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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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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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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약품에서 생산하는 한국최초의 약이자 소화제. 급체+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 생겼을때 한병따 마시면 개꿀이다.

구한말에 등장해서 혹성탈출, 제2차 세계대전, 6.25 전쟁, IMF다 겪고도 살아남은 기업계의 생존왕 그자체이다.

재료[편집]

2004년 광고에 따르면 정향, 현호색, 후박, 고추, 육두구등 11가지 약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연혁[편집]

원조 헬조선에선 급체나 소화불량, 그리고 체증으로 사람이 존나게 죽어나갔다.

왕족이 비빔밥먹다가 급체로 죽을정도였으니 말다했지. 때문에 1897년, 전직 선전관이던 민병호 슨상님은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보겠다고 궁중에서 왕족들만 먹던[1] 소화제 제조기법과 서양의학을 배워서 만든것이 바로 활명수.

동년에 민병호슨상님의 아들 민강슨상님은 아부지가 만든 활명수를 대중화하기 위해 중구 순화동 5번지에 동화약방을 설립했고 동화약방창립후부터 불티나게 팔렸다.[2]

이렇게 활명수는 처음나온 구한말때부터 히트상품이다보니 수많은 짭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10년 한국최초로 부채표상표를 정식상표로 등록했고 9년뒤엔 한국최초로 유사상표(딴회사에서 짝퉁만드는 것을 사전차단하기 위해 등록하는 상표) '활명액'을 등록했다[3]. 이후에도 짭이 존나게 많이 나와서 활명큐 까스활 미인활명수등 수많은 유사상표들을 등록했다.

30년대에는 만주국 단둥에 분점을 세움으로써 한국최초로 해외진출을 한 기업타이틀까지 거머쥐었지만 중공군개새끼들때문에 만주, 한반도북부지점을 털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제대로된 영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1950년대부터 광고를 냈다. 당연히 70년동안 영상광고를 내보내면서 당대 난다긴다 하던 수많은 배우나 탤런트들이 광고모델이 되었다.

광고를 봅시다[편집]

하도 오래된거다보니 단일제품+유사상품 해가지고 광고가 졸라게 많다. 그냥 여기서 찾아서 봐 [1]

  1. 특히 덍복이.
  2. 참고로 민강슨상님은 한국최초의 약학 학교인 조선약학 강습소를 만드는데도 관여했다. 하지만 1919년 교장이던 조중응 슨상님이 돌아가시고 난뒤 일본인 교장이 취임하면서 때려쳤다. 이후에 1930년 경성약학전문학교로 개칭되고 해방이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 흡수되었다.
  3. 이렇게 했는데도 짭은 계속나왔다. 그래서 수십년동안 광고에서 부채표를 강조했고 유사상표도 졸라게 많이 등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