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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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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주인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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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하지 아니하였다."

조선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재상이라고 알려졌던 인물이자 겸허받지 아니한 인물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라는 띵언을 남겼다. 양비론의 아버지라 카더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집안일 한정이고 실제 정치에서는 엄청 꼰대에 독선 그 자체였다고 한다. 자기 마음에 안들면 심지어 상대가 왕인데도 "아...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라고 막아서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그 상대가 한국 역사상 지력스탯을 만렙을 찍은 왕이었기에 적당히 휘둘리는 척 해주면서 역으로 이용해먹은거지 만만한 왕이었으면 조선판 조조가 되었을 거다.

어찌나 일을 잘하던지, 세종대왕 죽기 직전까지 18년동안 영의정을 해먹었고 본인도 중간이 관두고 싶어했는데 세종대왕이 윤허를 안 했다.

사실 본인이 일처리를 잘했다는건 아니고 밑에 신하들을 꽉 잡고 있는 완벽한 꼰대다보니 군대식으로 제일 위에 한놈만 갈구면 그 밑에 있는놈들은 알아서 기어다닌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용하여 세종이 자주 애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도 황희는 정치를 잘했다기보다는 정치질을 존나게 잘했다고 보는게 맞는 표현이다.

청백리라는 세간(과 후대의 후손들의 이미지메이킹 후빨질)의 이미지랑 다르게 청렴결백은 좆까고, 존나 해처먹고 권력형 비리 저질러댔는데 숨기려다가 결국 세종한테 다 걸려서 실록에까지 남은 인물이다. 예전에 모 국회의원이 디스했던게 사실 역알못이 아닌이상 맞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난리친 문종 후손들이 지나치게 미화와 쉴드질을 양심없게 치게 된 것이기도 하다.

목줄을 손에 꽉 쥐게 된 세종은, 능력을 버리기 아까워 세종대왕님이 파직 등의 자비 대신 평생 노동교화형을 내려주셨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실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인물이(인재)냐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재상 캐릭터인 유성룡보다 양심으로나 인재적 측면으로나 확실히 못하다. 이 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로 세종과 수렴청정하던 문종이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장단점(장점=똑똑함, 단점=똑똑함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쓰고 준법 정신이나 양심이 없으며 범죄도 저질렀는데 맹사성은 반대로 깨끗하지만 멍청한 결정장애였다. 세종이랑 문종은 둘을 합쳐서 똑똑하고 깨끗하게 국정을 운영했다) 중 장점을 극대화 시키고 단점을 최대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황희는 성은이 망극하여 세종대왕님 돌아가시기 4개월전까지 부려먹히다 퇴직 성공하고 3년만에 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리 때문에 노비문서 쓴 걸지도 모른다.

사직 요청하다가 나중엔 파면해달라고까지 한 거 보면 말년에는 제발 저 좀 놔주세요 마인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회 상태가 여말선초의 권력다툼과 혼락, 그리고 위화도 회군부터 수차례의 왕자의 난까지 수많은 전란으로 인해 인간들이 갈려나가고 이성계 이방원 부자 시기 벌어진 왕씨대학살까지 겹쳐서 한반도 인구 다수가 죽어나간 상태였다. 시기상 세종이 벌인 일은 아니었으나, 인재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생긴 고육지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의 유성룡이 등장했던 선조 시기와 비교해봐도 인재풀과 인력풀이 나오기에 이성계-이방원 시기를 거치며 온갖 내란으로 갈려나간 이후인 이 시기는 여러모로 불리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국가를 하드캐리했다는 점에서 세종-문종 부자의 지능과 지도자로서의 발전적 능력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물론 세종이 능력있는 임금이라 똑똑하지만 양심과 인성은 글러먹은 부패관리 황희를 잘 컨트롤해서 써먹을 수 있었던 점이 나중에 황희까지 부각되는 것일 수도 있다. 재상급 신하가 유능한데 왕이 무능한 경우 왕조가 허수아비가 되거나, 능력있는데 부패한 관료가 유능하게 개짓거리를 해서 부패로 썩어들어가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들어 삼국지 시대의 한말이라든지 위나라 말기라든지 이성계에게 따인 고려 말기라든지 나중의 안동 김씨에 의한 세도정치나 애미뒤진 권신 한명회에 의한 갑질시기 등도 유사하다.

야사에선 좀 부드러워 보이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총공(攻) 스타일이다. 김종서가 부하 시절에 황희한테 뻑하면 개갈굼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김종서 말로는 "여진족이 쏜 화살이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갈때도 꿈쩍도 하지 않던 내가 황 대감의 불호령에는 식은땀이 다 났다"라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꼰대였다고 한다.

특히 김종서를 특별하게 더 예뻐했는지 자기 후계자로 생각했는지 다른 신하들에 비해 훨씬 더 심하게 갈궈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김종서는 부정부패 하나 없는 완벽한 청백리가 되었지만 단종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역적으로 몰려 수양대군에게 끔살당한다.

고려~조선왕까지 모실정도로 오래살았다.

황희가 여태까지 저질렀던 일들[편집]

  • 권력 남용으로 사위인 서달을 방면하다 걸렸다. 참고로 서달 이새끼는 지방 아전이 거슬린다고 자기 종들 시켜서 때려죽이게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맹사성등 다른 관리들한테도 쉬쉬하게 했다가 다 같이 파면 또는 처벌을 받았다.
  • 박포의 아내와 간통
  • 말 1000마리 죽인 제주 감목관 태석균의 감형을 사헌부에 부탁했다.

국회의원 황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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