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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주공방전에서 관우의 평가 ==== 긍정적인 평가 : 명실공히 위 군부 1인자인 조인이 이끄는 군이, 그것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내려와 전투 준비도 끝나있던 상태에서 형북의 주둔군과 함께 아무것도 못해보고 성에 갇히게 된다. 관우가 맡던 지역은 강릉 빼면 거의 의미가 없던 곳들이었고 조인이 주둔했던 형북은 촉, 오가 지녔던 형남 전체보다 부유했던 지역이었음에도. 그 후 장료와 같은 전에 실린 우금군까지 아무것도 못해보고 항복했고, 관우의 기세는 한중전 이후 재정비하던, 마찬가지로 장료와 같은 전에 실린 서황이 이끄는 군까지 오고서야 꺾였음. :ㄴ 꺾인거라 보기도 뭐하다. 애초에 서황이 관우를 칠때 상황은 면수(번성 주위 호수) 장악에 양양은 완전히 포위당해 연락이 끊긴상태다. 관우가 서황과 붙을때 보기5천 뿐이였던것도 이게 이유였고 :그렇다고 양양, 면수장악이 풀린것도 아니다. 그리고 서황의 병사가 신병이라 그렇다는데 기록보면 분명 병사들을 더 충원했고 이후 최후 공격당시엔 12영의 군졸들까지 더 보탠 군세라고 되어 있음. 조조는 천도드립을 치고 우금, 서황을 차례로 보낸 것으로 모자라 대오전선의 장료를 이동시키고 하후돈과 함께 직접 남하할 정도로 쫄려있던 상태. '번성에 짱박힌 조인 하나 못잡았다' 정도로는 촉 공격으로 인해 약체화되어 악진, 문빙, 여몽에 차례로 휘둘리던 소수 약졸들을 키워 조인, 우금, 서황, 방덕, 만총 등이 모두 덤벼야(그것도 방어전으로) 막아낼 수 있도록 몰아쳤으며 조조가 모든 것을 걸어 막도록 만든 관우의 위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솔직히 관우가 명분을 주고 잘못한 면도 있긴한데 그렇다고 손권이 잘한것도 아니지 않나? 기록보면 노숙이 죽은 이후로 여몽이랑 짝짜궁하고 대놓고 형주를 노렸다, 즉 노숙이 죽은 217년 이후론 먼저 뒷통수 칠 생각을 했던건 오나라 측이라는거다, 이건 관우가 쌀도둑질 한 때랑 결혼 동맹 거절하기도 이전이다. 관우가 대놓고 동쪽을 경계했을 정도면 저쪽도 그리 신의있게 나간건 아니라는거지, 어차피 익양대치 이후로 형주 영유권에 대해선 거의 결판이 난 상황인데 통수칠 준비 다 해놓고 관우가 방심하고 명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게 손권 패거리인데 솔직히 손권이 잘한거냐? 애시당초 손권이 익양대치 이후로 서로 지난일은 잊고 신의있게 나갔다고 한다면 관우가 과연 번성을 끝나 함락시키지 못하란 법도 없었을거임. ㄴ 그럼 그걸 잘 알고있는 관우가 왜 무리를 해서 오나라 한테 기회를 주냐? 오나라가 그런 포커스를 보이면 괜히 무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당시 촉나라는 한중 먹고서 한참 내정 다지기 하던 시점이라 제대로 지원도 못해주는 실정인데 뭘 믿고서 번성까지 공격을 한거냐? 부정적인 평가 : 관우는 익양대치 이후로 약화된 촉한 지역의 형주를 가지고 무리하게 번성과 양양을 공략했는데 결국 이것이 화를 부른것이다, 긍정적인 평가측에서도 지적했듯히 관우가 가진 형주는 기껏해야 남군정도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곳인데 여기서 수세적으로 잘 지켜도 모자란 판국에 무리하게 강릉의 수비병력까지 빼면서 포위망을 강화하려 하는데 작정하고 몰려드는 위의 군세를 당해낼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거기에 관우가 손권의 침공을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렇다면 수비를 강화해야 함에도 여몽의 병세 악화라고 무리하게 병력을 뺀건 무슨 자신감인가? 여몽 빼고 다른 오나라 장수들은 다 호구로 보였나? 예전에 감녕이 지킨다는 얘기를 듣고 감히 진격하지 못한건 관우가 아니라 다른 장수였나? 거기다가 손권의 결혼동맹 파토와 우금의 병력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무리하게 군량고를 턴 건 손권에게 명분만 주는 일이었다. 반준은 두문불출했단 소리가 나오지만 손권 방문하자마자 우디르하는 괴상한새끼다. 