟁이 아니고 박헌영 씨발 좌빨 새끼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이 전쟁 때문에 반도의 모든 견실한 신념론자와 뛰어난 인재들이 갈렸으며 그 자리를 권욕의 화신 저승만, 엑윽보수, 친일파들의 챔피언스 리그 한민당(민주당 조상), 북괴 혹주머니가 차지하면서 반도가 생지옥으로 돌변했다. 물론 전쟁 이전에도 이미 좆본에게 막 독립한 지옥이었고, 좆본에게 따먹히기 전에도 생지옥이었다.

식민지 착취 기간 동안 금속이나 자원 수탈로도 모자라서 말기엔 자원 수탈하려고 깔았던 철도 선로마저 뜯어가던 일제시대가 반도를 후라이팬으로 구웠다면 6.25 전쟁 시기는 직화구이로 구웠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시각 1950년 FIFA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잉글랜드 같은 강호들이 줄줄이 나가리 되어서 브라질이 "야 신난다~"하면서 자기들이 우승할 줄 알고 마음껏 뻐겼으나 우루과이가 우승했다. 이히히히~ 고것 참 쌤통이다. 빌어먹을 1-7 새끼들!

미국에서 국회 동의 안 받고 전장으로! 해서 위법 판결받을 뻔했지만 연방대법원에서 무마해줬다. 다행이다.

결과를 떠나서 너무 선악이 분명한 전쟁 아니냐? 누가 먼저 선빵 날렸는지도 분명하고, 동독 대 서독 정도로 서로 왕래가 가능한 수준까지 주먹다짐 없이 지낼 수 있었음에도 공산화의 야욕 하나만 품고 남침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가 누가 나쁜놈인지 명확히 파악하게 해준다. 솔직히 이 사건만큼 선악이 분명한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

이 전쟁에서 엄청난 숫자의 홍어들이 학살을 당했다. [1] 이는 홍어에 대한 혐오도 원인이 되었으며 전라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6.25 이후로도 지속되었다.[2] [3] [4]

전개요약[편집]

전개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틀렸다면 수정바람)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김일성의 주도하에 인민군 대대적인 남침시작

⬇️

국군(+유엔군)의 필사적인 방어로 부산 방어 성공 및 일시적인 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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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인천 공략 성공으로 전세대역전 및 국군의 대대적인 북진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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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유엔군)의 한반도 북부지방 수복 시도 성공. 하지만 중공군의 불법침략으로 멸공통일 저지됨

⬇️

국군(+유엔군)이 중부지방까지 밀리고 국군의 수복과 인민군의 점령을 반복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시작.

이 휴전을 기점으로 한반도는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현재도 서로의 존재를 용납 못 하며 언젠가 무너트릴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ref>물론 최근에는 평화통일 대상이라며 유화적인 제스쳐가 많아졌으나 2020년을 기점으로 북괴 정권종말론, 북괴의 대남핵도발 등 공격의도는 저버린게 아님</ref>

전개[편집]

해방 전부터 소련과 짱깨의 공산 세력은 한반도의 북쪽을 점령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해방과 동시에 소련에 충성하는 김일성, 박헌영, 박상희 등을 시켜서 당원을 모집, 그리고 군대를 만드는 등 한반도 북쪽을 차근차근 점령했다. 특히 박상희는 아예 대구를 적화시켰다. ← 개새끼들 맞네 저거

소련이 차근차근 점령을 준비하는 가운데 남쪽은 온갖 권력에 욕망을 가진 자들이 서로 테러하고 견제하는 개판을 벌여서 사실상 북쪽의 진행 상황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아니었다. 한반도 전체에서 총선을 치르자는 UN의 제안을 소련군정은 거부했다.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찢겼던 한반도는 당시 남쪽에 2천만 명, 북쪽에 1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인구 10만 명당 국회의원 한 명을 선출하도록 선거구를 조정하자는 UN의 제안을 따른다면 북쪽에서 국회의원 100명, 남쪽에서 200명이 선출되니까 소련군정 입장에서는 좆같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남한에서만 선거가 이뤄졌고 제헌 국회의원은 198명만 선출되었고 그중에서 동대문구 갑 지역구 국회의원이 훗날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 된다. 2명은 ㅇㄷ? 당시 제주도 인구 30만 명이었으니까 거기에서 3명 뽑기로 했는데 세 선거구 중에서 두 곳은 4.3 사건으로 완전 박살이 났다. 이때 3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엑윽보수는 이 3만 명을 모두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단독 정부 수립이 있기 전에는 백범을 비롯한 여러 민족주의자들이 설득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남한은 헌법 선포와 동시에 단독 정부 수립을 실시했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미군정은 남한 정부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동시에 국군이 창설된다. 그리고 미군은 몇 개 안 되는 사단만 남겨둔 채로 한반도에서 철수한다. 차근차근 준비하던 북한은 미군도 철수했겠다, 자신감을 얻었는지 전쟁 테스트 겸 38선 부근에서 소규모의 교전과 소요 사태를 일으키며 사실상 전쟁 예고를 한다. 주말이라서 외박 외출로 군대가 한산하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북한은 탱크와 보병 부대를 진군시키고 38선을 넘어서 서울로 진격했다.

이에 이승만이 녹음기를 틀고 "서울은 안전하다! 국군이 해주로 진격하고 있다!"는 개구라를 친 다음, 한강 인도교 터뜨리고 수원-대전-대구-부산 순으로 전속력으로 튀었다. 방송 나올 때 이미 대전에서 방송 다 녹음하고 대구로 튀고 있었다. 특히 해주 진격 부분은 이후 남한 북침설의 근거 중 하나가 되었고 그 말을 믿은 제1사단장 백선엽이 전선을 맞추기 위해 북진했다가 오히려 고립되기도 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가진 것 전부 싸들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도망치는 조선의 '그' 우두머리의 전통을 충실하고 훌륭하게 계승하였다. 게다가 이 새낀 경기도 방면에 아직 3개 사단(1, 6, 8사단)이 있었는데도 한강을 폭파해버려 이 사단들의 괴멸을 촉발하게 된다. 그나마 6사단, 8사단은 제때 한강다리가 폭파되었다는 말을 듣고 후퇴했지만 1사단은 그것조차 못 들어서 장비는 내다 버리고 개개인이 한강을 건너서 가야 했다. 이후 한강 인도교 뽀갠 걸로 뭐라고 그러니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는 공병감 최창식의 목을 베고 "얘가 그랬대요."라며 변명을 씨부렸다. 이래놓고 나중에는 휴전 안 한다고 휴전 문서에 서명도 안 하고 뻐겼다.

주인님이신 미국님이 친히 UN군을 이끌고 김일성 목 따기 일보 직전까지 가나 했는데 탈모 온 주석 개새끼 덕분에 통일은 물거품이 된다.

참고로 UN군의 정식 명칭은 '평화 유지군'이다. 원래 UN군의 목적은 38선의 회복과 사수였지, 북부의 완전한 점령이 아니었다. 그걸 좆까고 38선 넘은 건 순전히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의 작품이다.<ref>이때는 분단된 지 5년밖에 안 되었고 민족주의 정서가 튼튼했기에 빨리 통일하자는 국민 여론의 지지율로 먹고 사는 국회, 국군 장성들 모두 북진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승만은 북진통일 드립에 이를 아주 잘 써먹었다.</ref> 그래서 38선을 넘은 그 시점부터 미국은 이승만에게 깊은 빡침을 느끼기 시작했다. 방금 윗줄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전쟁 막바지에는 이승만이 휴전 협정 같은 거 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시위를 하겠다고 반공 포로를 풀어버렸거든. 그래서 예정보다 휴전 협정이 한 달이나 미뤄졌다.

멋대로 북진하고 반공포로 풀어주면서 미국의 통수를 두 번이나 후린 이승만에게 세 번은 나대지 말라고 미국이 신신당부하는데, 전쟁 기간 동안 다시는 나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이승만은 미국에게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고 전쟁 이후 성공적으로 체결한다. 착한 트롤링 인정합니까?

중공은 천벌을 받았는지 모택동(마오쩌둥) 아들 모안영(마오안잉)이 이 전쟁에서 사망하고 총사령관 팽덕회는 문혁 때 마오쩌둥에게 버려진다. 중국 개새끼들. 국경이 미군과 맞닿게 생기니까 쫄렸나보다.

북한이 쳐들어왔다는 건 알지만 이게 '북침'인지 '남침'인지 모르는 놈들이 적지 않다.

