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

기원전 108년한나라가 불반도 최초의 국가 고조선(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다가 새로 세운 4개의 직할군을 말한다.

병신같이 국뽕 처먹은 놈들이 '아니야! 반도에 한사군이 있었을리가 없어, 요동[1] 에 있었던 거야! 빼애액'이라고 지랄을 해대는데 낙랑군이 313년에 고구려 미천왕한테 망하기까지 400여년간 한반도 북부를 한사군이 다스린것은 이미 고증으로도 검증된 빼박 팩트이다. 거참 몽골간섭기나 일제강점기가 부정한다고 없어지는게 아닌 것처럼 좀 거시기하더라도 한국의 역사인거 인정합시다.

ㄴ 근데 국뽕만의 탓은 아닌 게, 일제시대 때 이런 사례들만 골라 뽑아서 "너희 조센징들은 남의 지배를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데수웅" 거리던 게 있어서, 그거 극복하다 너무 나간 것. 그 땐 발해 유적에다 일본 동전 묻어놓은 뒤 발굴한 척 주작질해 놓고는 "발해는 일본의 속국이었다" 이 지랄도 떨었더랬고...
ㄴㄴ ㅇㅈ 한국사가 은근히 국뽕이 심한 게 사실 이런 왜구들의 장난질을 극복하려다 그렇게 된 점이 있다. 정작 왜구들이 씹다버린 대륙사관 줏어다먹은 환빠 새끼들은 친일식민강단사학이니 뭐니 하지만 한국사학계의 주류는 차라리 국뽕에 가까움.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이 있었으나 이중에서 낙랑군을 제외하고는 현지민에게 두들겨 맞고 중국쪽으로 좆겨나거나 낙랑군에 흡수되어서 보통 한사군의 역사를 들땐 낙랑군의 역사를 주로 든다. 예를 들어 200년경에 새로 세워진 대방군의 경우 낙랑군 일부를 나누어 과거 진번군 자리에 설치한것으로 여겨지는데 보통 황해도 지역으로 비정된다.

위치로도 알 수 있듯히 한반도 북부에서 가장 기름진 평야지대인 평안도-황해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백제가 건국초기부터 여기 먹으려고 존나 애를 썼다. 당장 고구려의 경우 3대왕 대무신왕부터 한번 찔러봤다가 광무제한테 쫒겨났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찔러보다가 결국 미천왕이 요동 서안평을 먹고 본토와의 연결을 차단해 고립시킨 후 먹어치움. 고구려가 이후 동북의 강자로 거듭나게 된건 낙랑을 완전히 흡수한게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고 결국 장수왕대에 국내성 산골짜기 짜증나서 오래 못 있겠다면서 이 지역으로 천도까지 한다. 한편 백제 역시 건국 초기부터 낙랑이랑 싸우면서 컸는데 결국엔 근초고왕 대에 고구려를 격파하고 옛 대방군쪽 영토를 차지하기도 했다.

위치 비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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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편집]

한사군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멀쩡하게 굴러갔던 군이다.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평안남도지역에 설치되었지만 진번군과 임둔군을 흡수하면서 평안남도+황해도+원산일대를 통치하는 매우 거대한 군이 되었다. 전한-후한교체기에 잠깐 고구려가 쿡쿡 찔러댔으나 광무제성님의 참교육으로 물러나야했다. 물론 이때 원산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져서 나아아중에 원산지역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지만. 헬짱깨가 삼국지찍던시절에 요동 군벌 공손강이 황해도지역(둔유현 이남 7현)을 대방군으로 분리하면서 원래크기로 돌아갔다. 313년 미천왕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군이 사라졌고 일부 짱깨들이 탈주해 허베이성 루룽 현에 이주하면서 환뽕들이 물고빨고 핥는 화북의 낙랑군이 형성되었다.

대방군[편집]

황해도에서 신설된 군이다. 마한하고 맞짱떴다가 같이 뒤졌다. 이 상황에서 백제는 마한을 낼름낼름 먹어가면서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여기 영유권문제로 본격적으로 다투게 된다.

현도군[편집]

본래 함경도 해안 옥저성에 치소를 뒀다는 말도 있고 첨부터 압록강 유역에 있다는 기록도 있고... 암튼 미스테리어스한 곳이다. 원래있던곳에서 기원전 75년 토착민들의 노오련한 죽창솜씨에 후장이 뚤려서 신빈과 푸순지역으로 쫓겨났다. 그마저도 고구려한테 또 참교육을 당해서 치소인 고구려현은 푸순으로 옮겨진 뒤에 군태수의 치소를 심양에 있던 후성현에 빼앗겼다.

후성현으로 치소가 옮겨진 뒤에 심양근처에 있던 요동군의 현들을 흡수해서 사실상 요동군의 위성도시로 전락했다. 공손씨가 몰락한 뒤 선비족이 점령했다가 광개토대왕성님이 요동을 점령하면서 사라졌다. 고구려는 과거 고구려현이 있던 곳에 현도성을 때려박았다.

임둔군[편집]

원산지역에 설치되었다.

진번군[편집]

압록강에 있다는 말고 있고 황해도에 있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건 저때 산 새끼들만 알거다. 그만큼 자료가 없다.


낙랑군이 진짜 한반도에 있었다면 온조 일행은 어떻게 졸본에서 한강까지 온거냐?[편집]

몰라!!! 소서노와 비류, 온조는 아마 군두운 타고 하늘을 날아서 왔을지 누가 아냐?