더군다나 세놈 공통특징이 보급담당이다. 애초에 우번도 쓰리질로 남군먹고나서 빨리 장악 안하면 통수쳐맞을거란 말 나온거봐서 미방, 반준 두놈이 문제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거기에 동료들과 화목하지 못하여 미방과 사인이 제대로 지원을 하지않고 바로 항복할 생각을 품게 만들었으니 내외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무리하게 용병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미방이 지원을 제대로 안한건 사실이고 나중가면 우번한테 사사로운 원한으로 국가를 배반했다고 존나 까임. 거기다가 아무리 관우랑 사이가 틀어졌다고해도 관우는 분명히 미방이 남군 홀라당 태워먹고 그 지랄해놓고 군수물자도 제대로 대지않은 공적인 잘못을 가지고 죄를 묻겠다고 한 것인데 그거 처벌 받기 싫어서 지 형과 주군을 배반한게 옳은 행동은 아니다. ㄴ 미방과 부사인이 기구한게 나중에 또 정치적으로 좆됬음을 감지한 오나라가 촉으로 돌려보내서 결국 처형당한다. 포승줄로 묶어갔는데 뭔 정치적 문제냐? 그리고 익양대치때 관우군은 3만이라고 나오는데 몇년 안 지났을테니 군세가 갑자기 늘었다 보기 어려울것이고 번성공략 때도 비슷한 숫자였을것이다. 관우가 이 정도의 군세 가지고 위에서 조조가 싹삭 긁어서 몰려드는 군세들과 혹시 모를 오의 기습을 막고 조인이 굳게 지키는 번성을 공략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면 관우는 스스로의 군사적 역량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졌던지 우금 잡은 후에 극도로 오만해졌다는 결론이 나올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한참 익주와 한중을 정비하고 있을 주군 유비가 지원할만한 상황도 아니지 않았나? 그러니까 화하를 진동시키고 우금의 7군을 잡은 상태에서 병력을 철수시켰으면 위는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함부로 관우를 치지 못했을것이고 손권 역시 마찬가지 였을것이며 관우에게도 명예로운 전장으로 남았을것이다. 촉서 관우전에 관우가 꿈을 꾸고 스스로도 돌아가기 힘들겠다고 예언했는데 무의식적으로 관우 스스로도 무리라고 생각한것은 아닌가? 애당초 관우에게 주어진 임무는 형주를 잘 지키는 것이지 무리하게 혼자서 독단적으로 양번을 먹으라는 지시는 아니지 않았나? 오죽하면 손권이 형주먹었단 사실 알고나서 샌드위치로 잡을생각 안하고 관우한테 소식알려서 병력이나 빼게만들라고 서황에게 했겠냐 근데 내가보기에도 양번 먹어도 지킬수 있는지는 의문 공연히 먹고 지킬수나 있는지도 의문인 번성, 양양을 무리하게 공략할 필요가 있었는가 말이다. 결국 지나치게 동원할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 무리하게 욕심을 부린 결과가 쌀도둑놈이라는 오명과 형주 상실과 관우 자신의 목숨을 잃는 일이 된 것임. 천도 고려한 이유도 양번뚫리면 허창까지 금방이라서 그런게 크고. 또한 관우가 트롤짓을 제대로 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없는 촉의 인재풀을 더 얇게 만들어버렸고 유비도 이에 눈이 뒤집혀서 손권이 관우가 다스렸던 형주 영토 돌려주겠다고 하고 제갈량도 오랑 싸우기보다 손권의 제안 수용하고 오나라랑 동맹 맺어서 위나라에 대응해야 한다고 유비에게 간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1차로 날린 촉의 인재풀을 더 날려버리는데 한몫함. 이로 인해 제갈량은 나중에 위나라에 대한 북벌을 감행했을 때 자신을 도와줄 인재를 찾는데 애를 먹었고 한정된 루트로 위에 대한 북벌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음. 결국 위나라는 12년이나 걸렸지만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냈으며 제갈량 사후 촉은 마땅한 인재가 없어 결국 위나라에 263년 잡아먹히게 됨.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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