결론부터 내리면 북한 새끼들이 소련한테 땡깡 부려서 무기 지원 받은 후 새벽에 기습 침공을 했지만 위대하신 천조국님께 역관광 당한 게임이다. 위대하신 ㅄ 김일성 만세

김일성 새끼 존나 전쟁광이다. 제2차 한국전쟁 일으키려다가 스탈린한테 깨갱하고, 또 테러 활동 좀 하겠다고 살아있는 동안 공비를 총 300명 남파시켰다. 수시로 남한에 간첩 보내고 위협하고 간첩 라인을 심어댔다. 남쪽에 대한 병신 같은 미련을 못 버렸다. 애초에 이 새끼는 누가 봐도 쏘련 괴뢰 상태여서 적화통일 레퍼토리 아니면 정통성이 없는 새끼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 미군한테 좆발려야 정신을 차릴 텐데

북한이 쳐들어왔으니 북침이라고 대답하는 머가리 불탄 놈들 덕분에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애국보수는 안보관 위기라며 국민들을 겁준다. 6.25는 '북한의 남침' 이다. 똥침을 생각하면 쉽다. "똥"꼬를 "침"략. 근데 한자 어순은 동사 + 목적어 아니냐? 독서, 음주를 서독, 주음이라 하진 않잖아. '남'이라는 한자가 목적어가 아니고 부사 취급이라 남침인 거냐? 아는 새끼 있으면 추가 바람. 애초에 북한이 침략했다고 하면 다 알아들을 말을 쓸데없이 한자 써가면서 페이크 거는 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좆자충들 풀발할 명분만 하나 늘어날 뿐이다.

ㄴ '남침'에서 '남'이 '침'을 수식하는 구조임. 그러니까 부사+술어. 그래서 '남쪽을 침범'이라는 말이 맞는 거 ㅇㅇ 여기서 주어가 왜 없냐고 물어볼까 봐 하는 말인데, 한국어에는 주어가 많이 생략되는 편이고, 굳이 안 써도 누가 침범한 건지 아니까 딱히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 보1지; 비슷한 말로 북진(北進)도 있는데 북진도 해석하면 북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만약에 북침의 뜻이 '북한이 침략하다'라는 뜻이라면 북진통일은 북한이 진격해서 통일하자는 뜻으로도 된다는 말인데, 그러면 북진통일을 주장했던 당시 사람들 코렁탕 먹여야지 않겠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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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아프리카 우가우가거리는 녀석들이나 오세아니아 코찔찔이나 남미 마약팔이들이나 죄다 합심해서 미국을 도와준 거지, 괜히 그런 게 아니다.

  • 영국은 기본적으로 도와주러 왔고 미국 다음으로 병력이 많았다.
  • 영국 미국 다음으로 병력이 많이 보낸 게 터키였다. 터키는 타흐신 야즈즈 준장이라는 장수 휘하에 1개 사단 + 1개 연대 규모로 도와주러 왔다. 부산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내자 미군이 터키군에 요청해서 타흐신 야즈즈를 소장으로 진급시켰다. 또 터키는 우리 국군이 포위되자 총에다 검 꽂고 알라후아크바르 시전하면서 배빵까지 시전한 개쩌는 군인들이었다...만 당시 한국전쟁 때 참전하신 분들 상당수는 쿠르드족이었다고 한다.
  • 프랑스는 라울 몽클라르 중장이 한국을 구출하는 일은 자랑스러운 거라며 자기 계급을 스스로 중령으로 깎아서라도 기어이 참전하고야 말았다.
  • 콜롬비아도 남미 용병들 모아다 한국 도와주러 왔다.
  • 에티오피아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불쌍한 한국을 구해주자며 자기 친위대까지 직접 내려줘가면서 도와줬다. 당시 이들이 활동하던 곳이 강원도 춘천과 인제 일대였는데 그래서 춘천은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와 자매 결연을 맺었다.
  • 뉴질랜드는 원주민 마오리족까지 발 벗고 나서서 한국을 도와주겠다고 왔다.
  • 필리핀도 독립 직후였는데 참전하였다.
  • 이탈리아는 병력은 보내되 전투원은 없었지만 전원 군의관과 군간호사들이였다.
  • 대만도 3개 보병사단, 2개 항공여단 병력을 이끌고 참전 의사를 밝혔으나 미국한테 반려당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한테 할 수 있으면 감사하다고 해야 된다. 물론 일본은 좀 아니다. 에티오피아 같은 데에는 봉사하러 가주자. 커피도 좀 사 먹고.

그런데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거부해서 못 온 거 아니냐?

ㄴ 씽먼 리가 닥치고 쪽본은 안 된다고 외쳐서 못 오는 대신 미국님들이 패전국 놈들을 어떻게든 부려먹으려고 동해에 포진한 기뢰들을 제거하게 시키고, 일본에 주둔한 미군들을 운송하기 위해 일본 민간 업체들에게 LST와 상선들을 보내게 하긴 했다. 그거 타다 뒤진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그걸로 전쟁 특수는 존나게 벎.

ㄴ 그리고 그때 일본은 평화헌법 때문에 군대도 없어서 보내고 싶어도 못 보냈다.

이 좃본 새끼들 2차 세계대전에서 신명 나게 털리고 개판이었는데 한국전쟁 나고 닛뽄이 여기서 물자를 존나 파면서 경제를 꽤 회복했다. 한국전쟁 없었으면 일본은 평생 농업국가로 살았을 거다.

ㄴ 그건 맥아더 뇌내망상이고... 어차피 미국은 일본 재벌해체 말고는 딱히 중공업 기업 건들지도 않았다. 다만 한국전쟁이 폐허가 된 일본 경제를 10, 20년 더 빠르게 되살린 것은 사실이다.

ㄴ 정확히는 한국전쟁에서 한국이 밀렸으면 일본도 최소 분단 내지는 공산화 될 확률 매우 높았음.

조짐[편집]

이 모든 게 김일성이 통찰력이 아예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김일성 새끼님은 당장의 이득만 보는 새끼님일 뿐이고 먼 미래의 대국적인 이득은 보지 못하는 새끼님이다. 그래서 남한을 쳐들어가면 바로 먹을 줄 알았다. 한마디로 김일성은 좆병신이다.

1940년대 후반,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직후의 국제정세를 이오시프 스탈린은 읽을 줄 알았는데 떼강도단 두목 나부랭이 새끼인 김일성은 멍청해서 읽을 줄 몰랐다.

그래서 스탈린은 비록 자신이 지배하는 소련미국과는 적대관계이긴 하지만 미국이 일본 제국을 참교육시킬 때 써먹었던 땅꼬마뚱땡이의 무서움을 익히 잘 알고 있었으므로 대립하는 한편으로는 미국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이 정말 제대로 빡쳐서 모스크바원폭 한 개만 넣어주면 스탈린은 좆되는 걸 스스로가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멍청이 김일성은 달랐다. 미국이든 나발이든 간에 한반도를 다 먹을 욕심만 뇌에 가득해서 무조건 쳐들어가자고 스탈린에게 졸라댔다. 스탈린은 이 김일성의 어리광을 48번이나 거절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허락했다.

ㄴ 근데 스탈린이 48번이나 거부한 건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조짐의 결과로, 김일성이 인천상륙작전으로 결정타를 먹은 뒤 공산군 지휘권은 아예 팽덕회송시륜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굳이 둘을 비교하면 스탈린이 옳았고 김일성이 틀렸던 것이다.

김일성 이외의 전인류는 미국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한반도 적화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김일성 혼자만의 뇌내망상 속에서는 한반도를 적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전쟁을 일으켰다.

김일성의 계산은 일단 한반도를 다 먹으면 자기가 그 공으로 적화통일 조선의 수령이 되어 천년만년 해먹을 생각을 했고 한반도를 먹는데 실패하면 자기 정적들에게 그 책임을 씌워 죽이려는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직 김일성 혼자에게만 밑질 게 없는 장사였던 것이다.

중국은 이 전쟁으로 타이완 함락이 영원히 불가능해지는 손해를 봤고 소련 역시 가만히 있으면 미국이 한반도를 대충대충 관리해서 미국 몰래 한반도를 이념적으로 적화시킬 수 있었는데 그게 영원히 불가능해졌다.

다만 스탈린이 50번째 뗑깡에서 받아준 이유가 바로 유럽 전선 관리였다. 미국이 한반도에 한눈파는 틈을 타서 유럽을 조금이라도 공산화시키고, 더군다나 스탈린의 본진인 모스크바가 한반도 쪽이 아닌 유럽 쪽에 붙어있으므로 미국이 한반도 쪽에 신경 쓸수록 좋은 거였다. 중요한 건 스탈린이 페름에 탱크 공장을 차렸는데 이게 모스크바 북쪽에 있다는 거. 이거 털리면 소련 기갑은 좆망하는 거다.