졸본에서 한강까지 가려면 당연히 낙랑 영토를 지나야 하는데 기록을 보면 소서노, 비류, 온조 딸랑 셋이서 전국일주 가족투어 하듯 온 게 아니라 유리왕 지지 세력에게 밀린 이들까지 데리고 내려왔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의 민족대이동이었을테고 당연히 낙랑군이 이들을 그냥 통과시켜줄 리 만무하다. 낙랑군이 그냥 지나가세요 하고 통과시긴다는 건 일본이 조선에게 "명나라 칠 거니 길 내어줘!" 하면 조선이 "예, 지나가세요!" 하고 왜군 통과시켜주는 거랑 비교하면 된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돼는 상황이다.

낙랑군이 정말로 평양 지역에 있었다면 삼국사기든 중국 사서든 소서노, 비류, 온조가 이끄는 일행들과 어떤 형태로든 무력 충돌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고 그냥 쿨하게 졸본에서 한강까지 뿅 하고 왔다는 기록만 있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애들은 이를 근거로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증거라는데, 확실히 온조 일행의 이동 경로는 오늘날 시각에서 봐도 수수께끼다. 지도상에서 보면 온조 일행은 당연히 낙랑 영토를 지나야 한강까지 올 수 있는데 낙랑을 통과하지 않고 한강까지 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온조 일행이 무슨 어벤져스 군단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초인집단이 아닌 이상 낙랑 영토를 그냥 통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낙랑과의 무력 충돌 기록은 없고 낙랑군이 죄다 얼빵한 놈들만 있어서 온조 일행을 그냥 다 통과시켰다고 보기도 힘들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안 그러면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환빠들 주장이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반론[편집]

인정합니다. ^^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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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무에도 보이더니 여기에도 있네 ㅋㅋㅋㅋㅋ

1. 일단 니 논리전개부터 틀려먹은 게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었다고 치자. 그럼 한반도 북부에는 낙랑군 대신 다른 세력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 그럼 이 세력들은 온조세력이 내려오면 가만히 있을 것 같냐? 그리고 평양일대는 수준높은 꿀땅이라서 무주공산이 안될리가 없는 땅이다. 그 남북국시대에도 평양지역호족이던 검용이 닉 퓨리국장님에게 투항해서 후고구려가 평양먹었다는 기록이 있었을 정도였는데?

2. 두번째로, 니가 국경과 영토를 현대의 국경 영토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거다. 물론 전통시대에도 국경과 영토라는 개념이 있긴 했지만, 전통시대에는 각 지역에 행정력이 미치는 치소나 성을 중심으로 점처럼 퍼져있고, 그 구역들을 연결하는 도로를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식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 드문 곳으로 지나가면 된다.

3. 물론 온조형제와 내려온 인원이 100호나 되는 문제가 있긴 하다.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지적은 언뜻 합당해보인다. 그런데 이 의문은 중국 측 기록을 보면 해결된다. 삼국사기에 실린 백제의 건국설화인 온조설화와는 다른 내용의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는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고 불렀다.

-《북사》 열전 백제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자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대방(帶方)의 옛 땅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나라가 점점 번창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 불렀다. 그로부터 십여대 동안 대대로 중국의 신하 노릇을 하였는데, 이전 나라의 역사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수서》 동이열전 백제

백제를 건설한 인물로 온조비류가 아닌 구태라는 인물이 나온다. 한나라의 요동태수 공손도(공손탁)가 그를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공손도가 사위로 삼은 사람은 부여왕 위구태다.) 백제의 건국세력이 낙랑군 및 공손도 세력과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삼국사기 책계왕 기록에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 백제의 건국세력은 고구려를 떠나서 그와 적대적이었던 공손도에게 의탁했고 공손도는 대방에 백제 건국세력의 정착지를 마련해줬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마한의 소국이었는데 왜 대방이 나오냐면, 아마 공손도가 삼한지역 일부를 정벌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보니까 니가 삼국사기만 읽어보고 저런 추측을 한 거 같은데 백제와 동시기에 있었던 북조시대의 국가들을 다룬 역사서 북사 백제전이라도 읽어보긴 한건지 의심된다. 백제의 건국설화는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여러 갈래의 설화가 전하며, 온조설화는 중국 측의 역사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아 교차검증이 안 된다. 게다가 백제와 중국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중국측 기록이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온조설화는 비교적 초기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몽설화와는 달리 굉장히 늦게 형성된 설화라고 볼 수 있다.

4. 그리고 원래 고대 건국설화라는 게 인과관계가 안맞는 게 많다. 당장 로마의 건국설화도 늑대 젖을 먹고 자란 형제가 나라를 세웠다고 하고 있으며(인간은 5-6세쯤에 언어라든가 지식을 활발하게 익히고 그 뒤로 더뎌진다. 쉽게 말해서 늑대랑 같이 있으면 인간의 말을 하긴 커녕 오히려 습성이 늑대와 비슷해진다.), 러시아의 류리크 설화도 슬라브 여러 부족들이 싸우다 피만 보니까 뜬금없이 바이킹 류리크를 초청해 나라(노브고로드 공국)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너는 저게 설화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쓴거다.

이제 나무위키 뿐 아니라 디씨위키도 꺼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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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기서 좀 더 맛이 간 놈들은 '요동에도 없었어 요동은 일찍부터 고구려가 먹었다고 징징!'거리는데 고구려 역대 왕들이 요동점령하려고 애썼다는 역사는 그럼 내란진압이냐 병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