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기수론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이 내세운 이론. 당시 신민당에는 무기력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노인들이 너무 많았고, 이런 신민당의 무능한 행보에 질린 국민들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힘을 실어줬다.

1969년 3선 개헌이 이루어진 후에도 박정희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지 않자 위기감을 느낀 신민당은 71년에 들어서 비로소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같은 신선한 40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뭉쳤고, 김대중을 대선 후보로 내세운 신민당은 박정희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은 완전한 하나가 아니기에 민주공화당 내에서 대선에 나가고 싶어하던 김종필 같은 인물들이 박정희만 자꾸 대선에 나가는 꼬라지를 좆같아하던 것도 있었기에 박정희에게 가는 위협은 더 컸다.

결과적으로 김대중이 패배하고 박정희가 승리했지만, 적어도 윤보선이 계속 출마하다가 신민당으로 가는 표가 떨어지던 시절에서 전세를 역전하고 박정희를 위협하는 것에 성공하자 이후 삼김 중 김대중과 김영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으며 실제로 70년대부터 야권을 주도하는 인물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김대중에게 위협을 느낀 박정희는 1년 만에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며 김대중을 본격적으로 조지려고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