김일성의 또 다른 계산은 박상희대구를 적화시켜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대구까지만 밀고 가면 거기서 박상희의 일당들을 만나 탱크 + 민중봉기로 쉽게 적화통일을 이룰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는데, 계산은 개뿔! 박상희는 이미 이승만이 보낸 반공토벌대에 잡혀 착해진 상태였다. 박상희의 사망으로 인해 대구 공산당은 사실상 와해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김일성은 뇌내망상에서 죽을 때까지 못벗어난 인물이었으며 그 김일성의 머릿 속 뇌내망상에 의해 이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미국이 존재하는 한 소련 할아버지고 나발이고 안 되거든. 김일성은 미국의 역량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돌대가리라서.

조짐이 보였지만 미국은 전면전이 예상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두 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먼저, 1946년 이래로 하도 전면전 보고가 많이 올라왔는데도 4년 동안 전면전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소규모 교전만 일어났다. 그래서 믿을 만한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번째로, 북한은 소련의 괴뢰국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한국을 침공하는 순간 소련과 미국 간의 전면전이 되고 소련은 전후 복구에 바쁘기에 절대로 한국을 침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아주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물론 일제가 대륙 진출을 위해서 짱깨와 국경을 맞대는 현재의 북한 지역에 군사적 시설을 많이 지어서 당시에는 북한의 군사력이 더 강했지만 미군과 유엔군까지 합류하면 당연히 막는 걸 넘어서 박살을 낼 수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적이 상식적이지 않은 미친 놈인데도 굳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버렸다는 것이다. 하필 상대가 희대의 좆찐따에 또라이 미친놈이었던 김일성인 탓에 스탈린도 결국 못 말린 일성이는 남침이라는 희대의 개짓거리를 날려버리고 워낙 어이가 없는 상식 외의 일이라서 당황한 국군과 미군과 유엔군이 초기에 밀렸던 것이다. 북한 장비가 국군보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이제 상대는 미군과 유엔군이었으니 당연하게도 얼마 안 가서 역관광을 당했다. 사실 북한군은 유엔군에게 쨉도 되지 않는 좆밥 군대이기에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률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매우 높았다.

쉽게 비유하면 수련회 숙소에서 왕따가 자기를 괴롭히던 일진다른 방을 쓰게 되어서 꿀잠 자고 있는데 같은 방에 있던 찐따가 기습적으로 얼굴에 낙서를 했던 셈이다.

전쟁 발발[편집]

파일:Korean war 1950-1953.gif

시작하기 전에는 나름대로 평화롭고 훈훈한 분위기였는데<ref>물론 전쟁 전에는 간첩 보내고 1949년부터 국지전도 있었다.</ref>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혹부리새끼가 인민군을 이끌고 불법 기습 남침을 한다. 원래 전쟁은 시작 전에 국제 협약인 제네바 협약에 따라서 선전포고를 해야겠지만, 김일성이 했겠냐? 그래서 오늘날까지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는 씹창이다.

주한미군 철수하고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가 제외된 걸 보고 좆나 좋은 타이밍이라고 여긴 김일성이 당시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스탈린은 세계대전이 다시 일어날 스멜을 느껴서 마오쩌둥이 전쟁 좋다고 말하면 자기도 지원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이었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한 지 8개월 가량 지난 상태라서 기분 째진 상태였던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진영의 확장을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과 국경이 닿으면 안 된다는 계산에 미군 개입하면 우리도 전쟁에 끼어들겠다고 흔쾌히 말한다. 그렇게 북한은 우선적으로 소련에게서 지원 받고 개전했는데... 마오쩌둥에게 언제 전쟁 시작한다고 말도 안 하고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하는 바람에 이때까지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삐져있었다. 그래서 평양이 털리는 순간까지 중공은 김일성 이 새끼 한 번 좆망해보라는 심정으로 그냥 지켜보다시피 했다. 개병신새끼가 지가 쳐들어가라고 김일성한테 바람 집어넣어놓고 뭐라노.

전쟁 직전 박헌영이 엄청난 말을 한다. "조선인민군이 남쪽으로 가면 20만 명의 남로당원이 우리 동지들을 반길 것이오!"라고 말했지만 막상 개전하니까 한 놈도 안 반겨줌 ㅋ 코딱지도 안 보임 ㅋ 덕분에 휴전 후 박헌영을 필두로 북한에 있었던 남로당원 2000여 명이 책임 덤터기를 쓰고 골로 간다. 물론 박헌영이 믿었던 건 바로 박상희가 적화도시로 만들어 놓은 그 곳이었지만 박상희는 이미 이승만이 빨갱이 때려잡으라고 내려보낸 반공경찰대에게 1946년에 잡혀서 총살당했다. 그 박상희는 어떤 여색을 밝히는 꼴통 새끼의 형이다.

전쟁이 터지자 난리가 났다. 어찌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장정이라면 아무나 막 징병하는 통에 병사들이 상투 튼 놈, 머리가 허리까지 긴 놈, 댕기 튼 놈, 수염이 관우 같은 놈 등 징발한 장정들 외모가 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줬다. 당시에는 염색약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아서... 여튼 머리 깎을 겨를도 없이 징발하자마자 마구 쑤셔 넣어대는 통에 병력들 외형이 아주 가관이었다. 게다가 이때 채병덕이 너무 급하니까 육군사관학교가 태릉에 있다는 걸 알고 육사 생도들을 의정부 전선에 바로 투입했다. 그리고 의정부가 함락되면서 육사 생도들이 계속 뒤져나갔고 거기서 겨우 살아남은 육사 생도들에게는 상으로 바로 소위로 임관시켜준 뒤 소대장 자리에 배치했다. 로드 넘버 원의 신태호가 이런 인원이다. 여튼 이 일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군은 종전 후 제주도에 사관학교 시설만 만들어 놓은 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생도들을 제주도의 사관학교 시설에 몰아넣고 딱 소대장만 할 수 있게 훈련시킨 뒤 바로 전선에 배치하게 했다.

개전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강 인도교(한강대교)가 폭발했다. '한강철교'라고 얘기하면 곤란하다. 철교를 폭파한 건 미국 공군이 한강 방어선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인도교는 한강 철교 옆에 있는 다른 다리다. 한강 방어선 전투에서는 졌지만 춘천-홍천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동부 전선이 안정되었고 시간을 번 덕분에 UN군이 한반도에 도착, 정부 요인들은 대전에서 모두 모이게 된다. 서울 사람들은 평양으로 납북 당해서 사상 재교육을 받거나 인민군복을 강제로 입게 된다. 조소앙, 김규식, 안재홍 등 개국 인사들과 감방에서 썩고 있었던 반민특위 인사들은 이때 납북된다.

이 과정이 존나 괘씸한데 한강대교를 폭파시킨 건 신성모가 시켜놓고 정작 그래서 죽은 800여 명의 피난민들에 대한 책임은 시키는 대로 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뒤집어씌워서 서울이 수복된 이후인 1950년 9월 21일에 서울 한복판에서 최창식 대령을 총살시키고 마치 도마뱀이 꼬리 자르고 튀듯이 죄를 최창식에게 몰빵시켜놓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반인반신이 정권을 잡은 이후로 반인반신 덕분에 최창식은 사면 복권되었다. 명령에 의해서 움직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괴 막으려고 7월에 다소 뒤늦게 지원 부대를 파견했다. 대좆본제국 황군의 정신을 계승한 머한민국 육군의 작전 회의를 옆에서 지켜본 미군에게 전작권을 이때 넘겨주게 된다. 그게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엄청난 국군 작전 회의를 지켜봤을 당시의 미군 장성들의 반응은 상상에 맡긴다. 막말로 인민군 장교들 중에는 소련군 복무하면서 좆본군에게 죽창 몇 번 찔러본 찌른 군관 출신이나 무장 투쟁 독립 운동가가 몇 명이라도 섞여있었는데, 좆본군 이끌면서 태평양과 만주 벌판에서 미군/소련군에게 마분지처럼 찢겨나가던 친일 군관 장교 출신들이 했던 작전 회의나 전투 지휘 수준은... 더 얘기하면 종북 취급 당할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얘기한다. 근데 어쩌라고? 존나 일방적으로 털린 건 사실이잖아? 전작권도 결국에는 미국에게 넘겨줬잖아?

근데 인민군 3개 사단을 막으려고 보낸 미군 부대라는 게 고작 수색 대대 1개다. 사실 당시 미국이 북한의 3개의 기계화 보병 사단을 상대로 고작 1개의 수색 대대를 보낸 건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세계 최강 미군이야. 까불지 말고 얼렁 제자리로 돌아가. 쓸데없는 피는 흘리기 싫으니까 전쟁 멈춰라.

