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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으로써== 식민지 총독으로서는 당연한 정책을 취했다. 조선에 개인적인 호감이 있었던 걸로 보여진다. 악명높은 조선총독부를 어느정도 정상화시켰으며 조직을 개편하여 비대했던 총독부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토지조사국과 산림국을 합쳐 농림국으로 만들었다. 하고 총독부 인사개혁이라고 카긴 카는데 새로 들어온 국장급 인사들이 대개 우가키 본인과 연이 있는 새끼들이라 이건 굳이 말하면 허물이다. '조선보물고적명승기념물 보존령'을 지정하여 조선의 국보, 보물,천연기념물을 보존하려 노력했다. 전 문서에는 뭔 씨발 농촌진흥운동을 무슨 봉건적인 농촌사회의 악습을 타파하는 식으로 되어있던데, 일본이나 농촌진흥운동 하긴 했겠지 한국은 그딴거 없었다. 이 시기의 농업정책으로 촌락조직이 강화되고 농촌사회의 대표자로서의 지주들이 대두되었는데 이후 총동원정책으로 아ㅡ주 잘 써먹혔다. 한국에서 봉건 농촌사회 악습은 [[이승만]]+[[조봉암]]듀오의 [[농지개혁법]], 그리고 [[6.25 전쟁]]으로 완전히 절딴났다. 공업적인 면모에 있어서는 일본의 금수저들의 요구를 반영한 티가 역력한데, 그에 따라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군수공업을 추진한다. 그리고 악명높은 기형적인 경제정책은 이 시기때 나왔다. 남한은 깡농촌, 북한은 공업지역으로 육성하는 남면북양정책, 압록강과 두만강 지대의 국유림을 개발하는 북선개척, 전국에서 금 생산을 장려하는 산금장려정책 등 병참기지화를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였고 그 과정에서 발전의 모습이 그나마 이전과 달라보이는 거지 사실 별로 좋은 건 아니란 거다. 내적인 모습으로 민족말살정책의 시동이 슬슬 걸리기 시작하고 (민족문화검열이 이때부터 점점 빡셔지거든) 내선융화라 캐서 내선일체 예고편이 틀어지면서 황국신민화 정책이 가속화된다. 결국 이 양반의 식민지정책은 전체적으로 한반도 병참기지화를 위한 포석이었다. 그 과정에서 농업 생산이 높아진건 좋은 영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차피 30년대 후반부터 다 뜯겨나간다. 총독 이후의 생애는 딱히 알 필요없으니 패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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