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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공지전의 태동=== 현대의 공지전은 대전 이후 [[소련]]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바르샤바 조약]]군과 [[나토]]의 대립에서 탄생한다.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 조약군은 유사시 그들이 자랑이자 전문분야였던<ref>[[독소전쟁]]으로 인해 당시 [[소련군]]의 기계화 비율은 어마무시했다. 그만큼 많은 인간을 갈아마셨기 때문에. 그리고 기갑전의 노하우도 어마어마 했다.</ref> 작전기동군을 나토군의 종심으로 기동시킨다는 작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미군은 대전 종결과 [[핵무기]]의 전력화로 핵만능주의에 빠졌다. 이는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뒤에도 이어졌는데,[[핵]] 개발의 선발주자였던 미국이 전체적인 핵전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미군의 관심은 재래식 무기체계에 핵 투사체를 끼얹는<ref>끼얹는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미국은 핵의 대형화(즉 탄도 미사일화)와 동시에 소형화를 추진해 전술레벨에서 핵을 써먹을 궁리를 해댔다. 그 결과물은 대전차무기인 바주카에 사용할 핵 바주카 포탄, 핵 박격포, 핵 전차포탄 등등등.</ref>것에 골몰했고, 이는 기동전이 아닌 이전의 화력소모전 교리를 계승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미국의 화력소모전 교리는 두가지 요인에 의해 수정된다. 하나는 소련의 핵전력이 미국의 수준에 이르러 [[상호확증파괴]]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 도달했고, 또 하나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다. 상호확증파괴는 더이상 핵 전력의 파괴력만으론 소련에게서 군사적으로 우위를 차지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결국 미국은 종래의 재래식 전력 확충에 관심을 두게 된다. 베트남 전쟁은 미 군사사상에 미친 영향은 큰데, 하나는 [[작전술]] 개념이 미군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점, 또 하나는 이전까지의 우월한 생산력과 [[쇼미더머니]]를 기반으로 한 화력소모전 독트린만으론 장차전에 대비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월맹군은 미군의 주적인 [[소련군]]에 비교하면 소련한테 미안할 지경이었는데, 그 약소한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군 수뇌부는 전쟁지도의 문제와 더불어 패배의 원인을 진지전과 화력전의 한계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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