이러려고 일부러 대대 규모 병력을 하나만 보낸 것이다. 그러다 쳐발린 찰스 스미스 중령니뮤. ㅠㅠ

당연히 발렸다. 이후 1개 사단을 더 보냈으나 또 쳐발렸다. 사단장 윌리엄 딘 장군이 잡혔다. 이 무슨 망신이냐? 무슨 2002년 한일월드컵도 아니고...

그 당시 미 24사단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렸냐 하면 투스타 사단장이 적과 직접 교전을 벌이는 지경까지 갔다. 예하부대는 물론 휘하 참모진들까지 개박살이 나야 사단장이 직접 적과 싸우는 광경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부산 앞까지 밀렸지만 UN군 월튼 워커가 끝까지 개겼고 마산, 다부동, 영천, 포항 등지에서 적 수만 명을 쓰러트리고 바다에서도 백두산함이 공비 싣고 부산으로 우회 침투 하려던 배 저지하면서 부산을 방어해냈다.

백두산함은 진짜 좆만한 배였는데 존나 개쩌는 활약을 해냈다. 2차 세계대전 참가 경력마저 있다! 노익장 클라스 <ref>자금 문제 때문에 포탄이 100발 남짓밖에 없어서 최대한 근접해서 전투했다고 한다. 근데 다 맞춰서 이김 엌ㅋ</ref>

정말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타흐신 야즈즈가 이끄는 터키군이 와준 덕분에 겨우 살았다.

그리고 다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인천을 공략해서 인민군의 보급로를 끊는 작전이었다. 그 작전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물론 북한은 이걸 간파하고 있었다. 맥아더 트레이드 마크가 상륙작전이거든. 필리핀 탈환전도 맥아더의 갓-작품이었다. 그래서 당시 도쿄에 있었던 맥아더가 어디에 상륙하라고 할지 일본인들은 내기 걸고 있었다 카더라. 성동격서라고, 맥아더는 일단 한반도 동부 해안에 폭격 한다고 거짓 무전도 보내고 할 짓 못할 짓 다했다. 당연히 인민군은 병력을 동쪽으로 빼게 된다.

처음에는 이 상륙작전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왜냐면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상당히 심하고 요새화가 되어있던 지역이라서 자칫하면 시간 잘못 맞추고 썰물 때 갯벌에서 병사들 벌집되고 배들이 모조리 수장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이 9월 15일, 서울 수복은 그로부터 2주가 지난 뒤였다. 솔직히 군인 체력으로 시간 내서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라도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2주나 걸린 이유가, 당시 인천이 고향이었던 인민군 장교 리승엽이 인천 지리를 잘 알고 있었던 덕분에 꽤 선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이 좀 들었지만 싹 밀고 서울까지 수복한다.

혹부리우스는 적화통일을 코앞에 뒀다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인천과 서울이 뚫리는 바람에 하삼도에 있는 인민군에게 전달할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신나게 털리고 연합군은 북진을 성과적으로 이뤄내면서 혹부리우스는 뒷목을 잡게 된다. 이때 남부에 있던 인민군들은 포로가 되어서 거제도로 보내졌는데 거기에 있었던 17만 명<ref>1951년 6월에 최대로 수용한 숫자다. 그중에서 중공군이 2만 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ref> 가량의 포로가 둘로 나뉜다. 이 중에서는 소속만 공산군인 반공 성향의 청년층이 꽤 섞여있었는데 공산군 점령지에서 미처 튀지도 못했는데 자기 머리통에 총구가 닿으면서 "동무 죽고 싶네, 인민군복 입을 거네?"라는 질문을 듣고 인민군복 입은 장정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ref>이런 이유로 끌려간 인민군 상당수는 대한민국 땅이었던 38선 이남 출신이었지만, 고향만 북한이었는데 빨갱이들이 끌고 가서 억지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ref> 그들은 반공 포로, 나머지는 친공 포로로 갈려서 포로 수용소에서는 개판 오분전의 패싸움이 매일 열렸다.<ref>이 반공포로 vs 친공포로 시빌 워는 중공군 개입 이후 더 심해졌다.</ref> 당시 미쿸군 수용소 감독관은 이때 싸움에 휘말려서 포로의 포로가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수감자 생활 개선 조건을 들어주는 것으로 포로의 포로는 목숨을 건졌다.)

어쨌든 거제도 상황은 그렇고, 한편 전선이 역전되자 혹부리우스 새끼는 평온한 척 평양에서

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
 
— 병신 혹부리우스

라는 방송을 한 뒤 덕천군으로 런하고 만다. 지가 일으켜놓곤 내빼는 수준; 거기의 한 터널에 숨어지내며 존버하다가 평안북도 창성군 동창면의 대유동<ref>이곳은 일제시대때 유명했던 금광촌이었다.</ref>이라는 동네로 런한다.

거기에서 몰래 팽덕회를 만나서 회담을 나눴으며 거기서 짱개군 개입의 약속을 얻은 뒤 짱개군 응디 뒤에 숨게 된다.

그러면서 박헌영한테 니가 말한 남쪽의 빨치산 동지들은 어디에 갔고 왜 인민봉기가 안 일어났느냐라며 질책했다, 그러자 박헌영은 그러는 니는 왜 후방에 예비 병력을 왜 안 둬서 이 전쟁을 말아먹느냐고 일침을 갈기자, 혹부리우스는 빡쳐서 박헌영한테 잉크병을 던지곤 "야, 이 자식아! 만약에 전쟁이 잘못되면 나뿐만 아니라 너도 책임이 있어!"라며 적반하장을 하며 서로 오십보백보 말싸움만 해댔다.

그리고 국군이 평양까지 올라가자 혹부리우스는 강계군의 지하 벙커로 런하곤 그곳을 임시 수도로 규정한 후 울며불며 뗑깡을 부리며 중국 바짓가랑이 붙잡고 뒤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와중에...

1950년 10월 19일, 결국 미국과 국경 닿기는 존나 싫었던 마오쩌둥이 송시륜과 팽덕회라는 씹새끼들을 시켜서 개떼를 몰고 불법침략했다.<ref>참고로 짱깨들은 이 군대를 '중국 인민지원군'이라고 명명하는데 알다시피 그건 중국 공산당이 불법개입 하지 않았다는 뻥카를 치기 위한 개소리다. 그냥 중공군이다</ref> 얘네들도 사실 처음에는 한국 전쟁 참전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20년대부터 국민당 정부군과 싸우고, 좆본 새끼들과 싸우면서 전쟁했는데 또 전쟁터 나가라고 하는데 싸우고 싶은 새끼는 없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100년전 태평천국운동부터 시작해서 중일전쟁으로 초토화되었지, 이제 공산화 막 하고 공산당 간부들은 남은 평생 꿀 빨면서 살려고 했는데 또 전쟁터 나가라면 파시스트 새끼라도 나가기 싫어할 거다. 실제로 훗날 문혁 때 모텔똥의 충실한 개노릇을 했던 임표나 나름대로 제정신이었던 주은래 같은 거물급 빨갱이들도 전쟁개입 반대, 신중론을 외쳤다. 하지만 중공에서 모텔똥의 권위는 정풍운동 + 국공내전 더블콤보 때문에 ㄹㅇ 반인반신에 가까웠고 팽덕회가 야야 좆반도 지형빨 보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 항미원조 드립치면서 이건 중국혁명의 연장이다 드립을 쳤기 때문에 결국 모텔똥의 뜻대로 가게 되었다.

어떻게든 빼려고 했는데 어쩌겠나, 다른 장정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벌써 발 뺐는데 얘네들은 변명 늘어놓을 타이밍을 놓쳐서 혹부리가 평양 털렸을 때 압록강으로 결국 오게 되었다. 게다가 마오쩌둥 아들 마오안잉이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어이 북조선 돕겠다고 대륙 곳곳에서 떠들고 다닌 터여서 중공군 장병들은 핑계 대기 더 애매해졌다. 처음에 이들은 죽어도 전쟁터에서 죽기는 싫었으니까 압록강 둔치에서 계란볶음밥 볶으면서 뺑끼 치고 있었는데 그걸 본 미군 폭격기가 네이팜탄을 떨구면서 마오안잉이 이때 뼈까지 재가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중공군들에게 선택지라고 남은 건 공산당에게 총살 당하기 or 전쟁터에서 싸워서 공로를 하나라도 건져서 목숨 건지는 것뿐이었는데 팽덕회와 송시륜이 이끌던 중공군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중공군은 존나 열심히 싸웠다.

맥아더가 이때 중국군을 너무 만만하게 본 상태에서 운산 - 영변전투 이래 여러 병크를 터뜨리면서 청천강 전선을 말아먹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서울까지 함락된다.(1.4 후퇴) 흥남 부두에서 배 타고 남쪽으로 피난 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ref>영화『국제시장』초반에서 이 얘기를 다룬다.</ref> 이때 이 피난선에 있던 사람들이 도착한 곳이 거제도다. 그 피난민 중에서 어느 부부가 거제도에 정착하고... 여기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태어나게 된다. 흥남에서 피난민들이 배 타고 튈 시간을 번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기 때문에 이 머통령이 재임하면서 천조국에 처음으로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장진 전투 참전 용사 위령비 방문하기였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립서비스도 남겼다. "당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슙니다."

송시륜과 팽덕회 휘하 개떼새끼들이 방해해준 덕분에 1년, 아니 6개월이면 이겼을 전쟁을 지금까지 질질 끌게 만들어줬다. 씨발새끼들

여담으로 중공군은 무기가 워낙 병신이라서 전략, 전술적으로 매우 유리했던 전투들에서도 많이 패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무장한 군대와 만났다면 패잔병이 될 수도 있었던 놈들이 영웅이 됨 ㅋㅋㅋ 채명신 장군에 의하면 삼인일총을 쓰거나 어린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구체적 사례로, 제8 아일랜드 C 전차 중대가 있는데, 상황은 걍 몰살각이었는데 중공군 무장이 워낙 개병신이라 영웅이 되었다. 니미, 불리한 지형에서 포위 당하고 중공군 보병이 전차 위로 개떼처럼 올라타서 무겁게 하기를 시전하거나 아예 전차 위에서 기관총까지 갈기고 있는 개판국(이 새끼들 쓸만한 무기가 제대로 없어서 이런 위험한 짓거리를 함. 대미지는 금속 피로도 덕분에 1씩 박히나? 니들은 전차 위에 타서 기관총 갈기지 마라. 뒤질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은 그깟 보병의 기관총 따위에 뚫리기는커녕 땅크 기관총으로 서로를 쏴서 위에 탄 새끼들 몰살했다.)이었으나 중공군의 박격포와 대전차 수류탄(?) 따위론 영국군 전차가 거의 뒤지질 않아서 망함 ㅋ ㅋ ㅋ.

하나는 막혀있는 길로 차체 막고 대가리쇼하면서 밀고 갔는데 그 어떤 짱깨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센츄리온은 짱깨 군인 몇 마리를 파.괘.햇.따

심지어 저 전투에서 어떤 센츄리온은 위에 짱깨 5마리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집에다가 쳐박아서 짱깨를 병신만들어주기도 했닼 ㅋㅋㅋㅋㅋㅋ

뭐, 그래도 워낙 애미 뒤진 지형에서 매복에 걸렸고 중공군한테도 쓸만한 무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졸라 위기긴 했다.

워커가 갓이다. 워커 차냥해

마지막에는 중공군이 길이 4000km의 지하 만리장성을 파서 버텼다.

이 지하장성이 적 포병과 공군의 화력을 막아서 미군도 결국 공세를 포기할 정도로 극혐 방어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근데 사실 이건 중공 정부에서 린뱌오가 대만 원정을 위해 복건성 일대에 때려박던 제4야전군을 짬시키기 위한 빅픽처였다. 제4야전군은 중공 내부에서도 가장 반공 기질이 강한 녀석들이었다.

이놈들을 싸워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놈들 자체를 짬시켜버리기 위해서 중공 정부는 이 제4야전군 병력들에게 장진호가 뭐하는 곳인지 일절 설명하지 않고 보극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로 그냥 무턱대고 투입시킨 것이다.

그래서 제4야전군은 열대화를 신고 희대의 한랭지에서 싸우다가 동상 괴사로 발목을 절단하는 게 다반사일 정도였다.

존나 놀라운 사실이지만 필리핀 군대도 미군과 UN의 지원을 받아서 여기에서 활약했다.

참고로 김일성 병신은 전쟁 도중에 지 병력 아끼겠다고 짱개군 남기고 인민군만 퇴각시키는 야비한 짓거리하다가 짱개들한테 단단히 찍히게됐고 심지어 팽덕회한테 뺨싸다구 쳐맞게 됐다라는 썰까지 나오게 됐다.

물론 짱개새끼들도 매한 같은 쓰레기들이기 때문에 동정해줄 필욘없다 ^^

결과[편집]

파일:Korean Armistice Ko-Text 1953.jpg
휴전협정문에 써진 서명

당시 프랑스와 미국은 가끔씩 공중지원을 하곤했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이 전쟁에 완전히 개입을 하고 분탕을 치게되면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프랑스가 느끼게 되어서 결국 1953년 7월 27일 UN군의 주도로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ref>참고로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하던 입장이었다. 그래서 휴전협정문을 자세히보면 이승만 서명은 없다.</ref>

이 협정을 통해 휴전협정 전 인민군 점령지와 국군(UN군) 수복지를 기준으로 갈라져 오늘날의 휴전선이 탄생하게 된다.

종전으로 오해하는 놈들이 있는데 6.25 전쟁은 아직 휴전 단계다. 그래서 북괴 새끼들이 미사일 쏘거나 핵실험 하는걸 전쟁위협이라 표현안하고 도발이라 표현하는거지 뿐만아니라 연평해전, 대청해전 등 이러한 국지도발과 소소한 교전들도 6.25전쟁의 연장선으로 치기도 한다.

실질적인 승자는 일본이 차지했다. 전쟁 특수로 짱짱맨 됨.

전쟁 패망해서 마치 포클랜드 전쟁 직후의 아르헨티나 마냥 다 쓰러져가는 놈의 나라였는데 이놈의 전쟁특수로 인해 미군UN군 군수공장을 한반도에서 가까운 일본에 차리게 되었고 거기서 군수물자를 존나게 찍어댄 덕분에 일본은 유럽 전체 최부국인 독일과 삐까뜰 경제부국으로 거듭나 버렸다. 1955년 이후 일본은 되려 영국을 능가하는 경제 부국이 되어버리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영토 13도전체가 도시부터 깡촌까지 전쟁으로 초토화되었고 그중 이북5도<ref>경기도 일부, 강원도 일부 포함</ref>가 혹부리우스에게 무력점거 당했고 그 똘마니들꿀꾸리우스가 현재까지 관리, 통치하고 있다.

이때 갓조국이 소이탄 존나 뿌리고 북괴군빨치산이 존나게 불싸지른 덕분에 많은 문화재가 사라졌다. [5]

그중에서 초토화가 가장 심했던 한반도 중북부 지방의 전통 건축물 같은 거 복원, 연구할 때는 일본일제강점기 때의 연구에 의지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정도다.

원래 남한에도 자생적인 빨갱이가 제법 있었으나 이 전쟁으로 인해 거의 전멸당한다. 빨갱이가 시작한 전쟁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ㄴ 물론 우리가 이겼더라도 빨갱이들 뒤지는 건 변함이 없다. 그냥 저어기 대륙을 보면 된다.

그리고 1차적으로 조봉암농지개혁법으로 갈려나간 지주들은 이때 완벽하게 갈려나가 전근대 지주제는 완전히 소멸했다.

이와 같이 나 사대부 자손이요 나 무슨 왕 후손이요 하면서 56년 전에 폐지된 신분제 놀이 하던 새끼들도 전쟁으로 싹 다 갈려나가고 양반 허세질도 더 이상 안 통하고 점차 살아남는 놈이 더 대우받게 된다. 그렇게 해방 이후에도 남아있던 조선식 계급제의 잔재가 거의 소멸하고 자본주의 계급제가 정착되었다. 결국 현재의 수저 계급이 형성되기 전까진 그래도 나름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는 평등 국가가 될 수 있었다.

ㄴ물론 이건 좀 지랄인 게, 졸부 따위 말고 당시 진정한 금수저였던 분들은 생각보다 별로 피해 입지 않았다. 왜냐면 우민들과 다르게 북괴군이 남하하자마자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를 시전하며 이승만처럼 이미 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도 당시 사회는 여전히 금수저들에게 머가리 박고 살았다. 어떤 정도였냐면 멍석말이로 사람 하나 때려죽여도 아무도 뭐라고 못하고 이승만, 박정희 자식들에게도 쩔쩔 매고 다녔다. 대표적으로 박지만만 해도 육사에서도 권세를 부렸을 정도다. 심지어 선거 때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란 드립을 대놓고 날린 정치인이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ㅅㅌㅊ 가문들은 다 살아남아서 세습이나 백그라운드로 부자되는 사례가 옛날부터 많았다.

ㄴ 가장 대박은 뭐니뭐니해도 가짜 이강석 사건. 당시 이강석이라는 육군 소위가 있었는데 이기붕의 친아들이었지만 이승만의 양아들로 입적되었다. 문제는, 강성병이라는 놈팽이 새끼가 "나 이강석이요" 이지랄 떨면서 갖은 전횡을 일삼았는데 진짜 이강석과 똑같이 생겨서 사람들이 속아넘어갈 정도였다. 물론 당시 경상남도 도지사인 이근직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근직의 아들이 이강석과 면식이 있었다. 이근직은 자기 아들한테 "저 새끼 가짜다"라는 소리를 들었고 결국 이 강성병이라는 놈팽이 새끼를 적발해내는데 성공햤다.

ㄴ ㄹㅇ 당시 깡패들도 진짜로 맞아죽을까봐 세력가(당연히 6.25로 모든 게 파괴되어서 모두가 아무것도 없었다면 세력가 따위가 없었겠지?)들한테는 개기지도 못했다. 경찰들도 아무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앞잡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 중에는 그런 분들을 주인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ㄴ 맞다. 당시 진정한 금수저들은 전쟁나자마자 부산까지 초고속으로 내려와서 배로 갈아타고 대마도로 튀었다. 그걸 잡아다 금품 갈취하고 그 돈을 국군 군량미로 탕진한 게 김두한이다.

옆나라 일본이 진작부터 각종 직업 계층 세습과 부라쿠민같은 게 남아있는 걸 보면 그나마 긍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위에 부카니스탄도 기존 계급이 박살 났는데 금방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 신 김씨왕조와 창업공신들 리그로서 다시 신분제 국가를 만들었다. 역시 ㅄ들은 뭘 해도 끝까지 병신들인걸 알 수 있다.

50년이나 잘 살아있으면 휴전이 아니라 실질적 정전이지. 다른 나라에서도 다 정전으로 본다. 전쟁에 미친 갑파쇼 새끼들이랑 틀딱이들만 '아직도 휴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멸공 북진'같은 파시스트 같은 소리만 하는 근거가 되는거다.

ㄴ 전쟁이 끝나지 않은 건 사실이다만 60년 이상을 휴전 중인걸 보면 누가 봐도 정전인데 대가리에 똥만 찬 틀딱새끼들 개노답.

최근 군사 갤러리기갑 갤러리에서 북진 밈을 콘까지 만들어 쓰고 있지만 논외로 치자.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휴전이니까 앞으로 30년 정도만 더 질질 끌면 백년전쟁처럼 백년휴전 같은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교과서에 실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정전이라기엔 휴전은 휴전이라서 부칸이 심심하면 연평도 백령도나 휴전선 지역에 대포나 미사일을 빵야빵야 하는 것이기는 하다. 특히 김정은이 들어서이다.

그전에는 통일이 되려나 모르겠다.

참고로 북괴 병신들은 이 전쟁은 국군이 기습 북침을 했기에 일어났고 지들이 그걸 막아내어 승전했다고 역사 주작하며 이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개소리를 한다. 게다가 휴전협정일을 전승절이라 부르며 자위한다. 물론 왜 개전하자마자 남한이 밀렸으며, 이겼다더니 왜 국토가 반토막났는지 의문을 품으면 수용소내지 아오지 직행이다. 그래서 진실을 탈북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카더라

마찬가지로 짱깨 새끼들도 6.25 전쟁을 미국과 남조선으로부터 북조선이 침략 당하는 것을 막았다며 '항미원조전쟁'이라고 역사 주작을 한다. 근데 최근에는 아예 6.25 전쟁을 미군 vs 짱깨군의 전쟁이었던 것처럼 조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반도 자체도 원래 지네들 땅이었다고 조작하는 거다.

그것보다 전쟁 참전했던 할배들이 나이 80, 90먹고 길바닥에서 리어카 끌고 폐지 줍고 계신다. 폐지 주워 판 돈으로 라면 끓여드시고, 공원에 모여서 장기 두신다. 이래놓고 말로만 참전 용사 감사 지랄 씨발 헬조선에서는 군대 안 가는 게 답임 ㅇㅇ

ㄴ ㅇㅈ

정작 이 분들은 조용하지만 50년대에 태어나거나 갓난아이였던 노인들이 더 설친다. 그게 어버이연합.

그리고 이러한 지주 세력이 몰락해서 박정희 같은 독재자가 토지사업이나 건설사업을 하기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다.

브라질 같은 나라는 아직도 지주 세력이 존나 파워가 있어서 정부가 뭐 하겠다고 하면 똘똘뭉쳐서 빼애액 거리면서 보상10배를 요구한다.

또한 이 전쟁으로 이승만이 미국을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헬반도에 묶어놓는데 성공했다. 이는 내정은 못했지만 외교는 잘했던 이승만의 업적이기는 함. 어떤 식으로 묶어놨냐면 당시 이승만 머통령은 휴전을 철저히 반대하던 입장이었다 그래서 위 휴전협정 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승만의 서명은 아예 빠져 있다. 그런데 미국이 휴전협정 맺고 손 털고 한국에서 나가려고 하자 이승만은 이에 꼭지 돌아버려서 우리끼리라도 계속 전쟁하겠다며 반공포로를 대거 석방<ref>사실 그냥 풀어줬다고 봐야 된다.</ref>까지 해버린다. 그래서 미국은 '승만아 알았어 제발 진정해'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국방의 임무를 대신 지내줬다.

ㄴ 이건 좀 애매하다. 애초에 미국이 한반도에 보병화기만 지급해줘서 전쟁초기 피똥 싼 이유부터가 이승만의 북진론 탓이었다. 확전이 싫었던 미국 입장에선 전쟁이 어찌되든 전작권 쥐고 있는 게 멋대로 못 날뛰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고삐라 여겨서 어찌되든 조약은 맺었을 거다.

그 뒤 미국의 전세계 공산화를 막기위한 각종 지원으로(같이 분단국가에 동독 견제하던 서독(현 도이치)도 한국에 외노자 파견 받아주는 등 지원 많이 해줬다) 헬반도는 역사상 최초로 가난을 벗어난 나라가 되었다. 이 점은 미국 만세.

6.25 참전 용사 할아버지 분들은 어르신이고 존경해야 하고 매우 점잖으신 분들이다. 근데 386세대는 6.25 참전 용사 노인 분들에게 가야 할 복지를 다 빨아먹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들이 만들었다고 설친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휴전인데 1953년 휴전 이후로 넘 길다. 벌써 60년이다. 이 정도면 사실상의 종전 아니냐? 이북 혹부리우스 왕국은 경제난 등을 거치며 군유지조차 버거운 상황 아니냐?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나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나 모르겠다. 그래도 요즘 꿀꾸리우스 3세가 발정이 났으니까 아주 약간 니네 자지만큼 조심하자.

ㄴ 아마 지금 북괴 꼬라지 보면 꿀꾸리우스가 전쟁 일으키기 전에 총맞아 뒈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짱깨 시진핑도 연임제한 철폐 이후로 죽창 횟수가 더 늘어나서 위태위태 하다던데 ㅋ

윗말도 맞는 말인 게, 아무리 70년 가까이 휴전했어도 휴전은 휴전이다. 북괴 병신들이 여전히 적화통일 야욕을 못 버렸으니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같은 도발도 일어나는 거고 입대 후 최전방 배정 받은 놈들이 가서 그 고생을 하는 거다.

그리고 통수를 좋아하는 빨갱이 새끼들은 전쟁 직후 지들끼리 통수 존나 때린다. 만악의 근원 혹부리우스는 지가 전쟁으로 개털리고 북한 초토화된 거 책임지기 싫어서 8월 종파사건 시기 친중파, 친소파들을 모두 갈아버리자 모택동은 '시발 내가 이러려고 북괴를 도와줬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ㅠㅠ'를 시전했고 중공군의 개입을 주도했던 팽덕회는 모텔똥이 대약진운동으로 중국을 말아먹은 걸로 모텔똥 까다가 숙청 당하고 문화대혁명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당해서 사망한다. 그리고 팽덕회와 같이 중공군들도 팽덕회가 조리돌림 당할 때 같이 갈려나갔다.

참전 국가[편집]

유엔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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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동방의 이름없는 최빈국을 도우러 파견된 용사들이다.

전투 병력[편집]

주한미군: 30만 2,483명

주한영국군: 1만 4,198명

주한터키군: 7,468명

주한태국군: 6,326명

주한캐나다군: 6,146명

주한필리핀군: 5,453명

주한오스트레일리아군: 2,282명

주한뉴질랜드군: 1,385명

주한에티오피아군: 1,271명

주한그리스군: 1,263명

주한프랑스군: 1,119명

주한콜롬비아군: 1,068명

주한벨기에군: 900명

주한남아공군: 826명

주한네덜란드군: 819명

주한룩셈부르크군: 44명

주한자위대: 6명<ref>전부 현역이 아닌 조리 담당 최하위 군무원들(하는 일은 취사병과 같음)이었는데 전쟁이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자 얘들도 소총수로 전환시켜서 싸우게 했다. 다부동 전투에서 '히라츠카 시게하루(平塚重治)가 전사했다.</ref>

의무병력 지원국[편집]

덴마크: 600명. 인천, 부산 병원선 운영

노르웨이: 623명, 전선 각지에 이동외과를 운영하며 부상자 9만명을 치료했다. 그 과정에서 3명의 전사자를 냈다.

스웨덴: 부산 적십자병원 운영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은 이후 휴전이후에도 스칸디나비아 위원회를 결성해 국제단체와 함께 한국의 의료지원을 지속했으며, 이들의 지원으로 1958년 설립된 병원이 국립중앙의료원이다. 이후 1968년에 한국정부가 운영권을 완전히 인수했다. 2012년까지 국립중앙의료원 구내에는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라는 바이킹 뷔페가 있었는데, 이는 당초 국립의료원 개설 시기의 3개국 직원들을 위한 식당으로 출발했다. 스웨덴 참전기념비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옆에 위치하고있다.

인도: 627명. 인도군 공수사단 구성원을 의료부대로 파견했기 때문에 공수작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일부는 대구에서 주둔하였고 일부는 영연방군과 함께 전방 병력을 직접 지원하였다.

이탈리아: 한국전쟁 당시에는 2차대전 패전국으로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으나 국제사회에게 신뢰와 인정을 받기 위해 적십자사를 거쳐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1951년 11월 병원선을 파견하였으며 1952년 9월 영등포에서 열차사고가 발생하자 신속한 대처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1955년 1월 철수할 때까지 23만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서독: 의료 지원병을 파견하긴 했으나 휴전한 뒤라서 한국한테 인정을 못받다 2018년에 인정받았다.

남침의 선봉장이었던 조선족 부대[편집]

이미 6.25전쟁이 일어나기전부터 소련정 지역의 인민군에는 좆족버러지들이 미리와서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는데도 한국의 개돼지들은 좆족들을 동포라 쳐부르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

참고로 위 조선의용군은 단순히 6.25에 참전한 수준이 아니라 항일투쟁, 2차 국공내전에도 참전한 베테랑들이었고 이새끼들이 오늘날의 북괴군의 뿌리가 된 새끼들이기도 하다.

그니까 북괴군은 곧 조선의용군이라 봐도 무방하다.

만약 또 일어난다면?[편집]

인민재판[편집]

요즘 흔히 얘기하는 인민재판이 바로 6·25 때 일어났다. 자세한 건 인민재판 항목을 참고해라.

6.25 전쟁 썰[편집]

1.작은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전투란 게 생각보다 존나 무서우셨다고 함. 적이 총을 쏘면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이상 잘 맞지는 않는데 분명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느껴진다나. 특히 적이 기관총 쏘고 있는데 접근해야 하면 공포심 ㅆㅅㅌㅊ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하급 간부들이 뒤에서 높으신 분들이 꼬라보고 있으니 앞장서기는 하는데 위험할 것 같으면 좀 가다가 뒤로 빠지면서 자연스러운 척하고 있다고.

2.우리 할머니께서 그러셨는데 전투기에서 쇳덩이 같은걸 막 떨궜다고 하심. 미사일이 다 떨어져서 쇳덩이로 대체했나? ← 그땐 지금과 같은 공대지 미사일이 없었으니 폭격은 폭격기에서 대량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방식이었다.←으르신들이 만화에서도 그렇고 쇳덩이를 떨어뜨렸다는건 진짜 쇳덩이를 떨어트린게 아니고 폭탄을 말하는거다

3.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시골에 사시는데 깡촌까지 북괴 새끼들이 들어오길래 인민군으로 안 끌려가려고 몇날 며칠을 산에 땅굴 파서 숨어있고 증조 할머니가 먹을 거 갖다 날랐다고 하시더라

4.우리 한국사 선생이 들려준 자기 아버지 썰이다. 흥해에서 살았는데 북괴군이 왔다가 후퇴하면서 여러 사람 납북시키거나 모가지 따버리는 거 알지? 이때 자기 아빠가 북괴군에게 납북당했는데 지금의 휴전선 근처까지 끌려갔다가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해서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리얼로 좆될까봐 몰래 산 타고 물 타면서 돌아왔고 북괴에게 납치당했기 때문에 지금도 동네 사람들에게 공산당으로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5.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파주 파평면에 살고 계셨는데 공산군이 남침 할 때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가시다가 서울 한강 인도교가 폭파된 걸 증조할아버지께서 보시고 서빙고에서(몇 시에 가셨다고 말했는데 까먹음) 한강을 헤엄쳐서 가시다가 못 돌아오시고 증조할머니는 1년 후 병으로 돌아가셨고 큰증조할아버지 두 분 중 한 분은 공산당 하다가 돌아가시고 한 분은 피난가다가 돌아가셔서 완전히 가문이 박살 나버렸다고 하셨다. 휴전 후 할아버지는 서울에 형제 분들과 정착하시고 판매원 일로 시작해서 자수성가하셨는데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거랑 증조할아버지 시신을 회수하지 못한 게 아직도 한이라고 나에게 말씀해주신다.

6.우리 할아버지는 충북 제천에서 사셨는데 중공군에게 잡혀서 북한 수용소로 끌려가려고 하는데 아픈 놈은 나오라고 했다고 함. 그런데 제일 처음 나온 사람한테 총으로 쏴서 죽였다고 함. 그 다음에 똑같은 질문을 한 뒤에 할아버지가 나왔는데 진짜 아픈 줄로 알고 북으로 보내려고 하는 중에 탈출하셨다고 함. 근데 우리 할아버지 참전 증명서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보름 동안 굶어서 쓰러졌는데 가족들이 영어로 쓰여있어서 뭔 내용인지 모르고 버렸다고 함.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군대 한 번 더 가심. 광광 우럭따ㅠㅠ

7.우리 외할아버지가 당시 지금의 여의도 대지주셨는데 전쟁이 터지니 돈을 못 가져가서 빈 김치독에 돈을 묻으셨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깐 김치만 홀랑 파먹고 돈은 그대로였다더라. 그 덕분에 벽돌 공장하셨는데 납품업자 씹새끼들이 민물 모래 말고 바다 모래 팔아서 공장망함 시발. 땅만 안 팔았어도 난 ㅂㄷㅂㄷ....← ㅋㅋ 사기 당해서 공장 망한 건 우리 할아버지랑 똑같네

8.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셨는데, 이태원쪽(용산 미군기지근처)에 사셔서 남산 경삿길이 힘들어서 미군들 트럭같은데에 동네 어린이들이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기도 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도 하셨다. 전쟁 중에는 북한군에 관한 이야기는 없으시고 친척 어른이 징병될까봐 산에 숨어 있는 얘기랑, 민간인이 모여있는 마을에 미군부대가 오면 동맹군일지라도 동네에 여자는 전부 숨었다고 했다. 전시 강간이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서 자주 행해지는 않지만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봐 피했지만 중공군이 오면 걔넨 잠시 쉬다가 갔다고 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상부에서 군율 잘 지키라고 해서 그런가 했다고... ← 사실 백선엽이 칭찬한 중공군도 의외로 군율을 잡지 않으면 막장이었다고 한다. 근데 사형을 하도 자주해서 여간한 짓거리들은 잘 하지 않았다고.

9.창녕에 사시던 외할머니 밀양으로 피난 가셨는데 전쟁통에 식수가 어디 있겠노? 낙동강 핏물 마시고 밥해먹고 하셨다더라

10.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부산에서 사셨는데 전쟁 터지니까 부산 끄트머리 쪽으로 가서 존버하셨다더라

11.울 할배 헬중공군이 판 지하 만리장성 위에서 백병전 벌였다는데, 리알 지옥이었다고 하시더라. 화력지원 받으며 싸울 때는 뒤에서 포탄이 날아와서 다 죽여주니까 참호나 엄폐물에 숨어서 총 쏘면서 싸워서 전쟁 뭐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ㅋ 이따구로 생각하고 있다가 백병전하니까 중공군 새끼들이 사방에서 막 튀어나오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개나 소나 어리바리 쩔었다고 했다. 아군도 잘못하면 아군 총에 맞고 뒤질 수도 있어서 위험했다고... 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선임들도 심심하면 옆에서 뚝배기 깨져서 피 철철 흘리며 죽고 좀 뛰다가 뒤지기 싫어서 기면서 막 총 쏘다 누가 죽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배 앞에 있던 중공군 2명 뒤지고 탄 떨어졌는데, 좆같게도 옆이 다 뒤지게 싸우고 있어서 신경 안 쓰고 있을 때 중공군 한 명과 1대1 다이를 까게 되었다고 하심. 순간적으로 서로 눈치보다 중공군 새끼가 먼저 착검된 총 꼬나세우며 덤볐대. 할배는 개머리판으로 존나게 때렸다고 하시더라. 서로 죽기살기로 존나게 싸워서 장갑이랑 방탄판마저 누더기가 될 정도였대. 처음엔 그래도 둘다 군인답게 싸웠는데 나중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서로 눈물 콧물 다 흘렸다고 하시네. 그러다 할배 왼손에 칼빵 맞아서 뒤질 뻔했는데 오른손으로 죽을 힘을 다해 어퍼컷처럼 때렸더니 싸우던 중공군놈이 그거 맞고 죽어버림. 할배도 온몸과 손이 너무 아파서 땅바닥 기면서 진짜 자기가 죽어가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전투가 끝나고 걍 복귀하고 후방에 가서 치료 받으니까 왼손에 심심하면 통증 생기는 장애 생기시고 몸에 흉터만 좀 남고 살아남으셨대. 솔까 제대로 죽인 건 그 한 놈뿐이었는데, 나머지 2명 죽였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3명 죽인 걸로 대대 내에서 인정받고 영웅 취급 받았다고 하시더라. 근데 웃프게도 다시 전쟁 나면 절대 참전하지 않겠다고 하심. 걍 자살하겠다고 하셨다...

12.한창 전쟁 중이었는데 울 할머니 집에 빨치산들이 쳐들어옴. 근데 그때가 할머니가 태어난 지 겨우 3일째된 날이라서 증조할머니 기절하고 난리났다고 하셨다.

13.전쟁이 터지자 할머니는 짐을 어느 정도 싸시고 진할머니와 항구로 갔다. 사족 붙이면 진외할아버지는 린민재판에 끌려가서 돌아가셨다. 어쨌든 할머니는 진외할머니와 배를 탔다. 근데 하필 배의 밑바닥 부분이다. 그때에 피난민이 너무 많아서 숨을 쉬어야 하니 코를 배 틈새에 박아야 했다. 그렇게 도착했다. 거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인천에 도착한 거 같다고 했다.

14.외할머니가 들려주셨는데 경남 함안이었는데 매일같이 미군 병사들 시체가 물 반 시체 반으로 떠내려왔다고 하셨다.

15.울 외할머니가 당시 4살이셨는데 외증조할아버지랑 외증조할머니랑 지금 살고 있는 머전에서 존버 타셨음. 근데 문제는 B-29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전투기에서 폭탄이 존나게 떨어졌는데 이 폭발음 때문에 외증조할아버지 귀가 안 들리게 되심 ㅠㅠ 광광 우럭따

16.국제시장 같은 영화에서 기브미 쪼꼬렛 하는 거는 팩트다. ㄹㅇ 거짓말 안 보태고 지프나 M3 하프나 트럭 지나가면 난리가 났고 맞다이도 뜸.

17.교수가 풀어준 자기 부모님 이야기인데 부모님은 함흥 출신이고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간호사였단다. 흥남철수때 의사 면허, 청진기만 챙겨서 탈출했고 거제도의 포로 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는데 북괴군 포로들이 '니는 북한출신인데 왜 국군 소속으로 일하냐?' 라며 변절자, 반동분자라며 온갖 협박에 해댔고 이에 시달린 아버지는 정전 직후 고향에 그나마 가깝고 거제도와 멀리 떨어져 보복 위험이 적은 강원도에 정착했다고한다.

18.울 외할아버지가 북괴군한테 잡혀서 노무자로 징집당했는데 북괴군 장교가 지리산 쯤에서 모조리 풀어줬다함. 자기들이 전쟁에서 질 것 같다고 풀어줬다던데 꽤 신사적인 사람이었다함.

19.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순사였다가 광복 이후, 전쟁 났을때도 인민군 헌병 장교로 있었다는데 이런 경우도 가능하냐? 아직도 궁금함.. 참고로 강원도 분이셨음

20.우리 할아버지는 징집되서 제주도에서 훈련받는 도중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서 그대로 전역하셨다고한다. 근데 나중에 군사정부 들어서고 재조사 들어가는 바람에 6주 훈련 다시 받고 오심

21.우리 할아버지는 49년에 입대하셔서 6.25 개전초기부터 참전하셨는데 당시에 너무나도 격렬하게 싸우는 바람에 싸우다가 나중에 후퇴하는데 당시 할아버지가 속해있던 소대? 중대? 그 정도의 병력이 나중에 후퇴하고보니 분대급도 안남을 정도로 전멸한 뒤라고 했음 이후 끊임없이 전투에 참여하시다가 휴전되고 전역을 해야하는데 부대에서 전역처리를 안해주니까 빡치셔서 그냥 직접 나오셨다고 했음

22.내 아빠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때 할머니 집에 북한군 2명이 왔다고 했다고 함. 그 때 북한군이 했던 말이 "밥 안주면 죽여버릴거야!"가 아니라 "제발 밥 좀 주세요 ㅠㅠ.. 며칠 째 밥을 못 먹었어요 ㅠㅠ.." 이랬다더라. 그 때 할머니는 북한군이 나쁘다는 걸 아셨지만 정말 군인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고 해서 몰래 밥 준비해서 북한군한테 차려줬다고 함.

23.우리 외할머니 집은 경상북도의 봉화군이였는데 인민군이 집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강 하나를 끼고 있고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24.우리 조부모님이 사는 마을을 인민군이 점령했었을때 졸라 무서웠다함 당시에는 지주들을 무조건 패죽였다고해서 인민군이랑 빨간완장찬 새끼들이 길거리를 활보해도 눈도 못 마주쳤다고 함 다행이 당시 마을에 살던 할아버지 한분이 처세술이 좋아서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역전하기전까지 인민군들이 마을사람들을 건들지 않았다고 함 놀라운 점은 그 처세술 좋은 할아버지가 바로 그 지주셨다 함

25.우리 외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징집 연령을 넘기신 상태라 징집을 당하진 않으셨지만 당시에 할아버지 집에 북괴군이 쳐들어와서 할아버지를 의용군으로 끌고 가려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당시에 끌려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으셔서 북괴군들이 총 들고 위협하는 그 때에 냅다 뒷문으로 도망치셨음 당연히 북괴군이 죽이려고 총을 갈겼는데 할아버지가 당시에 몸이 재빠르신 분이셔서 허벅지에 총상만 입으신 상태로 간신히 도망치셨음

26.친구의 썰임 친구 할아버지의 형이 당시에 공산주의를 지지하셔서 전쟁 당시 혼자 스스로 북괴로 넘어가셨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창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하던 당시 자식분들이 그래도 형님분 얼굴을 보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지가 좋아서 넘어간 걸 가지고 뭐하러 만나냐" 하시면서 극구 거절하셨음

27.할아버지가 7살때 전쟁이 터졌는데 당시 집에서 가까운 산에 놀다가 인민군을 3명을 보고 아저씨 배 안고프냐고 묻고 고프다고 하니까 밥가지러 간다고 친구랑 같이 밥 싸들고 찾아갔는데 신고하러 마을에 간 줄알고 인민군이 이미 튀고 없었다고 하셨다.

한국전쟁 70주년[편집]

이 문서는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국위선양을 한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지사니뮤ㅠㅠㅠ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해 항상 김민아가 디시 로고에 올라와있던 것과 다르게 70주년 기념 로고로 바뀌었다. 역시 반북보수 윾싀형님 찬양해

기타[편집]

  • 1950 FIFA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과 이 전쟁이 같은 시각에 일어났다.
  • 북한 김일성부산광역시를 단 한 번도 점령해보지 못했으며 남한 이승만강계군을 단 한 번도 점령해보지 못했다. 한반도의 그 나머지 지역들은 대부분 밀고 밀리는 전쟁 속에 폐허가 되었다.
  • 실질적으로 이 전쟁 중에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 중에서 부산광역시만 유일하게 평화로웠다. 제주도는 그 이전에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서 계속 쑥대밭이었다.
  • 인천상륙작전 직전까지 일부 금수저들은 부산광역시가 함락당할까봐 일본으로 밀항하기도 했다.
  • 미군의 폭격으로 원산시가 아예 사라졌다. 물론 가톨릭 성당덕원 수도원야훼 버프를 받아서인지 원산시의 시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했다. 북한은 원산시를 종전협정 후 1955년에 다시 만들게 된다.
  • 전쟁 이후 북한은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승전기념일을 만들었다. 물론 남한이나 제3자 입장에선 다 지랄이다. 공식적으로는 진행중인 전쟁으로서 승자 없음 이다. 하지만 6.25 이후 70년이나 지난 지금 정치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퀄리티가 높은 나라는 단연 남한이므로 실질적인 승자는 한국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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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20세기 관련 문서 21세기
20th Century / 20世紀 / 1901년~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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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틀: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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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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